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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일화의 복수는 데이터가 아니다? — 달스트롬의 PNAS 논문으로 읽는 '이야기로 과학을 전하는 법', 그리고 AI가 이야기꾼이 된 2026년
과학자들은 오래 '일화의 복수는 데이터가 아니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경계해 왔다. 2014년 아이오와주립대의 마이클 달스트롬은 PNAS 논문 「비전문가에게 과학을 전할 때 서사와 스토리텔링 활용하기」에서 그 말이 데이터를 모을 때는 옳지만 과학을 전할 때는 틀렸다고 주장했다. 서사는 두 배 빨리 읽히고 두 배 잘 기억되며, 사람들은 이미 이야기로 과학을 배우고 있고, 바로 그 때문에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설득적이어서 윤리적 질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글은 논문을 절별로 읽으며 브루너의 두 가지 사고 양식, 서사 운송·예시화·배양 이론, CSI 효과와 탄자니아 라디오 드라마, 세 가지 윤리 질문을 사례와 함께 풀고, 2014년 이후 10년의 메타분석이 이 주장을 어떻게 고쳐 썼는지, 그리고 AI가 수만 명에게 맞춤 이야기를 쓰는 2026년에 '이야기의 윤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인터랙티브 6개와 일러스트 14장으로 따라간다.
과학자들이 회의실에서 자주 쓰는 경구가 하나 있습니다. "일화의 복수는 데이터가 아니다(The plural of anecdote is not data)." 누군가 "제 친척이 그 약을 먹고 나았어요"라고 말할 때, 학회에서 발표자가 인상적인 사례 하나로 결론을 밀어붙일 때, 동료 심사위원이 "이건 그냥 이야기잖아요"라고 적을 때 이 말이 나옵니다. 체계적으로 뽑은 표본에서 일반화하는 것과, 작고 치우친 표본에서 과잉 일반화하는 것은 다르다 — 과학이라는 제도가 수백 년에 걸쳐 쌓은 가장 중요한 습관이 이 한 줄에 담겨 있습니다.
2014년 9월,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그린리 저널리즘·커뮤니케이션 스쿨의 마이클 달스트롬(Michael F. Dahlstrom)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일곱 쪽짜리 논문을 실었습니다. 제목은 「비전문가에게 과학을 전할 때 서사와 스토리텔링 활용하기(Using narratives and storytelling to communicate science with nonexpert audiences)」. 논문의 첫 문장은 그 경구를 정면으로 인용하고, 마지막 문장은 그것을 이렇게 고쳐 씁니다.
"일화의 복수는 데이터가 아니다"는 체계적인 데이터 수집의 엄밀성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주문으로 남아야 한다. 그러나 비전문가에게 과학을 전하는 일을 생각할 때는 더 적절한 주문이 있을지 모른다. "일화의 복수는 매력적인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다."
두 문장 사이에 이 논문의 전부가 있습니다. 데이터를 모을 때와 과학을 전할 때는 규칙이 다르다는 것. 앞의 맥락에서 이야기는 오류의 원천이지만, 뒤의 맥락에서는 이해와 흥미와 몰입의 통로라는 것. 그리고 — 이 부분이 자주 잊히는데 — 바로 그 힘 때문에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설득적이고, 그래서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이야기를 쓸지 말지가 아니라 어떻게 책임 있게 쓸지를 물어야 한다는 것.
이 논문은 PNAS 기준으로 조용한 리뷰 논문입니다. 그림도, 표도, 새로운 실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과학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글 가운데 하나가 됐고, 대학의 과학 글쓰기 강의와 연구기관의 홍보 교육 자료에 단골로 실립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흩어져 있던 수십 년의 연구 — 인지심리학의 '두 가지 사고 양식', 언론학의 '뉴스 가치'와 '게이트키핑', 미디어 효과 연구의 '배양 이론'과 '예시화 이론', 설득 연구의 '서사 운송' — 를 과학을 전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처음으로 한 줄에 꿰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26년, 이 논문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이야기를 쓰는 주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대화형 AI는 한 번에 수만 명에게 각자에게 맞춘 이야기를 쓸 수 있고, 한국 청소년의 과학 정보 1순위 통로는 이미 유튜브(48.9%)입니다. 2014년 달스트롬이 '서사는 설득적이므로 윤리적으로 쓰라'고 했을 때 그 경고를 받는 사람은 과학자와 기자였습니다. 지금은 그 경고가 기계와 그것을 설계하는 회사에도 닿아야 합니다. 흥미롭게도 2024~2025년의 대규모 AI 설득 실험들은 정반대 방향의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 기계가 사람을 가장 잘 설득한 방법은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을 촘촘히 쌓는 것이었습니다.
이 특집은 이런 순서로 갑니다. 1장에서 논문의 지도를 펼치고, 2장에서 과학이 왜 이야기를 싫어했는지 살핍니다. 3~4장은 이야기란 무엇이고 왜 머리에 더 잘 들어오는지, 5장은 우리가 이미 이야기로 과학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뉴스·드라마·CSI), 6장은 이야기의 설득력과 그 그림자, 7장은 논문의 핵심인 세 가지 윤리 질문을 다룹니다. 8장은 논문이 남긴 숙제 — 신뢰, 뉴미디어, '인간 척도 너머의 소통' — 를, 9장은 그 뒤 10년의 연구가 매긴 채점표를, 10장은 AI가 이야기꾼이 된 2026년을 다룹니다. 마지막 11장은 과학자·기자·기술 기업을 위한 실전 점검표입니다.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가 여섯 개 있으니, 읽다가 멈춰서 눌러 보세요.
1장. 논문 한 장 요약 — 일곱 쪽의 지도
어디서 나온 논문인가
이 논문은 2013년 9월 23~25일 워싱턴 DC의 미국국립과학원에서 열린 아서 M. 새클러 콜로키움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과학 II(The Science of Science Communication II)」의 발표를 정리한 것입니다. 이 콜로키움은 2012년 1회에 이어 두 번째로 열렸고, 과학을 대중에게 전하는 일 자체를 경험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자는 운동의 상징 같은 행사였습니다. 발표 논문들은 2014년 9월 16일 PNAS 111권 부록 4호에 묶여 나왔고, 객원 편집자는 위스콘신대의 디트람 쇼이펠레(Dietram Scheufele)였습니다. 쇼이펠레는 이후 달스트롬과 함께 「과학적 스토리텔링의 역설(에서 벗어나기)」(2018)을 쓰게 됩니다.
달스트롬 자신은 서사를 실험으로 연구해 온 사람입니다. 2010년과 2012년에 그는 '서사 속 인과관계가 정보 수용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으로 검증한 논문 두 편을 냈고, 2012년에는 싱가포르 난양공대의 셜리 호(Shirley S. Ho)와 함께 「과학을 전하기 위해 서사를 쓸 때의 윤리적 고려」를 썼습니다. PNAS 논문은 이 두 갈래 — 서사의 힘과 서사의 윤리 — 를 합친 종합편입니다.
논문의 뼈대
논문은 다섯 덩어리로 되어 있습니다.
서론'일화의 복수는 데이터가 아니다'는 데이터 수집에선 옳지만 비전문가 대상 커뮤니케이션에선 다르다. 서사는 이해하기 쉽고 더 몰입하게 하며, 비전문가가 과학을 접하는 통로(대중매체)는 이미 서사 쪽으로 기울어 있다.
서사란 무엇인가인과·시간·인물의 3요소. 논리·과학적 소통과의 세 가지 차이(일반화 방향, 맥락 의존성, 정당성 기준). '두 가지 인지 경로' 가설과 서사의 인지적 이점. 과학 교육·보건 커뮤니케이션의 시도.
대중매체와 서사미국인의 과학 정보원(TV 34%, 인터넷 35%). 게이트키핑과 뉴스 가치, 특히 '인물화'. 오락 매체의 배양 효과('비열한 세상 증후군')와 CSI 제작진의 '유연한 사실주의'. 결론: 서사를 쓸지 묻는 것은 '무의미'하고, 어떻게 쓸지를 물어야 한다.
서사 설득과 윤리서사는 주장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고 결론을 필연처럼 보이게 한다. 운송·예시화·리액턴스. 허구도 설득한다. 혜택(백신·HIV 캠페인, 과학·엔터테인먼트 교류)과 위험(오정보). 세 가지 윤리 질문.
미래의 교차점① 신뢰 쌓기 ② 뉴미디어 환경 ③ 인간 척도 너머의 소통. 그리고 결론: "일화의 복수는 매력적인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다."
이 구조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이야기는 잘 먹힌다 → 사람들은 이미 이야기로 과학을 먹고 있다 → 그러니 문제는 '쓸까'가 아니라 '어떻게 책임 있게 쓸까'다. 논문의 가장 단단한 논증은 두 번째 화살표에 있습니다. 과학자가 이야기를 거부해도 비전문가는 어차피 뉴스와 드라마의 이야기로 과학을 배운다는 것. 그렇다면 이야기를 거부하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기권입니다.
논문은 첫 줄에서 "스토리텔링은 과학 안에서 종종 나쁜 평판을 갖는다"고 씁니다. 근거 없는 것으로, 심지어 조작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는 겁니다. 그 대표 문헌으로 인용한 것이 2013년 『네이처 메서즈(Nature Methods)』에 실린 야든 카츠(Yarden Katz)의 짧은 글 「과학 결과를 스토리텔링하는 것에 반대한다(Against storytelling of scientific results)」입니다.
카츠의 글은 사실 반박문이었습니다. 같은 해 8월 이 저널의 데이터 시각화 칼럼 「관점(Points of View)」에서 크시빈스키와 카이로가 다중 패널 그림을 '이야기처럼' 설계하라고 권하자, 카츠는 그 권고가 "과학 글쓰기가 저널리즘식 스토리텔링을 따라야 한다는 널리 퍼진 관점"을 반영한다며 그 함정을 짚었습니다. 그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훌륭한 이야기꾼은 청중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필요에 따라 정보를 꾸미고 감춘다. 불편한 진실은 쓸려 나가고, 사소한 것은 요점을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부풀려진다. 그러나 복잡한 실험은 여러 해석을 허용하고, 과학 결과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가 있는 확실성으로 모형과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와 논증"으로 제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데이터가 왜곡되고 대표성 없이 제시된다는 것입니다. 칼럼 필자들은 "우리의 스토리텔링 비유를 의도한 범위 너머로 확장했다"고 답했고, 같은 호 사설은 스토리텔링이 "제대로 쓰이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정리했습니다.
카츠가 겨냥한 것은 대중 소통이 아니라 논문 자체였다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결과를 깔끔한 이야기로 만들라는 압력은 엇갈리는 데이터를 보충 자료 뒤로 숨기고, 처음부터 그 가설을 세웠던 것처럼 서론을 고쳐 쓰게 만듭니다(심리학의 재현성 위기 이후 'HARKing' — 결과를 보고 나서 가설을 세우는 관행 — 이라 불리게 된 문제와 같은 뿌리입니다).
이 경계심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의학의 역사는 '좋은 이야기'가 '나쁜 데이터'를 이긴 사례로 가득합니다. 1998년 영국의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랜싯』에 발표한, 아이 열두 명의 사례 보고 — MMR 백신을 맞은 뒤 자폐 증상이 나타났다는 부모들의 이야기 — 는 연구 부정으로 2010년 철회됐지만, 그 이야기는 철회 뒤에도 20년 넘게 살아남아 전 세계 백신 거부 운동의 기원 서사가 됐습니다. 열두 명의 일화가 수백만 명을 추적한 역학 연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은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일화의 복수는 데이터가 아니다"를 주문처럼 외는 것은 바로 이런 기억 때문입니다.
