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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수학자들은 왜 우는가 — 데릭 톰슨의 '기술적 슬픔': 기계가 2,000년의 대화에 끼어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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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수학자들은 왜 우는가 — 데릭 톰슨의 '기술적 슬픔': 기계가 2,000년의 대화에 끼어들 때

2026년 10월 15일, 데릭 톰슨이 「나는 수학자들이 왜 우는지 안다」를 올렸다. 필즈상 수상자 뒤미닐 코팽은 '화요일 밤에 울었고 딸이 깼다'고 했고, 스트로가츠는 인터뷰 도중 울었다. 톰슨은 이 눈물에 '기술적 슬픔'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밑바닥에 자존심이 아니라 '끊긴 대화'가 있다고 썼다 — 과학은 보물찾기(기술)이면서 동시에 2,000년짜리 편지 주고받기(대화)라는 것이다. 이 글은 유료 구간까지 복원해 원문을 절별로 읽고, 아르키메데스의 편지가 어떻게 2,200년을 살아남아 스트로가츠에게 닿았는지, 카스파로프·이세돌·알파폴드·일러스트레이터·번역가·프로그래머가 먼저 겪은 같은 슬픔은 어떻게 끝났는지, '길드 보호자'라는 반론은 어디까지 맞는지, 그리고 내 분야에 그날이 올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인터랙티브 6개와 일러스트 12장으로 풀어본다.

코어닷투데이2026-10-1787분

아르키메데스의 편지는 2,200년을 지나 오늘 밤 어느 수학자의 화면에 도착한다크게 보기

들어가며 — 화요일 밤, 딸을 깨운 울음

2026년 10월 6일 화요일 밤(유럽 시간), 2022년 필즈상 수상자 위고 뒤미닐 코팽은 울었다. 울음소리에 딸이 깼다. 이틀 뒤 프랑스수학회(SMF) 화상 세미나에서 그는 이 이야기를 담담하게 꺼냈고, 르몽드가 10월 10일자 기사 제목으로 그의 다음 문장을 뽑았다. "그들은 내 연구 분야를 전멸시켰다(Ils ont annihilé mon domaine de recherche)." 그날 밤 OpenAI가 공개한 수학 원고 722편 가운데 그가 강연과 논문과 연구비 신청서에서 인용해 온 미해결 문제가 거의 전부 '해결됨'으로 표시돼 있었다. 그가 직접 읽은 원고만 30편, 자기 연구와 직접 관련된 분량이 약 4,000쪽이었다. 그는 자기 평생의 증명 분량을 3,000~4,000쪽으로 어림했다. 기계가 하룻밤에 낸 것이 한 사람의 평생과 같았다.

코넬대의 스티븐 스트로가츠는 그보다 한 달 먼저 울었다. 9월 12일 와이어드 인터뷰에서였다. 기사 제목은 "'정말 두렵다' — 한 수학자가 AI의 최근 돌파구와 씨름하다"였고, 첫 문장은 그가 자기 분야에서 지난 한 주 동안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다가 울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같은 날 X에 이렇게 썼다. "와이어드는 내가 울기 시작했다고 보도했지만, 무엇이 나를 움직였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10월 15일, 저널리스트 데릭 톰슨이 그 '잘 모르겠다'에 답을 쓰겠다고 나섰다. 글의 제목은 「나는 수학자들이 왜 우는지 안다(I Know Why the Mathematicians Weep)」, 부제는 「기술적 슬픔에 관하여(On technological grief)」다. 글이 올라온 날 해커뉴스에서 379점과 619개의 댓글을 모았고, 긱뉴스에 「수학자들이 왜 우는지 나는 안다」로 번역 소개됐으며, 톰슨 자신은 X에 이 개념을 한 줄로 요약했다.

나는 '기술적 슬픔'에 대해 썼다 — 자기 존재감과 가치의 근거로 삼아 온 지적인 일을 기계가 해내는 것을 지켜보는, 섬뜩하고 자아를 도려내는 느낌에 대해서.

왜 이 글이 화제가 됐는지는 분명하다. 지난 두 달 동안 수학계에서 벌어진 일은 코어닷투데이가 네 편의 특집으로 따라왔다 — 필즈상 수상자 25인의 선언, 사하이의 「수학자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해질 것이다」, 아비가드의 「수학의 미래」, 그리고 OpenAI 저장소의 722편. 그 글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고 수학자들이 무엇을 주장했는가를 다뤘다. 톰슨의 글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왜 우는가. 그리고 글의 한가운데에 이런 문장이 있다. "오늘은 수학자들이 운다. 기계가 그들의 탑을 먼저 부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일은 물리학자, 경제학자, 일러스트레이터, 작가가 무너진 블록 앞에서 울지 모른다." 수학자가 아닌 독자가 이 글을 읽는 이유다. 이것은 수학 이야기가 아니라 먼저 도착한 미래에 대한 보고서다.

이 특집은 다음 순서로 간다. 1장에서 글이 나오기까지 6주의 사건을 정리하고, 2장에서 글쓴이를 소개한다. 3~5장은 톰슨의 세 가지 핵심 개념 — '기술과 대화', '아르키메데스의 편지', '슬픔의 성분표' — 을 인터랙티브와 함께 푼다. 6장은 유료 구간 「이해 없는 지식」을 인용 조각들로 복원해 읽는다. 7장은 수학자보다 먼저 운 사람들 — 카스파로프, 이세돌, 구조생물학자, 일러스트레이터, 번역가, 프로그래머 — 의 사례를 따라가고, 8장은 '길드 보호자' 반론을 공정하게 다룬다. 9장은 2026년 한국에서 이 글이 놓이는 자리, 10장은 내 분야에 그날이 올 때의 실무 체크리스트다.

1장. 글이 나오기까지 — 9월 7일에서 10월 15일까지

톰슨의 글은 짧다(약 2,000단어). 그러나 그 뒤에는 6주 동안 수학계에 쏟아진 사건이 겹겹이 쌓여 있다. 글에 등장하는 사람과 날짜를 한 줄씩 놓으면 이렇다.

9월 7~8일알페게·버크마스터가 AI의 도움을 크게 받은 오일러 방정식 결과를 '다듬기 전에' 공개해야 했고, 다음 날 OpenAI가 1만 개의 에이전트를 88시간 돌려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유한 시간 폭발을 증명했다고 발표했다. 와이어드가 스트로가츠를 인터뷰한 것은 이 주다.
9월 11~12일필즈상 수상자 25인(이후 28명으로 늘었다)이 「AI와 수학의 심각한 불일치」 선언을 냈다. 와이어드 기사가 나왔고, 스트로가츠는 X에 13개 트윗으로 "4,000년짜리 대화의 일부라는 것이 영광"이라고 썼다. 타오 블로그의 객원 글은 이것을 "딥블루–카스파로프의 순간"이라 불렀다.
9월 24일 · 10월 5일사하이가 "수학자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고 썼고, 아비가드가 「수학의 미래」에서 "AI가 생각할 수 있든 없든, 우리 대신 생각해 줄 수는 없다"고 썼다. 같은 주 퀀타는 「AI는 우리가 아는 수학의 끝인가」에서 버클리의 켄 오노가 학생 150명 앞에서 "각오하라"고 말한 장면을 전했다.
10월 6일 화요일OpenAI가 「수학에서의 AI 진전을 공유합니다」와 함께 GitHub 저장소를 열었다. 원고 722편, 결과 계열 372개, 약 4,000개 문제 중 1할 안팎이 풀렸고, 결과당 평균 'ChatGPT Pro 세 시간' 분량의 계산. 뉴욕타임스가 같은 날 보도했고, 뒤미닐 코팽은 그날 밤 울었다.
10월 7~10일애런슨은 "수학 역사상 가장 큰 날 중 하나"라고 썼고, 뉴욕타임스는 수학자들의 반응을 「'숨 막힌다', '파괴적이다'」라는 제목으로 전했다(콘토로비치: "사람이 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필즈상"). 8일 뒤미닐 코팽의 SMF 세미나, 10일 르몽드 기사.
10월 13~15일뉴욕타임스 팟캐스트 '더 데일리'가 「AI가 당신 삶의 목적을 노릴 때」에 스트로가츠를 불렀고, WBUR 라디오가 같은 주제를 다뤘다. 15일 사이먼스 재단이 OpenAI·앤스로픽과 함께 1,500만 달러 규모의 '수학자들의 AI 시대 항해 지원' 사업을 발표했다. 같은 날 아침 톰슨의 글이 올라왔다.

세 가지가 보인다. 첫째, 톰슨은 한 달 늦게 왔다. 9월의 눈물(스트로가츠)과 10월의 눈물(뒤미닐 코팽) 사이에 수학자들 스스로 수십 편의 글을 썼고, 그 글들은 대체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논했다. 톰슨은 그 논쟁에 끼지 않고 한 발 물러서 '이 감정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둘째, 그가 고른 두 증인은 가장 많이 운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공개적으로 운 사람들이다. 스트로가츠는 인터뷰에서, 팟캐스트에서, 라디오에서 거듭 울었고, 뒤미닐 코팽은 수백 명이 보는 세미나에서 딸 이야기를 했다. 셋째, 글의 반응이 수학계 밖에서 더 컸다. 해커뉴스 619개 댓글의 다수는 수학자가 아니라 프로그래머가 썼고,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문장 중 하나는 "프로그래머로서 나는 이미 몇 년째 울고 있다"였다.

2장. 글쓴이 — 데릭 톰슨은 누구인가

데릭 톰슨은 1986년생 미국 저널리스트다. 2009년부터 2025년 6월까지 약 17년 동안 애틀랜틱의 전속 기자였고, 「일이 없는 세계(A World Without Work)」(2015)와 「반사회적 세기(The Anti-Social Century)」(2025년 2월) 같은 표지 기사로 알려졌다. 2025년 6월 "더 큰 편집권"을 이유로 애틀랜틱을 떠나 자기 이름의 뉴스레터를 시작했고, 2021년부터 더 링어에서 팟캐스트 '플레인 잉글리시'를 진행한다. 책으로는 『히트 메이커스』(2017), 『일에 관하여』(2023), 그리고 에즈라 클라인과 함께 쓴 『어번던스(Abundance)』(2025)가 있다. 『어번던스』는 2025년 미국 정치에서 가장 많이 논쟁된 책 가운데 하나로, '규제와 희소성의 정치'에서 '건설과 풍요의 정치'로 가자는 주장이다.

