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수학자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해질 것이다 — AI가 아이디어를 쏟아낼 때, '이해'는 누가 하는가
2026년 9월 24일, 테런스 타오의 블로그에 암호학자 아밋 사하이의 짧은 글이 실렸습니다. 제목은 「수학자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해질 것이다」. AI가 사람이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아름다운 아이디어를 내놓기 시작한 지금, 수학자들이 '이해하는 일'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인류에 대한 책임을 내려놓는 일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특집은 그 글을 뼈대로, 1970년대 서스턴이 한 분야를 '청소해 버린' 이야기부터 페렐만의 68쪽을 세 팀이 수백 쪽으로 풀어낸 일, 14년째 아무도 합의하지 못한 모치즈키의 증명까지 '증명과 이해 사이의 시차'를 따라갑니다. '정리는 모델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문장을 암호학과 공학 사고로 풀어 보고, AI가 설계한 1테라와트 핵융합 발전소라는 사고실험을 공청회 퀴즈로 직접 겪어 봅니다. 사람이 끼면 오히려 결과가 나빠진다는 실험 106개의 메타분석, 2차 세계대전의 수학자 동원에서 찾은 '지적 예비군'의 선례, 그리고 일자리를 걱정하는 젊은 연구자들의 반론까지 — 인터랙티브 6개와 웹툰 12장으로 함께 읽어 보세요.
학부생 시절, 몇몇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들은 최상위권 학생들이 새로운 수학 개념을 이해하는 속도가 자기들에게는 너무 빠르다고 느꼈다. 그들도 그 아이디어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다만 훨씬 오래 걸렸을 뿐이다. 결국 그들 거의 모두가 연구 수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다른 일을 찾아 떠났다. 지난 며칠 동안 나는 그 학생들 생각을 많이 했다.
쓴 사람은 UCLA의 암호학자 아밋 사하이(Amit Sahai) 입니다. 2026년 9월 24일, 필즈상 수상자 테런스 타오의 블로그에 손님 글로 실린 「We're gonna need a lot more mathematicians(수학자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해질 것이다)」의 첫 문단이죠.
연구 수학 공동체는 대체로, 그런 기분을 거의 느껴 본 적 없거나 느꼈더라도 노력으로 극복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운 좋게 수학 안에서 앞으로 나아갈 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겸손의 시간에 들어서고 있다. 우리 모두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되는 시간이다.
왜 하필 "지난 며칠"이었을까요? 왜 필즈상 수상자와 세계적인 암호학자가 "우리 모두가 따라가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걸까요? 그리고 그 결론이 왜 "그러니 수학자가 필요 없다"가 아니라 "수학자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일까요?
이 특집은 그 질문을 따라갑니다. 원문은 A4 두 장 남짓한 짧은 글이지만, 그 짧은 문장들 뒤에는 50년 수학사의 사건들과 2026년 9월 한 달 동안 수학계를 뒤흔든 논쟁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하나씩 풀어 보겠습니다.
1. 진단
AI는 이미 계산이 아니라 아름다운 새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곧 모든 수학자가 '따라가지 못하는 기분'을 겪게 된다.
2. 유혹
"기계가 그렇게 빠르다면 우리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 옛 친구들이 내린 결론을 공동체 전체가 내릴 위험.
3. 책임
이해하는 일을 포기하는 것은 인류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다. 개인은 떠날 수 있지만, 책임은 공동체의 것이다.
4. 처방
고생은 나눌 수 있다. 연구 그룹들이 한 학기, 1년씩 AI의 도움을 받아 AI가 만든 아이디어 하나를 함께 이해하는 데 매달려야 한다.
5. 이유
정리는 모델 안에서만 참이다. AI가 설계한 1테라와트 핵융합 발전소를 승인하려면, 그 모델을 이해하는 인간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6. 결론
수학자는 인류가 불러낼 수 있는 '배치 가능한 지적 예비군'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1부. 이 글은 어디서 나왔나 — 2026년 9월, 수학계의 가장 긴 한 달
88시간, 1만 개의 에이전트
사하이가 말한 "지난 며칠"을 이해하려면 9월 초로 돌아가야 합니다.
9월 8일, OpenAI는 1만 개가 넘는 AI 에이전트를 88시간 동안 돌려, 외력 항이 있는 3차원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에서 매끄러운 해가 유한 시간 안에 폭발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증명은 166쪽이었고, 증명 보조기 Lean으로 형식 검증까지 마쳤다고 했습니다. 클레이 연구소 밀레니엄 문제의 공식 진술 중 한 갈래에 해당하는 결과입니다.
문제는 그 직전에 있었습니다. 트리스탄 버크마스터와 레벤트 알페게라는 두 수학자가 같은 계열의 문제를 1년 가까이 파고 있었고, 8월 중순에 이미 오일러 방정식에 대한 결과를 얻어 Lean 검증까지 끝낸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발표를 미루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쓴, 읽을 수 있는 논문" 을 먼저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타오는 9월 7일 이들의 결과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논증은 예상대로 AI의 도움을 크게 받았지만, 저자들은 지난 몇 주 동안 그들 스스로 "수학 역사상 본 것 중 최악의 원고"라고 부른 것을 훨씬 읽기 쉬운 전문가 수준의 글로 다시 쓰는 작업을 해 왔다. (…) 불행히도 외부 사정 때문에 그들은 예비 논문을 완전히 소화하고 다듬기 전에 공개해야 했다.
평소 한 달에 몇 편 올라오던 타오의 블로그가 9월에만 35편의 글을 실었습니다. 대부분은 다른 수학자들의 기고였습니다. 필즈상 수상자 25명의 선언, 서명하지 않은 가워스의 반론, 3Blue1Brown의 그랜트 샌더슨, 포션 로, 헨리 콘, 브리나 크라, 마르틴 헤어러…. 사하이의 글은 이 흐름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아래 타임라인에서 흐름을 이루는 17편을 따라가 보세요.
이 가운데 사하이의 글을 읽기 전에 꼭 기억해 둘 문장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9월 13일 브리나 크라의 글입니다. 자기 분야의 오랜 난제인 니바 추측이 그 주에 AI에 풀린 직후였습니다.
기계는 수학 공동체가 읽는 속도보다, 하물며 소화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해답을 만들어 내고 있다.
다른 하나는 9월 18일 그랜트 샌더슨의 글입니다.
지금 이 순간, AI가 만든 모든 증명은 태어날 때부터 '풀리지 않은 설명 문제' 다.
쓴 사람: '불가능해 보였던' 암호의 공동 발명자
아밋 사하이는 순수 수학자가 아니라 컴퓨터과학자, 그중에서도 암호학자입니다. UCLA 컴퓨터과학과(수학과 겸임) 교수이고,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지원하는 암호화 기능 센터의 소장입니다.