경구의 기묘한 출생
재미있는 것은 이 경구 자체의 이력입니다. 원래 형태는 정반대였습니다. 버클리의 정치학자 레이먼드 울핑거(Raymond Wolfinger)는 『예일 인용구 사전』 편집자 프레드 샤피로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나는 1969~70학년도 어느 때 스탠퍼드에서 대학원 세미나를 가르치다가 '일화의 복수는 데이터다(The plural of anecdote is data)'라고 말했다.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이나 내가 한 단순한 사실 진술을 '그저 일화일 뿐'이라고 깎아내린 것에 대한 응수였다." 1980년대 정치학자들의 글에 '울핑거의 빛나는 경구'로 인용된 것도 이 긍정형입니다. 데이터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으며, 체계적으로 모은 일화가 곧 데이터라는 뜻이었죠. 부정형 "일화의 복수는 데이터가 아니다"는 1982년 캐나다 행정학 학술지, 1988년 『행동·뇌과학』에서 확인되는 뒤집힌 변종입니다(인용구 추적 사이트 Quote Investigator의 조사).
그러니 달스트롬이 논문 끝에서 경구를 "일화의 복수는 매력적인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다"로 고쳐 쓴 것은, 의도했든 아니든 원래의 정신으로 반쯤 돌아간 셈입니다. 일화는 쓰레기가 아니라 재료라는 것.
달스트롬의 구별 — 수집의 규칙과 전달의 규칙
달스트롬은 이 경계심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경구가 지키려는 것 — "체계적으로 표집한 모집단에서 정보에 근거해 일반화하는 것과, 작고 흔히 치우친 표본에서 과잉 일반화하는 것의 차이" — 를 "가치 있다"고 분명히 씁니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그 규칙이 적용되는 맥락입니다.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단계에서 일화는 오염원입니다. 그러나 맥락이 비전문가에게 과학을 전하는 일로 옮겨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는 것이 논문의 첫 번째 주장입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서사는 더 잘 이해되고 더 몰입하게 한다. 사람들은 전통적인 논리·과학적 소통보다 서사를 더 쉽게 이해하고 더 흥미롭게 여긴다(브루너 1986, 그린 2006).
비전문가가 과학을 접하는 통로가 이미 서사 쪽으로 기울어 있다. 학교를 졸업한 성인은 과학 정보의 대부분을 대중매체에서 얻는다. 그리고 매체는 청중의 주의를 얻기 위해 경쟁하므로 이야기·일화·서사에 기댄다.
그래서 논문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일화의 복수가 데이터는 아닐지 몰라도, 일화는 비전문가 청중에게 닿고 그들을 몰입시킬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다면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과제는 서사가 언제, 어떻게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비전문가와의 소통을 도울 수 있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이 구별은 지금 봐도 날카롭습니다. 과학자가 스스로를 속이지 않기 위한 규칙(수집의 규칙)과, 과학자가 아닌 사람에게 과학을 건네기 위한 규칙(전달의 규칙)은 다른 문제를 푸는 다른 도구입니다. 둘을 혼동하면 두 가지 실패가 생깁니다. 데이터 분석에 이야기를 들이면 과학이 망가지고, 대중 소통에서 이야기를 금지하면 과학이 들리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뭐냐"고 물으면 누구나 대충은 압니다. 논문은 그 직관을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이 다듬어 온 정의로 바꿉니다.
서사는 특정한 인물들에게 영향을 주는, 특정한 기간에 일어난 사건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묘사하는 특정한 구조를 따른다.
인과(causality), 시간(temporality), 인물(character) — 논문은 이것을 "삼두정치(triumvirate)"라 부르며 서사 커뮤니케이션의 꽤 표준적인 정의라고 소개합니다. 이 정의의 중요한 성질은 내용과 무관하다는 점입니다. 소설이든 뉴스든 연구비 신청서든, 사건들이 시간 순서로 놓이고 인과로 이어지며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면 서사입니다. 그래서 서사는 대화, 드라마, 인물 기사 같은 뻔한 곳뿐 아니라 더 큰 메시지 안의 증언, 예시, 사례 연구, 목격담으로도 나타납니다. 보도자료의 "환자 A 씨는…"으로 시작하는 한 문단, 기술 블로그의 "새벽 세 시에 서버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장애 회고가 모두 서사입니다.
세 요소 가운데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달스트롬 자신의 실험(2010, 2012)이 답의 실마리를 줍니다. 2010년 실험에서 그는 아이오와주립대 학부생 56명에게 약 3,760단어짜리 판타지 단편을 읽혔습니다. 풋내기 해적들이 "사실이 가득 적힌 공책"을 들고 보물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곳곳에 '야생 팬지는 하루 종일 해를 향해 돈다', '해파리는 얕은 곳의 빠른 물살을 피한다' 같은 진술 18개를 심었는데, 같은 진술이 판본에 따라 인과적 위치(그 사실 때문에 다음 사건이 일어나는 자리), 비인과적 위치(묘사나 대화 속), 또는 아예 빠진 자리에 놓이도록 돌렸습니다. 결과는 선명했습니다.
인과적 위치 — 회상률
46%
비인과적 위치 — 회상률
29%
이야기에 없음 — 회상률
1% 미만
같은 사실이라도 줄거리를 움직이는 자리에 있으면 더 잘 기억됐고, 현실 세계에서도 참이라고 더 믿었습니다(7점 척도에서 5.26 대 4.93, 이야기에 없던 통제 진술은 4.53). 학생들은 처음부터 '허구 단편'이라고 안내받았는데도 그랬습니다. 달스트롬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서사에 포함되는 것만으로도 정보의 진실성 지각이 높아진다." 2012년 후속 실험은 이 인과 효과가 이해의 초기 단계에서 일어나 기존 세계관 같은 외부 조절 변수로부터 '보호'되며, 2주 뒤에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인과는 서사의 세 기둥 중에서도 하중을 가장 많이 받는 기둥입니다.
아래 조립기로 직접 확인해 보세요. 사실은 하나도 바꾸지 않고 접속어와 관점만 바꿉니다. 영화감독이 된 해양생물학자 랜디 올슨이 『휴스턴, 우리에겐 서사가 있다』(2015)에서 제안한 ABT(And, But, Therefore — 그리고, 그런데, 그래서) 틀은 '인과'를 가장 간단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올슨은 이 틀을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 제작자들의 작법 — "이야기의 비트 사이에 '그리고'가 들어가면 지루하다, '그런데'나 '그래서'로 바꿔라" — 에서 가져왔습니다.
서사는 흔히 다른 형식과 대비됩니다. 설명문, 논증문, 또는 기술적·연역적·통계적 설명.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대비는 대부분의 과학 밑에 깔린 논리·과학적(logical-scientific) 소통과의 대비입니다. 이 구별의 원조는 하버드의 인지심리학자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가 1986년에 낸 『실제의 마음, 가능한 세계(Actual Minds, Possible Worlds)』입니다. 브루너는 이렇게 썼습니다.
인지 작용에는 두 가지 양식, 두 가지 사고 양식이 있다. 각각은 경험을 질서 짓고 실재를 구성하는 독특한 방식을 제공한다. (…) 좋은 이야기와 잘 짜인 논증은 서로 다른 자연종(natural kind)이다. 둘 다 남을 설득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납득시키는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논증은 그것이 참이라는 것을, 이야기는 그것이 삶과 닮았다는 것을 납득시킨다.
브루너는 전자를 패러다임적(paradigmatic) 양식, 후자를 서사적(narrative) 양식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과학자들에 대해 짓궂은 문장도 남겼습니다. 과학자들도 실은 이야기로 생각하지만 "그들의 구원은 원인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되면 이야기를 씻어 내는 데 있다."
비슷한 시기 커뮤니케이션학자 월터 피셔(Walter Fisher)는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1984년 논문 「인간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으로서의 서사」에서 그는 인간을 호모 나런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사람들이 메시지를 평가하는 기준이 형식 논리가 아니라 서사적 합리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합리성에는 두 가지 시험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모순 없이 '앞뒤가 맞는가'(서사적 개연성, coherence), 그리고 듣는 사람이 아는 세상과 가치에 '들어맞는가'(서사적 충실성, fidelity). 피셔는 이 틀로 당시 미국의 핵전쟁 논쟁과 『길가메시 서사시』를 함께 분석했습니다. 과학자가 데이터로 이긴 논쟁에서 대중의 마음을 잃는 이유를 이 두 시험이 설명해 줍니다 — 데이터는 개연성은 갖췄어도 충실성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달스트롬은 두 양식이 갈라지는 지점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기준
논리·과학적 소통 (패러다임 양식)
서사적 소통
일반화의 방향
추상적 진리 → 개별 사례로 내려간다 (연역). 일정 범위의 상황에서 유효한 법칙을 주고, 개인이 그것을 자기 사례에 적용해 예측한다.
개별 사례 → 일반적 진리로 올라간다 (귀납).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세상이 어때야 하는지를 듣는 사람이 추론한다.
맥락 의존성
맥락 독립적. 사실은 주변 정보와 무관하게 의미를 유지하므로, 잘라서 다른 메시지에 넣거나 단독으로 제시해도 이해 손실이 적다.
맥락 의존적. 의미가 시간 속 사건들의 인과 구조에서 나오므로, 작은 단위로 쪼개면 의미가 바뀌거나 이야기가 무너진다.
정당성의 기준
주장의 정확성(accuracy)으로 판단한다.
상황의 핍진성(verisimilitude, 그럴듯함)으로 판단한다.
세 번째 줄이 특히 중요합니다.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정반대 결론을 가진 논증과 이야기가 똑같이 '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 논문의 지적입니다. 백신이 안전하다는 메타분석과, 백신을 맞은 날 밤 아이가 열이 나 응급실에 갔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법정에서 재판받습니다. 앞의 것은 "정확한가?"를, 뒤의 것은 "그럴 법한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이야기는 그럴 법합니다 — 실제로 일어난 일이니까요. 논문은 이것이 "서사가 사실로 효과적으로 반박되는 일이 드문 이유"를 일부 설명한다고 씁니다.
두 번째 줄은 과학 글쓰기에 직접적인 교훈을 줍니다. 논문 초록의 문장 하나, 보도자료의 수치 하나는 떼어서 트윗으로 옮겨도 의미가 살아남습니다(그래서 맥락 없이 인용되는 문제도 생깁니다). 이야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중간 한 문단만 잘라 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성질은 약점이기도 하지만 강점이기도 합니다. 이야기 안에 묶인 사실은 이야기 전체와 함께 기억됩니다.
두 가지 인지 경로 가설
이런 차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논리·과학적 소통과 서사적 소통이 단지 다른 형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인지 경로를 탄다고 주장합니다. 패러다임 경로는 과학적 증거의 부호화(encoding)를, 서사 경로는 상황 기반 예시의 부호화를 담당하며, 어느 경로로 처리되느냐에 따라 이해의 방식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논문은 경험적 연구들이 이런 범주적 차이를 지지하며, 서사 처리가 대체로 더 효율적이라고 정리합니다. 그 효율이 어디서 오는지가 다음 장의 주제입니다.