이 이력이 이 글을 읽는 데 중요한 이유가 둘 있다. 하나는 그가 기술 비관론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번던스』의 저자가 "나는 5년 안에 수억 개의 일자리가 지워진다고 믿는 AI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다"라고 쓸 때, 그것은 포즈가 아니라 일관된 입장이다. 그래서 그가 "그러나 나는 현실주의자다"라고 이어 쓸 때 무게가 실린다. 다른 하나는 그가 2025년 9월에 쓴 「생각의 종말(The End of Thinking)」이다. 거기서 그는 "AI의 '생각하는' 기계가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의 감소가 문제"라고 썼다. 이번 글의 유료 구간 제목 「이해 없는 지식」은 그 글의 속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톰슨은 글에서 솔직하게 적는다.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는 그것이 어떤 느낌일지도 알고 싶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수학자의 눈물은 남의 일이 아니다. 그는 수학자를 취재한 것이 아니라 자기 미래를 먼저 겪은 사람을 취재했다.

3장. 핵심 개념 ① — 과학은 '기술'이면서 '대화'다

톰슨은 수학자의 눈물을 설명하기 전에 "크기 때문에 조금 민망한 질문"을 먼저 던진다. 무엇이 인간을 특별하게 하는가. 지능? 까마귀는 여러 단계 퍼즐을 푼다. 사회성? 개미는 모여서 분업하고, 코끼리는 죽은 동료를 애도하는 듯 보인다. 그의 답은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이 서로를 곱하는 방식이다.

인간의 지능은 유별나게 모방과 반복에 적합하다. 우리는 부모와 또래를 섬뜩할 만큼 충실하게 베끼고, 그다음에 손을 본다. 우리는 베끼고, 우리는 만든다. 우리의 사회성은 이 베끼고-고치는 과정을 집단과 세대에 걸쳐 퍼뜨려서, 하나의 발견이 다음 발견의 바닥이 되게 한다. 서아프리카의 침팬지는 4,000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돌로 견과를 깨 왔다. 대략 같은 기간에 인간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서 우주 로켓을 거쳐 기계 지능까지 갔다.

침팬지의 4,000년과 인간의 4,000년 — 차이는 '쌓이는가'다크게 보기

이 대목은 톰슨의 창작이 아니라 문화진화론의 표준 설명이다. 심리학자 마이클 토마셀로는 1999년 『인간 인지의 문화적 기원』에서 이것을 톱니바퀴 효과(ratchet effect) 라고 불렀다. 톱니바퀴는 한 칸 돌면 뒤로 미끄러지지 않는다. 인간 문화도 한 세대가 개량한 것을 다음 세대가 충실하게 물려받기 때문에 뒤로 미끄러지지 않고 누적된다. 침팬지의 견과 깨기 전통(코트디부아르 타이 숲의 고고학 발굴로 4,300년 전 흔적이 확인됐다)은 분명히 '문화'이지만, 세대를 거쳐도 더 좋아지지 않는다. 톱니가 없기 때문이다. 톱니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충분히 정확한 모방(안 그러면 세대마다 지식이 새어 나간다)과 앞 세대 위에 쌓는 개량(안 그러면 어느 수준에서 멈춘다). 아래 장난감 모형에서 두 조건을 움직여 보면 '쌓이는 문화'가 얼마나 좁은 조건 위에 서 있는지 보인다. 그리고 대화가 끊기면 — 즉 사람 사이의 전달이 약해지면 — 무슨 일이 생기는지도.

톰슨은 이 틀을 과학에 적용한다. 과학은 기술(craft)이면서 대화(conversation)다.

  • 기술로서의 과학은 "생각하는 방식,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특별한 방법"이다. 과학자의 눈에 우주는 "보물 상자가 가득한 우주의 다락방"이고,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올바른 열쇠를 찾아 올바른 자물쇠를 돌리면 숨은 보석을 빛 속으로 끌어낼 수 있다. 이 축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다. 보석을 꺼냈는가, 못 꺼냈는가.
  • 대화로서의 과학은 "혼자 하는 보물찾기가 아니라" 게임과 같은 사회적 경험이다. 협력적이면서 동시에 적대적이다. 뉴턴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라고 했고 — 인간 피라미드를 위로 쌓는 협력 — 파인먼은 과학을 "전문가의 무지에 대한 믿음"이라고 했다 — 거인을 쓰러뜨리는 적대. 어느 쪽이든 과학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다. "교수님, 왜죠?"라고 묻든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거물 선생님"이라고 대들든, 과학은 발견의 행위일 뿐 아니라 동료 발견자들과의 관계다.

왼쪽은 보물찾기, 오른쪽은 세기를 건너는 긴 식탁 — 과학은 둘 다다크게 보기

이 구별이 왜 중요한가. 톰슨의 진단 전체가 여기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OpenAI의 10월 6일 공개는 기술의 축에서는 눈부신 성공이고, 대화의 축에서는 난입이다. 수백 개의 보물 상자가 하룻밤에 열렸다 — 그것은 기술이다. 그러나 열쇠를 돌린 것은 2,000년 동안 서로에게 "왜죠?"라고 물어 온 사람들의 대열에 서 있지 않은 무엇이었다 — 그것은 대화의 중단이다. 톰슨의 표현으로 "기계와 그 설계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말할 차례다."

여기서 수학자들이 실제로 쓴 말을 겹쳐 보면 톰슨의 틀이 어디서 왔는지 보인다. 9월 11일 필즈상 수상자 25인의 선언에는 "문제 풀이는 개념적 이해와 통찰이라는 일차 목표를 위한 도구이자 대리 지표일 뿐"이라는 문장과 "수학자들 사이의 결정적인 인간 전달 사슬이 끊길 것"이라는 문장이 나란히 있다. 전자가 기술의 축, 후자가 대화의 축이다. 7월 필라델피아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조디 윌리엄슨은 증명이 오랫동안 "수학적 이해의 대리 측정치"였는데 그것이 이제 이해와 분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톰슨은 수학자들의 이 직관을 수학 바깥의 언어로 옮긴 것이다.

4장. 핵심 개념 ② — 아르키메데스의 편지

톰슨이 스트로가츠에게 왜 울었느냐고 묻자, 스트로가츠는 아르키메데스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기원전 3세기 시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는 원 안에 작은 다각형을 채워 넣는 방법으로 원주율을 좁혀 들어갔고, 포물선 조각의 넓이와 구의 부피를 구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장이던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에게 긴 편지를 보냈다. 지금 「역학적 정리들에 관한 방법」, 줄여서 「방법(The Method)」이라고 부르는 글이다. 이 편지에서 그는 자기 비밀을 털어놓는다 — 넓이와 부피를 구할 때 먼저 지렛대와 무게중심이라는 역학적 직관으로 답을 '발견'하고, 그다음에 기하학으로 엄밀하게 증명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방법을 왜 공개하는지 이렇게 썼다(히스의 1912년 영역을 옮기면).

나는 이 방법이 수학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 동시대인이든 후대 사람이든 누군가가, 이 방법이 일단 확립되고 나면, 그것으로 아직 내게 떠오르지 않은 다른 정리들을 추가로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톰슨의 글에 인용된 문장 — "우리 몫으로 떨어진 정리들의 수에 보탤 발견자들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 은 이 대목을 다른 번역으로 옮긴 것이다. 스트로가츠는 이 문장에 수학의 본질이 들어 있다고 했고, 톰슨은 전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을 들었다.

"아르키메데스가 나에게, 나 같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나는 이것들을 못 풀지만, 미래의 당신들은 내 어깨 위에 설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아주 감정적이고 실존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이 안에 함께 있다는 느낌, 아름답고 초월적이고 숭고한 무언가를 함께 찾고 있다는 느낌이요."

2,000년짜리 식탁 — 그리고 새로 끌어다 놓은 의자 하나크게 보기

이 편지가 지금 읽힌다는 사실 자체가 톰슨의 '대화' 개념을 가장 잘 보여 준다. 「방법」은 아르키메데스의 다른 저작과 달리 중세 내내 알려지지 않았다. 원본은 사라졌고, 10세기 콘스탄티노플에서 양피지에 베낀 사본 한 벌만 남았는데, 1229년 한 필경사가 양피지를 아끼려고 그 글자를 긁어내고 위에 기도서를 썼다. 이 '덮어쓴 책(팰림프세스트)'은 사막의 수도원에서 수백 년을 잠들었다가 1906년 덴마크 문헌학자 하이베르가 확대경으로 밑글을 읽어 내면서 세상에 나왔고, 1차 대전 뒤 다시 사라져 위조 성화까지 덧칠됐다가 199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익명의 구매자에게 팔려 볼티모어 월터스 미술관에서 10년에 걸쳐 복원됐다.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의 X선까지 동원해서다. 아래에서 그 아홉 정거장을 따라가 보라. 스트로가츠가 울면서 인용한 문장은 매 세기마다 누군가가 베끼고, 찾고, 사고, 읽었기 때문에 그에게 도착했다. 정리가 참이라는 사실은 이 여정에서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았다.

수학자들이 자기 일을 '대화'로 느껴 온 것은 스트로가츠만의 감상이 아니다. 몇 개의 문장만 모아도 전통이 보인다. 하디는 『어느 수학자의 변명』(1940)에서 이렇게 썼다. "아르키메데스는 아이스킬로스가 잊힌 뒤에도 기억될 것이다. 언어는 죽지만 수학적 아이디어는 죽지 않기 때문이다. '불멸'은 어리석은 말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든 수학자가 가장 가까이 갈 가능성이 높다." — 대화의 상대가 죽은 뒤에도 대화가 계속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같은 책은 늙어서 자기 수학을 잃은 사람의 애도문이기도 하다("수학은 다른 어떤 예술이나 과학보다 젊은이의 게임이다"). 기술적 슬픔의 20세기 원형이 거기 있다. 윌리엄 서스턴은 1994년 「증명과 수학의 진보에 관하여」에서 "수학자는 어떻게 진보하는가"라는 질문을 "수학자는 어떻게 수학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진전시키는가" 로 바꿔 써야 한다고 했고, 수학자가 정리를 증명하는 것은 언제나 "사회적 맥락 안에서"라고 썼다. 1999년 예후다 라브는 「우리는 왜 정리를 증명하는가」에서 사고실험 하나를 제안했다. 어떤 명제든 참·거짓을 즉시 알려 주는 신탁 기계 '피티아고라(PYTHIAGORA)'가 있다면 수학자들은 증명을 그만둘까? 라브의 답은 아니오였다. 증명은 참·거짓의 인증서가 아니라 방법과 개념을 실어 나르는 운반체이기 때문이다. 2026년 10월, 라브의 사고실험은 더 이상 사고실험이 아니다.