그의 이름은 구별 불가능성 난독화(indistinguishability obfuscation, iO) 라는 개념과 함께 기억됩니다. 프로그램을 '읽을 수 없게' 만들되 동작은 그대로 유지하는 기술로, 오랫동안 '암호학의 성배'로 불렸습니다. 2020년 사하이는 아이ush 자인·후이지아 린과 함께 이 iO를 표준적인 가정들만으로 구성하는 데 성공했고, 이 논문은 2021년 STOC 최우수 논문상을, 사하이 자신은 2022년 미국 국립과학원 홀드 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속성 기반 암호, 함수 암호의 공동 발명자이기도 합니다.
이 이력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암호학은 "이 시스템은 안전하다"를 수학 정리로 증명하는 분야입니다. 동시에 증명된 시스템이 현실에서 뚫리는 장면을 가장 자주 보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사하이의 글에서 가장 날카로운 문장 — "정리는 모델 안에서만 존재한다" — 은 바로 이 경험에서 나옵니다. 5부에서 자세히 보겠습니다.
그리고 글 끝에는 이런 감사의 말이 붙어 있습니다.
여기 담긴 생각과 의견은 전적으로 내 것이지만, 이 글의 초안을 쓰는 데 GPT 6 Astra가 큰 도움을 주었다.
9월 초 막 공개된 OpenAI의 최신 모델입니다. AI가 만든 아이디어를 이해할 인간 공동체를 지키자는 글을 AI의 도움을 받아 썼다는 사실은 댓글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하이의 주장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그는 AI를 쓰지 말자고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AI를 이해를 돕는 도구로 쓰자고 말합니다. 이해 자체를 AI에게 넘기지만 않는다면요.
2부. "모두가 따라가지 못하는 기분" — 겸손의 시간
계산이 아니라 아이디어
사하이의 진단에서 가장 무거운 단어는 "아름다운"입니다.
내가 함께 일해 본 AI 시스템들은 이미 아름다운 새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인상적인 계산을 해내거나, 뛰어난 인간 연구자라면 이미 이해하고 있을 논증을 빠르게 수행하는 것을 훨씬 넘어선다. 그리고 우리는 아마 미래의 시스템이 만들어 낼 놀라운 아이디어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AI와 수학에 대한 표준적인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AI는 계산을 빨리 하고, 사례를 많이 확인하고, 사람이 이미 아는 증명을 재현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개념, 수학자들이 "아, 이렇게 보면 되는구나" 하고 무릎을 치는 순간은 사람의 몫이다.
2026년의 수학자들은 이 구분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타오는 올해 4월 마스토돈에 이렇게 썼습니다.
수학은 증명이 희소하던 시대에서 증명이 풍부한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수학 인프라와 문화는 아직 여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가 예로 든 것은 에르되시 문제 사이트였습니다. 예전에는 '평가 대기 중'인 해법 주장이 한두 건이었는데, GPT-5.5 이후 스무 건 가까이 쌓였다는 것입니다. 6월에는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이제는 짧고 올바른 증명보다 길고 올바른 증명을 만들기가 더 쉽다!" 올바르지만 길고, 읽기 어렵고, 왜 되는지 알 수 없는 증명들이 쌓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에르되시 문제를 AI로 푼 첫 사례는 「23살 아마추어가 ChatGPT로 60년 난제를 풀었다」에서 다뤘습니다.)
사하이의 비유가 날카로운 이유는, 이 상황을 수학계가 늘 해 온 선별의 거울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수학자라는 직업은 오랫동안 '빨리 이해하는 사람'을 걸러 내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습니다. 빠르게 따라가는 학생은 대학원에 가고, 조금 느린 학생은 다른 길을 찾았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연구 공동체는 "따라가지 못한다는 기분"을 거의 모르는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공동체 전체가 그 옛 친구들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공동체 전체가 그 친구들과 같은 결론을 내릴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가 따라가지 못한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그것을 연구 수학을 떠날 이유로 받아들일까? 내가 기억하는 그 학생들처럼? (…) 기계가 우리보다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사하이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이해하는 일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인류에 대한 책임을 심각하게 저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 각자는 다른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내가 말하는 책임은 우리 모두가 함께 지는 것이다. 세상을 바꿀 발견들을 인간이 이해하고 거기에 기여할 수 있는 미래, 의미 있는 인간의 행위 주체성이 살아 있는 미래를 만드는 책임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사하이는 옛 친구들이 떠난 것을 개인의 실패로 보지 않습니다. 댓글에서 한 독자(alexsotirov)는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그 학생들이 포기한 건 이해가 느려서가 아니라, 아무도 차분하고 명료하게 설명해 줄 인내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뒤처진 사람이 떠나는 이유는 속도 자체보다 함께 가 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하이의 처방이 "고생을 나누자"로 향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3부. 역사: 증명과 이해는 늘 따로 도착했다
"AI가 만든 증명을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문제는 새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수학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증명이 나온 날과 공동체가 그것을 이해한 날 사이에는 늘 시차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차를 어떻게 메웠는지가 그 증명의 운명을 갈랐습니다. 사하이의 제안은 이 역사에서 나온 교훈입니다.
서스턴, 한 분야를 '청소해 버린' 천재
가장 먼저 볼 이야기는 AI가 등장하기 50년 전에 일어난, 거의 섬뜩할 만큼 오늘과 닮은 사건입니다.
1970년대 초, 대학원생이던 윌리엄 서스턴은 엽층 구조(foliation)라는 분야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기하위상수학자, 동역학계 연구자, 미분기하학자들이 모두 주목하던 뜨거운 분야였습니다. 서스턴은 순식간에 극적인 정리들을 연달아 증명했습니다. 1994년, 필즈상 수상자가 된 그는 유명한 에세이 「증명과 수학의 진보에 대하여」에서 그 뒤에 일어난 일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내가 증명할 수 있는 것을 따라잡을 만큼 글을 쓸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고, 밀린 일이 쌓였다. 그러다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2년도 안 되어 그 분야에서 극적인 탈출이 시작된 것이다. 여러 수학자에게서 엽층 구조 분야에 들어가지 말라는 조언을 하거나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스턴이 그 분야를 싹 청소해 버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 대학원생들은 엽층 구조 공부를 그만두었다.
그 결과는 이랬습니다.
오늘날, 그 당시 살아 있던 엽층 구조 이론의 최전선에 근접한 것이라도 이해하는 수학자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서스턴은 분야가 지적으로 고갈되어서 사람들이 떠난 게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그가 꼽은 첫 번째 원인은 이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논문은 "독자가 특정한 배경과 통찰을 공유한다는 데 크게 기댄" 압축적인 문체로 쓰였고, 그 때문에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았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 원인은 더 뼈아픕니다.
엽층 구조를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답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찾는 것은 다른 수학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강력한 정리들의 모음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다.