4장. 왜 이야기가 더 잘 들어오는가 — 서사의 '특권적 지위'
두 배 빨리, 두 배 잘
논문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한 문장은 이것입니다. "설명 텍스트와 직접 비교했을 때, 서사 텍스트는 주제에 대한 친숙도나 내용 자체에 대한 관심과 무관하게 두 배 빨리 읽혔고 두 배 잘 회상됐다." 근거로 든 것은 멤피스대 인지과학자 아서 그레서(Arthur Graesser)의 연구들입니다.
그런데 이 '두 배'는 출처를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논문이 인용한 두 문헌(Graesser, Olde & Klettke 2002; Graesser & Ottati 1995)은 모두 새 실험이 아니라 리뷰 장(章)입니다. 원 데이터는 그레서 연구실이 1980년 무렵 수행한 문장 읽기 시간·회상 실험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보이며, 그 리뷰에서 그레서는 "서사 텍스트는 설명 텍스트보다 약 두 배 빨리 읽히고 두 배 잘 기억됐으며, 친숙도와 흥미의 영향은 아주 작았다"고 요약했습니다. 그러니 '두 배'는 하나의 깔끔한 실험값이라기보다 한 연구실의 결과 요약이 리뷰를 거쳐 전해진 숫자입니다.
다행히 2021년에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 메타분석이 나왔습니다. 토론토 요크대 레이먼드 마(Raymond Mar) 연구팀은 37편 논문, 78개 표본, 참가자 33,078명의 연구를 모아 서사 텍스트와 설명 텍스트를 비교했습니다.
기억 (Hedges g)
0.72
전체
0.55
이해
0.48
막대 폭은 효과 크기 g를 1.0 기준으로 그린 것입니다. 심리학 관례로 g = 0.5는 '중간', 0.8은 '큰' 효과입니다. 서사의 이점은 진짜이고, 특히 기억에서 중간~큰 크기입니다. 다만 '두 배'라고 말할 정도로 극적이지는 않고, 일부 오래된 연구는 차이가 없거나 설명문이 더 나았다고도 보고했습니다. 논문의 주장은 살아남았고, 숫자는 다듬어졌다고 정리하면 정확합니다.
그레서와 오타티(1995)는 이런 결과들을 묶어 서사가 인간 인지에서 "특권적 지위(privileged status)"를 갖는다고 표현했습니다. 다른 연구들도 서사가 회상 증가, 이해 용이성, 짧은 읽기 시간과 연관된다고 보고했습니다(Zabrucky & Moore 1999; Schank & Abelson 1995).
직접 해 보세요. 아래 두 글에는 똑같은 네 가지 사실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교과서처럼 '첫째·둘째·셋째'로, 하나는 한 사람에게 일어난 일로 썼습니다.
단순해서가 아니다
여기서 논문은 흔한 오해 하나를 미리 막습니다. 서사의 이점이 단순함에서 오는 것으로 가정해서는 안 된다. 일관된 서사는 내부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문화적·사회적 기대와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브루너 1991). 좋은 이야기를 쓰는 것은 좋은 요약을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원인과 결과의 사슬이 끊기지 않아야 하고, 인물의 동기가 납득돼야 하며,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야 합니다. 이야기가 쉽게 읽히는 것은 그것을 쓴 사람이 그 복잡함을 대신 짊어졌기 때문입니다.
대신 논문은 서사가 정보 처리의 네 단계 모두에서 내재적 이점을 준다고 정리합니다(Glaser, Garsoffky & Schwan 2009).
① 동기와 흥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
② 인지 자원 배분 주의를 붙잡아 둔다
→
③ 정교화 원인·결과를 스스로 잇는다
→
④ 장기 기억 전이 사건의 사슬째로 저장된다
기본값으로서의 서사 — 진화론적 설명
더 나아가 서사적 인지는 인간 사고의 기본 모드(default mode)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서사가 현실에 구조를 주고 기억의 바탕이 된다는 것이죠(Schank & Abelson 1995). 이런 의존은 진화적 이점의 결과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토론토대의 심리학자이자 소설가 키스 오틀리(Keith Oatley)는 1999년 논문 「허구가 사실보다 두 배 참일 수 있는 이유」에서 서사를 가능한 현실을 시뮬레이션하는 형식으로 봤습니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직접 겪지 않고도 "만약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를 미리 돌려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인과관계를 더 잘 예측하고, 우리 종을 규정하는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모델링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Read & Miller 1995).
이 진화론적 설명은 나중에 신경과학에서 흥미로운 지지를 얻습니다. 2010년 프린스턴대 우리 하손(Uri Hasson) 연구실은 PNAS에 「화자-청자 신경 결합은 성공적인 의사소통의 근간이다」를 발표했습니다. 한 화자가 자기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이야기를 리허설 없이 15분간 들려주는 동안 fMRI로 뇌를 찍고, 그 녹음을 청자 11명에게 들려주며 다시 찍었습니다. 화자와 청자의 뇌 활동은 시간적·공간적으로 결합(coupling)했고, 청자가 모르는 러시아어 이야기를 들려주자 결합이 사라졌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청자의 일부 영역(선조체, 내측 전전두엽 등)이 화자보다 3~6초 앞서 움직였다는 점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다음을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이 '예측적 결합'이 클수록 이해도가 높았습니다(r ≈ 0.75). 표본이 작아 결론을 크게 볼 수는 없지만, '이야기를 듣는 것은 다음 장면을 함께 시뮬레이션하는 일'이라는 오틀리의 설명과 잘 맞는 장면입니다(이 연구는 달스트롬의 논문에는 인용되지 않았습니다).
교실과 진료실에서의 시도
이런 인지적 이점은 당연히 과학 교육과 보건 커뮤니케이션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논문이 소개하는 두 가지 틀이 실용적입니다.
서사 기반 학습의 네 가지 요인 (Glaser 외 2009): 극화(dramatization), 감정화(emotionalization), 개인화(personalization), 허구화(fictionalization). 전통적인 설명식 교육과정보다 과학 지식 습득을 개선할 수 있는 요소들입니다.
용량 모델(capacity model) (Fisch 2000): 「세서미 스트리트」 같은 어린이 교육 방송을 연구한 셜리 피시가 제안했습니다. 아이가 TV를 볼 때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도, 교육 내용을 이해하는 데도 인지 자원이 듭니다. 그런데 교육 내용이 줄거리에 필수적일수록(내용을 이해해야 이야기가 이해되도록 짜일수록) 이해에 드는 자원이 줄고 학습이 좋아집니다. 반대로 교육 내용이 줄거리와 따로 놀면 — 이야기 중간에 갑자기 "자, 여기서 잠깐 과학 상식!"이 끼어들면 — 아이는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과학을 놓칩니다. 달스트롬 자신의 인과 실험(2010, 2012)이 이 예측을 지지했습니다.
용량 모델은 과학 커뮤니케이터에게 아주 구체적인 처방을 줍니다. 사실을 이야기 옆에 두지 말고, 이야기의 인과 사슬 안에 넣어라. 위의 항생제 이야기에서 '20분마다 분열한다'는 사실은 장식이 아니라 "그래서 금세 다시 무리가 됐다"는 다음 사건의 원인입니다.
보건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시도가 많았습니다. 항응고제 복약 교육(Mazor 외 2007), 유방암 환자의 온라인 정보(Wise 외 2008), 백신(Betsch 외 2011; Hopfer 2012)처럼 특정 주제의 효과를 실험한 연구들과, 서사를 건강 행동 변화의 도구로 정리한 이론적 개관(Hinyard & Kreuter 2007), 암 예방·관리에서 서사를 연구하고 적용하는 틀(Kreuter 외 2007)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논문은 정직하게 덧붙입니다. 이런 건강 서사 연구들을 모은 체계적 문헌고찰(Winterbottom 외 2008)은 순수한 서사 효과에 대해 엇갈린 결과를 냈고, 연구마다 '서사'를 일관되게 정의하지 않았다는 점이 일반화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입니다(Shaffer & Zikmund-Fisher 2013). 이 '엇갈림'은 9장에서 다룰 2014년 이후 메타분석들의 예고편이기도 합니다.
5장. 우리는 이미 이야기로 과학을 배운다 — 대중매체라는 거대한 서사 기계
과학은 어디서 오는가
학교를 졸업한 뒤 당신은 과학을 어디서 배웠습니까? 논문은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이 2년마다 내는 『과학·공학 지표(Science and Engineering Indicators)』 2012년판을 인용합니다.
인터넷
35%
텔레비전
34%
잡지
9%
신문 등 인쇄
9%
정부·가족·친구·동료
3%
미국인의 과학·기술 정보 1차 출처는 TV(34%)와 인터넷(35%)이 거의 동률이고, 정부 기관과 가족·친구·동료를 다 합쳐도 3%에 그쳤습니다. 특정 주제를 찾아볼 때는 인터넷이 59%로 압도적이었고, 그 온라인 콘텐츠의 절반 이상(52%)은 전통적인 언론사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과학 지식의 절대다수가 기자와 PD의 손을 거쳐 시민에게 닿는다는 뜻입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과학창의재단의 「2022 과학기술 국민인식도 조사」(성인 1,006명, 청소년 615명)를 보면 구도가 같은 방향으로 더 나아가 있습니다.
과학기술 지식·정보 주 습득 경로
성인
청소년
1위
인터넷 43.8%
유튜브 48.9%
2위
TV 26.5%
인터넷 22.6%
3위
유튜브 13.8%
SNS 9.4%
청소년 집단 면접에서는 긱블, 쿠르츠게작트(Kurzgesagt), 안될과학 같은 채널 이름이 나왔고, 보고서는 청소년의 "높은 유튜브 의존도"에 맞춘 전략을 권고했습니다. 2014년 논문이 '대중매체'라고 부른 자리를 2026년 한국에서는 크리에이터의 영상이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유튜브 과학 채널은 신문보다 더 서사적인 매체입니다 — 썸네일에 얼굴이 있고, 첫 15초에 질문이 있고, 마지막에 반전이 있습니다.
왜 매체는 서사로 기우는가? 논문의 설명은 언론학의 고전적 개념들에 기댑니다. 기자는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전한다는 목표와, 덧없는 청중의 주의를 얻어 경제적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표 사이에서 줄을 탑니다. 그래서 메시지는 청중의 주의를 끄는 데 성공해 온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형식으로 포장됩니다. 이것을 '미디어 논리(media logic)' 또는 '매체화(medialization)'라 부릅니다.
게이트키핑 이론은 그 상류를 봅니다. 조직의 관행, 외부 압력, 내부 목표가 결국 청중에게 나오는 메시지와 형식을 빚습니다. 이 이론의 핵심 통찰은 이것입니다. 뉴스는 기자가 골라서 전송하는, 미리 존재하는 단위가 아니다. 현실은 조직의 필요 — 제작 시점, 전송의 편의, 청중의 기대 — 에 맞는 단위로 선택적으로 구조화되면서 뉴스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구조화의 기준이 뉴스 가치(news values)입니다. 1965년 노르웨이의 요한 갈퉁과 마리 루게가 콩고·쿠바·키프로스 위기 보도를 분석해 정리한 이래, 뉴스 가치 목록에는 갈등, 새로움, 지리적·문화적 근접성, 인물의 저명성, 청중에 대한 영향, 시의성이 올랐습니다. 뉴스는 가능한 한 많은 뉴스 가치에 맞도록 포장되고, 다른 관련 측면은 축소되거나 무시됩니다.