에르되시 팔은 이 전통을 몸으로 산 사람이다. 평생 집 없이 동료들의 집을 떠돌며 약 1,500편의 논문을 500명 넘는 공저자와 썼고, 수학자들은 지금도 '에르되시 수'로 그와의 거리를 센다. 스트로가츠가 10월 13일 뉴욕타임스 팟캐스트에서 "아직 에르되시 AI는 없다 — 좋은 질문을 던지는 데는 소질이 없다"고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에르되시는 답보다 질문으로, 혼자 한 발견보다 대화로 기억되는 수학자다. 톰슨이 말한 '대화의 축'을 사람 하나로 그리면 에르되시가 된다.

그래서 톰슨의 결론 문장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그들은 또한 애도하고 있다. 낯설고 몸 없는 무언가가 아르키메데스의 편지들에 불을 지르고 그 재 위에서 춤추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타는 것은 정리가 아니다 — 정리는 Lean 인증서와 함께 멀쩡히 저장소에 있다. 불타는 것은 '다음 사람에게 쓰는 편지'라는 형식이다.

5장. 핵심 개념 ③ — '기술적 슬픔'의 성분표

이제 제목의 질문이다. 수학자들은 왜 우는가. 톰슨은 먼저 가장 흔한 설명을 정직하게 인정한다.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상한 자존심, 헛되이 보낸 세월의 느낌, 스멀스멀 올라오는 지위 소멸의 감각, 불공정한 경쟁자에 대한 좌절, 속고 함부로 다뤄졌다는 분노,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울고 있다.

여섯 가지다. 그리고 그는 이 여섯 가지가 전부라면 "냉혹한 기술 낙관주의자"가 옳다고 인정한다. "정신 차리라. 수학은 당신 감정에 관심이 없고, 과학적 실재는 당신 눈물에 무심하다." 스트로가츠 자신이 그 조롱을 알고 있다. "우리는 길드 보호자라고 비웃음을 삽니다. '네 길드가 쓸려 나가는구나. 흑흑. 다른 사람들도 다 겪은 일이야. 참아.'"

한 시간 걸려 쌓은 탑, 손가락 하나로크게 보기

톰슨 자신도 글 첫머리에서 이 가능성을 열어 뒀다. 수학자들의 슬픔이 "한 시간 동안 블록으로 탑을 쌓은 아이가 형이 그것을 산산조각 내는 것을 지켜보는" 익숙한 종류의 상처인지, 아니면 "더 낯설고 더 깊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고. 그의 답은 둘 다다. 여섯 가지 성분은 실재하고, 그 아래에 다른 종류의 것이 하나 더 있다. 3장과 4장이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길이었다 — 대화의 상실. 그가 '애도(mourning)'라는 단어를 여섯 가지와 구별해 쓴 이유다. 자존심은 상처받는 것이고, 관계는 애도하는 것이다.

이 구별은 애도 연구의 언어로 옮기면 더 또렷해진다. 심리학자 케네스 도카는 1989년 공인되지 않은 슬픔(disenfranchised grief) 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사회가 '울 자격이 있는 상실'로 인정하지 않는 상실 — 반려동물, 유산, 전 배우자, 그리고 직업적 정체성 — 을 잃었을 때 사람들은 슬픔을 겪으면서도 그것을 말할 허가를 받지 못한다. "길드 보호자, 흑흑"은 정확히 이 허가의 거부다. 호주의 환경철학자 글렌 앨브레히트가 2005년 만든 솔라스탤지어(solastalgia) 는 또 다른 참고점이다. 고향을 떠나서 느끼는 향수(노스탤지어)가 아니라, 고향에 그대로 있는데 고향이 변해 버려서 느끼는 상실감. 뒤미닐 코팽은 제네바의 연구실을 떠나지 않았다. 퍼콜레이션 이론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30년 동안 알던 풍경 — 등대처럼 멀리서 빛나던 미해결 문제들 — 이 하룻밤에 바뀌었다. 그는 8월 30일에 이미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지금의 AI 사용은 우리에게 힘을 주지 않는다. 우리를 석화시킨다." 그리고 미해결 문제들이 "등대처럼 조금 더 오래 빛나야 한다"고.

톰슨이 X에 쓴 정의로 돌아가자. 기술적 슬픔은 "자기 존재감과 가치의 근거로 삼아 온 지적인 일을 기계가 해내는 것을 지켜보는, 섬뜩하고 자아를 도려내는 느낌"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지적인'이다. 톰슨은 "산출물이 지능인 기술"이 "인간의 지성을 숭상하고 종종 그것을 목적·존엄·자존감과 동일시하는 현대적 감수성"과 "격렬하게 충돌할 운명"이라고 쓴다. 직조공의 베틀이 증기기관에 밀려났을 때 직조공은 생계를 잃었지만, 누구도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나"를 잃지는 않았다. 수학자는 다르다. 스트로가츠의 공저자 알렉스 타운센드는 와이어드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15년을 연구 수학에 바쳤고, 지금 내 경력에서 가장 생산적이고 가장 강한 시점에 있는데, 그 정점의 기술이 더는 정점이 아니다. 무언가가 나를 넘어설 수 있다. (…) 이제 나는 지식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AI 에이전트를 가진 사람이다."

아래 점검표는 톰슨이 나열한 여섯 성분과 그가 따로 떼어 둔 '대화의 애도', 그리고 스트로가츠가 거듭 말한 '어떤 날은 들뜬다'를 문항으로 옮긴 것이다. 수학 대신 자기 일을 떠올리며 답해 보라. 성분이 다르면 처방이 다르다 — 그것이 이 성분표의 실용적 의미다.

어느 수학 교수의 한 주 — 뉴스, 눈물, 논쟁, 그리고 다시 칠판크게 보기

스트로가츠가 10월 13일 뉴욕타임스 팟캐스트에서 한 말은 이 성분표가 한 사람 안에서도 날마다 섞인다는 것을 보여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슬픔을 느끼고 있고, 우리는 서로 다른 단계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협상하고,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아직 부정하고 있어요." 퀴블러로스의 5단계(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는 학술적으로는 오래전에 '순서대로 진행되는 단계'가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스트로가츠가 그 말을 꺼낸 것은 수학계가 지금 집단적 상실을 겪고 있다는 자각의 표현이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영웅으로 생각하길 좋아하는데, 아마 그건 끝났다"고 했고, "내 삶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고, 진행자도 함께 울었다.

6장. 유료 구간 읽기 — 「이해 없는 지식」

톰슨의 글은 여기서 유료 구독자 전용으로 넘어간다. 마지막 절의 제목은 「이해 없는 지식(Knowledge Without Understanding)」이고, 첫 문장은 이렇다. "그런데 OpenAI가 옳다면? 수학을 감정이 발견만큼 중요한 대화가 아니라 주로 탐험(quest)으로 다뤄야 한다면?" 코어닷투데이는 유료 구간 전문을 갖고 있지 않다. 아래는 해커뉴스와 다른 매체에 직접 인용된 문장들로 복원한 논지이며, 인용 표시가 없는 부분은 재구성이다.

수천 권의 책에 전부 검증 도장이 찍혀 있고, 읽는 사람은 하나뿐이다크게 보기

첫째, 톰슨은 OpenAI 쪽 논리를 정직하게 세운다. 탐험으로서의 수학은 더 많은 지식을 낳는다. 그가 든 예는 올해 여름의 사건이다. "올해 초, 중국의 의사 진산무가 ChatGPT를 써서 전문 수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풀지 못한 크루제 추측이라는 문제를 풀었다." 베이징의 의사가 2004년에 제기된 행렬 해석학의 추측을 ChatGPT 안의 모델에 16시간 동안 돌려 증명했고, 추측을 낸 크루제 본인과 전문가들이 검토했으며, 8일 뒤 다른 두 수학자가 5쪽짜리 독립 증명을 내놓았다. 코어닷투데이가 4월에 다룬 23살 아마추어의 에르되시 #1196과 같은 계열이다. 톰슨은 묻는다. 이런 세계는 분명히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세계다. 그것이 나쁜가?

둘째, 그는 '지식'과 '이해'를 가른다. 직접 인용이 확인된 핵심 문장은 이것이다.

수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AI 프롬프트 몇 개로 그 분야를 뛰어넘는 세계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세계일 것이다. 그러나 더 적은 이해를 가진 세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스트로가츠의 비유가 이어진다. "이 모든 것에는 환상특급(Twilight Zone) 같은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회로 속을 움직이는 전자들과 상호작용하고 있는데,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지능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구글 번역은 놀랍지만, 언어학에 대해서는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왜 작동하는지 모릅니다. 그냥 작동합니다. 그게 환상특급이에요. 이해 없는 지식입니다." 톰슨은 의학에서도 같은 예를 찾는다 — MIT의 레지나 바질레이가 유방 촬영 영상 수십만 장으로 학습시킨 암 예측 모델은 사람 의사보다 몇 년 먼저 위험을 알아보지만, 만든 사람도 왜 그런지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AI 모델에 대해 이렇게 쓴다. "AI 모델은 자기만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내가 '마음'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아니다. 그들의 수학 증명은 종종 낯선 모양을 띠고, 그 추론은 전문가에게도 불가해할 수 있다." 수학자들의 증언이 이 문장을 뒷받침한다. 애런슨의 블로그에서 다나 모슈코비츠는 유일 게임 추측 원고를 "환각제를 한 사람이 쓴 것 같다"고 했고, 타오는 10월 6일 밤 이렇게 썼다. "AI가 만든 증명 다수는 소화되고 나면 결실을 맺을 영리한 새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그러나 동시에 나는 깊이 좌절한다. 전통적인 돌파구와 달리 이 증명들에 관여한 사람 중 아무도 질문을 받거나, 강연을 하거나, 학회에 오거나, 학술지에 투고하거나, 학생을 가르치거나, 그 밖의 방식으로 이 결과들의 후속 발전에 참여할 수 없다." 톰슨의 '끊긴 대화'를 수학자의 언어로 쓰면 이 문장이 된다.

이 '이해 없는 지식'이라는 진단은 톰슨 혼자의 것이 아니다. 2026년 가을 수학자들이 쓴 글의 공통 주제이고, 코어닷투데이는 9월 사하이의 글을 다룬 특집에서 이 틈을 길게 다뤘다. 여기서는 톰슨이 쓰지 않은 구조적 이유 하나만 보태자. 9월 13일 브리나 크라가 자기 분야의 난제가 AI에 풀린 직후 쓴 문장이다. "기계는 수학 공동체가 읽는 속도보다, 하물며 소화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해답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은 감정이 아니라 산수다. 기계의 생산량은 계산 자원에 비례해 늘고, 사람의 소화량은 사람 수와 시간에 묶여 있다. 아래에서 두 수치를 움직여 보면 '이해 없는 지식'이 선택이 아니라 기본값이 되는 조건이 보인다. 사하이의 처방(읽는 사람을 늘려라, AI를 이해의 도구로 써라)이 어느 손잡이에 해당하는지도.