한 명의 천재가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너무 압축적으로 증명을 쏟아내자 분야가 비어 버렸습니다. 이제 이 문장에서 "서스턴"을 "AI"로 바꿔 읽어 보세요. 사하이가 두려워하는 미래가 정확히 이것입니다. 서스턴은 같은 에세이에서 이런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우리는 정의, 정리, 증명의 추상적인 생산 할당량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성공의 척도는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들이 수학을 더 명료하고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가이다.
4색 정리: "사람이 확인할 수 없는 증명도 증명인가"
1976년 6월, 일리노이 대학의 케네스 아펠과 볼프강 하켄은 어떤 지도든 네 가지 색이면 이웃한 나라끼리 다른 색으로 칠할 수 있다는 100년 묵은 추측을 증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증명의 핵심은 1,834개의 배치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일이었고, 그 일을 IBM 컴퓨터가 약 1,200시간 동안 했습니다.
수학계의 반응은 복잡했습니다. 정리가 틀렸다고 생각한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불편했던 것은 아무도 증명 전체를 머릿속에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서스턴은 이 논쟁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그것은 "정리가 참이라는 앎에 더해, 증명을 인간이 이해하고 싶다는 지속적인 열망"을 반영한 것이었다고.
1997년 로버트슨·샌더스·시모어·토머스가 배치 수를 633개로 줄인 새 증명을 내놓았고, 2005년에는 조르주 곤티에가 증명 보조기 Coq로 증명 전체를 형식 검증했습니다. 이제 4색 정리가 참이라는 데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왜 네 가지면 충분한가"를 한눈에 보여 주는 설명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없습니다. 참이라는 것을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케플러 추측: 12명의 심사위원, 4년, 그리고 "99%"
1998년 토머스 헤일스는 과일 가게에서 오렌지를 쌓는 방식(면심입방 쌓기)이 공을 가장 빽빽하게 쌓는 방법이라는 400년 묵은 케플러 추측을 증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역시 방대한 컴퓨터 계산에 의존한 증명이었습니다.
『수학 연보(Annals of Mathematics)』는 12명의 심사위원단을 꾸렸습니다. 그들은 4년 동안 증명을 검토한 끝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99% 확신한다." 모든 컴퓨터 계산을 인증할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학술지는 컴퓨터가 필요 없는 부분만 2005년에 실었습니다.
헤일스는 이 1%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기계가 증명의 모든 단계를 확인하는 형식 검증 프로젝트 플라이스펙(Flyspeck) 을 시작했고, 2014년 8월 21명의 공동 연구자와 함께 완료를 발표했습니다. 사람의 이해로 확신할 수 없는 것을 기계의 검증으로 확신하게 된 사례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확신과 이해가 처음으로 확실히 갈라진 사례이기도 합니다.
와일즈: 읽는 공동체가 증명을 구했다
1993년 6월, 앤드루 와일즈는 케임브리지의 뉴턴 연구소에서 사흘간 강연하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세계가 환호했습니다.
200쪽 가까운 원고는 학술지 『인벤티오네스』로 갔고, 편집자는 이를 여섯 명의 심사위원에게 나눠 맡겼습니다. 그중 닉 카츠는 동료 뤽 일뤼지와 함께 자기 몫의 원고를 두 달 동안 한 줄씩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카츠의 질문이 증명의 핵심 단계에 구멍이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9월, 와일즈는 오류를 인정했습니다.
그 뒤 1년은 와일즈의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옛 제자 리처드 테일러가 합류했고, 1994년 9월 19일 마침내 구멍을 메우는 아이디어를 찾았습니다. 1995년 5월, 증명은 두 편의 논문(합쳐 129쪽)으로 『수학 연보』에 실렸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영웅은 와일즈만이 아닙니다. 여섯 명의 심사위원이 몇 달씩 원고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구멍이 발견됐고, 그래서 메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읽어 줄 사람들이 없었다면, 결함 있는 증명이 '해결'로 역사에 기록됐을지도 모릅니다.
페렐만: 68쪽을 세 팀이 수백 쪽으로 — 사하이 모델의 원형
사하이의 처방과 가장 가까운 역사적 선례는 푸앵카레 추측입니다.
2002년 11월부터 2003년 7월까지, 러시아의 은둔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은 arXiv에 세 편의 프리프린트를 올렸습니다. 합쳐서 68쪽. 학술지에 투고하지도 않았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지도 않았습니다. 이 짧고 압축적인 원고가 100년 묵은 푸앵카레 추측(그리고 더 일반적인 서스턴의 기하화 추측)의 증명을 담고 있다고 믿을 근거는 충분했지만, 그것을 확인하고 이해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 연구 그룹들이 짜였습니다.
팀
결과물
분량
의미
클라이너–롯 (미시간)
「페렐만 논문에 대한 노트」, 2003년부터 부분 공개, 2006년 5월 완성
216쪽
페렐만의 논증을 한 줄씩 채워 넣은 주석서
모건–톈 (컬럼비아·MIT)
클레이 연구소 단행본, 2006년 7월 arXiv 공개
493쪽
푸앵카레 추측 부분에 대한 완전한 서술
차오–주 (중국)
『아시아 수학 저널』 2006년 6월 호
328쪽
기하화 추측 전체를 다뤘으나, 공로 표현과 일부 표절 논란으로 수정본 발표
세 팀은 모두 페렐만의 논문에 있는 빈틈이 사소한 것이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2006년 8월 국제수학자대회는 페렐만에게 필즈상을 수여했고(그는 거절했습니다), 그해 12월 『사이언스』는 이 증명을 올해의 혁신으로 꼽았습니다.
68쪽이 1,000쪽 넘는 해설이 되기까지 3~4년. 이것이 공동체가 한 편의 심오한 아이디어를 소화하는 데 드는 비용입니다. 사하이가 "연구 그룹들이 한 학기나 1년씩 AI가 만든 특별한 아이디어를 이해하는 데 매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라고 할 때, 그는 바로 이런 일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주에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인간이 만든 중대한 결과에 대해서는 이미 오랜 기간 연구하는 전통이 있다." 페렐만 한 사람의 원고에 세 팀이 필요했다면, 페렐만 같은 원고가 1년에 수십 편씩 쏟아지는 세상에는 몇 팀이 필요할까요?
모치즈키: 이해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은 증명의 운명
반대 사례도 있습니다. 2012년 8월, 교토대의 모치즈키 신이치는 합쳐 600쪽 안팎에 이르는 논문 네 편을 공개하며 정수론의 핵심 난제인 abc 추측을 증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우주 간 타이히뮐러 이론(IUT)'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그 체계가 너무 새롭고, 너무 독특하고, 기존 수학과의 연결 고리가 너무 적었다는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도 저자와 그 주변의 소수를 제외하면 증명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2018년 3월, 당대 최고의 수학자 중 한 명인 페터 숄체와 야코프 스틱스가 교토로 가서 모치즈키와 닷새 동안 토론했습니다. 그들의 결론은 논문 3의 '따름정리 3.12'에 있는 구멍이 "작은 수정으로는 증명 전략을 살릴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는 것이었습니다. 모치즈키는 이를 반박했습니다.