그리고 서사와 직접 연결되는 또 하나의 뉴스 가치가 있습니다. 인물화(personification)입니다. 더 큰 사회적 힘을 보도할 때조차 매체는 추상적 개념을 극적인 이야기로 인물화합니다. 큰 맥락 속의 특정 개인이나 작은 집단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 행동의 결과를 탐색하는 거죠. 논문은 인물화가 왜 합리적인지 양쪽에서 설명합니다.
청중 쪽: 집합체보다 개인에게 동일시와 공감이 쉽고, 서구의 개인주의적 기대와도 맞는다.
매체 쪽: 거대한 사회적 힘보다 개인을 인터뷰하고 사진 찍기가 쉽다. 그리고 개인은 대체로 뉴스 발행 주기와 비슷한 시간 단위로 행동한다.
마지막 이유가 특히 흥미롭습니다. 기후변화는 수십 년 단위로 진행되지만 신문은 매일 나옵니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올여름 폭염으로 밭을 갈아엎은 농부 김 씨"입니다. 김 씨는 하루 단위로 행동하고, 사진에 찍히고, 말을 합니다.
이 편향은 과학 보도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보건과 생물학이 늘 가장 많이 보도되는 과학 주제인데, 둘 다 '차갑고' 추상적인 과학보다 인물화가 쉽습니다. 독일 신문 과학면 편집자들을 인터뷰하고 지면을 내용 분석한 바덴쉬어와 보르머(2012)는 표준적인 뉴스 가치 일부를 과학 보도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인물화는 여전히 과학 뉴스 선택의 강력한 예측 변수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영국의 재생의학 보도를 분석한 엘리엇(2012)도 같은 편향을 찾았습니다.
오락 매체 — 더 크고 더 조용한 교실
정보성 뉴스가 과학 보도 논의를 지배하지만, 논문은 전체 소비량으로 보면 오락 매체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영화, 드라마와 시트콤, 다큐멘터리, 소설, 심지어 비디오 게임까지 — 이들은 대부분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지만, 그 총합이 현실 세계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습니다.
그 영향을 설명하는 것이 펜실베이니아대 아넨버그 스쿨의 조지 거브너(George Gerbner)가 1970년대에 시작한 배양 이론(cultivation theory)입니다. 이론의 핵심 명제는 이렇습니다. 오락 매체의 스토리텔링 패턴은 현실을 정확히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윤을 늘리기 위해 설계된다. 그래서 오락 매체가 보여 주는 서사의 세계는 체계적으로 왜곡되어 있고, 그런 이야기에 더 많이 노출된 사람일수록 그 속의 믿음과 가치를 내면화한다.
논문이 드는 예가 강렬합니다. 폭력 범죄 피해자가 되는 미국인은 1%도 안 되지만, 미국 지상파 TV 프로그램의 약 70%는 폭력의 피해자나 가해자인 등장인물을 보여 준다. 이 괴리가 "비열한 세상 증후군(mean world syndrome)"을 낳았습니다. TV를 많이 보는 사람일수록 세상을 통계보다 더 위험한 곳으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1%와 70%라는 수치는 거브너의 1976년 논문이 아니라 배양 이론을 종합한 섀너핸과 모건의 1999년 책에서 온 것이고, 논문도 그렇게 인용했습니다.) 거브너 연구팀의 고전적 설문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한 주 동안 당신이 폭력에 휘말릴 확률은? ① 10분의 1 ② 100분의 1." TV를 하루 4시간 넘게 보는 '헤비 시청자'는 현실에 가까운 100분의 1보다 'TV 속 세상의 답'인 10분의 1을 더 자주 골랐고, 경찰 등 법 집행 종사자 비율을 과대평가했으며,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문항에 더 많이 동의했습니다. 거브너는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한 문화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그 문화의 행동을 다스린다.
배양 연구는 주로 폭력이나 소수 집단의 재현을 다뤘지만, 과학 관련 주제 — 환경(McComas 외 2001; Dahlstrom & Scheufele 2010), 생명공학(Besley & Shanahan 2005), 과학자 자신에 대한 인식(Dudo 외 2011) — 도 이 렌즈로 연구됐고, 대체로 청중이 오락 서사 속의 흔히 부정확한 과학 묘사에 영향을 받는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의사·과학자가 등장하는 방식, 재난 영화 속 지진과 화산의 묘사가 우리의 '과학 상식'을 얼마나 빚었는지 떠올려 보면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배양 연구가 완성된 오락 서사의 효과를 본다면, 논문은 과학이 서사 안으로 들어가는 제작 과정을 들여다본 연구도 소개합니다. 영국 맨체스터대의 과학사가 데이비드 커비(David Kirby)는 2013년 법과학 드라마의 작가와 제작자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들은 이야기에 사실감을 더하려고 과학을 찾지만, 그 과학을 서사의 관습과 자기 프랜차이즈에 맞게 써야 청중을 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학은 더 큰 목표인 스토리텔링에 봉사해야 하므로, 제작자들은 "유연한 사실주의(flexible realism)" 또는 "허구적 기교(fictional conceit)"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일어날 확률과 상관없이 가능한 과학이면 쓴다는 것입니다.
「CSI」의 수석 과학 자문이었던 데이비드 버먼의 말이 이를 요약합니다. 그의 팀은 "보통 일어나는 일에 발목 잡히고 싶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원한다. 작가들에게 과학적 사실주의란 정확성이 아니라 진정성과 그럴듯함(authenticity and plausibility)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3장의 표에서 본 '정확성 대 핍진성'이 제작 현장의 언어로 그대로 나온 셈입니다.
이 '가능성 대 확률'의 간극은 법정에서 이름을 얻었습니다. 「CSI」가 2000년 첫 방송된 뒤 2004년 무렵부터 미국 언론은 'CSI 효과'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라마를 본 배심원들이 모든 사건에 DNA 감정과 첨단 증거를 기대해, 그런 증거가 없으면 유죄 평결을 꺼린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증 연구는 이 이야기 자체가 과장됐음을 보여 줍니다. 미시간주 판사 도널드 셸턴이 배심원 1,027명을 조사한 2006년 연구에서 CSI 시청자들은 과학 증거에 대한 기대가 더 높았지만, 그 기대가 유죄 판단의 조건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셸턴은 그 기대가 드라마 하나보다는 기술 전반에 대한 기대, 이른바 '테크 효과'에서 온다고 봤습니다. CSI 효과는 과학 드라마가 낳은 오해이면서 동시에 언론이 만든 과장된 서사이기도 했던 셈입니다. 이야기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까지 만들어 냅니다.
현실의 과학수사 연구소는 드라마와 정반대 풍경입니다. 미국 법무부 통계국 조사에서 공공 범죄 연구소들은 해마다 수십만 건의 감정 요청 적체를 안고 있었고, DNA 감정은 몇 분이 아니라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립니다. 드라마의 45분과 현실의 적체 사이 — 그것이 '유연한 사실주의'의 비용입니다.
그래서, 쓸까 말까는 '무의미한' 질문
논문은 대중매체 절을 이렇게 맺습니다. 대중매체 메시지 중 서사와 비서사의 비율을 잰 경험적 측정은 없다. 그러나 서사는 정보 매체와 오락 매체 양쪽의 조직적·구조적 필요에 들어맞고, 대부분의 매체 플랫폼에 편재한다. 따라서 서사는 비전문가가 받고 있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지배적 형식이다.
그러므로 서사를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써야 하는가를 묻는 것은 다소 무의미하다. 더 적절한 질문은 이것이다. 서사가 가진 설득의 힘 때문에, 과학을 적절하게 전하려면 서사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
6장. 이야기는 왜 설득적인가 — 서사 설득과 그 그림자
정당화가 필요 없는 주장
논문의 세 번째 절은 짧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서사는 본질적으로 설득적이다(Narratives are intrinsically persuasive)." 이유는 세 겹입니다.
정당화가 필요 없다. 서사는 일반적 진리가 아니라 특정한 경험을 묘사하므로, 주장의 정확성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 이야기 자체가 주장을 시연한다. "그 약을 먹고 우리 아이가 나았다"는 문장에는 근거를 댈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곧 근거니까요.
결론이 필연처럼 보인다. 서사의 구조는 사건들을 인과관계로 엮으므로, 실제로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이야기의 결말이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Curtis 1994). 우리는 끝을 알고 나서 처음을 다시 읽습니다.
가치를 몰래 싣는다. 이 필연성과 정당화 불필요가 합쳐지면, 이야기는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에 대한 규범적 요소들을 한 번도 명시하거나 변호하지 않은 채 실어 나를 수 있다(Graesser & Ottati 1995).
그래서 결론은 이렇습니다. "서사는 논증 없이 현실 세계의 대상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으므로, 그 주장에 반박하기 어렵다." 이 분야를 서사 설득(narrative persuasion) 연구라 부르며, 결과는 대체로 청중이 논리·과학적 논증보다 서사에서 제시된 규범적 평가를 더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쪽입니다(Green & Brock 2000; Slater & Rouner 2002).
그 설득을 매개하는 대표적 메커니즘이 운송(transportation)입니다. 오하이오주립대의 멜라니 그린(Melanie Green)과 티머시 브록(Timothy Brock)은 2000년 『성격·사회심리학 저널』에 실린 고전적 논문에서 운송을 "이야기로의 몰입"으로 정의하고, 그것이 심상·감정·주의 집중을 수반한다고 했습니다. 이 개념은 심리학자 리처드 게릭(Richard Gerrig)의 여행 비유에서 왔습니다. "누군가('여행자')가 어떤 운송 수단에 의해 운송된다. 여행자는 자기가 떠나온 세계에서 멀리 가고, 그래서 떠나온 세계의 어떤 측면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여행자는 원래 세계로 돌아오되, 여행으로 조금 변한 채 돌아온다."
그린과 브록이 쓴 이야기는 「쇼핑몰의 살인(Murder at the Mall)」이었습니다. 외과의사 셔윈 뉼런드의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How We Die)』에서 각색한 아홉 쪽짜리 글로, 대학생 조앤이 어린 여동생 케이티를 데리고 쇼핑몰에 갔다가 케이티가 정신질환자에게 칼에 찔려 숨지는 이야기입니다. 허구로도 실화로도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골랐습니다. 네 번의 실험(참가자 97, 69, 274, 258명)이 보여 준 것은 이렇습니다.
운송 척도"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싶었다", "읽는 동안 케이티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같은 15문항(7점 척도). 같은 쇼핑몰에서 케이티가 비눗방울 부는 광대를 보고 깔깔 웃는 '지루한 판본'은 점수가 확연히 낮았다(62.3 대 73.9).
신념 변화많이 운송된 독자일수록 이야기와 일관된 믿음(쇼핑몰은 위험하다, 정신질환자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등)을 더 강하게 가졌고, 주인공에 더 호의적이었다.
허구 꼬리표의 무력함'오하이오 소설 잡지에 실린 허구, 실존 인물과의 유사성은 우연'이라고 붙이든, 신문 기사처럼 편집하든 운송 정도와 신념 변화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피노키오 동그라미이야기를 다시 보며 '거짓 음표', 즉 진짜 같지 않은 부분에 동그라미를 치게 했다. 많이 운송된 독자는 평균 4.1개, 적게 운송된 독자는 10.5개를 쳤다. 이야기에 빠질수록 흠을 덜 찾는다.
'피노키오 동그라미'라는 이름은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인형에서 따왔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거짓 음표 찾기'를 논증에 대한 반론 생성(counterarguing)과 비슷한 것으로 봤습니다. 그러니까 운송은 감정과 인지 자원을 충분히 써 버리게 만들어, 청중이 노출된 평가에 반론을 만들어 내기 어렵게 합니다. 논문이 말하는 서사 설득의 핵심이 이것입니다. 논증은 반론을 부르고, 이야기는 반론을 재웁니다.
