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미디스 스피넬리스Diomidis Spinellis생각은 취미가 될 것이다Thinking will become a hobby인지노동과업 기반 모델알파고바둑 의사결정 품질윌리엄 골딩케인스진지한 여가인지 오프로딩PIAACPISA 2025탄광 속 카나리아한국은행 청년고용특집
[특집] 생각이 취미가 되는 날 — 스피넬리스의 「생각은 취미가 될 것이다」, 사냥·서예·목공·승마의 길을 생각도 걷게 될까
2026년 10월 8일, 『코드 리딩』의 저자이자 소프트웨어 공학의 대가 디오미디스 스피넬리스가 600단어짜리 블로그 글을 올렸다. 첫 문장은 '내 무덤을 파는 기분'이었고, 결론은 '생각은 취미가 될 것이다'였다. 가축화 뒤의 사냥, 인쇄술 뒤의 서예, 산업화 뒤의 목공, 자동차 뒤의 승마처럼. 해커뉴스에서 421개의 댓글이 달린 이 글을 한 문단씩 읽고, 성능·비용·가용성이라는 세 전제를 OECD 성인역량조사·PISA 2025·OpenAI 수학 원고 722편으로 확인했다. 네 비유의 역사(왕실 사냥림, 필경사 예찬, 윌리엄 모리스, 말 2,520만 마리), AI에 진 뒤 66년 만에 강해진 프로 바둑(580만 수 분석, 신민규 외 PNAS), 1961년 골딩의 「취미로서의 생각」,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콜레에서 케인스의 15시간·아렌트의 '노동 없는 노동자 사회'까지의 계보를 따라갔다. 과업 기반 모델로 본 경제학의 설계도, 인지 오프로딩 연구, 스피넬리스 자신의 3~7월 글과의 충돌, 그리고 청년 일자리 28.5만 개가 사라진 한국의 데이터까지 — 여섯 개의 인터랙티브 도구와 함께 정리했다.
2026년 10월 8일 새벽, 그리스 아테네의 한 교수가 자기 블로그에 짧은 글을 올렸습니다. 일곱 문단, 영어로 600단어 남짓. 제목은 「생각은 취미가 될 것이다(Thinking will become a hobby)」였습니다.
첫 문장은 이랬습니다.
"이 문장들을 쓰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내 무덤을 파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글쓴이는 디오미디스 스피넬리스(Diomidis Spinellis)입니다. 개발자라면 그의 이름을 한 번쯤 들어 봤을 겁니다. 아테네 경제경영대학교의 소프트웨어 공학 교수이자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의 소프트웨어 분석학 교수. 2015~2018년 IEEE 소프트웨어지 편집장을 지냈고, 『코드 리딩』(2003)과 『코드 퀄리티』(2006)로 소프트웨어 개발 생산성상을 두 번 받았으며, 『이펙티브 디버깅』(2016)을 썼습니다. 맥OS와 BSD 계열 운영체제에 들어 있는 sed 명령이 그의 코드이고, 50년 유닉스 역사를 깃 저장소 하나로 복원한 '유닉스 역사 저장소'의 관리자이기도 합니다. 2025년 12월에는 새로 발견된 유닉스 4판 테이프를 분석해 화제가 됐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평생 생각으로 먹고살아 온 사람, 그것도 사람이 쓴 코드를 사람이 읽고 이해하는 기술을 가르쳐 온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씁니다. 인지노동의 대부분은 AI가 맡게 된다. 생각은 점점 여가 활동이 된다. 가축화 뒤의 사냥처럼, 인쇄술 뒤의 서예처럼, 산업화 뒤의 목공처럼, 자동차 뒤의 승마처럼.
사흘 뒤의 폭발
처음엔 조용했습니다. 스피넬리스가 직접 해커뉴스에 올린 글은 5점, 댓글 1개에 그쳤습니다. 다음 날 다른 사용자가 올린 것도 6점. 그런데 나흘 뒤인 10월 12일, 다시 올라온 같은 글이 308점, 댓글 421개를 받으며 해커뉴스 첫 화면을 차지했습니다. 개발자 커뮤니티 로브스터스, 마스토돈, 블루스카이로 토론이 번졌습니다.
왜 하필 이 글이었을까요? 세 가지 이유가 겹쳤습니다.
글쓴이. AI 회사의 CEO나 투자자가 아니라, AI가 짠 코드의 위험을 경고해 온 소프트웨어 공학자가 썼습니다. 그는 불과 몇 달 전까지 "AI 코드를 리뷰하기는 지독하게 어렵다", "에이전틱 AI에겐 더 나은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쓰던 사람입니다.
타이밍. 이틀 전 OpenAI가 AI가 쓴 수학 논문 722편을 공개했고, 하루 전엔 그중 3편이 오류로 철회됐습니다. 'AI가 정말 생각을 하는가'라는 질문이 가장 뜨거울 때였습니다.
제목. '일자리를 잃는다'가 아니라 '취미가 된다'. 위협이 아니라 체념에 가까운 이 표현이, 생각으로 먹고사는 수많은 독자의 신경을 건드렸습니다.
이 글에서 다룰 것
이 특집은 600단어짜리 글 한 편을 끝까지 파고듭니다. 원문을 한 문단씩 읽고(2절), 저자가 든 근거를 실제 데이터로 확인하고(3절), 제목에 숨은 65년 전의 메아리를 찾고(4절), 네 개의 비유를 역사 속에서 하나씩 뜯어봅니다(5절). AI에 진 뒤 오히려 강해진 바둑 기사들의 580만 수(6절),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케인스까지 "일이 끝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2,400년 된 질문(7절), 그리고 경제학이 이 문제를 이해하는 설계도인 '과업 기반 모델'(8절)을 차례로 살펴봅니다. 이어서 저항(9절), 생각을 맡길 때 머리에 생기는 일(10절), 421개 댓글의 반론과 스피넬리스 자신의 과거 글(11절), 한국의 데이터(12절), 그리고 실천편(13절)으로 마무리합니다.
중간중간 여섯 개의 인터랙티브 도구를 넣었습니다. 원문의 논증 지도, 골딩의 세 등급 분류기, 네 비유의 전환 속도 비교, 내 직업의 과업 분해기, 생각 근육 시뮬레이터, 진지한 여가 진단기입니다. 읽다가 직접 만져 보세요.
2. 원문 정밀 독해 — 일곱 문단, 하나의 논증
원문은 일곱 문단, 영어로 600단어가 조금 넘습니다. 짧지만 구조는 아주 단단합니다. 문단마다 무엇을 말하는지 한국어로 옮기며 따라가 보겠습니다.
첫 문장이 이 글이 화제가 된 이유의 절반입니다. 생각으로 먹고사는 사람, 그것도 소프트웨어 공학의 대가가 "생각이라는 직업의 끝"을 선언합니다. 그는 2022년 말 처음 나온 어설픈 ChatGPT가 자기 이름에 a가 몇 개인지도 못 셌다는 일화로 시작합니다. 챗봇은 두 개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Diomidis Spinellis'를 한 글자씩 세어 보면 a는 하나도 없습니다. 없는 글자를 두 개나 만들어 낸 셈입니다. 글은 거기서 OpenAI 내부 모델이 미해결 수학 문제 수백 개를 풀었다는 2026년 소식으로 넘어갑니다. 4년 사이의 간극이 이 글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한 문장을 덧붙입니다. 환각이나 편향을 근거로 "그래도 사람의 생각이 낫다"고 말하는 실용적 주장들은 이제 후위 방어전(rearguard defence), 즉 퇴각하는 군대가 뒤에서 벌이는 엄호 전투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기려는 싸움이 아니라 덜 지려는 싸움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성능' 논증이 독특한 점은 AI의 상승만이 아니라 사람의 하락을 함께 든다는 것입니다. 보통의 AI 낙관론은 "AI가 좋아진다"까지만 말합니다. 스피넬리스는 OECD의 성인역량조사와 PISA 결과를 링크하며 "사람 쪽 곡선은 내려가고 있다"고 덧붙입니다. 두 곡선이 서로 다가가는 게 아니라 엇갈리며 멀어진다는 그림입니다. 이 부분은 3절에서 실제 숫자로 확인합니다.
5문단 — 저항: 이번엔 더 거세다
"과거 혁명은 육체노동을 바꿨지만, AI는 지식노동자에게 도전한다. 그들의 전문성, 정보에 대한 통제력, 의사결정 권한은 더 큰 경제적·조직적 힘을 준다."
저자는 지식노동자의 저항이 과거 러다이트보다 훨씬 강할 거라고 봅니다. 의사·변호사·회계사·교수는 면허를 쥐고, 정보를 독점하고, 조직의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규제와 과세로 AI의 "날개를 자르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의 결론은 냉정합니다. 그런 조치가 과거 혁명을 막지 못했으니 이번에도 통하리라 볼 이유가 별로 없다. (이 주장은 9절에서 따져 봅니다.)
6문단 — 핵심: 생각은 여가가 된다
"인지노동은 줄어들 것입니다. 생각은 점점 여가 활동이 될 것입니다. 가축화 뒤의 사냥처럼, 활판 인쇄 뒤의 서예처럼, 산업화 뒤의 목공처럼, 자동차 뒤의 승마처럼. 기계가 많은 신체 활동을 필요에서 선택으로 바꿨듯이, AI는 인간의 사고를 경제적 목적에서 분리할 것입니다."
이 글의 제목이 나오는 문단입니다. 핵심 단어는 분리(decouple)입니다. 저자는 생각이 사라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생각과 돈벌이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다고 말합니다. 사냥은 지금도 존재하고, 서예가도 목수도 승마인도 있습니다. 다만 그들은 그걸로 먹고살 필요가 없거나, 극소수만 그걸로 먹고삽니다. 네 비유는 5절에서 하나씩 자세히 살펴봅니다.
7문단 — 처방: 생계에서 삶으로
마지막 문단은 뜻밖에도 '여유로운 미래'가 아니라 고된 전환기를 말합니다. AI가 지배하는 세상을 짓고, 길 위의 요철을 견디고, 그 세상에서 충만한 삶을 준비하는 일은 "엄청나게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고, 지적으로 도전적"일 것이라고요. 그래서 세 가지를 권합니다.
AI의 발전을 따라잡고 활용하라
유연하고, 적응력 있고, 회복력 있게 버텨라
일 바깥에서 목적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쌓아라
그리고 마지막 문장.
"내 앞의 과제는 생각으로 생계를 꾸리는 데서, 생각을 살 만한 삶의 일부로 만드는 데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from making a living by thinking, to making thinking part of a life worth living)
영어 원문은 'making a living'과 'a life worth living'의 말장난입니다. '생계(living)'에서 '삶(life)'으로. 한 단어의 차이가 이 글 전체의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논증의 뼈대를 한눈에
아래 위젯은 일곱 문단을 '전제 → 중간 결론 → 결론 → 처방'의 논증 지도로 다시 그린 것입니다. 마디를 눌러 보면 이 글의 강한 고리와 약한 고리가 보입니다. 미리 말하자면, 전제는 튼튼하고 결론은 비유에 기댄다는 것이 이 글이 논쟁을 부른 이유입니다.
3. 두 곡선 — AI는 오르고, 사람은 내려간다?
스피넬리스의 첫 번째 전제, '성능'을 실제 숫자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는 두 개의 곡선을 그립니다. 위로 치솟는 AI의 곡선, 그리고 평평하거나 내려가는 사람의 곡선입니다.