2021년, 논문은 모치즈키가 편집장인 교토대 학술지 『PRIMS』에 실렸습니다(그는 심사 과정에서 빠졌습니다). 그러나 숄체는 서평에서 자신의 우려가 "출판본에서도 해소되지 않았다"고 썼습니다. 2024~2025년에는 인도 출신 수학자 키르티 조시가 증명을 고쳤다는 논문을 냈지만, 모치즈키와 숄체 양쪽 모두에게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3월, 도쿄에서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가토 후미하루, 요한 코멜린, 키란 케들라야 등 10여 명이 참여한 LANA 프로젝트입니다. IUT의 기반이 되는 원(遠)아벨 기하학을 Lean으로 형식화해, 사람의 판단으로 결론이 나지 않은 이 논쟁에 기계의 힘을 빌려 답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2025년 한 해에만 가마쿠라, 켈로나, 도쿄, 잔담에서 집중 캠프를 열었고, 2026년 7월 중간 보고서를 냈습니다. 결론은 이랬습니다. "아직 필요한 호환성의 증명을 재구성하지 못했다. 이 보고서는 최종 판정을 내리지 않는다."
14년. 논문은 출판됐지만, 그것이 증명인지 아닌지 수학계는 여전히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이해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은 증명의 운명입니다. 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되지 않은 증명은 아무것도 쌓아 올릴 수 없는 기초 공사로 남습니다.
리퀴드 텐서 실험: 기계와 사람이 함께 만든 이해
마지막 사례는 희망적입니다. 2020년 12월, 숄체는 자신과 더스틴 클라우젠이 만든 '응축 수학(condensed mathematics)'의 핵심 정리 하나를 Lean으로 형식화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냈습니다. 그 자신도 증명을 100%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한 코멜린이 이끄는 Lean 공동체가 응답했고, 2021년 5월 숄체가 불안해하던 핵심 정리 9.4의 검증을 끝냈습니다. 전체 형식화는 2022년 7월 14일에 완료됐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검증 결과가 아니라 숄체가 반년 뒤에 쓴 고백입니다.
반년 전 블로그에 글을 올렸을 때, 나는 이 논증이 왜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 형식화 과정은 실제로 일어나는 핵심이 실수(實數) 위의 비볼록 문제를 정수 위의 볼록 문제로 환원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지금은 누가 이 증명을 이해하느냐"는 질문에 숄체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컴퓨터가 이해하는 것 같고, 요한 코멜린도 이해한다." 농담 반 진담 반인 이 대답은 사하이가 그리는 미래의 좋은 버전을 보여 줍니다. 기계는 검증을 맡고, 사람들은 그 검증을 붙들고 씨름하면서 증명을 만든 사람보다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Lean과 형식 검증의 세계는 「Claude,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형식화하다」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아래 타임라인에서 일곱 사례의 '이해 시차'를 비교해 보세요. 가장 아래 줄이 2026년 9월에 막 시작된 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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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보여 주는 패턴
깊은 증명은 늘 '발표'와 '이해' 사이에 수년의 시차를 가졌다. 그 시차를 메운 것은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수학자가 들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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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를 메운 방법
심사위원의 정독(와일즈), 여러 팀의 해설 작업(페렐만), 형식 검증과 공동 씨름(리퀴드 텐서). 셋 다 '읽는 사람'이 충분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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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의 문제
이제 페렐만급 원고가 한 해에 한 편이 아니라 수십 편씩 나올 수 있다. 읽는 사람의 수가 그대로라면, 서스턴의 엽층 구조나 모치즈키의 IUT 같은 운명이 흔해진다.
4부. 사하이의 처방: 고생은 나눌 수 있다
"이번 학기엔 이 아이디어 하나만 판다"
진단이 암울하다면 처방은 따뜻합니다.
어려운 개념을 이해하려면 고생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행히 이 고생은 나눌 수 있다. 나는 학생들, 동료들과 함께 이것을 몇 번이고 경험하는 축복을 누렸다. 상상해 보라. 수많은 연구 그룹이 각각 지속적인 지원을 받으며, 한 학기나 1년 동안 AI 시스템이 만든 특별한 아이디어 한 묶음을 AI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을.
첫째, 고생은 없앨 수 없다. 사하이는 AI가 이해를 '쉽게' 만들어 줄 거라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이해는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재배열되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는 시간과 좌절이 필요합니다. 우리 블로그의 「AI 때문에 두 번째 뇌를 만들었다 — 이해를 위임하지 마라」에서 다룬 '생성 효과' 연구가 보여 주듯, 스스로 애써 만들어 낸 이해만이 남습니다.
둘째, 고생은 나눌 수 있다. 혼자 하면 포기하게 되는 일도 함께 하면 버틸 수 있습니다. 페렐만의 증명을 세 팀이 나눠 풀었듯이요. 옛 친구들이 떠난 것은 속도가 느려서가 아니라 혼자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셋째, AI는 이해를 돕는 도구가 된다. 사하이는 AI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AI가 만든 아이디어를 AI의 도움으로 이해하는 것. 모순처럼 들리지만, 리퀴드 텐서 실험이 정확히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몇 년간 가장 중요한 수학 작업이 될 수도 있으며, 우리는 그에 걸맞게 이를 지원하고 우선시해야 한다. 중대한 돌파구가 될 아이디어들이 쌓여 감에 따라, 이 일에는 전 세계적으로 수학적으로 성숙한 인간 연구자의 수를 크게 늘리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AI의 아이디어 생산은 모델이 좋아질 때마다 복리로 늘어납니다. 반면 사람의 이해 능력은 투입된 인원에 비례해서만 늘어납니다. 페렐만 사례처럼 아이디어 하나를 공동체가 소화하는 데 대략 몇 인년(person-year)이 든다고 가정하면, 격차가 언제 어떻게 벌어지는지 계산할 수 있습니다. 아래 시뮬레이터에서 직접 숫자를 바꿔 보세요.
시뮬레이터를 몇 번 만져 보면 한 가지가 분명해집니다. 'AI 도움 배수'만 올려서는 복리 성장을 이길 수 없습니다. 도움 배수는 1회성 곱셈이고, AI 생산은 해마다 거듭제곱으로 늘기 때문입니다.
"AI가 한 사람을 10배 유능하게 만들면, 사람은 덜 필요하지 않을까?"