2014년 반 라에르 등의 메타분석(효과 크기 132개)은 이 경로를 숫자로 확인했습니다. 운송은 감정 반응과 강하게(ρ = .57), 태도와 상당히(ρ = .44) 연관됐고, 비판적 사고와는 음의 관계(ρ = −.20)였습니다. 식별 가능한 인물(.20), 상상하기 쉬운 줄거리(.29), 핍진성(.27)이 운송을 높였습니다.
운송이 '이야기 하나'의 힘이라면, 예시화 이론(exemplification theory)은 통계와 이야기가 한 메시지 안에 같이 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다룹니다. 앨라배마대의 돌프 질만(Dolf Zillmann)이 체계화한 이 이론에 따르면, 전체 현상을 기술한 뒤 구체적 사례를 예로 드는 뉴스 기사처럼 서사 정보와 통계 정보가 함께 있을 때, 사람들의 인식은 전체 평가와 일치하든 말든 구체적 사례의 경험 쪽으로 기운다.
대표 실험이 깁슨과 질만(1994)의 '카재킹' 연구입니다. 차량 강탈 범죄를 다룬 잡지 형식의 기사를 만들고, 기사에 실린 피해 사례의 왜곡 정도(최소·약간·상당·극단)와 기저율 통계의 정밀도를 바꿔 가며 읽혔습니다. 극단적으로 왜곡된 판본 — 피해자가 살해된 사례들을 실은 판본 — 을 읽은 사람들은 카재킹을 더 심각한 국가적 문제로 봤고, 피해자가 사망하는 비율을 크게 과대 추정했습니다. 이 효과는 통계를 정밀하게 제시하든 아니든 똑같았고, 시간이 지나도 유지됐습니다. 가장 무서운 대목은 따로 있었습니다. 독자들은 기사의 뉴스 가치·중요성·정확성 평가에서 판본 사이에 아무 차이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곡을 알아채지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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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화의 사촌 격인 현상이 행동경제학의 식별 가능한 피해자 효과(identifiable victim effect)입니다. 2007년 와튼 스쿨의 데버라 스몰, 카네기멜런대의 조지 로웬스타인, 오리건대의 폴 슬로빅은 펜실베이니아의 한 대학 학생회관에서 학생들에게 설문 사례비로 1달러 지폐 다섯 장을 준 뒤 세이브더칠드런 기부 편지를 건넸습니다. 편지는 세 종류였습니다.
말리의 7살 소녀 로키아 (사진)
2.38달러
로키아 + 기근 통계
1.43달러
통계만 (말라위 아동 300만 명 등)
1.14달러
한 소녀의 이야기가 수백만 명의 통계보다 두 배 이상을 모았고, 더 놀랍게도 소녀 이야기에 통계를 덧붙이자 기부가 통계만 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슬로빅은 같은 해 논문 제목을 마더 테레사의 말에서 따왔습니다. "군중을 보면 나는 결코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을 보면, 나는 행동할 것이다." 그는 통계를 "눈물이 말라 버린 인간"이라고 불렀습니다. (공정하게 덧붙이면, 2024년 가상의 기부로 진행한 사전등록 재현 연구는 이 효과를 재현하지 못했습니다. 실제 돈이 오간 원 실험과 조건이 달라 논쟁은 진행 중입니다.)
설득을 막는 유일한 방패 — 들켰을 때
논문은 서사 설득을 약화시키는 몇 안 되는 요인 하나를 짚습니다. 설득 의도가 뻔히 드러나 청중이 조종당한다고 느낄 때입니다(Moyer-Gusé & Nabi 2010). 심리학에서 '리액턴스(reactance)'라 부르는, 자유를 위협받을 때의 반발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설득 의도가 감춰져 있는 한 서사의 평가를 받아들이는 것이 노출의 기본 결과이고, 거부는 나중에 따로 꼼꼼히 따져 볼 때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Gerrig 1993; Green 2006).
이것은 하버드의 대니얼 길버트가 1990년대에 제안한 '스피노자식 믿음' 가설과도 통합니다. 우리는 이해하는 순간 일단 믿고, 의심은 그다음에 추가 노력을 들여야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그 '추가 노력'을 쓸 자원을 운송으로 미리 써 버리게 만듭니다.
허구도 설득한다
여기서 가장 반직관적인 결과가 나옵니다. 청중이 그 이야기가 허구라는 것을 알아도 비슷한 설득 효과가 나타난다(Green & Brock 2000). 허구 서사에는 흔히 참인 요소가 섞여 있고, 사람들은 허구 이야기에서 얻은 정보를 세상에 대한 질문에 답할 때 기꺼이 사용합니다(Marsh, Meade & Roediger 2003). 독일어권 심리학자 마르쿠스 아펠과 토비아스 리히터(2007)는 허구 서사의 설득 효과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커진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정보의 출처('그건 소설이었지')는 잊히고 내용만 남는 이른바 '수면자 효과'입니다. 실제로 앞 장의 배양 이론은 허구 오락 매체가 장기간에 걸쳐 쌓은 서사 설득의 누적 효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Bilandzic & Busselle 2008).
혜택 — 탄자니아의 트럭 운전사, 「ER」의 20초
서사의 설득력은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논문은 백신, 친환경 신념, HIV/AIDS에 대한 믿음을 서사로 바꾼 연구들을 인용합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 둘을 자세히 보겠습니다.
탄자니아의 「트웬데 나 와카티(Twende na Wakati, 시대와 함께 가자)」. 1993년 7월부터 라디오 탄자니아가 매주 두 번, 황금 시간대에 30분씩 방송한 스와힐리어 라디오 드라마입니다. 주인공 음콰주는 여러 여자를 만나는 장거리 트럭 운전사로, HIV에 감염되고 에이즈로 발병합니다. 그의 아내 투누는 그를 떠나 자기 사업을 일으킵니다. 음콰주 역 배우는 그 인물을 못마땅해한 여성들에게 채소 시장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인물에 몰입했다는 뜻입니다.
이 드라마가 연구자들에게 특별했던 이유는 자연 실험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도도마 지역의 방송국은 1993~95년 이 드라마 대신 지역 프로그램을 내보냈고, 그래서 도도마는 비교 지역이 됐습니다. 본 등(2000)의 분석에 따르면 방송 지역에서는 남녀 모두 성 상대 수가 줄고 콘돔 사용이 늘었으며, 그 효과는 자기 위험 인식, 자기효능감, 대인 대화, 그리고 주요 인물과의 동일시와 역할 모델링을 거쳐 나타났습니다. 다른 전국 캠페인의 영향을 걷어 낸 뒤에도 방송 지역 주민의 12~16%가 이 드라마 때문에 예방 행동을 택했다는 추정이 나왔습니다. 같은 드라마를 분석한 가족계획 연구에서는 방송 지역 기혼 여성의 피임 실천율이 10%포인트 오르는 동안 도도마에서는 11%포인트 떨어졌습니다. (동시에 이 설계는 윤리적 비용도 남겼습니다. 도도마의 청취자 약 60만 명은 그 2년 동안 드라마를 듣지 못했습니다.)
이 장르의 원조는 1970년대 멕시코 텔레비사의 PD 미겔 사비도(Miguel Sabido)입니다. 그는 스탠퍼드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의 사회학습이론 — 사람은 남이 행동하고 그 결과를 겪는 것을 보며 배운다 — 을 텔레노벨라에 옮겼습니다. 1975년 성인 문해 드라마 「벤 콘미고(Ven Conmigo, 나와 함께 가요)」가 방송된 해, 성인 문해 교실 신규 등록은 전년의 아홉 배였습니다. 한 회에 무료 문해 교재 배포처가 언급되자 다음 날 2만 5천 명이 교재를 받으러 몰려들었습니다. 반두라는 녹화본을 보고 "이론을 실천으로 옮긴 놀랍도록 창의적인 구현"이라며 감탄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 방식은 '오락-교육(entertainment-education)'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보건 캠페인에 퍼졌습니다.
미국 의학 드라마 「ER」. 카이저 가족재단의 브로디 등(2001)은 1997~2000년 정기 시청자 3,500여 명을 열 차례 무작위 전화 조사했습니다. 시청자들은 나중에 조사받을 줄 몰랐습니다. 1997년 4월 데이트 강간 피해자 장면 속에서 응급피임약 이야기가 약 20초 나온 뒤, 시청자의 응급피임 인지율은 일주일 만에 50%에서 67%로 올랐습니다. 2000년 2월 간호사 캐럴 해서웨이가 자궁경부암 십대 환자에게 HPV와의 관련을 설명한 1분도 안 되는 장면 뒤에는 HPV를 들어 본 비율이 24%에서 47%로 거의 두 배가 됐습니다. 다만 두 경우 모두 효과는 몇 주~몇 달 뒤 상당 부분 사라졌습니다. 이야기는 문을 열어 주지만, 계속 열어 두려면 반복이 필요하다는 교훈입니다. (논문은 이 연구를 '백신' 사례로 인용했지만, 실제로 다룬 것은 응급피임과 HPV 인지였습니다. HPV 백신은 2006년에야 승인됐습니다.)
논문이 소개하는 제도적 시도도 있습니다. 미국국립과학원이 2008년 말 만든 과학·엔터테인먼트 교류(Science & Entertainment Exchange)는 과학 전문가와 할리우드 작가·제작자를 연결해 오락 서사 속에 과학이 더 자주, 더 정확하게 나오도록 돕습니다. 이 기구가 밝힌 자문 건수는 2014년 800여 건에서 지금은 4,000건을 넘었습니다. 콜럼비아대 바이러스학자 이언 립킨이 가상의 바이러스(MEV-1)를 설계해 준 영화 「컨테이전」(2011), 물리학자 킵 손의 계산으로 블랙홀을 그린 「인터스텔라」(2014)가 이런 협업의 대표작입니다. 「인터스텔라」 제작 과정의 렌더링 코드는 아예 학술지 『고전·양자 중력』에 실린 논문(2015)이 됐습니다. 한국에서도 영화 「더 문」(2023)이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의 자문을 기획 단계부터 받았습니다. 김용화 감독은 "과학적 오류를 범하고 싶진 않아서 자문을 계속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위험 — 이야기는 증거를 바꿔 끼운다
반대편도 있습니다. 서사는 과학이나 과학자에 대한 오정보와 부정확성을 영속시킬 수 있습니다(Barriga 외 2010). 그리고 서사는 논리·과학적 소통과 같은 진리 기준을 적용받지 않으므로 쉽게 반박되지 않습니다. 논문은 여기서 가장 섬뜩한 문장을 남깁니다.
받아들여진 서사는 너무나 신뢰받아서, 개인은 증거가 서사를 반박하도록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증거가 서사에 맞게 변형된다.
기후변화 보도의 이슈 주기를 분석한 매코마스와 섀너핸(1999)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이 문장을 코로나19 시기에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백신 맞고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이미 받아들인 사람에게 이상반응 통계는 '정부가 숨기는 숫자'로 다시 해석됩니다. 증거가 이야기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증거를 고칩니다.
사회적 논쟁이 뜨거운 과학 주제에서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유혹을 느낍니다. 오정보에 맞서고 대중이 과학을 받아들이게 하려고, 서사의 은밀한 설득력에 기대고 싶어지는 것이죠. 그러나 논문은 그런 사용이 고유한 윤리적 고려를 불러온다고 말하며, 2012년 달스트롬과 호가 제시한 세 가지 질문을 소개합니다. 이 논문의 심장부입니다.