AI의 곡선 — 722편의 수학 원고, 그리고 철회된 3편
스피넬리스가 링크한 것은 2026년 10월 6일 공개된 OpenAI의 깃허브 저장소 openai/math입니다. (이 발표는 저희 블로그의 「OpenAI의 수학 원고 722편」 특집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공개 당시 README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항목
내용
원고 수
722편 (372개 '주제 묶음')
만든 주체
공개되지 않은 OpenAI 내부 모델 (이름 미공개)
던진 문제
약 4,000개의 미해결 연구 문제
계산량
결과 하나당 평균 'ChatGPT Pro 사고 시간' 약 3시간
형식 검증
린(Lean) 증명 보조기로 핵심 결과의 약 42%(719편 중 300편, 10월 7일 기준)를 기계 검증
그런데 스피넬리스의 글이 올라오기 바로 전날(10월 7일),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분할 아벨 8차 다양체 위의 바일 류의 대수성」이라는 원고에서 부호 하나가 틀린 것이 발견됐고, 이 원고와 여기에 기댄 원고 2편, 모두 3편이 철회됐습니다. 14편은 수정됐습니다. 이 소식은 해커뉴스에서 342점을 받으며 화제가 됐습니다. 컬렉션은 이제 719편입니다.
이 사건은 양쪽 모두에게 근거가 됩니다. 비판자들은 "AI의 수학도 검증 없이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스피넬리스 같은 쪽은 "4,000개를 던져 700여 편이 남았고, 오류는 사람이 아니라 형식 검증과 공개 검토로 잡혔다"고 말할 겁니다. 다만 "수백 개의 미해결 문제를 풀었다"는 스피넬리스의 표현은 조금 과합니다. README 자체가 "형식 검증되지 않은 결과엔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으니까요.
작은 사실 확인도 하나. 원문은 "2022년 초(early 2022) ChatGPT의 어설픈 출시"라고 썼지만, ChatGPT는 2022년 11월 30일에 공개됐습니다. 그리고 이름 속 a의 개수 문제에 대해, 한 독자가 블로그 댓글로 "지금 ChatGPT도 여전히 틀린다"고 지적하자 스피넬리스는 "GPT 6(인스턴트)는 0개라고 정확히 답했다"고 답했습니다.
사람의 곡선 ① — 성인: 10년 사이 9점
스피넬리스가 "성인 평균이 낮다"며 링크한 자료는 OECD의 『한눈에 보는 교육 2025』에 실린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결과입니다. PIAAC은 16~65세 성인이 일상과 직장에서 글을 읽고, 수를 다루고, 문제를 푸는 능력을 재는 시험입니다. 2023년 조사(2주기)의 25~64세 OECD 평균은 다음과 같습니다.
영역
평균 점수
1수준 이하
3수준 이상
언어 능력(문해력)
259
약 27%
42%
수리력
262
약 25%
44%
적응적 문제 해결
249
31%
31%
'1수준 이하'가 무슨 뜻인지 감을 잡아 볼까요. 1수준 이하의 성인은 짧고 단순한 글에서 정보 하나를 찾는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긴 글을 읽고 여러 정보를 비교하거나 추론하기는 어렵습니다. OECD 성인 넷 중 한 명 이상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더 중요한 건 추세입니다. 1주기(2012~15년)와 비교하면 OECD 평균 문해력은 9점 떨어졌고, 25~34세 젊은 층도 10년 전 같은 나이대보다 9점 낮았습니다. 학력별로는 고졸 미만 −19점, 고졸 −12점, 대졸 −9점. OECD 보고서는 이를 "정체 또는 하락"이라고 요약했습니다. 예외로 핀란드는 10점 올랐습니다.
해커뉴스 토론에서 한 독자는 미국 자료(NCES)를 들며 "미국 성인 중 문해력 3수준 이상이 2017년 48%에서 2023년 44%로 줄었다"고 썼습니다. 그러자 다른 독자가 바로 반박했습니다. 그사이 조사 응답률이 56%에서 27%로 떨어졌고, 시험 방식도 태블릿 전용으로 바뀌어서 단순 비교는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데이터는 늘 생각보다 덜 단순합니다.
사람의 곡선 ② — 학생: PISA 역사상 최저
두 번째 링크는 2026년 9월 발표된 PISA 2025 결과입니다. PISA는 OECD가 3년마다 만 15세 학생의 읽기·수학·과학 능력을 재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로, 이번엔 91개국 76만 명 이상이 참여했습니다.
읽기 2015
489
읽기 2025
461 (−28)
수학 2015
485
수학 2025
463 (−22)
과학 2015
489
과학 2025
482 (−7)
OECD 평균 점수(막대 길이는 500점 기준). 읽기·수학 모두 PISA 역사상 최저치다. 출처: OECD, PISA 2025 Results Volume I.
막대 길이만 보면 차이가 작아 보이지만, OECD는 PISA에서 약 20점을 학교 수업 1년치로 봅니다. 읽기 28점 하락은 1년이 넘는 배움이 사라진 셈입니다. 읽기는 2018년 이후에만 25점 떨어졌고, 세 과목 모두 기초 수준에 못 미치는 학생은 2022년 16%에서 2025년 20%로 늘었습니다. 글을 대충 훑고 넘어가는 '급한 독자(hasty readers)'의 비율도 2018년 약 7%에서 11%로 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스피넬리스가 인용한 바로 그 PISA 보고서의 서문에서, 마티아스 코먼 OECD 사무총장은 정반대의 규범적 결론을 내립니다. AI는 "학생들의 애쓰는 배움에 더해져야지 그것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이해는 스스로 생각하는 데서 오기 때문이다." 같은 데이터를 보고, 스피넬리스는 "사람의 생각은 지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읽었고, OECD는 "그러니 사람의 생각을 더 지켜야 한다"고 읽은 겁니다.
두 곡선을 읽는 법
정리하면, 스피넬리스의 '두 곡선'은 대체로 사실입니다. 다만 세 가지를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AI 곡선은 '검증 가능한 분야'에서 가장 가파릅니다. 수학·코딩처럼 정답을 기계로 확인할 수 있는 분야가 먼저 무너집니다. 해커뉴스에서 여러 독자가 테렌스 타오의 표현을 빌려 AI의 능력이 "극도로 들쭉날쭉(jagged)"하다고 지적한 이유입니다.
사람 곡선의 하락은 AI 이전부터 시작됐습니다. PISA 읽기 하락은 2018년, 스마트폰과 SNS의 시대에 이미 시작됐습니다. AI가 원인이라기보다, AI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 들어온 것입니다.
평균과 상위층은 다릅니다. 평균이 떨어져도, AI를 감독할 수 있는 상위 전문가의 수준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문제는 그 전문가가 어디서 길러지느냐입니다(10절).
4. 제목의 메아리 — 골딩의 「취미로서의 생각」(1961)
스피넬리스도, 해커뉴스의 421개 댓글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글의 제목에는 65년 전의 메아리가 있습니다. 『파리 대왕』의 작가이자 198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윌리엄 골딩이 1961년 미국 잡지 『홀리데이』에 쓴 에세이, 「취미로서의 생각(Thinking as a Hobby)」입니다. 영미권 고등학교·대학 작문 교재에 단골로 실리는 글이라, 영어권 독자 상당수는 스피넬리스의 제목을 보고 이 글을 떠올렸을 겁니다.
골딩은 어린 시절 교장실에 자주 불려 갔습니다. 교장 뒤 찬장 위엔 작은 석고 조각상 세 개가 있었습니다. 팔 없는 밀로의 비너스(사랑), 웅크린 표범(본능), 그리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순수한 사고). 어느 날 교장은 「생각하는 사람」을 책상 위에 쿵 내려놓고 말했습니다. "이게 진짜로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소년 골딩은 아무 감흥 없이 그걸 바라봤습니다. 선생님들은 늘 "왜 생각을 못 하니?"라고 물었지만, 소년이 보기에 선생님들도 생각을 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 경험에서 골딩은 생각을 세 등급으로 나눕니다.
3등급편견과 감정. 술을 마시면서 맑은 공기를 찬양하고, 이유 없이 미국과 프랑스를 싫어하던 호턴 선생처럼 '목으로 생각하는' 것. 골딩은 이것이 "생각이라기보다 느낌"이며, 인구 열 명 중 아홉에게는 이것이 생각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썼습니다.
2등급모순 찾기. 남의 주장에서 앞뒤가 안 맞는 곳을 찌르는 것. 소년 골딩은 이 '취미'로 즐거움과 외로움을 함께 얻었습니다. 하지만 2등급은 "파괴할 뿐 창조할 힘이 없다."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은 건 논쟁을 끝내려는 2등급의 질문이었습니다.
1등급진리를 찾아 나서기. 똑같이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되, 그 질문을 논쟁의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삼고 답을 찾아 나서는 것. 이런 사람은 드물다고 골딩은 썼습니다.
다리 위의 아인슈타인
골딩이 만난 유일한 '확실한 1등급 사상가'는 아인슈타인이었습니다. 옥스퍼드 1학년 때, 막 나치를 피해 온 작은 체구의 독일인이 모들린 칼리지 사슴 공원의 다리 위에서 그의 옆에 섰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영어를 못했고, 골딩은 독일어 단어를 두 개밖에 몰랐습니다. 5분쯤 말없이 서 있다가, 아인슈타인이 물속의 송어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Fisch(물고기)." 골딩은 독일어 어휘의 절반을 써서 대답했습니다. "Fisch. Ja, ja(물고기. 네, 네)." 그리고 다시 5분. 생각의 정점에 선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그게 전부였습니다.
거꾸로 된 결말
이 에세이에서 스피넬리스의 글과 가장 극적으로 겹치는 건 마지막 부분입니다. 골딩은 청년 시절 내내 생각을 '취미'로 즐기며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는 놀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에세이의 결말에서 이렇게 씁니다.
"나는 취미를 그만두고 프로가 되었다." (I dropped my hobby and turned professional.)
골딩은 취미로 하던 생각을 직업으로 바꿨습니다. 작가가 된 거죠. 65년 뒤 스피넬리스는 정확히 반대 방향을 예언합니다. 직업으로 하던 생각이 취미로 돌아간다고. 한 세기도 안 되는 사이에 생각의 화살표가 뒤집힌 겁니다.
골딩의 세 등급은 2026년의 AI를 이해하는 데도 놀랍도록 쓸모 있습니다.
3등급(편견·감정): 그럴듯하게 '느낌'을 말하는 것. 언어 모델이 가장 먼저, 가장 쉽게 흉내 낸 것이 이것입니다.
2등급(모순 찾기): 코드 리뷰, 논문 검토, 계약서의 허점 찾기. 2026년의 AI가 사람보다 빠르고 꼼꼼해진 영역입니다.
1등급(진리를 찾아 나서기): 어떤 질문을 던질지 정하고, 그 답을 끝까지 찾아가는 것. OpenAI의 수학 원고 722편은 AI가 이 영역에도 발을 들였다는 신호이지만, 그 4,000개의 질문을 고르고 던진 건 여전히 사람이었습니다.
아래 위젯에서 2026년의 일상 장면 여섯 개를 골딩의 등급으로 직접 분류해 보세요.
스피넬리스의 예언을 골딩의 언어로 다시 쓰면 이렇게 될 겁니다. 2등급의 생각은 직업에서 밀려나고, 1등급의 생각은 취미로 남는다. 그런데 골딩이 경고했듯, 1등급 사상가는 원래 드물었습니다. 생각이 취미가 된 세상에서 우리 대부분은 어느 등급의 취미를 갖게 될까요?
5. 네 개의 비유를 하나씩 — 생업이 취미가 되던 순간들
스피넬리스의 결론은 네 개의 비유에 기대고 있습니다. 비유는 힘이 세지만, 그만큼 꼼꼼히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각 비유에서 무엇이 사라졌고, 무엇이 남았고, 누가 남았는지를 보겠습니다.