셋째, 결말. 톰슨은 비관으로 끝내지 않는다. 확인된 인용은 두 문장이다.

수학자들은 여전히 증명을 가르치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논쟁하고, 낯선 논리를 인간의 통찰로 번역하고, 그 이해를 학생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지능이 덜 고유하게 인간적인 것이 된다면, 우리는 고유하게 인간적인 것으로 남는 것 — 서로 관계 맺고 서로를 돌보는 능력 — 을 더 높이 평가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결말이 글에서 가장 많이 공격받은 대목이다. 해커뉴스의 한 댓글은 "담배 로비스트가 니코틴의 건강 효능을 홍보하는 것 같은 결말"이라고 썼고, 다른 댓글은 "자본주의 아래서 '서로 돌보는 능력'을 더 높이 평가한다고? 그러시겠지"라고 비꼬았다. 공정하게 말하면 톰슨의 결말은 위로가 아니라 재배치다. 1장에서 본 것처럼 그는 "산출물이 지능인 기술"이 지성을 자존감과 동일시하는 감수성과 충돌한다고 썼다. 그 충돌의 출구는 지성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자존감의 근거를 옮기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든 없든, 그것은 글 전체의 논리와 일관된다. 그리고 "낯선 논리를 인간의 통찰로 번역"하는 일은 — 스트로가츠가 와이어드에서 증명 소화(proof digestion) 라고 이름 붙인 바로 그 일은 — 지금 수학계에서 실제로 가장 부족한 일이다. 10월 6일 저장소의 원고 수백 편 가운데 사람이 끝까지 읽고 설명을 써 둔 것은 아직 한 줌이다.

7장. 먼저 운 사람들 — 기술적 슬픔의 계보

톰슨은 "기계가 수학자들의 탑을 먼저 부쉈다"고 썼지만, 엄밀히 말하면 먼저가 아니다. 지적인 일을 기계가 해내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이미 여럿 있었고, 그들이 한 말은 2026년 수학자들의 말과 놀랍도록 겹친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다. 여덟 개의 선례를 시간순으로 따라가되, 각각 '그때 한 말'과 '5~10년 뒤'를 나란히 놓는다. 끝에서 전체를 한 화면에 놓고 비교할 수 있다.

1811년, 노팅엄 — 러다이트는 기계를 미워하지 않았다

기술적 슬픔의 원형으로 늘 불려 나오는 러다이트부터 바로잡자. 1811년 11월 노팅엄셔의 양말 직공들이 편직기를 부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불만은 '기계 그 자체'가 아니었다. 넓은 틀(wide frame)로 싸구려 '잘라 붙인' 양말을 만들어 품질을 떨어뜨리는 것, 도제 과정을 거치지 않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colting), 그리고 임금이었다. 케빈 빈필드가 엮은 『러다이트의 글들』(2004)은 '러드 장군' 명의의 서한들이 위협과 함께 "공정 거래와 도덕 경제의 전통적 관념"에 호소했음을 보여 주고, 브라이언 머천트의 『기계 속의 피』(2023)는 그들을 "반기술이 아니라 반착취"의 원조 노조 운동가로 다시 읽는다. 수직공의 운명은 가혹했다. 1800년경 랭커셔의 주급은 최대 23실링이었는데 1826년에는 5~8실링이었다. 1838년 왕립 수직공 조사위원회가 꾸려졌을 때 그 직업은 이미 끝나 있었다.

2026년 수학자들의 요구 목록 — 공로 표기, 사전 통보, 모델 접근권, 검증 비용 부담 — 을 보면 러다이트의 요구와 구조가 같다. "기계를 멈춰라"가 아니라 "규칙을 지켜라" 다. 그리고 1810년대에는 그 요구가 거부됐다.

1997년, 뉴욕 — "내 이해를 한참 넘어선 것을 보면, 나는 두렵다"

1997년 5월 11일, 19수 만의 기권크게 보기

1997년 5월 11일, 가리 카스파로프는 IBM 딥블루와의 6국을 19수 만에 포기했다. 뉴스위크 표지는 "두뇌의 마지막 저항(The Brain's Last Stand)"이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싸울 의지를 잃었다"고 했고, 5국 뒤에 이미 끝났다고 느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인간입니다. 내 이해를 한참 넘어선 무언가를 보면, 나는 두렵습니다." 그는 2국에서 무승부 포지션을 기권한 뒤 인간 개입 의혹을 제기했고("마라도나의 신의 손이 떠오른다"), 재대결을 요구했다. IBM은 원하는 홍보를 얻은 뒤 프로젝트를 접었다. 13년 뒤 그는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이렇게 회고했다. "그 결과는 그것을 전능한 컴퓨터 앞에서 인류가 굴복한 상징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경악과 슬픔으로 맞아들여졌다." 2026년 9월 버크마스터가 OpenAI의 나비에–스토크스 발표를 두고 "딥블루–카스파로프의 순간"이라고 한 것은 이 장면이다.

그다음이 중요하다. 카스파로프는 1998년 스페인 레온에서 '어드밴스드 체스' — 사람이 컴퓨터를 쓰며 두는 체스 — 를 만들었다. 2005년 프리스타일 대회에서는 그랜드마스터가 아니라 "컴퓨터 세 대를 동시에 쓰는 미국의 아마추어 두 명"이 우승했고, 카스파로프는 유명한 공식을 썼다. "약한 인간 + 기계 + 더 나은 과정이, 강한 컴퓨터 단독보다, 그리고 더 놀랍게도 강한 인간 + 기계 + 열등한 과정보다 우월했다." 2026년 '인간–AI 협업'을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전부 이 문장을 인용한다. 그러나 그들이 덜 인용하는 것이 있다. 켄타우로스 체스는 10년 남짓의 과도기였다. 2010년대 후반이 되자 엔진 단독이 인간+엔진을 앞질렀고, 2024년에는 "어느 엔진을 쓸지 고르는 일"마저 프로그램이 한다. 반면 체스 자체는 역사상 가장 번성했다. Chess.com 회원은 2022년 12월 1억 명, 2025년 4월 2억 명, 2026년 중반 2억 6,000만 명을 넘었다. 기계가 인간을 영구히 앞지른 뒤에도 '인간 대 인간'의 서사·관전·교육 수요는 커졌다. 스트로가츠가 와이어드에 "우리는 최고의 체스 엔진만큼 잘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체스를 사랑한다. 그것이 수학의 미래인가 — 우리가 이류인 아름다운 게임?"이라고 물은 것은 이 사례를 염두에 둔 것이다. 카스파로프 사례가 주는 교훈은 둘이다. 게임은 산다. 그러나 '사람이 기계와 협력해 최전선에 선다'는 위안은 기한이 있다.

2016년, 서울 —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2016년 3월, 포시즌스 호텔크게 보기

한국 독자에게 기술적 슬픔은 수입 개념이 아니다.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에 1승 4패로 졌다. 3국에서 진 직후, 세 번째 패배로 승부가 결정된 날의 인터뷰는 거의 그대로 2026년 수학자들의 문장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드려야 할 것 같다. (…) 무기력한 모습 정말 죄송하다." "오늘의 패배는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이 아니지 않나 생각한다." 그리고 — "단지 사람과 대결이라면 0대2로 밀려도 그 정도의 스트레스는 아닐 텐데 알파고와는 새로운 경험이라…."

2019년 11월 그는 은퇴했다. 한국기원과의 불화가 첫째 이유였지만, 그가 tbs 라디오에서 한 말은 톰슨이 말한 '자아를 도려내는 느낌'의 정확한 한국어 번역이다. "바둑의 1인자라고 하면 세상에서 바둑을 제일 잘 두는 존재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인공지능이 나오면서 아무리 잘 둬도 못 이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섯 살 때 바둑을 시작해 30년 길을 걸어왔는데 가치관이 흔들린다." "지금은 프로기사들도 인공지능한테 바둑을 배운다. 한 판도 못 이긴다." 2024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는 더 짧게 말했다. "AI에 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내 세계 전체가 무너진다는 뜻이었다." 2017년 커제 9단은 알파고와의 3국 종반에 눈물을 보였고 "알파고는 너무 완벽하다"고 했다.

장강명 작가가 전·현직 프로기사 30명을 인터뷰해 쓴 르포 『먼저 온 미래』(2025)는 그 뒤 한국 바둑계에 일어난 일을 기록한다. 한 기사의 말 —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 과 부정·분노·타협·수용의 과정, 기술 수용 대신 은퇴를 택한 기사들, 그리고 역설. 완벽한 기보가 AI의 몫이 되자 "이야기가 있는 바둑"(여성 기사·시니어 리그)의 인기가 올랐다. 2026년 7월 신진서 9단은 카타고와의 접바둑 3번기에서 2승 1패를 거둔 뒤 "AI를 이긴 것이 아니라 격차를 줄였다는 확신"이라고 했고, 그 전에는 "AI가 실력으로 인간을 크게 앞서 프로로서 자존감을 잃을 때도 있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바둑 사례에는 수학자들이 꼭 봐야 할 데이터가 있다. 2023년 PNAS에 실린 신민규·김진·판 오푸스던·그리피스의 연구는 1950년부터 2021년까지 프로 기보 580만 수를 초인공지능으로 채점해 두 가지를 보였다. 알파고 이후 인간의 수의 질이 유의미하게 좋아졌고, 이전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수'가 더 자주 나왔으며 그 새 수들의 질도 높아졌다. 2020년 후속 연구는 그 학습이 AI의 수가 아니라 AI의 추론(승률 그래프)을 볼 수 있게 된 뒤에 일어났음을 보였고, 2025년 연구는 젊은 기사가 더 많이 배웠음을 보였다. 그런데 같은 기간 이세돌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둑은 사라졌다"고 말한다. 바둑이 "예술에서 스포츠로" 바뀌었다고. 둘 다 맞다. 새 수는 늘었고, 그 수가 '누구의 창의성'인지는 바뀌었다. 6장의 '이해 없는 지식'은 바둑에서 10년 먼저 벌어진 일이고, 그 열쇠 — 추론을 보여 주면 사람이 배운다 — 는 OpenAI가 10월 6일에 공개한 추론 요약이 719편 중 10건뿐이라는 사실과 정확히 맞물린다.