질문 1 — 목표는 설득인가, 이해인가?
이 두 목표는 사회 속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대비되는 두 역할이고, 대체로 경쟁하는 두 모델 중 하나와 짝을 이룹니다.
모델
대중의 과학 이해 (PUS)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 참여 (PEST)
논쟁을 보는 눈
과학 이해의 결핍(deficit)이 원인
과학을 사회적 가치와 맞추는 필요하고 유익한 과정
커뮤니케이션의 역할
대중을 교육해 결핍을 메우고, 논쟁을 미리 정해진 결론으로 줄인다
더 넓은 청중을 참여시키고 토론에 과학이 포함되게 한다 — 어느 쪽을 지지하는 데 쓰이든
서사의 주인공
'옳은' 선택을 하고 보상받는 인물
여러 선택지를 능동적으로 저울질하는 인물
추구하는 가치
바람직한 결과에 대한 합의
스스로 선택하는 개인의 자율성
달스트롬은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자율성이 흔히 옹호되지만, 사회적 이익이 개인의 선택을 능가할 만큼 큰 맥락에서는 설득이 적절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드는 서사는 상황에 맞는 목표에 신중하게 맞춰야 한다." 홍역 접종률이 집단면역선 아래로 떨어진 지역에서의 백신 캠페인과, 동네 소각장 입지를 정하는 주민 공론화는 다른 목표를 요구합니다.
질문 2 — 어디까지 정확해야 하는가?
서사에는 여러 층의 정확성이 있고, 목적에 따라 지켜야 할 층과 느슨하게 둬도 될 층이 다릅니다. 논문은 두 층을 특히 강조합니다.
외부 현실성(external realism) — 서사의 요소가 실제 세계에 비춰 정확한가. 논문의 예가 사랑스럽습니다.
곡물을 에탄올로 바꾸는 과정을 설명하는 서사는 효모를 적당한 온도가 될 때까지 설탕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까다로운 인물로 의인화할 수 있다. 이런 인과관계는 외부 현실성이 낮다. 그러나 공정 자체의 투입물과 요구 조건은 높은 외부 현실성을 유지하면서, 과정을 이해하기 쉽고 아마 기억에 남는 방식으로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
효모는 '까다롭지' 않습니다. 효모에게는 마음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효모가 설탕을 먹고(투입물), 적정 온도에서(요구 조건),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를 내놓는다는(산출물) 것은 정확합니다. 무엇을 꾸미고 무엇을 지킬지를 의식적으로 고르는 것 — 그것이 질문 2의 핵심입니다. 논문은 외부 현실성이 높아야 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요소들을 나열합니다. 인물의 유형, 인물의 동기와 행동, 배경, 상황, 사건, 절차, 연대기, 시간 규모. 2012년 원논문은 여기에 '서사적 현실성'(이야기 세계 안의 일관성 — 불을 뿜는 용이 물을 뿜는 용보다 '정확해' 보이는 것)과 허구·비허구 구분까지 더해 네 층으로 정리했습니다.
대표성(representativeness) — 서사는 바깥으로 일반화될 하나의 구체적 사례를 주므로, 그 사례가 얼마나 대표적인가도 정확성의 한 층입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이야기의 중심 사례로 고르면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로 일반화될 수 없으니 표현상 부정확합니다. 2012년 원논문은 예방접종을 거른 뒤 소아마비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를 예로 듭니다. 그런데 논문은 정직하게 덧붙입니다. 비대표적 서사를 고르는 것은 미리 정한 결론으로 청중을 설득하려는 커뮤니케이터에게는 유리할 수 있다. 6장의 시뮬레이터에서 본 쏠림이 바로 그 '유리함'의 정체입니다.
질문 3 — 이야기를 써야 하는가?
마지막 질문은 가장 근본적입니다. 비전문가가 과학자의 소통 방식에 대해 논리·과학적 경로를 기대한다면, 다른 면에서 적절한 서사라도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그들의 규범적 기대를 어기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과학자가 왜 데이터 대신 감동 스토리를 들고 오지?"라는 의심이죠.
반면 논문은 반대쪽 논리도 제시합니다. 그 이슈의 다른 소통자들은 분명 서사를 쓸 것이고, 서사를 쓰지 않고 그 소통 기법의 혜택을 비전문가 쪽에 넘겨주는 것이야말로 비윤리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12년 원논문은 이 대목에서 미국 공영라디오의 과학 기자 로버트 크룰위치가 2008년 강연에서 한 말을 인용합니다. 창조론자들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과학자들은 왜 이야기로 응수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죠. 원논문은 이 대립을 결과로 행위를 판단하는 공리주의와,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는 칸트의 정언명령 사이의 긴장으로 풀어냅니다.
세 질문을 직접 적용해 보세요. 상황마다 같은 선택의 윤리적 무게가 어떻게 바뀌는지 보입니다.
8장. 논문이 남긴 세 가지 숙제 — 신뢰, 뉴미디어, 인간 척도
논문의 마지막 절은 서사 연구가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진행 중인 논의와 만날 세 지점을 제안합니다. 서사는 오래 연구됐지만(Kreiswirth 1992, 2000), 과학 맥락으로 들어온 것은 비교적 최근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숙제 1 — 신뢰 쌓기
신뢰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중심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과학 전반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강하지만, 대중과 특정 과학 분야 사이의 신뢰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Wynne 2006). 기술 수용에는 개인의 지식이나 교육 수준보다 제도적 행위자에 대한 신뢰가 더 중요하다는 조사 결과들이 있고(Priest 2001; Priest 외 2003), 기후변화에 대한 지식과 우려의 연결도 과학자에 대한 신뢰 수준에 따라 달라졌습니다(Malka 외 2009). 아는 것이 많다고 걱정하는 게 아니라, 믿는 사람이 말해 줄 때 아는 것이 걱정으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논문은 여기서 답 대신 질문을 늘어놓습니다. 서사 형식으로 전한 과학은 신뢰 인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더 큰 핍진성 때문에 신뢰를 높이는가, 이해하기 쉬운 형식에 대한 고마움 때문인가? 아니면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조작적으로 보여 신뢰를 떨어뜨리는가?
더 복잡한 것은 같은 과학 이슈 안에서 진실을 주장하며 결투하는 서사들입니다. 기후변화가 대표적입니다. 문제의 서사와 해법의 서사가 따로 놀고(Randall 2009), 당파적 서사가 과학적 이해를 대신합니다. 예일대의 댄 카한(2012)은 『네이처』에 쓴 「왜 우리는 기후변화에서 양극으로 갈리는가」에서, 기후변화 인식을 가르는 것이 과학 지식이 아니라 자기 집단의 정체성이라는 연구를 소개했습니다. 과학 소양이 높을수록 오히려 양극화가 심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사람들은 여러 서사 가운데 가장 믿을 만한 것을 어떻게 고르는가? 이미 받아들인 서사의 구조에 비춰 경쟁 서사의 신뢰성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언제 경쟁 서사를 통째로 거부하고, 언제 그 요소 일부를 받아들여 기존 서사를 조금 고치는가? 이미 받아들인 서사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숙제 2 — 뉴미디어 환경
2014년의 뉴미디어 환경은 이미 과학이 전해지는 방식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청중은 관심 있는 정보를 찾고, 고르고, 공유할 더 큰 힘을 갖게 됐습니다. 블로그 같은 새 플랫폼은 사실과 의견을 섞으며 둘을 구분할 필요도 별로 느끼지 않습니다(Brossard 2013). 인터넷이 교육 수준이 다른 집단 사이의 과학 지식 격차를 줄이고 있을지 모르지만, 과학 정보를 둘러싼 메타콘텐츠 — 댓글, 페이스북 '좋아요', 트위터 언급 — 가 과학 정보 자체의 질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는 연구도 나왔습니다. 위스콘신대 연구팀의 2013년 '고약한 효과(nasty effect)' 연구는 나노기술 기사에 무례한 댓글이 달리면 같은 기사를 읽고도 위험 인식이 더 양극화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과학 서사는 이 환경에서 다른 형식보다 더 위로 떠오를까? 논문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의 조나 버거와 캐서린 밀크먼(2012)의 연구를 단서로 듭니다. 2008년 8월 30일부터 11월 30일까지 뉴욕타임스 홈페이지에 오른 기사 6,956건을 15분마다 추적해 '가장 많이 이메일로 공유된 기사' 목록에 오른 기사의 특징을 분석한 연구입니다. 논문은 이를 "흥미롭고, 실용적이고, 놀랍고, 감정 반응을 일으키는" 콘텐츠가 공유됐다고 요약하는데, 원 논문을 보면 핵심은 각성도 높은 감정이었습니다(흥미·놀라움·실용성은 주로 통제 변수였습니다). 기사가 불러일으키는 분노가 1 표준편차 늘면 목록에 오를 확률(오즈)이 34%, 경외감(awe)이 1 표준편차 늘면 30% 올랐습니다. 분노 효과는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머리기사 자리에 2.9시간을 더 걸어 두는 것과 맞먹었습니다. 반대로 슬픔처럼 각성도가 낮은 감정은 공유를 줄였습니다. 감정을 일으키는 데 서사만큼 능한 형식은 없으니, 논문의 추론 — 정보 폭발 속에서 주의를 얻으려는 경쟁이 심해질수록 서사가 더 자주 동원될 것 — 은 타당해 보입니다. 다만 이 데이터가 말해 주는 것은 '서사가 이긴다'보다 '감정이 이긴다'에 가깝다는 점을 기억해 둡시다. 9장에서 다시 만납니다.
세 번째 숙제가 가장 독창적입니다. 인간이 진화해 온 지각의 척도 때문에 결코 직접 경험할 수 없는 현상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체화된 인지(grounded cognition) 연구는 인간의 인지 과정이 주변 환경과의 실용적 상호작용을 위해 진화했으므로 이 '인간 척도'에 맞춘 이해에 치우쳐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과학은 일상적으로 인간 척도에서 한참 먼 과정과 현상을 다룹니다. 논문의 표현을 빌리면, 정확한 값과 설명은 기후변화처럼 거대한 것, ppb(10억분의 1)처럼 작은 것, 1만 년처럼 먼 것에 대한 직관적 감각을 주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이해하려 할 때 청중은 인간 척도의 경험에서 무언가를 가져와 경험 가능한 범위 너머로 정신적으로 외삽(extrapolate)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얻은 막연한 인식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합니다. 불행히도 연구들은 그 인식이 인간 척도에서 멀어질수록 부정확해진다고 말합니다.
위험 확률의 분모. 인간 사회의 '그럴듯한' 집단 크기에 가까운 작은 분모(예: 125명 중 x명)를 쓰면, 정상적인 인간 집단 크기보다 큰 분모(10만 명 중 x명)를 쓸 때보다 더 쉽게 이해되고 메시지 요인에 덜 휘둘린다(Garcia-Retamero & Galesic 2011, 참가자 98명). 특히 수리 능력이 낮은 사람들은 분모가 크면 분모를 무시하거나 잘못 기억했습니다. 연구자들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위험 인식의 문제는 인지 편향 때문이 아니라 부적절한 제시 형식 때문에 생긴다.
해석 수준 이론(construal level theory). 심리적 거리가 먼 사건 — 그래서 즉각적인 인간 척도에서 먼 사건 — 은 가까운 사건보다 더 추상적으로 지각된다(Trope, Liberman & Wakslak 2007). 50년 뒤의 해수면 상승은 내일의 장마보다 '개념'으로 다가옵니다.