구석기인에게 사냥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인류학자 코데인 등이 민족지 자료에 기록된 수렵채집 사회 229곳을 분석했더니(2000년), 73%의 사회가 열량의 절반 이상을 사냥과 물고기잡이에서 얻었습니다. 채집한 식물로 그만큼을 얻는 사회는 14%뿐이었습니다.
약 1만 1,000년 전 서아시아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농경과 가축화가 시작되자 이 균형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오늘날 지구 포유류를 무게로 달면 가축이 약 60%, 사람이 36%, 야생 포유류는 4%에 불과합니다(바온 외, PNAS 2018). 고기를 얻으려고 숲으로 갈 필요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런데 사냥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분의 상징이 됐습니다. 1066년 노르만 정복 뒤 잉글랜드 왕들은 숲을 '왕실 사냥림'으로 묶고 별도의 '숲 법'으로 다스렸습니다. 12~13세기 전성기엔 잉글랜드 남부의 약 3분의 1이 왕실 사냥림이었습니다. 1217년 '숲 헌장'이 이를 되돌릴 때까지, 평민이 왕의 사슴을 잡으면 중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미국 어류·야생동물국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사냥 인구는 1,440만 명, 16세 이상 인구의 5.5%입니다. 낚시 인구(약 4,000만), 야생동물 관찰 인구(약 1억 4,800만)보다 훨씬 적습니다. 사냥은 생존 → 특권 → 취미의 세 단계를 거쳤습니다.
생각에 주는 교훈: 생업이 아니게 된 활동은 한동안 특권이 될 수 있습니다. "AI 없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부유한 사람들의 사치가 되는 중간 단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서예 — 필경사 예찬은 인쇄본으로 나왔다
중세 유럽에서 책은 수도원 필경사가 한 글자씩 베꼈습니다. 1450년경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가 등장하고, 1455년경 42행 성경이 약 180부 인쇄됐습니다. 경제사학자 뷰링과 판잔던(2009)의 추정에 따르면 1500년까지 반세기 동안 유럽에서 약 1,260만 부의 책이 인쇄됐습니다. 그 이전 수백 년 동안의 필사본 전체에 맞먹는 양을 단 50년 만에 찍어 낸 것입니다.
이 전환기에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1492년 독일 슈폰하임 수도원장 요하네스 트리테미우스는 「필경사 예찬(De laude scriptorum)」을 썼습니다. 손으로 베끼는 일이 수도사의 영혼을 닦는다며 인쇄를 경계한 글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2년 뒤인 1494년 마인츠에서 인쇄본으로 출간됐습니다. 손글씨를 지키자는 주장조차 인쇄기를 타야 퍼질 수 있었던 겁니다. (역사학자들은 트리테미우스가 실은 인쇄에 꽤 우호적이었다고도 봅니다. 그가 걱정한 건 기술이 아니라 '베끼며 생각하는 수행'이 사라지는 것이었죠.)
손글씨는 사라지지 않고 예술로 옮겨 갔습니다. 1906년 영국의 에드워드 존스턴이 쓴 『쓰기와 채식과 레터링』은 현대 캘리그라피 부흥의 출발점이 됐고, 그가 1910년대 런던 지하철을 위해 만든 서체는 지금도 런던 지하철 표지판에 쓰입니다.
동아시아의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중국은 9세기(868년 『금강경』 목판본)부터, 고려는 1377년(『직지』 금속활자)부터 인쇄를 했지만, 서예는 수백 년 동안 선비의 최고 교양으로 남았습니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씨는 생계 수단이 아니라 인격 수양의 표현이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손글씨는 생업을 잃기 훨씬 전부터 이미 '삶의 일부'였던 셈입니다. 스피넬리스의 마지막 문장 — 생각을 살 만한 삶의 일부로 — 에 오히려 더 가까운 모델입니다.
생각에 주는 교훈: 기계가 등장해도 그 활동의 '수행적 가치'는 남습니다. 글씨를 쓰는 행위가 마음을 닦는다면, 생각하는 행위도 그 자체로 사람을 만듭니다.
목공 — 부자의 사치가 된 손의 기술
산업혁명 전까지 의자, 수레바퀴, 집의 뼈대는 목수가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증기기관과 기계 가공이 퍼지자 공장 가구가 쏟아졌고, 마을 목수는 줄어들었습니다.
여기에 맞선 사람이 윌리엄 모리스(1834~1896)입니다. 그는 1861년 공예 회사를 세우고, "쓸모 있다고 알거나 아름답다고 믿는 것이 아니면 집에 두지 말라"(1880년 강연)며 손으로 만든 물건의 가치를 되살리려 했습니다. 이것이 미술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손으로 만든 가구는 공장 가구보다 훨씬 비쌌고, 결국 부자들만 살 수 있었습니다. 사회주의자였던 모리스는 자신이 평생 "부자들의 돼지 같은 사치를 시중들었다"고 한탄했다고 전해집니다. 필요에서 풀려난 기술은 사치품이 되기 쉽습니다.
오늘날 목공은 대표적인 취미입니다. 미국 공예·취미협회의 2010년 조사에서 목공을 하는 가구는 약 1,680만으로, 공예 분야 4위였습니다. 유튜브엔 차고 공방에서 의자를 깎는 영상이 넘칩니다. 그 사람들 대부분은 목공으로 먹고살지 않습니다.
생각에 주는 교훈: '사람이 직접 생각한 것'이 프리미엄 상품이 될 수 있습니다. "AI 없이 쓴 글", "사람이 직접 한 상담"이 손으로 깎은 의자처럼 비싸게 팔리는 시장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미국의 말과 노새는 1840년부터 1900년 사이 여섯 배로 늘어 2,100만 마리를 넘었습니다. 1920년 농업 센서스는 농장의 말·노새를 2,520만 마리로 셌습니다. 같은 무렵 미국 농장의 트랙터는 1910년 약 1,000대, 1920년 약 25만 대였습니다. 그리고 1954년, 트랙터(약 460만 대)가 처음으로 말과 노새의 수를 넘었습니다. 1960년 말·노새는 약 300만 마리로 줄었습니다.
198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바실리 레온티예프는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생산 요소로서 인간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농업 생산에서 말의 역할이 트랙터의 등장으로 처음엔 줄고 결국 사라졌듯이."
이 '말 비유'는 2014년 유튜버 CGP 그레이의 영상 「인간은 지원할 필요 없음(Humans Need Not Apply)」으로 대중에게 퍼졌고, 지금도 AI와 일자리 논쟁의 단골 소재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이 흥미롭습니다. 미국말협회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는 지금도 약 660만 마리의 말이 있습니다. 그 대부분은 승마, 쇼, 경마 같은 여가와 스포츠를 위해 삽니다. 말 산업의 경제 효과는 1,770억 달러, 관련 일자리는 220만 개입니다. 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하는 말이 사라졌을 뿐입니다.
브리뇰프슨과 매카피는 2015년 『포린 어페어스』에 「인간은 말의 길을 갈 것인가?」를 쓰며 레온티예프에게 두 가지를 반박했습니다. 첫째, 사람이 사는 물건과 서비스의 핵심엔 사람과의 관계가 있다. 둘째, 말과 달리 사람은 자본을 소유할 수 있다. 말은 트랙터의 주인이 될 수 없었지만, 사람은 AI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반박은 뒤에서 다룰 '분배' 문제와 바로 연결됩니다.
생각에 주는 교훈: 수는 줄어도 남은 말의 삶은 오히려 나아졌을 수 있습니다. 짐을 끌던 말보다 주말 승마의 말이 더 잘 먹고 잘 돌봐집니다. 다만 그 '돌봄'은 말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라 주인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점이 불편한 진실입니다.
네 비유를 나란히 놓으면
아래 위젯은 네 비유가 '생업 → 취미'로 넘어가는 데 걸린 시간을 로그 눈금으로 나란히 놓은 것입니다. 눈에 띄는 것은 전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는 점입니다. 사냥은 수천 년, 필사와 목공은 약 100년, 말은 약 46년. 마지막 줄에서 '생각'의 전환 기간을 직접 예측해 보세요.
네 비유에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넷 다 사람의 몸이 하던 일입니다. 사냥은 다리와 팔, 필사는 손, 목공은 손과 눈, 승마는 말의 근육. 스피넬리스는 이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계가 많은 신체 활동을 필요에서 선택으로 바꿨듯이"라고 썼습니다. 이번엔 대상이 머리라는 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이 비유의 가장 약한 고리이기도 합니다. 머리는 몸과 달리, AI를 감독하고 목표를 정하는 데 계속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11절에서 다시 붙잡겠습니다.
6. 가장 강력한 증거 — AI에 진 뒤 오히려 강해진 바둑
네 비유가 '먼 과거의 이야기'라면, 우리 눈앞에서 이미 벌어진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바둑과 체스입니다. 둘 다 순수한 '생각의 게임'이고, 둘 다 기계가 사람을 확실히 넘어선 분야입니다. 스피넬리스의 예언이 맞다면, 이 두 게임에서 먼저 '생각이 취미가 된 세상'을 엿볼 수 있어야 합니다.
2016년 3월 15일, 실험이 시작된 날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이세돌 9단을 4대 1로 이겼습니다. 이 날짜는 사회과학자에게 아주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초인적 AI가 등장하기 전과 후"를 하루 단위로 정확히 가를 수 있는 분야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바둑에는 프로 기사들의 모든 수가 기보(棋譜)로 남아 있습니다.
홍콩시립대의 신민규(Minkyu Shin), 예일대의 김진(Jin Kim), 프린스턴대의 바스 판 오퓨스던(Bas van Opheusden)과 토머스 그리피스(Thomas L. Griffiths)는 이 점을 이용했습니다. 2023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 「초인적 AI는 새로움을 늘려 인간의 의사결정을 개선할 수 있다」는 1950년부터 2021년까지 71년 동안 프로 기사들이 둔 580만 수를 분석했습니다.
① 채점관 고용사람보다 강한 바둑 AI 카타고(KataGo)를 '채점관'으로 씁니다. 사람이 둔 수 하나하나에 대해, 그 자리에서 AI가 뒀을 최선의 수와 비교합니다.
② 580억 번의 가상 대국수 하나마다 1만 개의 대국 패턴을 시뮬레이션해서 '사람의 수를 뒀을 때의 승률'과 'AI의 수를 뒀을 때의 승률'을 잽니다. 580만 수 × 1만 = 580억 개의 가상 대국입니다.
③ 의사결정 품질 지수(DQI)두 승률의 차이로 의사결정 품질 지수(Decision Quality Index)를 만듭니다. AI의 최선에 가까울수록 높습니다.
④ 같은 사람끼리 비교기사마다 실력이 다르니 '기사 고정효과'를 통제합니다. 즉 "같은 사람이 해마다 얼마나 더 잘 두게 됐나"를 봅니다.
패널 A(왼쪽 위, 파란 점): 해마다 프로 기사들의 수가 1950년보다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세로 막대는 95% 신뢰구간, 즉 "이 정도 범위 안에 진짜 값이 있을 것"이라는 오차 범위입니다. 1950년부터 2015년까지 66년 동안 점들은 0 근처에서 거의 평평합니다. 바둑 이론서가 쏟아지고 프로 제도가 정비되고 한·중·일 기사들이 치열하게 경쟁했는데도, 수의 품질은 놀랄 만큼 제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빨간 점선(2016년 3월) 이후 점들이 계단처럼 뛰어오릅니다. 2017년 약 0.3, 2018년 약 0.55, 2019~2021년엔 0.7~0.8 근처까지 올라갑니다. (DQI는 'AI 최선 수의 승률 − 사람 수의 승률'을 100%에서 뺀 값이라, 같은 기사가 승률 손실을 그만큼 덜 내게 됐다는 뜻입니다.) 66년 동안 꿈쩍 않던 선이 5년 만에 꺾인 겁니다.