사하이도 바로 이 반론을 예상했습니다.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발견의 속도가 빨라지더라도, AI 시스템이 우리 각자를 훨씬 더 유능하게 만들어 더 적은 사람으로도 이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각자는 한낱 인간일 뿐이다. 우리에게는 생물학에 기반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깊은 이해에는 시간이, 그리고 인간이 지속할 수 있는 삶의 속도가 필요하다. 한 사람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진지한 협력을 통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이 대목은 AI 도구를 써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입니다. AI는 논문을 요약하고, 개념을 설명하고, 예제를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서 개념이 '자리 잡는' 속도는 크게 빨라지지 않습니다. 잠을 자야 하고, 며칠씩 묵혀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보다가 막혀야 합니다. 이것이 사하이가 말하는 '생물학적 한계'입니다.
소프트웨어 공학의 고전 『맨먼스 미신』에서 프레드 브룩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아이를 낳는 데는 아홉 달이 걸린다. 여자를 몇 명 배정하든." 이해도 비슷합니다. 한 사람이 한 아이디어를 소화하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는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소화할 사람을 늘려 여러 아이디어를 동시에 소화하는 것뿐입니다.
5부. "정리는 모델 안에서만 존재한다"
증명이 보장하는 것, 보장하지 않는 것
사하이의 글에서 가장 철학적이고, 동시에 가장 실용적인 문장입니다.
인간의 참여가 기술적 결정을 자동으로 개선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는 AI 시스템이 더 믿을 만하게 해낼 수 있는 일, 심지어 수학적 보장을 증명하는 일까지 인간이 손으로 반복하라고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정리는 모델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보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모델을, 그 모델을 뒷받침하는 실험적 증거를, 그리고 모델의 정확도에 대한 우리의 불확실성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이 문장의 뜻은 이렇습니다. 수학 정리는 언제나 "만약 이런 가정들이 성립한다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의 형태를 띱니다. 증명은 '만약'에서 '결론'까지의 길이 올바르다는 것을 보장합니다. 그러나 '만약'이 현실에서 성립하는지는 증명이 말해 주지 않습니다.
Lean 같은 형식 검증 도구는 가장 안쪽 상자, 즉 '정리' 부분을 완벽하게 확인해 줍니다. AI가 이 부분을 사람보다 더 잘하게 된다는 데에도 사하이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가운데 상자인 '모델'이 바깥 상자인 '현실'을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모델을 이해해야 합니다.
암호학자가 이 문장을 쓴 이유
이 원리를 가장 뼈아프게 겪어 온 분야가 사하이의 전공인 암호학입니다. 두 가지 실제 사례를 보겠습니다.
사례 1: 증명한 사람이 직접 뚫다 — 럭키 서틴(2013)
인터넷 보안의 기반인 TLS 프로토콜에는 CBC라는 암호화 모드가 쓰였습니다. 2011년 영국 로열 할러웨이 대학의 케니 패터슨 연구팀은 이 방식이 안전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단, 한 가지 가정이 있었습니다. "복호화 과정이 실패의 원인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2013년 2월, 바로 그 패터슨이 동료 알파르단과 함께 '럭키 서틴(Lucky Thirteen)' 공격을 발표했습니다. 실제 TLS 구현에서는 복호화가 실패할 때 걸리는 시간이 실패 원인에 따라 아주 미세하게 달랐고, 이 시간 차이를 측정하면 암호문을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논문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의 공격은 현재의 TLS 구현이 이 마지막 가정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용한다. 따라서 우리의 공격은 [2011년 증명]의 결과와 모순되지 않는다. 대신 그 결과가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범위를 상대화한다.
정리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모델이 현실을 빠뜨렸을 뿐입니다. 이것이 "정리는 모델 안에서만 존재한다"의 교과서적인 예입니다.
사례 2: 10년의 분석이 노트북 한 대에 무너지다 — SIKE(2022)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양자 컴퓨터 시대에 대비한 차세대 암호를 수년간 공모했습니다. 그중 SIKE라는 방식은 정교한 수학(초특이 타원곡선의 동종 사상)에 기반해 최종 후보 단계까지 올라갔습니다. 2022년 7월, 벨기에의 보우터 카스트릭과 토마스 데크뤼는 평범한 컴퓨터의 코어 하나로 약 1시간 만에(논문 최종본에서는 약 10분) SIKE의 기본 보안 등급을 깨뜨렸습니다.
공격이 파고든 곳은 안전성 가정이 '무해하다'고 여겨 공개해 둔 보조 정보였습니다. 그 정보가 공격자에게 어떤 힘을 주는지, 수년간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공격의 핵심 도구는 1997년 에른스트 카니가 발표한, 암호와는 무관해 보이던 순수 수학 정리였습니다. 멀리 떨어진 수학 분야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공격이었습니다.
공학의 교훈: 자연은 속일 수 없다
같은 패턴이 공학에서도 반복됩니다.
사건
계산·설계는 맞았다
모델이 놓친 것
결과
화성 기후 궤도선 (1999)
궤도 계산 소프트웨어 각각은 정상 작동
한쪽은 파운드·초, 다른 쪽은 뉴턴·초 단위로 추력을 주고받음(4.45배 차이)
화성 대기에 너무 깊이 진입해 소실, 약 3억 2,760만 달러 손실
챌린저호 (1986)
관리진의 신뢰성 계산: 사고 확률 10만 분의 1
추운 날씨에 O-링 고무가 탄성을 잃는다는 사실. 현장 엔지니어들의 추정은 50~200분의 1
발사 73초 만에 폭발, 승무원 7명 사망
보잉 737 MAX (2018~2019)
MCAS 자동 조종 보조 장치는 설계대로 작동
받음각 센서 하나에만 의존. 그 센서가 고장 나는 경우를 조종사들이 이해하지 못함
두 번의 추락으로 346명 사망, 20개월 운항 정지
챌린저호 사고 조사 위원이었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청문회장에서 O-링 조각을 얼음물 컵에 담가 고무가 딱딱해지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복잡한 신뢰성 모델이 놓친 것을 물리를 이해하는 사람 한 명이 컵 하나로 드러낸 순간입니다. 그가 보고서 부록에 남긴 마지막 문장은 사하이의 글과 정확히 같은 곳을 가리킵니다.
성공적인 기술을 위해서는 현실이 홍보보다 우선해야 한다. 자연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6부. 1테라와트 핵융합 발전소 — 사고실험을 직접 겪어 보기
사하이의 시나리오
"정리는 모델 안에서만 존재한다"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 주기 위해 사하이는 하나의 사고실험을 제안합니다.
미래의 AI 시스템이 1테라와트급 핵융합 발전소의 완전히 새로운 설계를 제안한다고 상상해 보라. 그 시스템은 어떤 인간도 떠올리지 못한 방식으로 핵융합을 유지하고 제어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 설계는 풍부하고, 값싸고, 깨끗한 전기를 약속한다. 로봇들은 부품을 만들고 발전소를 지을 준비가 되어 있다.
사하이는 "테라와트는 정신 나간 양의 전력"이라고 씁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아래에서 기준을 바꿔 가며 비교해 보세요.