2020년, 온라인 CASP14 — "아이가 집을 떠난 것 같다"

단백질 구조 예측이라는 분야가 집을 떠나던 날크게 보기

수학자들과 가장 닮은 선례는 과학자들이다. 2020년 11월 30일 단백질 구조 예측 대회 CASP14에서 딥마인드의 알파폴드2는 주최 측이 "단일 사슬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는 풀렸다"고 선언하게 만들었다. 같은 분야의 연구자 무함마드 알쿠라이시는 일주일 뒤 블로그에 썼다. "핵심 분야가 산산조각 났다. 포장할 방법이 없다. 내 분야(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글의 제목이 된 어느 패널의 말 — CASP14는 "아이가 처음으로 집을 떠나는 것 같다. 아이가 자랐고 분야도 자라서 더 큰 문제를 다룰 준비가 됐다는 점에서는 좋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씁쓸함이 있다." 그는 자기 팀도 같은 접근을 2년째 연구하던 중이었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선수를 빼앗긴 것은 조금 아프다." 2022년 국제결정학연합 저널의 사설 「구조생물학자는 어디로 가는가」는 알파폴드 데이터베이스가 "수업을 듣던 학생 일부가 자기 진로 선택을 의심하게 만들었다"고, "적지 않은 구조생물학자가 슬픔의 다섯 단계 중 몇 단계를 거쳤다"고 썼다. 질문은 2026년 수학과 대학원생들의 질문 그대로다. "이 분야에서 종신직을 받을 수 있을까?" "연구비 기관은 이제 구조 결정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까?"

5년 뒤의 데이터는 예언을 배신했다. 2026년 4월 힐과 스타인의 NBER 논문 「AI는 과학을 어떻게 바꾸는가: 알파폴드의 증거」는 실험 구조 결정 속도가 거의 변하지 않았음을 보였다. 예측 구조는 실험을 대체하지 않고 보완했고, 이전에 구조가 없던 단백질에 대한 연구는 15~40% 늘었다. 2024년 노벨 화학상은 허사비스·점퍼·베이커에게 갔고, 사설의 저자들이 예측한 대로 "구조를 알고 이해하는 과학자(와 교사)에 대한 거대한 수요"가 생겼다. 구조생물학은 사라지지 않았다. 구조를 '맞히는' 일에서 구조를 '이해하는' 일로 무게가 옮겨 갔다. 사하이가 9월에 쓴 "이해하는 수학자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는 처방은 이 선례의 복사본이다.

2022년 12월, 아트스테이션 — "겨우 한 달 됐다. 1년 뒤엔?"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슬픔은 가장 빨랐고 가장 분노에 가까웠다. 2022년 9월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폴란드 일러스트레이터 그레그 루트코프스키의 이름이 스테이블 디퓨전 프롬프트에 약 93,000번 쓰였다고 보도했다(미켈란젤로·피카소·다빈치는 각각 2,000번 이하). 그의 말: "겨우 한 달 됐다. 1년 뒤에는 어떻게 될까?" 12월에는 아트스테이션 홈 화면이 'No AI' 이미지로 뒤덮였고, 2023년 1월 사라 앤더슨·칼라 오르티스·켈리 매커넌이 스태빌리티 AI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오르티스는 상원 청문회에 "동의도, 표기도, 보상도 없이 우리 작품을 학습 데이터와 원료로 쓴다"고 썼다. 같은 해 할리우드 작가조합(WGA)과 배우조합(SAG-AFTRA)이 역사적인 파업 끝에 AI 조항을 단체협약에 넣었다. 한국에서는 2023년 5월 네이버웹툰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의 생성형 AI 사용 의혹이 별점 테러(1화 10점 만점에 2.21)로 번졌고, 6월에는 도전만화 코너에 "도둑질로 만든 AI 웹툰을 반대합니다"라는 동일 게시물 61편이 올라왔다. 2016년 미야자키 하야오가 AI 애니메이션 데모를 보고 한 말 — "이것은 생명 자체에 대한 모욕이다" — 은 2025년 3월 '지브리풍' 이미지 열풍 때 다시 소환됐다.

이 집단의 선례가 수학자들과 다른 점은 분노가 제도로 번역됐다는 것이다. 소송(2027년 2월 약식판결 심리 예정), 단체협약, 플랫폼 규칙(네이버·카카오 공모전 AI 금지), 그리고 2025년 10월 지브리를 포함한 일본 CODA의 OpenAI에 대한 학습 중단 요구. 수학자들의 25인 선언·771인 서한·AGMAI·AHM 보이콧 요청은 이 길을 3년 늦게 따라가고 있다.

2016~2024년, 번역가 — "사형수에게 삽을 건네는 것"

2016년 9월 구글 신경망 번역, 2017년 딥엘, 2022년 11월 ChatGPT. 영국 작가협회가 2024년 초 회원 787명에게 물었을 때 번역가의 36%가 생성형 AI 때문에 일감을 잃었다고 답했고(일러스트레이터는 26%), 43%는 수입이 줄었다. 미국 PEN도 2025년 번역가 회원 "3분의 1 이상"이 같은 답을 했다고 밝혔다. 중국 문학 번역가 잭 하그리브스는 2026년 3월 이렇게 썼다. "번역가들은 어디서나 일을 잃고 있다. 남은 일은 때로 기계가 뱉어 낸 번역을 다듬는 것인데, 이것은 사형수에게 삽을 건네는 것의 문학판이다." 한국에서는 2023년 2월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신인상 웹툰 부문 수상자가 파파고를 썼다는 사실이 드러나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은 자력의 번역"이라는 규정이 새로 생겼다. 일본번역가협회는 2024년 6월 AI 대량 만화 번역에 대해 "소설·대본·만화처럼 맥락이 깊고 이야기 중심인 글에는 극히 부적합하다"는 의견서를 냈다. 번역가들의 슬픔은 수학자들보다 조용했고, 데이터로만 남았다. 2장에서 본 것처럼 — 가장 많이 운 사람이 아니라 가장 공개적으로 운 사람이 기록된다.

2025~2026년, 프로그래머 — "우리는 우리 종의 마지막이다"

2025년 2월 2일 안드레이 카파시가 '바이브 코딩'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코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잊는" 새로운 종류의 코딩. 숫자 하나가 그 뒤의 변화를 요약한다. 스택오버플로의 월간 신규 질문은 2014년 3월 207,204개로 정점을 찍었고, 2025년 연간 108,981개, 2026년 7월에는 1,442개였다. 정점 대비 99.3% 감소다. 그리고 2026년 초, 개발자 블로그에 '슬픔(grief)'이라는 단어가 연쇄적으로 등장했다. 1월 게르겔리 오로스의 「AI가 코드 대부분을 쓸 때의 슬픔」, 2월 놀런 로슨의 「우리는 우리의 기술을 애도한다」, 3월 레스 오처드의 「슬픔과 AI 분열」. 로슨의 문장은 톰슨의 글보다 8개월 먼저 같은 말을 했다.

나는 프로그래머의 역할이 영광스러운 공항 검색대 직원 — AI가 위험한 것을 프로덕션에 몰래 들여오지 않았는지 코드를 검사하는 사람 — 으로 축소되기를 요청한 적이 없다. (…) 이 도구들의 최악의 사실은 그것들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 슬퍼하고 싶다면, 나와 함께 슬퍼하기를 권한다. 우리는 우리 종의 마지막이고, 우리 뒤에 오는 사람들은 우리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해 온 방식의 우리 기술은 고고학 발굴 현장의 대장장이 연장처럼, 후대의 골동품으로 끝날 것이다.

제임스 랜들(50세, 7살에 프로그래밍 시작)은 "이전의 기술 전환은 '새것을 배워 기존 기술을 적용하라'였다. AI는 그게 아니다. 이 일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가 바뀌었다." "더 싸고. 더 빠르고. 그러나 속이 비었다"고 썼다. 8장에서 본 해커뉴스 댓글 — "수학자들은 이제 우리 개발자들처럼 된다. 프롬프트 작성자와 AI 출력 검토자로" — 은 이 맥락에서 나왔다. 그리고 오처드의 구별은 이 글 전체에 쓸모가 있다. 그는 개발자들의 슬픔이 두 종류라고 썼다 — 기술(craft) 자체에 대한 슬픔과 맥락(생태계·경제)에 대한 슬픔.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기술에 생계가 걸려 있었던 것이 운이 좋았던 것이다." 톰슨의 '기술 vs 대화'와 다른 축이지만, 8장의 반론 3('경제 문제를 왜 실존 문제로')을 가장 정직하게 다룬 문장이다.

한 화면에 놓고 보면

여덟 사례를 세 열 — 그때 한 말, 요구한 것, 5~10년 뒤 — 로 놓으면 패턴이 보인다. 아래에서 결과별로 걸러 보라.

세 가지가 반복된다. 첫째, 첫 반응은 거의 같은 문장이다 — "내 이해를 넘어선 것이 두렵다"(카스파로프), "내 세계가 무너졌다"(이세돌), "분야가 산산조각 났다"(알쿠라이시), "내 분야를 전멸시켰다"(뒤미닐 코팽). 둘째, 활동 자체는 거의 항상 살아남고 때로 번성한다 — 체스, 바둑, 구조생물학. 죽는 것은 활동이 아니라 특정한 역할(최전선의 계산자, 최고수, 구조를 맞히는 사람)과 그 역할에 묶인 자존감이다. 셋째, 결과를 가른 것은 기술이 아니라 대화가 복구됐는가다. 바둑은 AI의 추론 그래프를 볼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이 배웠고, 구조생물학은 '이해하는 사람'의 수요가 생겼고, 일러스트레이터는 규칙을 얻어 냈다. 번역가와 수직공은 그러지 못했다. 수학자들이 2026년 가을에 요구하는 것 — 추론 공개, 읽을 수 있는 해설, 소화 비용의 부담 — 은 정확히 '대화 복구'의 조건들이다. 10월 15일 사이먼스 재단의 1,500만 달러는 그 첫 번째 응답이다.

8장. 반론 — '길드 보호자' 논쟁은 어디까지 맞는가

톰슨의 글이 해커뉴스에서 619개의 댓글을 모은 것은 동의 때문이 아니다. 댓글의 절반 가까이가 반론이었고, 그 반론들은 수학자들이 9월부터 자기들끼리 해 온 논쟁과 겹친다. 공정하게 다섯 갈래로 나눠 보자.

반론 1. "프로그래머는 이미 몇 년째 울고 있다"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갈래다. "프로그래머로서 나는 이미 몇 년째 '울고' 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이 수학자들이 안됐다고 느끼기 어렵다. 수학자들은 그래도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지만, AI에 밀려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그럴 수 없다." 한 댓글은 수학 교수 친구의 말을 옮겼다. 수학자들이 우는 이유는 "이제 우리 개발자들처럼 될 참이기 때문 — 프롬프트 작성자와 AI 출력 검토자로." 그리고 누군가는 논리학의 농담을 던졌다. "커리–하워드 대응의 반대편이 이제 맞고 있는 것이다." (증명과 프로그램이 같은 것이라는 정리다. 프로그램 쪽이 먼저 맞았고, 이제 증명 쪽 차례라는 뜻이다.)