흔히 쓰는 처방은 비유입니다. 미국 국가나노기술계획은 나노기술을 "개미 몸길이의 백만분의 일보다 작은 것을 다루는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논문은 이 비유의 함정을 짚습니다. 비유는 의도하지 않은 연상을 끌어오거나, 같은 문제를 새 개념으로 다시 포장할 뿐일 수 있다. 개미는 경험할 수 있으니 떠올리기 쉽지만, 개미를 백만 조각으로 나누는 것을 상상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그래서 논문은 서사를 또 하나의 유망한 도구로 제안합니다. 서사는 특정한 인간의 관점에서 현실의 어떤 측면을 정신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므로, 현상을 인간 척도로 포장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논문은 이 절을 이렇게 맺습니다. "아직 이 가능성을 탐구한 실증 연구는 없다."
아래 변환기는 같은 양을 숫자 → 비유 → 이야기로 세 번 번역합니다. 비유가 '개미를 쪼개는' 대신 사람을 그 세계 속에 세우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보세요.
9장. 10년 뒤의 채점표 — 2014년 이후 연구는 무엇을 고쳐 썼나
2014년 논문은 리뷰였고, 리뷰의 운명은 다음 10년의 연구가 정합니다. 논문의 주장들을 하나씩 채점해 보면 이렇습니다.
2014년의 주장
2015~2026년의 증거
판정
서사는 이해·기억에 유리하다
마 등(2021) 메타분석, 33,078명: 기억 g = 0.72, 이해 g = 0.48
유지 — '두 배'는 과장, '중간~큰 이점'은 사실
서사는 본질적으로 설득적이다
브래독 & 딜라드(2016): 믿음 r = .17, 태도 .19, 의도 .17, 행동 .23. 셴 등(2015, 9,330명): r = .063, 인쇄 서사는 유의하지 않음
유지 — 그러나 효과는 '작다'
운송이 반론을 줄인다
반 라에르 등(2014): 운송 → 비판적 사고 ρ = −.20. 래트클리프 & 순(2020): 서사가 저항을 줄임 d = −0.21
유지
서사는 통계보다 강하다
제브레그스 등(2015): 믿음·태도는 통계가, 행동 의도는 서사가 우세. 프렐링 등(2020, 61편): 감정적 몰입이 높을 때만 일화가 우세
조건부 — '언제나'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암묵적) 이야기를 더하면 낫다
크라우스 & 러커(2020): 약한 사실에는 이야기가 도움, 강한 사실에는 이야기가 해가 됨
수정 — 강한 증거엔 이야기가 짐이 될 수 있다
서사가 오정보를 바로잡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상갈랑 등(2019): 감정적 결말의 서사 교정이 효과적. 에커 등(2020, 사전등록 2,279명): 서사 교정이 일반 교정보다 낫지 않음. 오쿠하라 등(2025): 16개 비교 중 4개만 서사 우세
약함 —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
뉴미디어에서 서사가 더 퍼질 것
보스기 등(2018): 거짓 뉴스는 리트윗될 확률 70% 높고, 진실이 1,500명에 닿는 데 6배 걸림 — 그러나 측정한 것은 서사 구조가 아니라 새로움과 감정
미검증 — '감정이 퍼진다'는 확인, '서사가 퍼진다'는 아직
서사는 인간 척도 너머를 전할 수 있다
심원한 시간·우주·나노 척도에서 서사 대 비서사를 비교한 통제 실험은 찾기 어렵다. 기후 소설 실험(슈나이더메이어슨 등 2020)의 효과는 한 달 뒤 사라짐
여전히 빈칸
작지만 진짜인 효과
가장 중요한 수정은 효과의 크기입니다. 서사 설득 메타분석들이 보고한 상관계수 r = .06~.23은 심리학 관례로 '작은' 효과입니다. 큰 효과는 한 군데에만 있었습니다.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 정도(운송)가 감정 반응을 예측하는 경로(ρ = .57)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한 문장은 이것입니다. "이야기는 사람을 강하게 끌어들이고, 그 끌림은 사람을 약하게 움직인다." 작다고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수백만 명에게 닿는 캠페인에서는 작은 효과도 큰 숫자가 됩니다. 다만 '이야기만 잘 쓰면 된다'는 기대는 접어야 합니다.
강한 사실에는 이야기가 짐이 된다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크라우스와 러커(2020)의 실험은 과학 커뮤니케이터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가상의 휴대폰을 광고하면서 사실의 강도를 바꿨습니다. 강한 사실은 "9미터(30피트) 높이에서 떨어져도 멀쩡하다", 약한 사실은 "90센티미터(3피트)에서 떨어져도 멀쩡하다"였습니다. 같은 사실에 이야기를 입히자, 약한 사실은 설득력이 올라갔고 강한 사실은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연구자들의 설명은 이야기가 정보를 한쪽으로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꼼꼼히 처리하는 정도 자체를 줄인다는 것입니다. 꼼꼼히 따질수록 유리한 강한 사실에는 손해고, 따져 보면 별것 없는 약한 사실에는 이득입니다.
이 결과는 불편한 함의를 품고 있습니다. 과학은 대개 강한 사실을 가진 쪽입니다. 반면 오정보는 대개 약한 사실을 가진 쪽이고, 그래서 이야기에서 더 많은 이득을 봅니다. 4장의 용량 모델과 함께 읽으면 처방이 나옵니다. 강한 사실을 가졌다면 이야기로 사실을 덮지 말고, 이야기가 사실을 실어 나르게 하라. 사실이 이야기의 인과 사슬 안에서 다음 사건의 원인이 되게 하라.
인용도 이야기를 따라간다 — 과학자끼리의 서사
서사의 힘이 비전문가에게만 통할까요? 워싱턴대의 힐리어, 켈리, 클링어(2016)는 19개 학술지에 2009~2010년 실린 기후과학 논문 초록 732편의 '서사성'을 크라우드소싱으로 평가했습니다. 배경 묘사, 서술 시점, 감각적 언어, 접속어, 문장 간 연결성, 독자에 대한 호소의 여섯 지표였습니다. 접속어(ρ = 0.21)와 연결성(0.17), 감각적 언어(0.14)가 많은 초록일수록 더 많이 인용됐습니다. 다만 서사성이 설명하는 인용 변동은 약 5%에 그쳤고, 서사적인 초록이 영향력 높은 저널에 몰려 있다는 상관이 큰 몫을 했습니다. 그래도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과학자도 사람이고, "그래서"와 "그런데"로 이어진 초록이 조금 더 읽힌다. 3장의 ABT가 동료 심사의 세계에서도 작동하는 셈입니다.
달스트롬 자신의 업데이트
달스트롬도 생각을 다듬었습니다. 2018년 쇼이펠레와 함께 『PLoS 생물학』에 쓴 「과학적 스토리텔링의 역설(에서 벗어나기)」에서 그는 이렇게 진단합니다. 과학은 매혹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데 아무런 내재적 이점이 없고, 증거에 묶이지 않는 이야기꾼들과 경쟁해야 한다. 역설은 이것입니다. 과학이 지식의 큐레이터로서 신뢰를 지키면서, 동시에 '진실에 무관심한(agnostic to truth)' 형식을 어떻게 쓸 수 있는가?
2021년 PNAS에 실은 「과학적 오정보에 대한 서사적 진실」에서는 2014년 논문의 윤리적 경고를 오정보 문제로 확장했습니다. 그가 정리한 증거는 냉정합니다. 독자는 이야기에 박힌 사실 오류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사전 경고도, 제시 속도를 늦추는 것도 이를 막지 못했다. 효과가 있었던 것은 특정 거짓을 미리 짚어 주는 직접적인 '접종(inoculation)'뿐이었다. 2014년 미국 부모 1,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나이한 등의 실험에서는 홍역에 걸린 아기의 극적인 이야기를 포함한 네 가지 친백신 메시지 어느 것도 접종 의향을 높이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결론에서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오정보의 서사는 더 나은 서사로 맞설 수 있다." 그리고 미래 과제 목록을 바꿨습니다. 2014년의 '인간 척도 너머' 대신 '경외와 경이(awe and wonder)'가 들어갔습니다. 버거와 밀크먼의 데이터에서 공유를 30% 끌어올린 바로 그 감정입니다.
이 대목이 이야기의 윤리를 생각할 때 가장 실용적인 지점일지 모릅니다. 분노는 공유를 34% 끌어올리지만, 분노를 연료로 쓰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7장의 세 질문을 모두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경외감은 30%를 끌어올리면서도 사실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우주의 크기, 세포 안의 분자 기계, 1만 년을 버티는 처분장 설계 — 정확할수록 더 경이로운 이야기가 과학에는 넘칩니다.
이제 직접 판단해 보세요. 전하려는 메시지의 조건을 고르면, 2014년 이후의 증거가 '이야기'와 '사실' 중 어느 쪽을 앞세울지 답합니다.
2014년 논문의 세계에서 이야기를 쓰는 주체는 사람이었습니다. 과학자, 기자, PD, 드라마 작가. 그들은 비싸고 느렸고, 한 번에 하나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2026년의 세계에서는 대화형 AI가 수만 명에게 각자에게 맞춘 이야기를 몇 초 만에 씁니다. 달스트롬의 세 가지 윤리 질문은 이제 과학 커뮤니케이터만의 질문이 아닙니다. AI 설계자의 질문이 됐습니다. 그리고 지난 2년의 대규모 실험들은 놀라운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발견 1 — AI가 사람을 가장 잘 설득하는 법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2024 · Science코스텔로, 페니쿡, 랜드. 음모론을 믿는 2,190명이 GPT-4 터보와 세 차례 맞춤형 대화를 나눴다. 음모론 믿음이 약 20% 줄었고 두 달 뒤에도 줄어든 채였다. 효과는 대화에서 다루지 않은 다른 음모론에까지 번졌고, 믿음이 깊은 사람에게도 나타났다.
2025~2026 · 프리프린트「그저 사실들(Just the facts)」. 같은 연구팀이 2,348명으로 무엇이 효과를 만드는지 쪼갰다. AI가 설득하려 한다고 알려 줘도, 토론 형식이어도, 짧게 해도, 대화 없이 메시지 한 편만 줘도 효과는 유지됐다(8개 조건 중 7개). 효과가 사라진 유일한 조건은 'AI에게 사실 없이 설득하라'고 지시했을 때였다.
2025 · Science해컨버그 등, 「대화형 AI를 통한 정치적 설득의 지렛대」. 영국인 76,977명, 언어 모델 19개, 이슈 707개, 사실 확인한 주장 466,769개. 프롬프트 전략 8가지를 비교했다 — 정보 제시, 심층 유세, 스토리텔링('개인적 경험을 나누고 설득력 있는 서사를 만들기'), 규범, 도덕적 재구성, 토론 등. 가장 설득력 있었던 것은 '정보 제시'로 기본 프롬프트보다 27% 더 설득했다. 정보 밀도(주장의 개수)가 조건 간 설득력 차이의 44%를 설명했다.
같은 실험의 그림자설득력을 끌어올린 바로 그 장치들이 정확도를 떨어뜨렸다. 정보 제시 프롬프트에서 GPT-4o의 주장 정확도는 62%(다른 조건 78%), GPT-4.5는 56%(70%)였다. 더 많은 사실을 쏟아내라고 하자, 모델은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처럼 쏟아냈다.