1테라와트는 현재 인류 전체가 쓰는 평균 전력의 약 28% 입니다. 한국 전체의 평균 전력 사용량과 비교하면 약 15배, 부산·울산의 고리 원전 단지(현재 가동 중인 세계 최대 원전) 130여 곳에 해당합니다. 그런 설비가 발전소 한 곳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2026년 현재 핵융합 기술의 위치를 생각하면 이 사고실험의 무게가 더 실감 납니다. 2022년 12월 미국 국립점화시설(NIF)은 2.05메가줄의 레이저를 쏘아 3.15메가줄의 핵융합 에너지를 얻어 인류 최초로 '점화'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 레이저를 쏘는 데는 벽 콘센트에서 약 300메가줄이 들었습니다. 국제 핵융합 실험로 ITER는 2024년 새 일정에서 본격적인 중수소–삼중수소 운전을 2039년으로 미뤘습니다. 인류는 아직 핵융합으로 전기를 단 1와트도 팔아 본 적이 없습니다.
새로움이 곧 위험이다
사하이가 강조하는 것은 이 설계의 새로움입니다.
우리는 한 번도 떠올려 본 적 없는, 하물며 실행해 본 적은 더더욱 없는 원리로 엄청난 에너지 흐름을 다루는 기계를 지을지 결정하게 된다. 고장이 어떻게 억제될 수 있는지, 정지할 때 이미 시스템에 저장된 에너지는 어떻게 되는지, 발전소를 이루는 소재가 예상대로 거동한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진행하기 전에 또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이 제안을 흥미롭게 만드는 바로 그 새로움 때문에, 우리는 비슷한 발전소나 실험을 수십 년 운영한 경험에서 신뢰를 물려받을 수 없다.
우리가 원자력 발전소나 비행기를 믿는 이유는 개별 설계를 모두 이해해서가 아닙니다. 비슷한 설계가 수십 년 동안 수천 번 작동해 온 운영 경험이 신뢰를 빌려주기 때문입니다. AI가 제안한 전례 없는 설계에는 빌려올 경험이 없습니다. 남는 것은 그 설계가 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해뿐입니다.
기후 모델 연구자 타피오 슈나이더가 전날(9월 23일) 같은 블로그에 쓴 글이 이 지점을 정확히 짚습니다. 예측을 빨리 확인할 수 있을 때(날씨 예보, 단백질 구조 예측)는 블랙박스 AI도 괜찮습니다. 틀리면 곧 알게 되니까요. 그러나 검증하기 전에 믿고 행동해야 하는 예측(기후 전망, 새 항공기 인증)에서는 "감사 가능한 인과 사슬"이 필요합니다. 1테라와트 발전소는 짓고 나서 확인하는 방식으로는 검증할 수 없는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당신이 공청회 위원이라면
이제 직접 해 봅시다. 승인 전 공청회에서 나올 여덟 가지 질문을 "무엇이 있어야 답할 수 있는가" 로 분류해 보세요. 여덟 개 중 넷은 원문에서 사하이가 직접 든 질문입니다.
독립적인 전문가가 있어야 하는 이유
사하이는 두 번째 각주에서 중요한 단서를 하나 덧붙입니다.
그리고 관련된 이해는 그 기술을 제안하는 조직에만 속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전문가들만이 기술적 논증을 따라갈 수 있는 공청회를 상상해 보라. 독립적인 전문성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것은 AI 시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원자력 규제, 신약 승인, 금융 파생상품 감독에서 반복되어 온 문제입니다. 규제 기관이 피규제 기업의 논리를 따라가지 못하면 규제는 형식적인 승인 도장이 됩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직전, 복잡한 파생상품의 위험 모델을 이해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 상품을 파는 쪽에 있었습니다.
AI가 만든 설계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이제 그 설계를 이해하는 쪽이 기업의 전문가조차 아니라 기업의 AI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AI가 판단하게 하면 되지 않나?"
사하이는 이 반론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이런 질문들도 AI 시스템이 다뤄야 하고, 궁극적으로 발전소를 지을지 말지도 AI가 결정해야 한다고 응답할 수도 있다. 그것은 진지한 입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결과를 낳는 결정이 어떤 인간 공동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에 기대는 미래를 받아들이라는 요구다.
나는 우리가 스스로 이해할 능력에 투자하지 않았다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런 미래에 도착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의 행위 주체성은 근본적으로 중요한 가치다.
여기서 사하이의 논점은 미묘합니다. 그는 "AI의 판단이 틀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댓글에서 조시 사마니가 날카롭게 물었듯, AI가 낯선 위험을 평가하는 데서도 사람보다 확실히 나아진다면 어떨까요? 사하이의 답은 정확성이 아니라 주체성에 있습니다. 어떤 미래로 갈지 선택하는 권리를 유지하려면, 선택지를 이해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댓글(Urb_RS)은 이 논쟁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두 가지 질문을 분리해야 한다. 우리가 그 결정을 이해하는가? 그리고 누가 그 결정을 내릴 권리를 갖는가?" 이해 없이 결정권만 가진 사람은 사실상 결정하는 게 아니라 통보받는 것입니다.
7부. 사람이 끼면 정말 더 나아질까? — 불편한 데이터
사하이가 인용한 논문
사하이의 글에서 눈에 띄는 점 하나는, 자기 주장에 불리한 증거를 먼저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참여가 기술적 결정을 자동으로 개선하지는 않는다"는 문장에 그는 2024년 『네이처 인간 행동』에 실린 논문을 링크했습니다. MIT의 미셸 바카로, 압딘 알마투크, 토머스 멀론이 쓴 「사람과 AI의 조합은 언제 유용한가」 입니다.
연구진은 2020년부터 2023년 중반까지 발표된 실험 연구 106개에서 효과 크기 370개를 모아 메타분석했습니다. 결과는 많은 사람의 직관과 어긋났습니다.
평균적으로, 사람과 AI를 합친 팀은 사람 혼자나 AI 혼자 중 더 나은 쪽보다 성과가 낮았습니다.
구체적인 예가 논문에 나옵니다. 가짜 호텔 리뷰를 판별하는 실험에서 AI 혼자는 정확도 73%, 사람 혼자는 55%였습니다. 그런데 AI의 조언을 받은 사람의 정확도는 69% 였습니다. 사람이 AI의 좋은 판단을 뒤집는 경우가 많아서, AI를 혼자 두는 것보다 오히려 나빠진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 메타분석을 자세히 보면 사하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숨어 있습니다.
첫째, 혼자서는 사람이 더 잘하는 과제에서는 조합이 사람과 AI 모두를 넘어섰습니다(g = +0.46). 사람이 그 영역을 잘 이해하고 있을 때는 AI의 조언을 언제 받아들이고 언제 무시할지 판단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AI가 더 잘하는 과제에서 사람이 끼면 성과가 크게 떨어졌습니다(g = −0.54). 이해 없이 끼어든 사람은 도움이 아니라 방해가 됩니다.