이 반론은 톰슨의 논지를 반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확장한다. 톰슨 자신이 "내일은 물리학자, 경제학자,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라고 썼고, 프로그래머는 그 '내일'이 이미 어제였던 집단이다. 다만 이 갈래가 드러내는 것이 있다. 수학자의 눈물이 더 많이 보도되는 이유는 수학자가 더 많이 울어서가 아니라, 수학자가 더 잘 쓰고 더 잘 인용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필즈상 수상자의 눈물은 르몽드 1면이 되고, 프로그래머의 눈물은 댓글이 된다. 7장에서 본 것처럼 기술적 슬픔은 수학보다 앞서 체스·바둑·구조생물학·일러스트·번역·코딩을 지나왔다. 수학이 특별한 것은 슬픔의 깊이가 아니라 언어의 밀도다.

반론 2. "문지기들이 문이 뜯겨 나간다고 우는 것"

"이 글의 투정 대부분은 문지기들이 자기 문이 경첩째 날아간다고 한탄하는 것처럼 들린다. 진심으로 신나 하는 수학자는 없나?" "솔직히 눈물에 좀 역겨움을 느낀다." 이것이 스트로가츠가 미리 인용한 "길드 보호자, 흑흑"의 원형이다.

이 반론에는 실제로 맞는 부분이 있다. 스트로가츠 자신이 9월 X 스레드에서 AI가 "문을 열어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수백만 명이 쏟아져 들어오게" 할 수 있다며 윔블던(순수·격식)과 US오픈(시끄럽고 대담한)의 비유를 썼다. 필즈상 수상자 티머시 가워스는 25인 선언에 서명하지 않았고, 그 이유를 타오 블로그에 썼다 — 선언의 많은 부분에 동의하지만 "이해를 문제 풀이 위에 두는 서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진짜 위기는 감정이 아니라 수학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학생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토론토의 대니얼 리트는 포천에 "내 견해로는 이것은 수학에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신나 하는 수학자는 없나?"의 답은 '있다'이고, 톰슨은 그들을 인터뷰하지 않았다. 이것은 글의 공정한 약점이다.

그러나 이 반론이 놓치는 부분도 있다. 길드 보호 논리는 "우리 일을 빼앗지 마라"다. 톰슨이 복원한 슬픔은 "우리 대화를 끊지 마라"다. 전자는 경제적 이해관계이고 후자는 관계의 상실이다. 문지기 비판은 전자에는 유효하지만 후자에는 닿지 않는다. 뒤미닐 코팽은 41세의 종신 교수이고 필즈상 수상자다. 그가 잃을 '문'은 없다. 그가 운 것은 문 때문이 아니다.

반론 3. "경제 문제를 왜 실존 문제로 포장하는가"

"이것은 결국 경제 문제다. 왜 그렇게 틀 짓지 않는가?" 이 반론은 톰슨이 일부러 피한 것을 정확히 찌른다. 톰슨은 "5년 안에 수억 개의 일자리"를 믿지 않는다고 선을 긋고, 글 전체를 의미와 정체성의 언어로 썼다. 그러나 수학계의 실제 공포에는 돈이 있다. 9월 8~10일 771명이 서명한 서한의 핵심 문장은 "연구 수학자들이 보상도 공로도 없이 AI 기업의 결과를 검증·전파·수정하게 된다"였다. 보스턴글로브는 10월 15일 MIT 수학 박사과정 학생들이 떠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퀀타가 전한 켄 오노의 버클리 강연에서 가장 날카로운 문장은 "여러분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직업으로 졸업할 수 있다"였다. 스트로가츠 자신이 와이어드에 이렇게 물었다. "수학이 그게 전부라면, 왜 누가 우리에게 돈을 주고 그것을 하라고 하겠는가?"

톰슨의 글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그는 슬픔을 설명했지 생계를 설명하지 않았다. 둘은 따로 다뤄야 하고, 9장에서 숫자로 돌아온다.

반론 4. "애초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하루에 하나씩 종말론 글을 올려서 기업 가치를 지키는 것. 수학에서 바뀐 것은 없다." "증명들은 아직 독립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이 갈래는 수학계 안에도 있다. 10월 12일 타오 블로그에 실린 소피 휴버츠의 객원 글 제목은 「이것은 평범한 나쁜 작업이다」였다. 그는 OpenAI가 "372개의 결과를 719개의 PDF로 살라미처럼 얇게 썰었고", 그 PDF들은 "내부 벤치마크의 배기가스"이며, "10월 6일은 수학의 분수령이 아니었다 — 예외적인 것은 질 낮은 작업을 내놓는 OpenAI의 부끄러움 없음뿐"이라고 썼다. 10월 7일 원고 3편이 부호 오류로 철회됐고 14편이 수정됐으며, OpenAI 대변인은 리트랙션워치에 "결과의 약 절반이 확인되지 않은 채 공개됐다"고 인정했다. NYU의 바우어슈미트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AI 슬롭 같다. 모르는 사람이 이메일로 보냈다면 아마 지웠을 것"이라고 했다.

이 반론은 중요하다. 그러나 톰슨의 논지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슬픔은 결과가 전부 옳다는 전제 위에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뒤미닐 코팽은 30편을 직접 읽고 울었다. 콘토로비치는 준리만 가설 원고를 읽고 "사람이 했다면 즉시 필즈상"이라고 했다. 설령 절반이 틀렸더라도 나머지 절반이 사람 한 명의 평생 분량을 넘는다. 휴버츠의 글이 겨냥한 것은 OpenAI의 행동 규범이지 수학자들의 감정의 정당성이 아니다. 두 비판은 양립한다.

반론 5. "결말이 공허하다", 그리고 "수학은 과학이 아니다"

6장에서 본 결말 비판이 하나. 다른 하나는 더 작은 것이다. "글쓴이는 과학과 수학을 섞어 쓴다." 톰슨은 "과학은 기술이면서 대화"라고 썼지만 수학은 실험과학이 아니다. 수학에서 '보물 상자'는 세계가 아니라 공리계 안에 있다. 이 지적은 맞다. 그러나 톰슨의 틀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대화의 구별이지 과학/수학의 구별이 아니고, 대화의 축은 수학에서 오히려 더 강하다 — 실험으로 판가름 나지 않기 때문에 수학의 진리는 전적으로 사람들이 서로 납득시키는 과정 위에 서 있다. 서스턴이 "사회적 맥락"을 강조한 것도, 2026년 수학계가 '검증됨'과 '이해됨'을 그토록 집요하게 구별하는 것도 그래서다. 구글 번역이 언어학에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스트로가츠의 비유에 대해 한 댓글은 "사실 신경망 번역은 언어학에 꽤 많은 것을 가르쳐 줬다"고 반박했는데, 이것도 맞는 말이다. 비유는 비유다.

그래서 남는 것

다섯 갈래를 거르고 나면 톰슨의 글에서 살아남는 것은 두 가지 구별이다. 첫째, 자존심의 상처와 대화의 애도는 다르다. 둘째, 지식과 이해는 다르다. 두 구별 모두 수학자들이 먼저 했고, 톰슨은 그것을 수학 바깥의 언어로 옮겼다. 그리고 살아남지 못하는 것은 결말의 위로와, 신나 하는 수학자들을 뺀 표본이다. 7월 ICM에서 필즈상을 받은 야코프 치머만이 수상 강연을 끝맺은 문장이 아마 가장 균형 잡힌 요약일 것이다. 그는 AI 연구소로 잠시 자리를 옮긴다고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존재하는 수학의 어떤 버전은 사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 그리고 그것을 애도해도 괜찮습니다."

9장. 2026년, 이 글의 자리 — 숫자와 한국

숫자로 본 슬픔

톰슨의 글은 감정을 다뤘지만, 그 감정에는 측정 가능한 그림자가 있다. 2026년 10월 현재 확인되는 숫자들을 놓는다.

무엇수치출처·시점
MIT 수학과 대학원생 설문 — "AI 때문에 종신직 진입이 더 어려워질 것"4명 중 3명학생 자체 설문, 응답 45/120명, 2026년 8월 (보스턴글로브 10월 15일)
같은 설문 — "학계 수학을 계속할 가능성이 줄었고 진로 전환을 알아보고 있다"71%같은 설문
OpenAI 저장소 — 원고 / 결과 계열 / 제시된 문제 / Lean 형식화 비율722→719 / 372 / 약 4,000 / 약 42%github.com/openai/math README, 10월 6~7일
그중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추론 요약이 공개된 결과10건같은 README
발표 다음 날 철회 / 수정된 원고3편 / 14편리트랙션워치 10월 8일 ("약 절반이 확인되지 않은 채 공개")
필즈상 수상자 선언 서명 (9월 11일 → 10월 8일)25명 → 28명 / 일반 서명 8,000명 이상mathandai.org, RTS, 리트랙션워치
미국 NSF 수학 분야 신규 지원액 (2025년 5월까지) vs 10년 평균3,200만 달러 vs 1억 1,300만 달러 (−72%)사이언티픽 아메리칸 2025
arXiv 수학 분야 투고 (2026년 1~8월)약 47,000편, 전년 대비 +33%SBS 9월 14일
미국 노동자 "AI로 내 기술이 쓸모없어질까 두렵다" (갤럽 FOBO)22% (2023) → 27% (2025), 18~44세 34%갤럽
미국 노동자 — AI의 직장 내 활용에 "걱정" vs "희망"52% vs 36%퓨리서치 2025년 2월
사이먼스 재단 '수학자의 AI 시대 항해' 지원1,500만 달러 (OpenAI 500만 포함)2026년 10월 15일

세 가지를 읽을 수 있다. 첫째, 슬픔은 가장 젊은 층에서 가장 크다. MIT 설문의 71%, 갤럽의 18~44세 34%, 퀀타가 전한 버클리 강연장의 학생 150명. 뒤미닐 코팽은 울었지만 그의 자리는 안전하다. 울지 않고 떠나는 것은 대학원생이다. 하버드 CMSA가 9월 17~18일 연 'AI 시대 수학 박사 교육 정상회의'의 권고안이 "대학원생과 초기 경력 수학자들에게: 이 불확실성이 여러분을 무겁게 누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로 시작하는 이유다. 둘째, 생산은 폭증하고 소화 자원은 줄었다. arXiv 수학 투고가 1년에 3분의 1 늘어나는 동안 미국 NSF의 수학 지원은 10년 평균의 3분의 1 아래로 떨어졌다. 6장의 적체 모형에서 P는 커지고 N은 작아지는 조합이다. 셋째, 규칙과 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10월 15일의 사이먼스 재단 발표는 톰슨의 글과 같은 날 아침에 나왔다. OpenAI가 10월 6일 블로그에 "이해를 위한 워크숍에 자금을 대겠다"고 쓴 약속의 첫 이행이고, AGMAI가 요구한 "이해가 따라오도록 보장할 책임, 자금을 포함해"의 첫 응답이다.