패널 B(오른쪽 위, 초록): 같은 분석을 월 단위로 한 것입니다. 2016~2017년 구간에서 띠 전체가 위로 휘어 오르는 모습이 더 또렷합니다.
패널 C·D(아래): '새로움 지수'입니다. 대국마다 "역사상 처음 나온 수순"이 몇 수째에 등장했는지를 잽니다. 기보가 쌓일수록 새로운 수순은 점점 뒤로 밀리기 때문에 선은 70년 내내 내려갑니다. 그런데 2016년 이후 갑자기 위로 튑니다. 기사들이 정석(定石)의 오솔길에서 더 일찍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그냥 AI 수를 외운 것 아냐?" — 논문이 반박하는 방법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심은 이것입니다. 프로 기사들이 AI의 수를 암기해서 따라 둔 것일 뿐이라면, 그건 '인간의 생각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복사기가 된 것'입니다. 논문은 세 가지 방법으로 이 의심을 검증합니다.
AI와 다르게 둔 수만 보기(그림 2): AI의 최선 수와 일치하는 수를 모두 빼고 다시 계산해도, 2016년 이후 품질 상승이 뚜렷합니다. 외운 수를 그대로 둔 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중반 수 보기: 바둑판은 20수만 넘어가도 99%가 역사상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국면이 됩니다. 이런 국면에서 정답을 외우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21~50수 구간에서도 품질이 올랐습니다.
상대가 AI 수순에서 벗어난 직후 보기: 둘 다 AI 수순을 외웠다면, 상대가 처음 이탈한 순간엔 외운 답이 없습니다. 그 순간의 수도 좋아졌습니다.
덧붙여, 2016년 이후 프로 기사의 수 가운데 약 40%는 AI의 최선 수와 일치했습니다. 그러니 '배워서 따라 두기'가 효과의 일부인 건 분명합니다. 버클리의 AI 연구자 스튜어트 러셀은 "기계와 연습한 사람이 기계가 좋아하는 수를 더 많이 두게 되는 건 당연하다"며, 측정 도구(AI 채점관)와 학습 대상(AI)이 같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정당한 의심이고, 그래서 위의 세 가지 검증이 중요합니다.
표 1 — 새로운 수의 '벌점'이 사라졌다
논문에서 가장 흥미로운 숫자는 표 1에 있습니다. 회귀분석의 계수를 쉬운 말로 풀어 보겠습니다.
항목
계수
쉬운 말로
AI 이후 (β1)
+0.598
2016년 이후 수의 품질이 전반적으로 올랐다
새로운 수 (β2)
−0.608
AI 이전엔 처음 보는 수를 두면 품질이 크게 떨어졌다 — 새로움에 '벌점'이 있었다
AI 이후 × 새로운 수 (β3)
+0.515
AI 이후엔 그 벌점이 대부분 사라졌다 (−0.608 + 0.515 ≈ −0.09)
AI 이전의 바둑계에서 새로운 수는 대개 나쁜 수였습니다. 수백 년 동안 검증된 정석에서 벗어나면 손해를 보는 게 보통이었으니까요. 그런데 AI가 "정석이 꼭 최선은 아니다"라는 걸 보여 주자, 사람들은 정석 밖을 탐험하기 시작했고, 그 탐험이 더는 손해가 아니게 됐습니다. 연구진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초인적 AI가 사람을 전통의 틀에서 끌어내 새로운 수를 탐색하게 만들었고, 그 탐색이 의사결정을 개선했다.
논문 첫머리에 인용된 이세돌의 말이 이 과정을 정확히 요약합니다. "알파고의 수를 보고, 내가 알던 수가 맞는 수였는지 의문이 들었다. 알파고 때문에 바둑을 더 공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같은 이세돌은 2019년 11월 "내가 1등이 되더라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다"며 은퇴했습니다. 한 사람 안에 두 반응이 다 있었다는 점이 오히려 이 이야기를 정직하게 만듭니다.)
체스 — 기계에 진 게임이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 됐다
체스는 바둑보다 20년 먼저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1997년 IBM의 딥블루가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겼을 때, 많은 사람이 "체스는 끝났다"고 했습니다.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2005년, 인터넷 '프리스타일' 체스 대회에서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그랜드마스터와 슈퍼컴퓨터 팀들을 제치고, 평범한 PC 세 대를 쓴 미국의 아마추어 두 명이 우승했습니다. 카스파로프는 이 결과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약한 사람 + 기계 + 더 나은 과정이, 강한 컴퓨터 단독보다 낫고, 더 놀랍게도 강한 사람 + 기계 + 열등한 과정보다 낫다."
2020년 10월,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이 공개된 뒤 3주 동안 미국의 체스 세트 판매는 87%, 체스 책 판매는 603% 늘었습니다.
체스닷컴(Chess.com) 회원은 2022년 12월 1억 명, 2025년 4월 2억 명을 넘었고, 2026년 봄에는 2억 5,000만 명을 넘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체스 엔진은 1997년보다 비교할 수 없이 강해졌습니다. 오늘날 스마트폰 앱의 엔진도 세계 챔피언을 가볍게 이깁니다. 그런데 체스를 두는 사람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습니다. 아무도 "기계가 더 잘 두는데 왜 사람이 두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취미가 된 생각'의 모습입니다.
체스와 바둑이 보여 주는 것은 스피넬리스 테제의 밝은 면입니다. 기계가 생각을 더 잘하게 된 분야에서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제적 압박이 줄어든 자리에서 더 많은 사람이, 더 자유롭게, 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카스파로프는 패배 후 사람과 엔진이 한 팀으로 두는 '어드밴스드 체스(센토 체스)'를 제안했고, 오늘날 모든 프로 기사는 엔진을 사범으로 삼아 공부합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체스와 바둑은 애초에 취미였던 분야입니다. 프로 기사는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원래 생계를 위해 체스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체스의 번영은 "취미가 된 생각도 충분히 즐겁고 깊을 수 있다"는 증거이지, "생계를 잃은 수천만 지식노동자가 행복하게 취미로 옮겨 갈 것"이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이 차이는 뒤의 반론 절에서 다시 다룹니다.
7. 사상의 계보 — "일이 끝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2,400년 된 질문
"생각이 여가가 된다"는 말은 낯설게 들리지만, 사실 서양 사상사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스피넬리스는 이 계보를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그의 글은 이 긴 대화의 최신 문장입니다.
기원전 4세기아리스토텔레스 — "우리는 여가를 갖기 위해 바쁘다." 여가(스콜레)는 일의 반대가 아니라 일의 목적이었다.
영어 'school'의 뿌리는 그리스어 스콜레(σχολή), 뜻은 '여가'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여가란 빈둥거림이 아니라, 먹고사는 일에서 풀려나 철학하고 토론하고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에서 "우리는 여가를 갖기 위해 바쁘게 일하고(ascholoumetha), 평화를 갖기 위해 전쟁한다"고 썼습니다. 그리스어로 '일'은 아스콜리아(ascholia), 즉 '여가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일이 기본이고 여가가 예외인 게 아니라, 여가가 기본이고 일이 그 결핍이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스피넬리스의 예언은 어떤 의미에서 2,400년 전으로의 귀환입니다. 생각이 생계에서 풀려나 '스콜레'가 되는 것. 다만 불편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스 시민의 여가는 노예의 노동 위에 서 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정치학』에서 이를 당연하게 여겼죠. 오스카 와일드는 1891년 「사회주의 아래 인간의 영혼」에서 이 문제를 정확히 짚었습니다. "세계의 미래는 기계의 노예제에 달려 있다." 사람 대신 기계가 노예가 되면, 모두가 그리스 시민처럼 살 수 있다는 꿈입니다. AI는 그 꿈의 가장 최신판입니다.
스피넬리스 글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전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독일 이데올로기』(1845~46년 집필, 1932년 첫 완간)의 한 구절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 오늘은 이것을, 내일은 저것을 할 수 있다. 아침엔 사냥하고, 오후엔 낚시하고, 저녁엔 가축을 돌보고, 저녁 식사 후엔 비평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대로. 그러면서도 사냥꾼도, 어부도, 목동도, 비평가도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스피넬리스의 비유와 첫 단어가 같습니다. 사냥. 마르크스가 꿈꾼 것은 분업의 굴레에서 풀려난 인간이 사냥도 비평도 '직업'이 아니라 '활동'으로 하는 세상이었습니다. 스피넬리스가 예언한 것도 생각이 '직업'이 아니라 '활동'이 되는 세상입니다. 차이는 그 세상에 이르는 길입니다. 마르크스에게는 사회 혁명이, 스피넬리스에게는 기술 혁명이 그 길입니다.
케인스 — 성장은 맞혔고 15시간은 틀렸다
1930년, 대공황이 한창일 때 케인스는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짧은 에세이를 썼습니다. 두 가지 예언이 담겨 있습니다.
100년 뒤 선진국의 생활 수준은 4~8배가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주 15시간, 하루 3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다. 인류의 진짜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걱정에서 풀려난 자유를 어떻게 쓸 것인가"가 될 것이다.
2030년을 4년 앞둔 지금 채점해 보면, 첫 번째는 맞았습니다. 미국의 1인당 실질소득은 1930년의 5배를 넘었습니다. 두 번째는 크게 틀렸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주 40시간 안팎을 일합니다. 왜 틀렸을까요? 경제학자들의 답은 여러 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여가 대신 더 많은 소비를 골랐고, 남과 비교하는 '상대적 욕구'는 끝이 없으며, 생산성 향상의 열매가 노동 시간 단축이 아니라 소득 불평등으로 흘러갔다는 것입니다.
케인스의 실패는 스피넬리스에게 중요한 경고입니다. 기술이 가능하게 한다고 해서 사회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AI가 생각을 대신할 수 있게 돼도, 사람들이 '생각의 여가'를 누리게 될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러셀 — 핀 공장의 우화
2년 뒤인 1932년,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하루 4시간 노동을 주장하며 유명한 우화를 듭니다. 어떤 핀 공장이 새 기계 덕분에 생산성이 두 배가 됐다고 합시다. 합리적인 세상이라면 모두가 하루 4시간만 일하면 됩니다. 그런데 현실에선 절반의 노동자가 해고되고,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8시간을 일합니다. 한쪽엔 실업, 한쪽엔 과로. 여가는 늘었지만 고르게 나뉘지 않고, 실업이라는 고통의 형태로 한쪽에 몰렸습니다.
러셀의 핀 공장은 2026년의 사무실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의 「탄광 속 카나리아」 연구(브리뇰프슨 외)는 AI에 가장 많이 노출된 직업에서 22~25세 청년의 고용이 기대 경로보다 19% 낮다고 보고합니다(2026년 8월 개정판). 해고보다 신규 채용 감소가 주된 경로입니다. 기존 직원은 AI를 쓰며 더 많은 일을 하고, 신입은 들어오지 못합니다. 러셀의 우화와 똑같은 구조입니다.
피퍼, 위너, 아렌트 — 2차 대전 뒤의 세 목소리
요제프 피퍼(『여가, 문화의 토대』, 1948): 독일 철학자 피퍼는 전후 재건의 '총체적 노동' 분위기에 맞서, 여가란 일을 더 잘하기 위한 휴식이 아니라 세계를 받아들이고 관조하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생각이 쓸모를 잃으면 오히려 진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노버트 위너(『인간의 인간적 활용』, 1950):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 위너는 놀랍도록 정확한 경고를 남겼습니다. "자동 기계는 노예 노동의 정확한 경제적 등가물이다. 노예 노동과 경쟁하는 노동은 노예 노동의 경제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1949년 미국 자동차노조 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내 공장 자동화에 협력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한나 아렌트(『인간의 조건』, 1958): 서문에서 아렌트는 가장 서늘한 문장을 씁니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노동에서 해방되려는 노동자의 사회다. 그런데 이 사회는 그 자유를 얻을 가치가 있게 만들어 줄, 더 높고 더 의미 있는 활동을 더는 알지 못한다." 노동 없는 노동자들의 사회. 일이 사라졌는데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회입니다.