둘째, 이 실험들의 대부분은 이해가 필요 없는 짧은 판정 과제였습니다. 참가자들은 대개 몇 분 동안 사진을 분류하거나 리뷰를 판별했습니다. 한 학기, 1년씩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는 연구 그룹과는 거리가 멉니다. 연구진도 사람과 AI가 미리 역할을 나눠 협업하도록 설계된 실험은 100여 개 중 3개뿐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즉 이 논문이 보여 주는 것은 "사람은 필요 없다"가 아니라 "이해하지 못한 채 형식적으로 끼어든 사람은 도움이 안 된다" 입니다. 사하이가 말하는 사람의 역할은 AI의 결론에 승인 도장을 찍는 것이 아닙니다. 모델과 가정과 불확실성을 이해해서, AI가 묻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켄타우로스 체스의 교훈
체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997년 딥블루에게 진 가리 카스파로프는 이듬해 '어드밴스드 체스'라는 형식을 제안했습니다. 사람과 컴퓨터가 한 팀이 되어 두는 체스입니다.
2005년 인터넷에서 열린 프리스타일 체스 대회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랜드마스터들과 슈퍼컴퓨터 팀을 꺾고 우승한 것은 미국 뉴햄프셔의 아마추어 두 명(스티븐 크램턴과 재커리 스티븐)이었습니다. 레이팅은 각각 1685와 1398로 평범한 동호인 수준이었고, 쓴 것은 평범한 PC 세 대였습니다. 그들의 비결은 여러 엔진의 판단이 갈릴 때 그 이유를 파고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카스파로프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약한 인간 + 기계 + 더 나은 과정이, 강한 컴퓨터 혼자보다 우월했다. 더 놀랍게도, 강한 인간 + 기계 + 열등한 과정보다도 우월했다.
사람이 무엇을 '아는가'보다 사람과 기계가 어떻게 함께 이해하는가가 결과를 가른 것입니다.
8부. 배치 가능한 지적 예비군
새로운 소명
사하이는 수학자의 역할을 넓혀 생각하자고 제안합니다.
이 책임을 떠맡으려면, 수학자가 기여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넓혀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배치 가능한 지적 예비군(deployable intellectual reserve)" 같은 것이다. 인류가 결과가 막중한 AI 기반 돌파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수학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의 공동체 말이다.
어렵고 낯선 아이디어를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은 우리가 사회에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여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 기술을 평소 연구 관심사를 훨씬 넘어서는 문제에까지 가져갈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의 소명에 대한 감각을 넓혀야 한다.
'예비군'이라는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평소에는 각자의 연구를 하다가, 사회가 필요로 할 때 소집되어 자기 전공이 아닌 문제에 투입되는 사람들. 그렇다면 핵융합 발전소를 검토하는 데 필요한 것은 핵융합 전문가만이 아니라, 낯선 수학적 구조를 빠르게 익히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역사 속의 예비군들
이 발상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인류는 위기의 순간마다 수학자들을 '소집'해 왔습니다.
이름
시기
무엇을 했나
남긴 것
응용수학 패널 (미국)
1942~1946
워런 위버가 이끌며 프린스턴·컬럼비아 등의 수학자들에게 전쟁 문제를 위탁
에이브러햄 월드의 순차 분석(오늘날 순차 검정·품질 관리의 기초)
블레츨리 파크 (영국)
1939~1945
1945년 1월 최대 8,995명, 그중 4분의 3이 여성. 에니그마 암호 해독
앨런 튜링의 계산 이론, 현대 컴퓨터의 출발점
맨해튼 프로젝트 (미국)
1942~1946
폰 노이만이 내폭 렌즈의 수학 모델을, 울람이 몬테카를로 방법을 만듦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수치 해석의 기초
CDC 역학 정보국 (미국)
1951~현재
한국전쟁 중 생물무기 공포에 대응해 의사 21명으로 출발. 전염병 발생 시 현장 파견
지금까지 '질병 탐정' 4,100명 이상 배출
특히 마지막 사례가 사하이의 비유와 가깝습니다. CDC의 역학 정보국(EIS)은 평소 훈련받은 전문가 집단을 유지하다가, 어디서든 원인 모를 전염병이 발생하면 며칠 안에 현장에 파견합니다. 사하이가 그리는 수학자의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AI가 전례 없는 설계나 이론을 내놓았을 때, 그것을 독립적으로 이해하고 검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준비되어 있는 것.
"조종할 수 있는 것보다 빨리 달리지 마라"
닷새 전(9월 19일) 같은 블로그에 실린 카네기멜런 대학 포션 로의 글도 같은 결론에 이릅니다. 그는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숙련된 감독이 필요한 '통제 지점' 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봅니다.
달리는 것보다 빨리 차를 모는 건 괜찮다. 하지만 조종할 수 있는 것보다 빨리 모는 건 안 된다.
AI의 발전은 우리가 지켜봐야 할 통제 지점을 너무 많이 만들어 내서, 그것을 다 통제할 사람이 모자라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일자리다. 고도로 숙련된 일자리다.
AI가 수학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학적으로 사고할 줄 아는 사람에 대한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린다는 것. 사하이와 로가 도달한 결론은 같습니다.
사하이는 세 번째 각주에서 AI가 이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식도 짚습니다. "AI 시스템은 다양한 배경의 연구자들이 서로 효과적으로 대화하고, 더 일반적으로는 낯선 개념을 이해하도록 돕는 데 매우 유용할 것이다." 정수론 전문가가 플라스마 물리의 모델을 이해해야 할 때, AI는 두 분야 사이의 통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
9부. 반론들 — 댓글창의 목소리
사하이의 글에는 사흘 만에 65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공감도 많았지만, 날카로운 반론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균형 있게 읽으려면 반론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반론
댓글의 목소리
생각해 볼 점
일자리는 누가 만드나
"정년을 보장받은 교수들이 수학자가 더 필요하다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젊은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건 격려가 아니라 일자리다. 누가 월급을 주나?"
가장 뼈아프고 정당한 반론입니다. 사하이의 제안은 '지속적인 지원'이 전제인데, 그 재원에 대한 구체안은 글에 없습니다.
AI가 번역해 줄 것
"수학자가 더 필요하지 않다. AI가 자기 증명을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쉽게 번역해 줄 것이다."
번역된 설명을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리고 번역이 정확한지 판단하려면 결국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수학자가 아니라 엔지니어
"핵융합 발전소 같은 시나리오에 필요한 건 수학자가 아니라 엔지니어 아닌가?"
사하이의 '수학자'는 넓은 의미입니다. 전례 없는 원리라면 기존 공학 경험이 통하지 않고, 모델 자체를 이해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경쟁이 모든 걸 무너뜨린다
"두 나라가 경쟁한다면, 사람들은 이해를 포기하고 AI에게 최소한의 확인만 받은 뒤 '엔터'를 누를 것이다." (Kihun Nam, 모내시 대학)
가장 현실적인 비관론입니다. 이해에 투자하는 쪽이 경쟁에서 느려진다면, 이해는 사치품이 됩니다.