한국에서 읽기

한국 언론은 10월 6일의 공개를 빠르게 전했다. 한국경제(10월 8일 "'말도 안 된다' 수학계 발칵"), ZDNet 코리아(10월 9일 "학계, 신뢰성에 의문"), 파이낸셜뉴스·YTN·뉴시스가 이어졌다. 그러나 한 가지가 눈에 띈다. 그 기사들 어디에도 한국 수학자의 발언이 없다. 인용된 사람은 콘토로비치·서덜랜드·멜라니 우드다. 톰슨의 글은 10월 16일 긱뉴스가 「수학자들이 왜 우는지 나는 안다」로 유료 구간까지 요약해 소개했고, 같은 날 모비인사이드에 실린 최재운의 칼럼이 4색정리(1976)를 틀로 삼아 "맞는 건 알겠는데, 왜 맞는지는 모르겠다"는 문장과 "답은 먼저 써도 된다. 다만 이해는 반드시 뒤따라가야 한다" 는 문장을 썼다. 그리고 물었다. "뒤따라가는 공부는 누가 하고, 그 비용은 누가 대는가."

한국 수학계의 목소리는 한 달 먼저, 다른 자리에서 나왔다. 2022년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는 9월 11일 선언의 서명자이고, 9월 14일 SBS와 9월 22일 동아사이언스 인터뷰에서 톰슨의 글과 정확히 같은 두 겹의 걱정을 말했다. 기술의 축에서는 OpenAI의 논문을 "본인의 해법이 맞다는 것만 보여 준 문서"라고 했고, "빅테크들이 난제의 해답을 먼저 찾고자 속도 경쟁을 하다 보니 빠르게 답만 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화의 축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할머니는 무작위 숫자 7개로 된 전화번호를 50개씩은 외웠지만 이제 인간은 그걸 못하죠. 휴대전화가 있으니까요. (…) 연구자들이 많은 부분을 AI에 위임한다면 인간이 스스로 연구할 능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 우리가 수천 년간 개발해 온 값진 능력을 5년, 10년 안에 개발된 AI에 의해 잃는 것은 불필요한 도박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에 대해. "내가 지금 이 연구를 시작해서 10년 후에 결과를 바라는 것이 '이게 의미가 있는 일일까'라는 회의감에 젖어 들게 하거든요." 톰슨의 성분표에서 '미래의 불확실'과 '대화의 애도'가 한 문단에 들어 있다. 허준이 교수가 "특정한 한두 개의 기업 모델을 쓰지 않으면 더 이상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고 한 것은 AGMAI의 '공평한 접근' 요구와 같은 말이다. 8월에는 서울대 서인석 교수가 한국경제에 "인간이 못 푼 분야라기보다 연구 인력이 부족한 분야에서 먼저 성과가 난다"고 했고, KAIST 김완수 교수는 "조합론처럼 규칙과 구조가 있는 문제에는 강하지만" 새 개념을 정의하는 연구를 대신할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고등과학원의 김상현 교수는 구글 딥마인드와 함께 수학 연구용 AI 에이전트(알레테이아)를 만드는 쪽에 서 있다. 한국 수학계는 한목소리가 아니다 — 그것이 정상이다.

한국 바둑계는 이 미래를 10년 먼저 살았다크게 보기

한국 독자가 이 글에서 가진 고유한 자산은 7장에서 본 바둑이다. 톰슨이 '기술적 슬픔'이라는 말을 만든 2026년보다 10년 먼저, 한국은 그 감정의 한국어를 이미 갖고 있다 —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아무리 잘 둬도 못 이길 것 같은 생각", "내가 생각하는 바둑은 사라졌다". 장강명의 르포 제목 『먼저 온 미래』가 그 자각이다. 그리고 바둑계가 10년 동안 한 실험의 결과도 갖고 있다. AI의 추론을 볼 수 있을 때 사람은 더 잘 둔다(PNAS 2023). 젊은 기사가 더 많이 배운다(2025). 완벽한 기보가 기계의 몫이 되면 '이야기가 있는 바둑'이 산다(『먼저 온 미래』). 2026년 4월 이세돌 9단이 허사비스와 10년 만에 다시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은 수학자들에게 그대로 건넬 수 있다. "스스로의 생각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선에서 AI를 활용해 나간다면 긍정적이다."

마지막으로 숫자 몇 개. 한국의 2026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성적은 금 3·은 2·장려 1, 종합 6위였고, 같은 시험에서 SK텔레콤의 A.X K2 모델은 42점 만점에 29점 — 금메달 커트라인과 같은 점수 — 을 받았다. 2026학년도 수시에서 의약학 지원은 22% 줄고 4대 과학기술원 지원은 16% 늘었다(의대 정원 원복의 효과가 크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한국은행은 2023년 국내 일자리의 약 12%, 341만 개가 AI 대체 가능성이 높다고 추산했고, 한국고용정보원의 2026년 5월 전망은 182개 직업 중 '완전 감소'는 0개, '다소 감소'는 12개라고 했다. 수학자는 어느 목록에도 없다. 톰슨의 글이 보여 준 것은 직업 소멸 목록에 없는 직업도 기술적 슬픔을 겪는다는 사실이다. 슬픔의 단위는 일자리가 아니라 역할이기 때문이다.

10장. 실무 체크리스트 — 내 분야에 그날이 올 때

톰슨은 "내일은 물리학자, 경제학자,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라고 썼다. 이 장은 그 '내일'을 위한 것이다. 7장의 선례와 2026년 가을 수학자들이 실제로 한 일, 그리고 전환·정체성 연구에서 개인이 할 일 일곱 가지와 조직이 할 일 다섯 가지를 뽑았다.

끝남, 중립 지대, 새 시작 — 브리지스의 지도크게 보기

개인을 위한 일곱 가지

1. 슬픔의 성분을 분리하라. 5장의 점검표가 이것이다. 자존심의 상처, 공정성의 분노, 미래의 불확실, 대화의 애도는 처방이 다르다. 스트로가츠는 X 스레드에서 "AI가 내 일자리를 빼앗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67살이고 은퇴가 가깝다"고 먼저 적고 나서야 진짜 이유(4,000년의 대화)에 닿았다. 무엇 때문에 우는지 모르면 엉뚱한 것을 고치게 된다.

2. '변화'와 '전환'을 구별하라. 윌리엄 브리지스의 『전환』(1980)의 핵심 구별이다. 변화는 바깥에서 일어나는 사건(10월 6일)이고, 전환은 안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전환은 세 단계 — 끝남, 중립 지대, 새 시작 — 를 거치고,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곳은 끝남이 아니라 옛것은 죽었는데 새것은 아직 없는 중립 지대다. 스트로가츠의 "어떤 날은 어리둥절하고 어떤 날은 들뜬다"가 그 증상이다. 브리지스의 처방은 이 시기를 건너뛰려 하지 말고 임시 구조(짧은 프로젝트, 정해진 루틴, 배우는 시간)를 세우라는 것이다. 수학자들에게 그 임시 구조는 지금 '10월 6일 원고 한 편을 끝까지 읽고 설명 쓰기'다.

3. 역할을 다시 쓰되, 의미를 먼저 쓰라. 레즈니에프스키와 더튼의 '잡 크래프팅'(2001)은 일을 세 층에서 고칠 수 있다고 했다 — 과업, 관계, 그리고 인지(일의 의미를 다시 틀 짓기). 2026년 가을 수학계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과업이 아니라 인지다. 타오가 7월 ICM에서 "아무도 논문 심사로 메달을 받지 않는다"며 검증·해설·정전화(canonisation)를 보상하자고 한 것, 스트로가츠가 '증명 소화'를 직업으로 명명한 것, 사하이가 '배치 가능한 지적 예비군'을 제안한 것은 모두 "수학자란 정리를 증명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수학을 이해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고쳐 쓰는 작업이다. 구조생물학이 2020년에 한 일과 같다.

4. 기계의 추론을 요구하라 — 답이 아니라. 바둑의 데이터가 준 가장 실용적인 교훈이다. 사람이 배운 것은 AI의 수를 봤을 때가 아니라 AI의 승률 그래프를 볼 수 있게 됐을 때였다. 내 분야에 AI 결과가 쏟아질 때 요구할 것은 "맞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했느냐"다. OpenAI가 719편 중 10건에만 추론 요약을 붙였다는 사실이 수학자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결함인 이유다. 코딩이든 번역이든 디자인이든, 추론을 보여 주지 않는 도구는 배움을 주지 않는다.

5. 분노는 요구 목록으로 바꿔라. 7장에서 결과를 가른 것은 '대화 복구'였고, 대화 복구는 규칙에서 왔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소송과 협약으로, 수학자는 선언·서한·자문단으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소 단위는 세 줄짜리 문서다 — 무엇을 썼는가(내 데이터·내 문제), 누가 공로를 갖는가, 누가 도구에 접근할 수 있는가. 러다이트의 요구도 이 세 줄이었고, 거부됐다. 2026년의 차이는 요구가 문서화되고 수천 명이 서명했다는 것이다.

6. 켄타우로스를 믿되, 기한을 알라. 카스파로프의 '사람+기계'는 1998년부터 약 10년 동안 옳았고 그다음에 틀렸다. "AI와 협업하는 전문가가 되라"는 조언은 유효하지만 영구적이지 않다. 알파폴드 뒤 구조생물학이 살아남은 것은 사람이 기계보다 구조를 잘 맞혀서가 아니라, 맞히는 것 외의 일(이해·설계·가르침)로 무게를 옮겼기 때문이다. 내 역할의 어느 부분이 '맞히기'이고 어느 부분이 '이해시키기'인지 지금 나눠 두라.