아렌트의 경고는 스피넬리스의 마지막 처방, "일 바깥에서 목적 있는 삶을 쌓으라"와 정면으로 만납니다. 생각이 취미가 되는 세상은, 사람들이 취미로 생각하는 법을 알 때만 좋은 세상입니다.
1964년 「삼중 혁명」 — 너무 이른 경보
1964년 3월, 노벨상 수상자 라이너스 폴링을 비롯한 지식인 30여 명이 존슨 대통령에게 「삼중 혁명」이라는 메모를 보냈습니다. 세 혁명 가운데 첫째가 '사이버네이션', 즉 컴퓨터와 자동화였습니다. 이들은 자동화가 대량 실업을 낳을 테니 소득 보장(오늘날의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경보는 60년 이르게 울렸습니다. 1960년대 이후 미국의 고용은 오히려 크게 늘었습니다. 이 '양치기 소년' 같은 역사가, 오늘날 경제학자들이 스피넬리스류의 예언에 신중한 이유입니다. 다만 늑대가 끝내 오지 않았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스테빈스 — '진지한 여가'라는 해법
마지막으로, 스피넬리스의 처방을 가장 구체적으로 만들어 주는 개념이 있습니다. 캐나다 사회학자 로버트 스테빈스가 1982년 제안한 진지한 여가(serious leisure)입니다.
스테빈스는 여가를 둘로 나눴습니다. TV 보기나 낮잠 같은 가벼운 여가, 그리고 경력처럼 쌓이는 진지한 여가. 진지한 여가를 하는 사람은 세 부류입니다.
유형
정의
예
'생각 취미'로 옮기면
아마추어
같은 일을 직업으로 하는 '프로'가 따로 있다
아마추어 천문가, 동네 오케스트라 단원
AI 시대의 수학자·작가·연구자 대부분
취미가
대응하는 직업이 없다
수집가, 공예가, 체스 애호가
퍼즐, 게임, 손으로 증명하기
자원활동가
대가 없이 남을 돕는다
멘토, 시민단체 활동가
생각을 남을 위해 쓰는 일
스피넬리스의 예언을 스테빈스의 언어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AI는 직업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을 '아마추어'로 만든다. 그리고 아마추어의 역사는 결코 초라하지 않습니다.
찰스 다윈은 비글호에 무급 박물학자로 탔습니다.
2007년 시작된 시민과학 프로젝트 갤럭시 주에선 첫해 약 15만 명이 5,000만 건 넘게 은하를 분류했습니다.
2011년 단백질 접기 게임 폴드잇의 게이머들은 15년 동안 풀리지 않던 원숭이 에이즈 바이러스 단백질 분해효소 구조를 3주 만에 풀어 『네이처 구조·분자생물학』에 논문을 실었습니다.
2018년 노화 연구자 오브리 드 그레이는 '아마추어 수학자'로서 평면 색칠 문제(하드비거–넬슨 문제)에서 60년 만의 진전을 이뤘습니다.
2022년 11월, 영국 요크셔의 은퇴한 인쇄 기술자 데이비드 스미스는 취미로 종이 타일을 자르다 수학자들이 50년 넘게 찾던 '아인슈타인 타일'(하나의 모양으로 평면을 반복 없이 채우는 타일)을 발견했습니다.
데이비드 스미스의 이야기는 스피넬리스 테제의 가장 아름다운 예고편입니다. 생계와 무관한 사람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전문가들이 못 푼 문제를 풀었습니다. 생각이 취미가 된 세상에선 이런 일이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8. 경제학의 '아키텍처' — 직업은 과업의 묶음이다
이제 이 글의 '아키텍처', 즉 스피넬리스의 주장을 경제학이 어떤 구조로 이해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AI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할 때 경제학자들이 쓰는 기본 설계도가 있습니다. 과업 기반 모델(task-based model)입니다.
기본 설계도 — 오토·레비·머네인의 2×2
2003년 MIT의 데이비드 오토, 하버드의 프랭크 레비, 리처드 머네인은 『계간 경제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중요한 관점 전환을 제안했습니다. 기술은 '직업'을 대체하지 않는다. 직업을 이루는 '과업'을 대체한다. 그리고 과업을 두 축으로 나눴습니다.
정형(routine) vs 비정형(non-routine): 명확한 규칙으로 적을 수 있는가?
인지(cognitive) vs 육체(manual): 머리를 쓰는가, 몸을 쓰는가?
정형 (규칙으로 적을 수 있음)
비정형 (규칙으로 적기 어려움)
인지
장부 정리, 계산, 서류 분류 → 1980~2010년대 컴퓨터가 대체
분석, 글쓰기, 설계, 판단, 협상 → 2023년 이후 생성형 AI가 진입
육체
조립 라인, 포장 → 산업 로봇이 대체
청소, 돌봄, 요리, 배관 → 아직 가장 안전한 칸
2003년의 결론은 이랬습니다. 컴퓨터는 정형 과업(왼쪽 열)을 대체하고, 비정형 인지 과업(오른쪽 위)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보완한다. 그래서 1980년대 이후 고학력 전문직의 임금은 오르고, 중간 숙련 사무직은 줄어드는 '일자리 양극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생성형 AI가 이 설계도에서 특별한 이유는 바로 오른쪽 위 칸을 공격한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컴퓨터가 못 하는 일'의 대명사였던 분석·글쓰기·설계가 이제 AI의 영역에 들어왔습니다. 스피넬리스가 "이번엔 지식노동자가 대상"이라고 말할 때, 그가 가리키는 칸이 바로 여기입니다.
모라벡의 역설 — 왜 머리가 몸보다 먼저 넘어가나
1988년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은 이상한 현상을 지적했습니다. "컴퓨터가 지능 검사나 체커 게임에서 어른 수준의 성능을 내게 하는 건 비교적 쉽지만, 지각과 이동에서 한 살 아기의 능력을 갖게 하는 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이것이 모라벡의 역설입니다.
이 역설은 스피넬리스의 비유가 왜 뒤집혀 있는지 설명해 줍니다. 산업혁명은 몸의 일을 먼저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AI 혁명은 머리의 일을 먼저 가져가고, 배관공과 간병인의 일은 마지막까지 남깁니다. 사냥·목공·승마가 몸의 일이었다면, 이번엔 '생각'이 그 자리에 섭니다.
숫자로 보는 노출도 — 47%, 80%, 0.66%
프레이·오즈번 2013
미국 일자리 47% 고위험
엘론도 외 2023 (10%+)
노동자 80%
엘론도 외 2023 (50%+)
노동자 19%
막대 길이 = 해당 비율(100% 기준). 프레이·오즈번은 '자동화 고위험 직업'의 고용 비중, 엘론도 외는 '과업의 10% 이상 / 50% 이상이 GPT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 비중이다.
프레이·오즈번(2013): 옥스퍼드의 두 연구자는 702개 직업을 분석해 미국 고용의 47%가 자동화 고위험군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이 숫자는 10년 동안 AI 공포의 상징이 됐지만, 실제로 그만큼의 일자리가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직업 전체가 아니라 그 안의 과업 일부만 자동화됐기 때문입니다.
엘론도·매닝·미시킨·록(2023, 『사이언스』 2024): OpenAI와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GPT는 GPT다(GPTs are GPTs)」라는 재치 있는 제목의 논문을 썼습니다. 앞의 GPT는 언어 모델, 뒤의 GPT는 증기기관·전기 같은 '범용 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입니다. 결론: 미국 노동자의 약 80%가 과업의 10% 이상, 약 19%는 과업의 50% 이상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고소득·고학력 직업일수록 노출도가 높았습니다. 기존 자동화와 정반대 패턴입니다.
아세모글루(2024~2025): 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다론 아세모글루는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그의 계산은 이렇습니다. 전체 과업의 약 20%가 AI에 노출되고, 그중 수익성 있게 자동화할 수 있는 건 약 23%, 그래서 GDP의 약 4.6%에 해당하는 과업에서 평균 15% 정도 비용이 절감된다. 결과는 향후 10년 총요소생산성 증가 0.66% 이하. "혁명"이라기엔 초라한 숫자입니다.
세 숫자가 서로 다른 이유는 질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프레이·오즈번은 "기술적으로 가능한가", 엘론도는 "얼마나 노출되는가", 아세모글루는 "실제로 경제에 얼마나 반영되는가"를 물었습니다. 스피넬리스의 주장은 첫 번째 질문에 가장 가깝고, 그의 비판자들은 세 번째 질문을 듭니다.
ATM의 역설 — 기계가 들어오면 일자리가 늘기도 한다
경제학자들이 스피넬리스류의 예언에 신중한 대표적 이유가 ATM 이야기입니다. 1970년대 현금자동입출금기가 등장하자 모두가 은행 창구 직원이 사라질 거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지점당 창구 직원은 1988년 약 20명에서 2004년 약 13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지점을 여는 비용이 싸지자 도시 지역 은행 지점 수가 40% 넘게 늘었고, 결과적으로 창구 직원의 총수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창구 직원의 일은 현금 세기에서 상담과 영업으로 바뀌었습니다. 오토는 2015년 논문 「왜 아직도 일자리가 이렇게 많은가?」에서 이 사례를 들며, 자동화가 과업을 가져가도 사람의 일은 재구성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엔 후일담이 있습니다. 2010년대 이후 창구 직원은 정말로 줄기 시작했습니다. ATM이 아니라 모바일 뱅킹 때문이었습니다. 기술의 두 번째 파도가 첫 번째 파도가 남긴 일자리를 가져간 것입니다.)
이 논리를 '생각'에 대입하면 제번스의 역설이 됩니다. 1865년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제번스는 증기기관의 석탄 효율이 좋아지자 석탄 소비가 오히려 늘었다는 걸 관찰했습니다. 생각이 싸지면 사람들은 생각을 덜 쓰는 게 아니라, 이전엔 엄두도 못 내던 곳에 생각을 쓰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스피넬리스 자신도 2026년 7월 글에서 "코딩 에이전트가 좋아질수록 우리가 맡기는 과제도 더 까다로워질 것"이라고 썼습니다.
튜링 함정 — 대체할 것인가, 증강할 것인가
스탠퍼드의 에릭 브리뇰프슨은 2022년 「튜링 함정」이라는 논문에서 중요한 구분을 합니다. 사람을 흉내 내는 AI(자동화)는 노동자의 협상력을 빼앗고, 사람을 증강하는 AI는 협상력을 지켜 준다. 그런데 기업과 정부의 유인 구조가 자동화 쪽으로 너무 기울어 있다는 것이 그의 경고입니다. 스피넬리스의 예언이 실현될지는 기술보다 이 선택에 달려 있을지 모릅니다.
코리넥과 서(2024)는 한 걸음 더 나아가 AGI로 가는 시나리오를 모형으로 그렸습니다. 결론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과업의 복잡도 분포'에 달려 있습니다. 복잡한 과업이 끝없이 이어지는 '두꺼운 꼬리'라면 임금은 계속 오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과업의 복잡도에 상한이 있다면, 완전 자동화의 순간 임금은 무너지고, 자동화가 자본 축적보다 빠르면 AGI 이전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2026년의 첫 데이터 — 탄광 속 카나리아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가장 주목받는 데이터는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의 「탄광 속 카나리아」 연구입니다. 미국 최대 급여 대행사 ADP의 급여 자료로 수백만 명의 고용을 추적했습니다. 2025년 8월 첫 버전, 같은 해 11월 개정판, 2026년 8월 최신판(2026년 6월까지의 자료)으로 갱신되면서 숫자가 계속 커졌습니다.