이 결과를 2014년 논문 옆에 놓으면 묘한 대칭이 보입니다. 사람에게 사람이 말할 때 서사는 작지만 일관된 이점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지치지 않고, 상대의 반론 하나하나에 맞춤 근거를 끝없이 내놓을 수 있는 대화 상대가 등장하자, 이야기보다 사실의 밀도가 이겼습니다. 크라우스와 러커의 '강한 사실에는 이야기가 짐'이라는 결과가 극단까지 밀린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밀도는 정확성과 맞바꿔졌습니다. 2014년 논문이 서사에 대해 경고한 '정당화 없이 믿게 만드는 힘'이, 2025년에는 사실처럼 보이는 문장의 양에서 나온 것입니다.
발견 2 — 기계가 쓴 이야기도 사람을 운송한다, 꼬리표가 붙기 전까지는
연구
무엇을 했나
발견
추 & 류 (2024, J Commun)
사전등록 실험 3개. GPT-4가 쓴 이야기와 사람이 쓴 이야기의 운송·설득 비교
AI 이야기가 사람 이야기와 비슷하게 운송하고 반론은 더 적었다. 그러나 'AI 생성' 꼬리표를 붙이면 실제 저자와 무관하게 운송이 줄고 반론이 늘었다
카린샥 등 (2023, CSCW)
GPT-3가 쓴 코로나19 백신 메시지 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메시지
AI 메시지가 더 효과적이고 강하다고 평가됐다. 그러나 AI가 썼다고 밝히면 덜 좋아했다
살비 등 (2025, Nat Hum Behav)
사전등록 토론 900건. GPT-4 대 사람
상대의 인구통계 정보로 개인화한 GPT-4가 사람을 이긴 비율이 64.4%(동점 제외)
바이 등 (2025, Nat Commun)
4,829명, 정책 이슈 설득
LLM 메시지는 일반인의 메시지만큼 설득했고, 더 사실적·논리적이라고 지각됐다. 사람의 메시지는 더 독창적이라고 지각됐다
마루시치 등 (2026, 프리프린트)
AI의 판단을 사람이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과제에서 '서사형 설명' 제공
서사형 설명은 AI가 맞든 틀리든 AI에 대한 의존을 높였다. 설득력 있는 서사일수록 맞는 판단과 틀린 판단을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마지막 줄이 2014년 논문과 가장 정확히 겹칩니다. 서사는 결론을 필연처럼 보이게 하고 반론을 재웁니다. 그 서사가 AI의 판단을 '설명'하는 데 쓰이면, 사람은 AI가 틀렸을 때도 그 설명에 운송됩니다. 설명 가능한 AI(XAI)가 흔히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목표로 삼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은 꽤 근본적인 경고입니다. 잘 이해되는 설명과 옳은 설명은 다르다. 브루너의 '참'과 '삶과 닮음'의 구별이 40년 뒤 AI 설명의 설계 원칙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세 가지 윤리 질문, 2026년판
달스트롬과 호의 세 질문을 AI 시대로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설득인가, 이해인가 — 그리고 누가 정하는가? 사람 커뮤니케이터는 캠페인마다 목표를 정했습니다. AI는 시스템 프롬프트 한 줄로 수백만 번의 대화 목표를 정합니다. "사용자가 백신을 맞도록 설득하라"와 "사용자가 백신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도록 도우라"는 다른 제품입니다. 그 한 줄은 공개되는가?
어디까지 정확해야 하는가 — 그리고 누가 검증하는가? 해컨버그 실험이 보여 준 '설득력과 정확도의 맞교환'은 질문 2를 공학 문제로 만듭니다. 이야기 속 효모는 까다로워도 되지만, 효모가 먹는 것이 설탕이라는 사실은 틀리면 안 됩니다. 사람 작가는 그 경계를 의식하며 썼습니다. 모델은 그 경계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외부 현실성을 지켜야 할 층을 명시하고 그 층을 사실 확인하는 단계가 생성 파이프라인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야기를 써야 하는가 — 그리고 썼다고 밝히는가? 2014년의 논리는 "반대편이 이야기를 쓰는데 침묵하면 그 힘을 넘겨주는 것"이었습니다. 2026년에는 반대편의 이야기를 AI가 무한히 찍어 낼 수 있으므로, 이 논리는 과학 쪽도 AI 서사를 써야 한다는 압력이 됩니다. 그런데 추와 류, 카린샥의 결과는 'AI가 썼다'고 밝히면 효과가 준다는 것입니다. 밝히면 약해지고, 숨기면 신뢰를 건다. 2014년 논문이 리액턴스에 대해 말한 딜레마 — 설득 의도를 감추고 싶은 유혹 — 가 그대로 'AI 표시'의 딜레마가 됐습니다. 코어닷투데이의 판단은 분명합니다. 숨긴 사실이 드러났을 때 잃는 것은 캠페인 하나가 아니라 과학 커뮤니케이션 전체의 신뢰입니다.
한국의 2026년 — 유튜브가 교실이 된 나라
한국에서 이 질문들은 더 구체적입니다. 앞서 본 대로 청소년의 과학 정보 1순위는 유튜브(48.9%)입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가 이끄는 '안될과학' 채널의 구독자는 2026년 초 약 136만 명으로, 웬만한 과학 잡지의 독자를 훌쩍 넘습니다. 이 채널들이 성공한 이유를 2014년 논문의 언어로 말하면 정확히 이렇습니다. 인물화(진행자라는 고정된 인물), 인과("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시간(발견의 역사를 따라가는 구성). 그리고 짧은 영상 플랫폼에서는 '이야기 템플릿 흉내내기'가 과학 영상의 참여를 예측하는 요인으로 나타났습니다(번퀸 2025, 과학 영상 1,025편 분석).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5초짜리 밈 템플릿으로 압축됐을 뿐입니다.
같은 시기 짧은 영상 시청과 주의력·억제 통제의 상관(71편 메타분석, r = −.34~−.41)을 보고한 연구도 나왔습니다. 상관일 뿐이고 과학 학습에 대한 연구도 아니지만, 운송에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짧은 영상이 '깊은 운송'을 허락하는 형식인지는 열린 질문입니다. 그리고 짧은 과학 영상이 실제로 이해를 높인다는 강한 실험적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생성 AI가 이 생태계에 들어오면서 생기는 일은 둘입니다. 하나는 좋은 소식입니다. 4장의 항생제 이야기 같은 정확한 서사를 누구나 빨리 초안 잡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나쁜 소식입니다. 거짓 서사도 똑같이 빨리, 더 많이 만들어집니다. 2014년에 달스트롬이 걱정한 "증거가 서사에 맞게 변형되는" 현상이, 이제는 증거처럼 보이는 문장들이 서사에 맞게 생성되는 현상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11장. 실전 점검표 — 과학자·기자·기술 기업을 위한 열 가지
논문과 그 뒤 10년의 연구를 실무 문장으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① 맥락 구분지금 데이터를 모으는 중인가, 전하는 중인가? 앞이라면 일화를 경계하고, 뒤라면 일화를 설계하라. 두 규칙을 섞지 마라.
② 목표 선언설득인가 이해인가를 먼저 적어라. 사회적 이익이 개인의 선택을 넘어설 만큼 큰가? 아니라면 '이해'가 기본값이다.
③ 세 기둥인과·시간·인물을 점검하라. 가장 먼저 고칠 것은 접속어다. '그리고'를 '그런데'와 '그래서'로 바꿀 수 있는 곳을 찾아라(ABT).
④ 사실을 사슬 안에핵심 사실이 다음 사건의 원인이 되게 배치하라. 이야기 옆의 '참고 상자'는 잘 읽히지 않는다(용량 모델, 인과 위치 46% 대 29%).
⑤ 층별 정확성무엇을 꾸미고 무엇을 지킬지 목록으로 정하라. 효모는 까다로워도 되지만 설탕과 온도는 정확해야 한다. 지켜야 할 층은 별도로 사실 확인하라.
⑥ 대표성이야기의 중심 사례가 가장 흔한 경우인가? 최악의 사례를 골랐다면 그 사실을 본문에 밝히고, 통계를 아이콘 배열처럼 '보이는' 형식으로 함께 제시하라.
⑦ 증거의 강도사실이 강하면 이야기로 덮지 말고, 이야기가 사실을 실어 나르게 하라. 생각·태도를 바꾸려면 통계를, 행동을 끌어내려면 서사를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⑧ 척도 번역10만 명당, ppb, 1만 년 같은 숫자는 그럴듯한 집단 크기와 한 사람의 시점으로 번역하라. 그리고 원래 숫자를 지우지 마라.
⑨ 감정의 선택분노는 퍼지지만 신뢰를 태운다. 경외는 퍼지면서 사실과 충돌하지 않는다. 과학이 가진 가장 큰 이야기 자산은 '정확할수록 더 놀라운' 사실들이다.
⑩ 투명성발신자, 목적, AI 사용 여부를 밝혀라. 효과가 조금 줄 수 있지만, 들킨 뒤 잃는 신뢰는 메시지 하나보다 크다.
기술 블로그와 제품 문서에 적용하면
코어닷투데이 같은 기술 기업에게도 이 논문은 실무서입니다. 장애 회고는 "새벽 세 시, 결제 API의 응답 시간이 40배로 뛰었다"로 시작할 때 읽힙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대표적인 장애였는지, 원인 분석의 각 단계(절차·연대기)가 정확한지는 이야기의 재미와 별개로 지켜야 할 층입니다. 모델 벤치마크 발표는 "우리 모델이 1등"이라는 이야기를 원하지만, 강한 사실(재현 가능한 수치, 공개된 평가 코드)을 가졌다면 이야기로 덮지 말고 숫자를 촘촘히 보여 주는 편이 낫습니다. 고객 사례 글은 '최선의 고객'을 고르고 싶은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7장의 표현대로 그것은 표현상 부정확합니다.
나가며 — 일화의 복수는 무엇인가
달스트롬의 논문을 다시 펼쳐 보면, 그가 결국 싸운 상대는 이야기의 적이 아니라 이야기에 대한 순진함이었습니다. 한쪽에는 "과학은 데이터로 말해야지 이야기는 사이비나 하는 것"이라는 순진함이 있고, 다른 쪽에는 "이야기만 잘하면 사람들이 과학을 믿을 것"이라는 순진함이 있습니다. 논문은 두 순진함을 모두 거절합니다. 이야기는 강력하다, 그래서 위험하다, 그래서 책임 있게 써야 한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논증의 뼈대는 살아남았습니다. 서사는 더 잘 기억되고, 반론을 재우며, 사람들은 여전히 — 아니, 더욱 — 이야기로 과학을 배웁니다. 수정된 것은 크기와 조건입니다. 효과는 작고, 조건에 따라 뒤집히며, 강한 사실 앞에서는 이야기가 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새로 생긴 것이 있습니다. 지치지 않는 기계 이야기꾼, 그리고 그 기계가 이야기보다 사실의 밀도로 더 잘 설득한다는 발견, 그 밀도가 정확성을 갉아먹는다는 그림자.
울핑거의 원래 경구로 돌아가 봅시다. "일화의 복수는 데이터다." 일화를 체계적으로 모으면 데이터가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달스트롬의 경구는 "일화의 복수는 매력적인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다." 2026년의 경구를 하나 더 보탠다면 이렇게 쓰고 싶습니다. "일화의 복수는 이제 무한하다. 그러니 그중 무엇이 참인지 확인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다." 이야기가 공짜가 된 시대에, 희소한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검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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