핵융합은 정치 문제
"핵분열 발전도 사회적·정치적 이유로 대규모로 안 쓰고 있다. AI가 핵융합을 푼다는 환상을 이해할 수 없다."
사고실험의 요점은 핵융합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설계를 승인할 것인가'라는 구조입니다.
GPT로 쓴 글
"위기의 시기에 더 깊이 생각해서 써야 할 글을 정년 보장 교수들이 GPT로 초안 잡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반대로, AI를 쓰되 생각은 자기 것으로 남기는 사례로 볼 수도 있습니다. 같은 주에 이반 코윈과 포션 로는 일부러 AI 없이 썼다고 밝혔습니다.
사하이는 비판자들에게 직접 답글을 남겼습니다.
내 글이 전하려던 것은, 우리가 종(種)으로서 "갈림길"의 순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점점 더 기계에게 넘겨줄 수도 있고, 기계의 '사고'를 우리 자신의 이해를 깊게 할 위대한 선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공동 조직자로 참여한 시몬스 재단의 노력이 곧 "많은 구체적인 실행 항목을 담은 보고서"를 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원칙을 말하는 글과 재원을 설계하는 보고서는 다른 일입니다. 이 글은 전자이고, 후자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10부. 2026년, 이 글의 자리
같은 결론에 도달한 기관들
사하이의 글이 나온 다음 날, 두 개의 공식 문서가 발표되었습니다.
하나는 하버드 수학과와 CMSA가 주최한 「AI 시대 수학 박사 교육 서밋」의 권고안입니다. 9월 17~18일, 선임 수학자 24명과 학생·박사후연구원들이 모여 만든 문서입니다. 핵심 문장은 이것입니다.
AI 사용은 이해를 가속해야지, 이해를 건너뛰게 해서는 안 된다.
권고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하이의 처방을 교육 제도로 옮긴 것처럼 읽힙니다. 과제가 아니라 대면 필기·구술 시험으로 평가할 것. 학위 논문의 텍스트가 아니라 내용을 완전히 숙달했는지 확인하는 엄격한 디펜스로 학위를 줄 것. 협업, 질문 만들기, 학제 간 작업, 형식화를 새로 가르칠 것. 그리고 세 가지 윤리 원칙 — 자기 이름으로 나가는 수학의 정확성과 이해에 대한 책임을 질 것, AI 사용을 항상 밝힐 것, 다른 사람의 자료를 AI에 넣기 전에 동의를 받을 것. 그리고 보고서는 이렇게 끝납니다.
새로운 수학의 지평을 온전히 개척하고, 과학과 기술과 그 너머로의 응용을 탐구하려면 훨씬 더 많은 수학자가 필요할 것이다. 이 분야에 들어오기에 얼마나 흥미진진한 시대인가!
사하이의 제목과 거의 같은 문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국제산업응용수학협의회(ICIAM)의 성명입니다. 부제는 "발견, 이해, 그리고 신뢰"입니다.
AI 시대는 응용수학을 덜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필요로 한다. (…) AI는 발견을 가속할 수 있다. 수학은 이해와 신뢰를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9월 21일 출범한 AGMAI(수학과 인공지능 자문 그룹) 가 있습니다. 가워스, 헤어러, 위튼, 바킬, 우드 등 9명의 수학자가 무보수·독립으로 AI 기업의 수학 결과 발표 방식을 자문합니다. 첫 과제는 OpenAI가 "내부 모델이 만들어 냈다고 보고한 다수의 중요한 수학 결과"를 어떻게 공개할지 조언하는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은 결과가 한꺼번에 쏟아질 상황에 대비하는 기구가 생긴 것입니다.
한 달 전만 해도 수학계의 반응은 '분노'와 '당혹'에 가까웠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방향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AI를 거부하지도, 무비판적으로 환영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해하는 사람을 지키고 늘린다.
수학자가 아닌 우리에게는 무슨 의미인가
이 논쟁은 수학계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AI가 사람보다 빠르게 결과물을 내놓는 모든 분야에서 같은 구조가 반복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AI가 코드를 거의 다 쓰는 시대에, 그 코드를 이해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AI가 코드를 거의 다 쓴다면」에서 다뤘듯, 이미 AI 생성 코드의 변경 실패율 상승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코드 리뷰는 '승인 도장'이 아니라 이해의 과정이어야 합니다.
기업의 의사결정: AI가 만든 분석 보고서를 그대로 경영 회의에 올린다면, 그 분석의 가정을 아는 사람이 회의실에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사하이의 공청회 비유는 이사회실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교육: 학생이 AI로 과제를 해 온다면 과제로는 이해를 평가할 수 없습니다. 하버드 서밋의 결론처럼, 대면으로 설명하게 하는 평가가 다시 중요해집니다.
개인: AI에게 물어서 얻은 답과, 내가 이해한 답은 다릅니다. 앞의 것은 빌린 것이고 뒤의 것만 내 것입니다.
코어닷투데이가 기업 고객과 AI 시스템을 만들면서 가장 자주 강조하는 원칙도 같습니다. AI가 만든 결과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조직 안에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이 없으면 AI는 생산성 도구가 아니라 아무도 갚지 않는 부채가 됩니다. 헨리 콘이 같은 달 타오의 블로그에서 경고한 "AI가 만든 수학의 기술 부채" 처럼요. 사람이 개입하는 방식에 대한 더 넓은 논의는 「Human-in-the-Loop 특집: AI가 똑똑해질수록 사람이 더 중요해지는 역설」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맺으며: 함께 이해하는 공동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던 학생들. 그들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기다려 주는 사람이 없어서 떠났습니다.
사하이의 글은 결국 이렇게 묻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그 학생이 될 때, 우리는 서로를 기다려 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사하이의 답은 개인의 결단이 아니라 공동체의 설계입니다. 한 학기, 1년씩 하나의 아이디어를 붙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 따라가지 못하는 기분을 부끄러움이 아니라 당연한 출발점으로 받아들이는 문화. 자기 전공 밖의 문제에도 기꺼이 소집되는 소명 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일을 할 충분한 수의 사람.
AI가 약속을 지킨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본 어떤 것보다 아름답고 중대한 아이디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번성하는 인간 공동체를 만드는 것으로 응답해야 한다.
서스턴은 한 분야를 비워 버린 경험 끝에, 수학의 성공은 정리의 개수가 아니라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하고 생각하게 되었는가로 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30년 뒤 우리는 그 교훈을 인류 전체의 규모로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정리를 만드는 속도에서 기계를 이길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해하는 일, 그리고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지 선택하는 일은 우리가 내려놓을 수 없는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