2025년 8월판
−13%
2025년 11월판
−16%
2026년 8월판
−19%
AI 노출도가 가장 높은 직업의 22~25세 고용이, 노출도가 낮은 직업의 같은 나이대에 비해 기대 경로보다 얼마나 낮은지(상대 감소율). 막대 길이는 최신판 19%를 100%로 둔 비율.
최신판의 핵심 발견은 네 가지입니다. ① 경제 전체의 대량 실업은 아직 없다. ② 효과는 해고가 아니라 신규 채용 감소로 나타난다. ③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직업에 집중되고, 보완하는 직업에선 나타나지 않는다. ④ 임금은 그대로이고 고용 인원이 조정된다. 연구진은 금리 인상으로는 이 패턴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보충 분석도 냈습니다.
스피넬리스의 예언이 맞다면, 그 첫 신호는 바로 이런 모습일 겁니다. 오늘 일하는 사람이 내일 해고되는 게 아니라, 내일 들어올 사람의 자리가 조용히 사라지는 것. 경력의 사다리 맨 아래 칸부터 없어지는 것입니다.
내 직업으로 직접 돌려 보기
아래 위젯은 과업 기반 모델을 손으로 돌려 보는 장치입니다. 직업을 고르고 연도를 움직이면, 각 과업이 사람 → 사람+AI(증강) → AI(자동화)로 넘어갑니다. '서명·책임은 사람이 진다' 스위치를 끄면 판단 과업까지 AI로 넘어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규제가 '저항'인지 '설계'인지가 여기서 갈립니다.
위젯을 돌려 보면 하나의 패턴이 보입니다. 거의 모든 직업에서 정보처리형 과업이 먼저 넘어가고, 판단·책임과 관계·몸의 과업이 마지막까지 남습니다. 그렇다면 '생각이 취미가 된다'는 말은 정확히는 이렇게 고쳐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 정보를 처리하는 생각은 취미가 되고, 책임지는 생각과 사람을 대하는 생각은 직업으로 남는다.
9. 저항 — 지식노동자는 러다이트가 될까
스피넬리스는 이번 저항이 과거보다 "더 거셀 것"이라고 예언하면서도, 결국 막지 못할 거라고 봤습니다. 이 주장을 역사와 2026년의 현실에 비춰 보겠습니다.
러다이트(1811~1816): 영국 노팅엄셔와 요크셔의 숙련 직조공들이 전설 속 지도자 '네드 러드 장군'의 이름으로 기계식 직조기를 부쉈습니다. 정부는 기계 파괴를 사형까지 가능한 중범죄로 만들고 군대를 보냈습니다. 흔히 '기술 혐오자'로 기억되지만, 역사학자들은 그들이 기계 자체가 아니라 임금을 깎고 숙련을 무시하는 방식의 기계 도입에 반대했다고 봅니다.
적기조례(1865): 영국은 증기 자동차가 시골길에서 시속 약 6km(4마일), 도시에서 약 3km(2마일)를 넘지 못하게 하고, 차 앞 약 55m(60야드)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들고 걷게 했습니다(깃발 조항은 1878년에 빠졌지만 앞서 걷는 사람은 남았습니다). 마차 업계와 철도 회사의 이해가 반영된 이 규제는 1896년 풀릴 때까지 영국 자동차 산업을 독일·프랑스보다 뒤처지게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둘 다 기술을 '지연'시켰을 뿐 '중단'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스피넬리스가 "과거 혁명을 막지 못했다"고 말할 때 떠올리는 장면이 이런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다를까?
스피넬리스의 핵심 관찰은 저항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러다이트는 숙련 노동자였지만 정치권력이 없었습니다. 반면 2026년의 지식노동자는 다릅니다.
1
전문성
의사·변호사·회계사는 국가가 발급하는 면허로 시장 진입 자체를 통제한다. "AI는 면허를 딸 수 없다"는 건 강력한 방어선이다.
2
정보 통제
진료 기록, 소송 자료, 기업 회계처럼 AI가 학습하고 일하려면 필요한 데이터가 이들의 손에 있다.
3
의사결정 권한
AI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경영진·공무원·입법자 자신이 지식노동자다. 러다이트는 공장주를 설득해야 했지만, 이들은 스스로 결정한다.
실제로 2026년의 규제는 이미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EU AI법은 2024년 발효된 뒤 단계적으로 시행되며 고위험 AI에 사람의 감독 의무를 지우고 있고, 한국의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도 2026년 1월 시행됐습니다. 의료·법률 분야에선 "최종 판단과 서명은 면허를 가진 사람이 한다"는 원칙이 거의 모든 나라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저항인가, 설계인가
여기서 스피넬리스의 프레임에 의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는 규제를 "AI의 날개를 자르려는" 저항으로 봅니다. 그런데 면허와 책임 제도는 단순히 기득권을 지키는 장치만은 아닙니다. "일이 잘못됐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사회의 답이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점을 가장 잘 설명한 사람은 스피넬리스 자신입니다. 그는 불과 석 달 전인 2026년 7월 「베어링스, 보잉, 그리고 봇」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AI에 일을 맡기는 것은 사람에게 일을 맡기거나 외주를 주는 것과 같다. 실행은 맡길 수 있지만 책임은 결코 맡길 수 없다. 그는 1995년 한 트레이더의 무단 거래로 무너진 베어링스 은행(감독 실패)과, 핵심 지식까지 외주로 넘겼다가 787 드림라이너 개발에서 큰 어려움을 겪은 보잉(지식의 외주화)을 예로 들며, AI에 맡길 일은 "범위가 정해져 있고, 관찰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해커뉴스 토론에서도 이 지점이 반복해서 나왔습니다. 스피넬리스가 직접 올린 첫 게시물에 달린 유일한 댓글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책임(accountability)이 핵심이다. AI에게는 책임이 없다."
그러니 면허 제도는 '날개를 자르는 가위'라기보다 '누가 조종석에 앉는가'를 정하는 설계도에 가깝습니다. 앞의 과업 분해기에서 '서명·책임은 사람이 진다'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며 본 차이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설계가 유지된다면, 생각은 완전히 취미가 되는 게 아니라 '책임지는 생각'의 형태로 직업에 남습니다.
정치적 힘의 역설
해커뉴스에서 가장 날카로운 반론 중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사람이 경제적 주체이기를 멈추면, 정치적으로 행동할 힘도 잃는다." 파업은 노동이 필요할 때만 무기가 됩니다. AI가 모든 생각을 대신할 수 있게 되면, 지식노동자의 '정보 통제'와 '의사결정 권한'이라는 무기도 함께 녹아내립니다. 스피넬리스가 말한 '더 거센 저항'은 지식노동자가 아직 필요한 동안에만 가능하다는 역설입니다. 그렇다면 저항의 시간은 생각보다 짧을 수 있고, 그 짧은 시간 안에 어떤 제도를 설계하느냐가 결정적입니다.
10. 그림자 — 생각을 맡기면 머리에선 무슨 일이 생기나
사냥을 그만둔 인류의 다리는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는 헬스장에 갑니다. 해커뉴스에서 한 독자가 이렇게 썼습니다. "크레인으로 물건을 들 수도 있고, 헬스장에 갈 수도 있다." 다른 독자는 짧게 덧붙였습니다. "헬스장은 어디에나 있다."
이 비유는 스피넬리스 테제의 숨은 전제를 드러냅니다. 몸의 일을 기계에 맡긴 뒤 우리는 몸이 약해지는 걸 경험했고, 그래서 일부러 운동을 합니다. 생각도 마찬가지일까요? 생각을 AI에 맡기면 머리가 약해지고, 그래서 일부러 '생각 운동'을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연구들을 시간순으로 보겠습니다.
인지 오프로딩(cognitive offloading), 즉 머리가 할 일을 바깥 도구에 맡기는 것에 대한 최초의 걱정은 문자를 향했습니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이집트 신화 하나를 들려줍니다. 문자를 발명한 신 테우트가 이를 이집트 왕 타무스에게 자랑하자, 왕은 이렇게 답합니다.
"이것은 배우는 자들의 영혼에 망각을 낳을 것이다. … 그들은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대개는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이 걱정을 아는 건 플라톤이 그것을 글로 썼기 때문입니다. 트리테미우스의 「필경사 예찬」이 인쇄본으로 퍼진 것처럼요. 새 기술에 대한 걱정은 늘 그 기술을 타고 전해집니다.
구글 효과(2011) — 내용이 아니라 위치를 기억한다
2011년 『사이언스』에 실린 스패로·리우·웨그너의 연구는 사람들이 나중에 다시 찾아볼 수 있다고 믿는 정보는 내용 자체보다 '어디에 있는지'를 더 잘 기억한다는 걸 보여 줬습니다. 인터넷이 일종의 '외부 기억 장치'가 된 것입니다. 연구진은 이것이 꼭 나쁜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원래 배우자·동료에게 기억을 나눠 맡기며 살아왔으니까요(교류 기억).
런던 택시 기사와 GPS — 쓰는 만큼 자라는 뇌
뇌가 '쓰는 만큼 자란다'는 가장 유명한 증거는 런던 택시 기사들입니다. 런던 택시 면허 시험 '더 놀리지(The Knowledge)'는 2만 5,000개 거리를 외워야 하는 악명 높은 시험입니다. 2000년 매과이어 등의 연구(PNAS)는 택시 기사들의 후방 해마(공간 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일반인보다 크고, 운전 경력이 길수록 더 크다는 걸 보여 줬습니다.
반대 방향의 증거도 있습니다. 2020년 다마니와 보봇의 연구(『사이언티픽 리포츠』)는 운전자 50명을 조사해 평생 GPS를 많이 쓴 사람일수록 GPS 없이 길을 찾을 때 공간 기억이 나쁘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3년 뒤 13명을 다시 조사했더니, 그사이 GPS를 많이 쓴 사람일수록 해마 의존 기억의 감소가 더 가팔랐습니다. 원래 길눈이 어두워서 GPS를 많이 쓴 게 아니었습니다.
2025년, 생성형 AI에 대한 첫 연구들
연구
설계
발견
한계
코스미나 외 (MIT 미디어랩, 2025) 「ChatGPT를 쓴 당신의 뇌」
54명을 LLM·검색엔진·맨머리 세 그룹으로 나눠 에세이 쓰기, 뇌파(EEG) 측정
맨머리 그룹의 뇌 연결성이 가장 강하고 LLM 그룹이 가장 약했다. LLM 그룹의 83%가 방금 쓴 자기 에세이를 제대로 인용하지 못했다(다른 그룹 11%)
표본이 작고, 발표 당시 동료 심사 전
리 외 (카네기멜런·마이크로소프트, CHI 2025)
지식노동자 319명이 보고한 936개 실제 사례 설문
AI를 믿을수록 비판적 사고를 덜 하고, 자기 실력을 믿을수록 더 했다. 비판적 사고의 내용이 '직접 하기'에서 '검증·통합·감독'으로 옮겨 간다
자기 보고 설문
게를리히 (2025, 『소사이어티스』)
666명 설문·인터뷰
AI를 자주 쓸수록 비판적 사고 점수가 낮고, 그 관계를 인지 오프로딩이 매개한다. 젊을수록 의존도가 높다
상관관계일 뿐 인과 아님
바스타니 외 (PNAS 2025) 「안전장치 없는 생성형 AI는 배움을 해칠 수 있다」
튀르키예 고교생 약 1,000명 무작위 실험
연습 중엔 GPT-4가 성적을 48%(그냥 GPT)·127%(튜터형 GPT) 올렸다. 그런데 AI 없이 본 시험에서 그냥 GPT 그룹은 대조군보다 17% 낮았다. 튜터형은 대조군과 비슷했다
한 학교, 수학 과목
이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건 무작위 실험인 바스타니 연구입니다. 결과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AI를 목발로 쓰면, 목발을 치웠을 때 넘어진다. 반면 답을 바로 주지 않고 힌트만 주도록 설계한 '튜터형 GPT'를 쓴 학생들은 실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바둑과 튀르키예 교실을 나란히 놓으면
여기서 6절의 바둑 연구와 이 연구를 나란히 놓으면 흥미로운 그림이 나옵니다.