7. 애도할 시간을 허락하라 — 그리고 공개적으로. 도카의 '공인되지 않은 슬픔'에 대한 처방은 공인이다. 스트로가츠가 인터뷰에서, 뒤미닐 코팽이 세미나에서, 로슨이 블로그에서 운 것은 약함이 아니라 슬픔을 사회적으로 등록하는 행위였다. 그것이 있어야 "길드 보호자, 흑흑"에 맞설 언어가 생긴다. 7월 필즈상 시상대에서 치머만이 "그것을 애도해도 괜찮다"고 말한 것은, 그 분야에서 가장 최근에 가장 큰 상을 받은 사람이 애도에 허가증을 발급한 사건이다. 참고로 퀴블러로스의 5단계는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 2007년 JAMA 연구 이후의 정설이다. 단계를 '통과'하려 하지 말고, 스트뢰베와 슈트의 '이중 과정 모형'처럼 상실을 향한 날과 회복을 향한 날이 번갈아 오는 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조직을 위한 다섯 가지 — 그리고 OpenAI가 10월 6일에 할 수 있었던 것

조직의 체크리스트는 AGMAI의 9월 29일 권고안이 이미 써 놓았다. 수학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AI가 내 산업의 결과물을 대량으로 내놓는 날, 그 결과물을 내는 쪽(AI 기업이든 사내 AI 팀이든)에 요구할 것들이다.

  1. 재현 가능하게 공개하라. 모델 이름, 프롬프트, 계산량, 그리고 몇 개를 시도해서 몇 개가 실패했는지. "4,000개 중 1할"이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 가장 중요한 정보였다.
  2. 사람이 읽을 수 있는 해설을 함께 내라. 5월 단위거리 추측 때 다섯 수학자가 당일 올린 해설이 모범이다. AGMAI의 표현으로 "장황한 추론과 비표준 용어로 사실상 이해 불가능한" 원고가 아니라 관례적 서술로 다시 쓴 원고.
  3. 일괄 투하 대신 단계적 공개. AHM이 "700편을 한꺼번에"를 "학문이 아니라 힘의 시연"이라고 부른 이유다. 소화 능력을 넘는 공개는 공개가 아니라 적체다.
  4. 선행 연구자에게 먼저 연락하고 공로를 배분하라. 버크마스터 분쟁과 771인 서한이 가리키는 지점이다.
  5. 이해의 비용을 부담하라. AGMAI 원칙 2 — "즉각적인 인간의 이해 없이 결과를 내놓는 연구소는 이해가 따라오도록 보장할 책임이 있다, 자금을 포함해." 사이먼스 재단의 1,500만 달러가 첫 사례다.

아래에서 이 다섯 가지를 손잡이로 만들었다. 톰슨의 두 축 위에 수학사의 사건들을 놓고, 10월 6일의 빨간 점이 손잡이를 켤 때마다 어디로 움직이는지 보라. 결과(기술 축)는 그대로인데 사건의 성격(대화 축)이 바뀐다 — 수학자들이 요구한 것이 "하지 마라"가 아니라 이 손잡이들이었다는 것이 보인다.

용어 사전

  • 기술적 슬픔(technological grief) — 톰슨(2026)이 쓴 말. "자기 존재감과 가치의 근거로 삼아 온 지적인 일을 기계가 해내는 것을 지켜보는, 섬뜩하고 자아를 도려내는 느낌." 학술 문헌의 기존 용례는 '기술로 매개된 사별'(그리프봇 등)이어서, 직업 정체성 상실의 뜻으로는 사실상 신조어다. 2026년 1~3월 개발자 블로그(오로스·로슨·오처드)가 대중적 선행 용례.
  • 기술과 대화(craft and conversation) — 톰슨의 두 축. 기술은 결과를 내는 사고의 방식(보물찾기), 대화는 동료 발견자들과의 관계(편지 주고받기). 10월 6일의 공개는 전자에서 성공, 후자에서 난입.
  • 톱니바퀴 효과(ratchet effect) — 토마셀로(1999). 충실한 모방 + 개량이 세대를 거쳐 누적되는 인간 문화의 특성. 톰슨의 '쌓이는 문화'의 학술 원형. 3장 위젯.
  •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 글자를 긁어내고 다시 쓴 양피지. 아르키메데스의 「방법」은 1229년 기도서 밑에 덮여 있다가 1906년 읽혔다. 4장 위젯.
  • 증명 소화(proof digestion) — 스트로가츠(와이어드, 2026-09-12)가 만든 말. 증명을 "사람이 이해하고 음미할 수 있는 말로 설명하는 일." 타오의 '정전화(canonisation)', 사하이의 '이해하는 일'과 같은 자리.
  • 이해 없는 지식(knowledge without understanding) — 톰슨 글의 유료 구간 제목이자 스트로가츠의 구글 번역 비유. 결과는 맞는데 왜 맞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상태. 4색정리(1976) 때 처음 제기됐고, 티모츠코(1979)는 이것을 '조망 가능성(surveyability)의 상실'이라 불렀다.
  • 공인되지 않은 슬픔(disenfranchised grief) — 도카(1989). 사회가 '울 자격이 있는 상실'로 인정하지 않는 슬픔. "길드 보호자, 흑흑"이 그 거부의 형식.
  • 솔라스탤지어(solastalgia) — 앨브레히트(2005). 떠나지 않았는데 고향이 변해 버려 느끼는 상실감. 자기 분야 안에 있으면서 분야가 바뀌는 수학자의 조건.
  • 켄타우로스(centaur) / 어드밴스드 체스 — 카스파로프(1998)가 만든 사람+컴퓨터 체스. 2005년 "약한 인간 + 기계 + 더 나은 과정"의 승리로 유명해졌고, 2010년대 후반 엔진 단독에 추월당했다.
  • 중립 지대(neutral zone) — 브리지스(1980)의 전환 3단계 중 둘째. 옛것은 끝났는데 새것은 아직 없는 시기. 가장 힘들고 가장 창조적인 시기.
  • AGMAI — OpenAI가 9월 21일 구성한 독립 자문단 '수학과 AI에 관한 자문 그룹'. 프린스턴 고등연구소가 주최, 9명(가워스·헤어러·위튼 포함), 무보수. 9월 29일 권고안이 10장 조직 체크리스트의 원본.
  • Lean 형식화 — 증명을 컴퓨터가 한 줄씩 검사할 수 있는 형식 언어로 옮기는 것. 10월 6일 저장소의 약 42%가 형식화됐다. 형식화는 '참'을 보장하지만 '이해'를 보장하지 않는다 — 코어닷투데이의 722편 특집 4장 참조.

마치며 — 편지는 계속 쓰인다

톰슨의 글에서 가장 오래 남는 이미지는 눈물이 아니라 편지다. 기원전 3세기의 수학자가 "내 동시대인이든 후대 사람이든 누군가가 이 방법으로 내게 떠오르지 않은 정리를 발견할 것"이라고 쓴 편지. 그 편지는 2,200년 동안 베껴지고 지워지고 팔리고 위조되고 X선으로 다시 읽혀서 2026년 10월 어느 수학자의 목을 메게 했다. 정리가 참이라는 사실은 그 여정에서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았다. 매 세기마다 읽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편지가 살았다.

그래서 수학자들이 우는 이유에 대한 톰슨의 답은 결국 이것이다. 그들은 정리를 잃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 정리는 Lean 인증서와 함께 저장소에 멀쩡히 있다. 그들은 편지의 수신인 자리를 잃을까 봐 운다. 아르키메데스가 "미래의 당신들"이라고 부른 그 자리를. 그리고 7장의 선례들이 보여 준 것은, 그 자리가 사라지는가 아닌가는 기계의 성능이 아니라 대화가 복구되는가에 달려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둑은 복구했고, 구조생물학은 복구했고, 직조와 번역은 그러지 못했다.

이 글을 쓰는 코어닷투데이도 그 자리에 있다. 6장에서 썼듯 유료 구간의 전문은 갖고 있지 않고, 인용된 문장 여덟 개로 논지를 복원했다. 10월 6일 저장소의 원고 719편 가운데 끝까지 읽어 설명을 써 둔 것은 아직 한 줌이다. 사하이의 말대로 "이해하는 일"은 나눌 수 있고, 톰슨의 말대로 수학자들은 "낯선 논리를 인간의 통찰로 번역하고 그 이해를 학생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 그 일은 수학자만의 일이 아니다. 읽고, 설명하고,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일 — 아르키메데스가 에라토스테네스에게 한 일이고, 하이베르가 1906년에 한 일이고, 스트로가츠가 전화기 너머로 톰슨에게 한 일이다. 기계가 보물 상자를 다 열어도 그 일은 남는다. 남는 정도가 아니라, 상자가 많이 열릴수록 더 많이 필요해진다.

편지는 계속 쓰인다. 수신인이 있는 한.

참고 자료

원문과 직접 출처

  • Derek Thompson, "I Know Why the Mathematicians Weep: On technological grief," derekthompson.org, 2026-10-15. 유료 구간 인용은 Daily Wire(2026-10-15)와 해커뉴스 스레드(id 50103630, 379점·619댓글)에 직접 인용된 문장만 사용. 긱뉴스 한국어 요약: news.hada.io/topic?id=35424
  • Isabella Ward, "'I'm Really Terrified': A Mathematician Grapples With AI's Recent Breakthroughs," Wired, 2026-09-12. 스트로가츠의 X 스레드(2026-09-12, 13개 트윗).
  • The Daily(NYT), "When A.I. Comes for Your Purpose in Life," 2026-10-13. WBUR On Point, 2026-10-13.
  • David Larousserie, « Nouveau coup de massue d'OpenAI sur les mathématiciens : "Ils ont annihilé mon domaine de recherche" », Le Monde, 2026-10-10. RTS Forum 인터뷰 2026-10-08. 프랑스수학회 세미나 영상(2026-10-08).
  • Siobhan Roberts, "'Breathtaking,' 'Devastating': Mathematics Reels After New OpenAI Release," NYT, 2026-10-08. NYT 2026-10-06 보도.
  • OpenAI, "Sharing AI progress in mathematics," 2026-10-06(10-15 업데이트); github.com/openai/math README·CONTENTS. Retraction Watch, 2026-10-08.
  • Hugo Duminil-Copin, "Care for a little more AI?" Proofs and Prompts, 2026-08-30; "100+ reactions to 100+ solutions," 2026-10-08.
  • 테런스 타오 블로그: 필즈상 수상자 선언(2026-09-11), De Toffoli & Duede "After Math"(09-12), Gowers(09-17), Sahai(09-24), Avigad(10-05), AHM 성명(10-07), Huiberts "This is normal bad work"(10-12), Gambhir(10-15). 타오의 10월 6일 Mathstodon 성명.
  • Scott Aaronson, "The Mathocalypse," 2026-10-07. Jordana Cepelewicz, "Is AI the End of Math As We Know It?" Quanta, 2026-10-05. Michaela Towfighi, Boston Globe, 2026-10-15(MIT 설문). AGMAI 권고안 2026-09-29. 사이먼스 재단 발표 2026-10-15.
  • Plus Magazine, "ICM 2026 postcard: Philadelphia"(치머만·타오·윌리엄슨 강연). 하버드 CMSA 'Summit on PhD Math Education in the Age of AI' 권고안(2026-09).

개념과 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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