튀르키예 고교생 AI가 답을 대신 냄
→
AI 치우자 −17%
프로 바둑 기사 AI와 공부한 뒤 스스로 둠
→
의사결정 품질 66년 만의 상승
차이는 누가 수를 두느냐입니다. 학생들은 AI가 문제를 풀게 했고, 바둑 기사들은 AI에게 배운 뒤 대국장에서는 혼자 두었습니다. 바둑 대국에선 AI를 쓸 수 없으니까요. 바둑의 규칙이 강제로 '연습하기'를 만들어 준 셈입니다.
이것이 '생각이 취미가 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일지 모릅니다. 체스와 바둑이 AI 시대에 번성한 건, 그것이 AI 없이 직접 해야 하는 활동으로 정의돼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 중 엔진을 쓰면 반칙입니다. 생각이 취미가 된다면, 그 취미에도 이런 '규칙'이 필요합니다. 헬스장에서 크레인을 쓰지 않는 것처럼요.
스피넬리스 자신의 경고
여기서도 흥미로운 건, 이 경고를 가장 분명히 한 사람이 스피넬리스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그는 2026년 7월 글에서 인지 오프로딩 연구를 인용하며 "우리가 기르려는 바로 그 생각을 AI에 맡기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5월 글 「AI가 생성한 코드를 리뷰하기가 지독하게 어려운 이유」에서는 더 구체적이었습니다. AI 없이 일할 땐 "이해하지 못한 코드는 고칠 수 없다"는 자연스러운 관문이 있었는데, AI가 그 관문을 없앴다는 것입니다. 그는 인지심리학의 네 가지 함정(메타인지 감시의 약점, 설명 깊이의 착각, 그럴듯해 보이도록 쓰인 LLM 출력, 자동화 편향)을 들며 "사람 리뷰어는 심각하게 불리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아래 위젯은 이 모든 연구를 하나의 장난감 모형으로 묶은 것입니다. 업무 중 AI에 맡기는 비율과, 일 밖에서 '취미로' 생각하는 시간을 바꿔 가며 5년 뒤의 실력을 보세요. 계수는 실측값이 아니라 모양을 보여 주기 위한 가정입니다.
11. 반론 — 421개의 댓글, 그리고 스피넬리스 대 스피넬리스
이제 이 글이 받은 비판을 정면으로 다뤄 보겠습니다. 해커뉴스 토론(308점, 댓글 421개)과 로브스터스(댓글 18개), 블로그 댓글, 마스토돈·블루스카이의 반응을 모으면 반론은 크게 일곱 갈래로 나뉩니다.
일곱 갈래의 반론
갈래
핵심 주장
대표 댓글 (요약)
① 먹고사는 문제
취미는 소득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의 과제는 생계를 꾸리는 것 자체다. 경제가 100% 자동화되면 누가 취미를 갖겠나?"(goda90, 답글 21개) / "AI가 일자리를 가져가 밥을 못 사면 생각은 취미가 될 수 없다"(로브스터스 최다 추천) / "생각은 내가 아이를 먹이는 방법이다"(numeri)
② 오히려 더 생각한다
AI를 감독하느라 인지 부담이 커졌다
"LLM은 강력한 자동완성일 뿐 생각하지 않는다. 계속 확인해야 해서 내 인지 부담은 오히려 높다"(dvt) / "10초마다 새 결정을 내리느라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생각한다"(teekert)
③ 비유가 틀렸다
선호와 정치를 무시한 비역사적 비유
"전자레인지가 식당을 망하게 하고, 헬리콥터가 등산을 끝낸 것처럼 말이지"(lsy, 반어) / "노동은 변형됐지 취미가 된 적은 없다"(ploum)
④ 들쭉날쭉한 지능
수학의 성공이 다른 분야로 이어지지 않는다
"검증할 방법도 데이터도 없는 분야가 많다"(JPC21) / "글자 세기와 미해결 문제는 다른 종류의 문제라 비교 자체가 잘못됐다"(WilhelmVonWeiner)
⑤ 민주주의
생각하지 않는 시민은 스스로 통치할 수 없다
"생각이 취미가 되면 우린 끝장이다. 민주주의가 지속될 수 없다"(gspr) / "경제 주체이기를 멈추면 정치적 행동력도 잃는다"
⑥ 의미와 존엄
생각은 자부심과 쓸모의 원천이다
"AI가 최전선 수학 문제 100개를 풀면, 그건 사람이 자랑스럽고 쓸모 있다고 느낄 기회 100개가 사라진 것"(awfulneutral) / "모든 병을 고쳐도 더 길고 더 공허한 삶이 될 뿐이라면?"
⑦ 책임
책임은 위임할 수 없다
"책임이 핵심이다. AI에겐 책임이 없다"(Juliate) / "책임은 AI에 위임돼선 안 된다"(bentt)
물론 지지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LLM이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비슷한 결과를 내는지만 중요하다"(warkdarrior), "생각은 이미 대중에게 취미가 됐다, 그것도 멸종 위기의 취미"(stego-tech), "생각을 취미로 삼던 시대가 르네상스였다, 농업 잉여가 그걸 가능하게 했다"(mbgerring) 같은 댓글들입니다.
그리고 가장 아픈 댓글은 오랜 독자에게서 나왔습니다. 로브스터스의 한 사용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중요한 걸 많이 배운 분에게서 이렇게 암울하고 허술한 글을 읽게 되어 실망스럽다. 그의 책 『코드 리딩』은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저자의 답
스피넬리스는 몇몇 반론에 직접 답했습니다.
"비유가 틀렸다"에 대해: 해커뉴스에서 그는 미국 노동인구 중 농업 종사자가 1820년 72%에서 2017년 1.6%로 줄었고 "트랙터가 큰 역할을 했다"고 답했습니다. 또 "우리는 연필과 종이로 제곱근 구하는 법을 배우지 않게 됐다"는 예도 들었습니다.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에 대해: 마스토돈에서 그는 중요한 해명을 했습니다. "내 글은 인간의 모든 생각이 아니라 인지노동의 축소를 다룬다."
블루스카이에서 한 사용자가 "우린 사냥하는 귀족이 아니라 농장 감독관이 될 것"이라고 반박하자, 그는 다시 농업 인구 비율로 답했습니다.
그런데 '농업 인구 72% → 1.6%'라는 답은 정확히 반론 ①과 ③이 겨냥하는 지점을 비켜 갑니다. 농민은 사라졌지만, 농민의 후손은 취미로 농사를 짓게 된 게 아니라 공장과 사무실로 갔습니다. 농업 인구 통계가 보여 주는 건 '여가로의 전환'이 아니라 '다른 일로의 재배치'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입니다. 생각하던 사람들은 이번엔 어디로 재배치되는가? 그 '어디'가 없다는 것이 스피넬리스의 진짜 주장이라면, 그건 비유가 아니라 소득 분배 문제로 옮겨 가야 합니다.
스피넬리스 대 스피넬리스
이 글에서 가장 흥미로운 반론은 사실 스피넬리스 자신의 과거 글입니다. 2026년 한 해 동안 그가 쓴 AI 관련 글을 시간순으로 놓으면, 하나의 궤적이 보입니다.
3월 2일「장애의 지평선을 향한 바이브 코딩」 —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을 '장애(incident)'로 비튼 풍자 글. "박사급 추론"이라는 주장을 비웃고, "AGI는 늘 1년 뒤"라고 꼬집는다. 프로그래밍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말은 "여전히 엔지니어가 필요한 열 가지 다른 일로 변이한다"는 뜻일 때만 맞다고 썼다.
5월 23일「AI가 생성한 코드를 리뷰하기가 지독하게 어려운 이유」 — AI와 일하려면 시스템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 사람 리뷰어는 "심각하게 불리하다."
7월 8일「에이전틱 AI는 더 나은 전문가가 필요하다」 — 코덱스로 Rust판 sed(uutils)의 문자 처리를 바이트 단위로 바꾼 경험기. 13개 파일, +1,740/−609줄. 78개 프롬프트 중 61개(78%)가 AI에게 자기 작업을 고치거나 개선하라는 지시였다. 약 80달러의 토큰, 약 326kg CO₂e.
7월 15일「베어링스, 보잉, 그리고 봇」 — 실행은 맡겨도 책임은 맡길 수 없다. "우리가 기르려는 바로 그 생각을 맡기지 말라."
8월 17일「환각 참고문헌에 대한 논쟁적 제안」 — AI가 참고문헌 목록을 공짜로 만들 수 있게 되면, 긴 참고문헌은 더는 학식의 신호가 아니다. 의례적인 관련 연구 절을 없애자.
10월 8일「생각은 취미가 될 것이다」 — 환각을 근거로 한 인간 우월론은 "후위 방어전"이다. 인지노동은 줄고, 생각은 여가가 된다.
3월의 스피넬리스는 10월의 스피넬리스가 주장하는 바로 그 테제를 비웃고 있었습니다. 5~7월의 그는 전문성·리뷰·책임·'생각을 맡기지 않기'를 오래갈 필요로 다뤘습니다. 그리고 10월, 그는 그 필요들을 "후위 방어전"이라 부릅니다.
무엇이 그를 바꿨을까요? 몇 가지 단서가 있습니다. 10월 7일, 그는 마스토돈에 구글 트렌드를 보여 주며 "환각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줄었다"고 썼습니다. 해커뉴스 답글에선 에이전트가 이제 "시키지 않아도 리팩터링을 한다"고 했습니다. 7월의 '78%를 고치라고 지시했다'는 경험이 몇 달 만에 낡은 것이 됐다는 고백으로 읽힙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0월 6일 OpenAI의 수학 원고 722편이 공개됐습니다.
반대 신호도 있습니다. 9월 4일, 그는 "AI가 도저히 다룰 수 없을 것 같은" 버그를 엿새 동안 붙잡고 있었다고 마스토돈에 썼습니다.
이 궤적을 '변덕'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 글의 가장 정직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문장, "내 무덤을 파는 기분"은 수사가 아니었습니다. 7개월 동안 AI의 한계를 증언하던 전문가가, 증거가 쌓이자 자기 입장을 뒤집은 기록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그가 7월에 쓴 가장 중요한 문장, "실행은 맡겨도 책임은 맡길 수 없다"가 10월 글에서 사라졌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두 글을 함께 읽으면 훨씬 균형 잡힌 예언이 됩니다. 실행으로서의 생각은 취미가 되고, 책임으로서의 생각은 직업으로 남는다.
이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반론들을 모아 보면, 스피넬리스의 테제는 세 개의 층으로 나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기술 예측"AI가 인지 과업의 대부분을 사람보다 잘, 싸게 하게 된다" — 상당히 그럴듯하다. 다만 검증 가능한 분야부터, 들쭉날쭉하게.
경제 예측"그래서 인지노동이 줄어든다" — 부분적으로 이미 관찰된다(청년 신규 채용 감소). 하지만 제번스 역설·ATM 역설·책임 제도가 속도와 모양을 바꾼다.
사회 예측"그러면 생각이 여가가 된다" — 가장 불확실하다. 소득 분배가 해결될 때만 '여가'이고, 아니면 '실업'이다. 케인스의 15시간이 그랬듯.
12. 2026년, 한국에서 읽는 「생각은 취미가 될 것이다」
스피넬리스는 그리스와 네덜란드에서 이 글을 썼지만, 그가 든 근거를 한국 데이터로 바꿔 넣으면 그림이 더 선명해집니다. 어떤 면에선 한국이 이 테제의 가장 극단적인 실험장입니다.
사람의 곡선 — 한국 성인은 10년 사이 24점
2024년 12월 발표된 PIAAC 2주기(2023년 조사) 결과에서 한국 성인(16~65세)의 점수는 이렇습니다.
영역
한국
OECD 평균
비고
언어 능력
249
260
1주기(2012) 대비 −24점, 하락 폭이 특히 두드러짐
수리력
253
263
OECD 평균 미달
적응적 문제 해결
238
251
OECD 평균 미달
언어 능력 1수준 이하
31%
26%
성인 셋 중 한 명꼴
더 아픈 숫자는 학력별 비교입니다. 『한눈에 보는 교육 2025』에 따르면 한국 대졸자(25~64세)의 언어 능력 평균은 264점으로 OECD 대졸자 평균 283점보다 19점 낮습니다. 언어 능력 1수준 이하 비율은 고졸 미만 74%(OECD 61%), 고졸 45%(OECD 30%), 대졸 19%(OECD 13%)로, 모든 학력에서 OECD보다 높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진학률이 성인기의 역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만 청년층으로 한정하면 세 영역 모두 OECD 평균 수준이라는 점은 덧붙여 둘 만합니다.
학생 쪽은 아직 버티고 있습니다. PISA 2025에서 한국은 과학 526점, 읽기 501점, 수학 522점으로 세 과목 모두 상위 10위권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읽기는 2022년보다 15점 떨어졌습니다. OECD 평균의 하락(−14점)과 거의 같은 폭입니다.
AI의 곡선 — 한국은행이 본 청년 일자리
스탠퍼드의 '카나리아' 연구에 해당하는 한국 데이터는 한국은행이 내놨습니다. 2026년 8월 18일 발표된 이슈노트 「청년고용 위축, AI 탓인가?」의 핵심 숫자입니다.
청년(15~29세)
−28.5만 개
그중 AI 고노출 업종
−26.8만 개 (94%)
50대
+23만 개
그중 AI 고노출 업종
+17.3만 개 (75%)
2022년 6월~2026년 6월 일자리 증감. 막대 길이는 청년 감소폭 28.5만 개를 100%로 둔 비율. 출처: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2026.8), 언론 보도 기준.
같은 4년 동안 청년 일자리는 28만 5,000개 줄었고, 그 94%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나왔습니다. 반대로 50대 일자리는 23만 개 늘었고, 그 75%가 바로 그 AI 고노출 업종에서 늘었습니다. 업종별로는 정보서비스업 청년 고용이 31.4%, 출판업 27.4%, 컴퓨터 프로그래밍업 16.6%, 전문서비스업 11.6% 줄었습니다.
한국은행은 이 현상을 '연공 편향 기술 변화'라고 불렀습니다. AI 도입 초기엔 주니어 고용은 줄고 시니어 고용은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AI가 초급자의 일(자료 정리, 초안 작성, 단순 코딩)을 대신하고, 그 결과물을 검증하고 책임질 경력자의 가치는 오히려 올라갑니다. 스피넬리스가 7월에 쓴 「에이전틱 AI는 더 나은 전문가가 필요하다」와 정확히 같은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한국은행은 신중했습니다. AI가 청년고용 부진의 직접 원인이라기보다, 경력직 중심 채용과 기업 내 교육 약화라는 기존 흐름을 가속한 측면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탠퍼드 연구와 똑같은 패턴을 확인했습니다. AI가 업무를 대신하는 '자동화' 비중이 높은 업종일수록 청년 고용이 크게 줄었고, 사람이 AI를 학습·초안 개선·검증에 쓰는 '증강' 비중이 높은 업종에서는 이런 감소가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본 브리뇰프슨의 '튜링 함정'이 한국 데이터에서도 그대로 보이는 셈입니다.
한국판 사다리 문제
두 데이터를 겹쳐 보면 한국의 고민이 보입니다.
성인의 기초 역량은 이미 OECD 아래이고, 10년 사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AI가 오기 전부터 '생각하는 힘'은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AI는 청년이 생각하는 힘을 기르던 자리, 즉 초급 일자리부터 가져가고 있습니다. 신입이 보고서 초안을 쓰고, 선배에게 깨지고, 다시 쓰며 배우던 과정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AI를 감독할 전문가는 더 필요해집니다. 50대 고용이 AI 고노출 업종에서 늘어난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문가 재생산 문제'입니다. 오늘의 시니어는 어제의 주니어 시절에 길러졌습니다. 주니어의 자리가 사라지면, 10년 뒤 AI를 감독할 시니어는 어디서 나올까요? 한국은행의 제언도 이 지점을 향합니다. 기존 초급 일자리를 보전하기보다, 청년이 AI와 함께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경력 사다리를 재설계해야 한다.
스피넬리스의 테제를 한국에 적용하면 이렇게 됩니다. 생각이 취미가 되는 세상이 오더라도, 그 전환기에 가장 큰 비용을 치르는 건 아직 생각으로 먹고살 기회조차 얻지 못한 세대입니다. 50대는 생각을 직업으로 하다가 은퇴 후 취미로 옮겨 갈 수 있지만, 20대는 생각을 직업으로 삼아 볼 기회 자체를 잃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저희 블로그의 「학교는 손실 함수다」, 「AI 시대, 청년들은 왜 커리어를 다시 설계하는가」 특집에서도 다른 각도로 다뤘습니다.
13. 실천편 — 생계에서 삶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스피넬리스의 처방은 세 줄이었습니다. 따라잡아라, 유연하라, 일 밖의 삶을 쌓아라. 좋은 말이지만 막연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역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이 세 줄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풀어 보겠습니다.
원칙 1 — 생각을 두 종류로 나눠라: 맡길 생각과 지킬 생각
바둑 기사와 튀르키예 고교생의 차이에서 배운 것처럼, 핵심은 어떤 생각을 맡기고 어떤 생각을 지킬지 의식적으로 정하는 것입니다. 스피넬리스 자신의 7월 기준이 좋은 출발점입니다. 맡겨도 되는 일은 "범위가 정해져 있고, 관찰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있는" 일입니다.
질문
맡겨도 된다
지켜야 한다
범위가 정해져 있나?
"이 함수의 테스트를 써 줘"
"우리 제품이 뭘 해야 하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나?
테스트가 통과하는지 본다
맞는지 틀린지 나만 판단할 수 있다
되돌릴 수 있나?
커밋을 되돌리면 된다
고객에게 보낸 말, 서명한 계약
내가 기르려는 능력인가?
이미 충분히 익힌 기술
지금 배우는 중인 기술 — 직접 해야 한다
마지막 줄이 특히 중요합니다. 같은 일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집니다. 시니어 개발자에게 테스트 작성은 맡겨도 되는 일이지만, 신입에게는 지켜야 할 연습입니다.
원칙 2 — '진지한 여가'를 하나 가져라
아렌트의 경고를 기억하세요. 일이 사라졌는데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회. 그걸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금부터 일과 무관한 '생각 취미'를 하나 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테빈스의 기준으로 보면, 그 취미는 TV 보기 같은 가벼운 여가가 아니라 경력처럼 쌓이는 진지한 여가여야 합니다.
아래 진단기로 지금의 취미를 매겨 보세요. 어디가 약한 고리인지 보일 겁니다.
원칙 3 — 취미에 '규칙'을 붙여라
체스와 바둑이 AI 시대에 번성한 비밀은 경기 중 엔진 금지라는 규칙이었습니다. 생각 취미에도 같은 규칙이 필요합니다.
AI는 사범으로, 대국은 혼자: 공부할 땐 AI에게 묻되, 문제를 풀 땐 AI를 끈다. 바둑 기사들의 방식입니다.
'튜터형'으로 쓰기: 답 대신 힌트를 달라고 요청한다. 바스타니 연구에서 실력을 지킨 건 튜터형 GPT를 쓴 학생들이었습니다.
먼저 쓰고, 나중에 묻기: 내 생각을 먼저 글로 적은 뒤 AI에게 반론을 요청한다. 순서를 바꾸면 내 생각은 AI의 생각에 끌려갑니다(MIT 연구의 '자기 글을 기억 못 하는' 현상).
결과물을 남기기: 스테빈스의 '오래가는 보람'. 블로그, 노트, 깃허브, 대회 기록처럼 쌓이는 흔적이 취미를 경력으로 만듭니다.
원칙 4 — 생각을 '남을 위해' 쓰는 자리를 찾아라
스테빈스의 세 번째 유형, 자원활동가를 잊지 마세요. 해커뉴스의 한 댓글은 AI가 수학 문제 100개를 풀면 "사람이 자랑스럽고 쓸모 있다고 느낄 기회 100개가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쓸모의 감각은 혼자 하는 취미로는 채우기 어렵습니다. 후배를 가르치고, 지역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오픈소스에 기여하는 일은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종류의 '쓸모'를 줍니다. 한국은행이 말한 '경력 사다리 재설계'에 개인이 기여할 수 있는 방법도 여기에 있습니다. 시니어가 주니어를 기르는 일입니다.
원칙 5 — 개인의 처방은 제도와 함께 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해커뉴스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반론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취미는 소득이 있어야 가능하다." 스피넬리스의 세 처방은 모두 개인 차원입니다. 하지만 케인스의 15시간이 실현되지 않은 이유도, 러셀의 핀 공장에서 여가가 실업이 된 이유도, 개인이 아니라 제도에 있었습니다. 생각이 '여가'가 될지 '실업'이 될지는 다음 질문들에 대한 사회의 답에 달려 있습니다.
분배AI가 만든 생산성의 열매는 누구에게 가는가? 브리뇰프슨·매카피의 말처럼, 말과 달리 사람은 AI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교육OECD의 말처럼 AI가 "애쓰는 배움에 더해지고 대체하지 않게" 학교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경력초급 일자리가 사라진 자리에, 청년이 AI와 함께 경험을 쌓을 새 사다리를 어떻게 놓을 것인가?
오늘 할 수 있는 다섯 가지
1이번 주 내 업무 목록을 '맡길 생각'과 '지킬 생각'으로 나눠 적어 본다. 지킬 생각이 하나도 없다면, 그게 가장 큰 경고다.
2일과 무관한 '생각 취미' 후보 세 개를 적고, 그중 하나를 12주 동안 주 3시간씩 해 본다.
3그 취미에 'AI 금지 구간'을 정한다. 문제 풀이, 첫 초안, 대국처럼.
4한 달에 한 번, 내가 배운 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치거나 글로 공개한다.
5팀에 주니어가 있다면, AI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라도 주니어가 직접 해 보고 배울 기회를 하나 남겨 둔다.
14. 에필로그 — 다시 교장실의 조각상 앞에서
골딩의 에세이는 이렇게 끝납니다. 어른이 된 그는 다시 그 교장실에 가서 먼지 쌓인 조각상들을 다르게 배치하고 싶다고 씁니다. 비너스는 먼지를 털어 한쪽에 고이 두고, 「생각하는 사람」은 앞에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 두고, 그 등 뒤엔 언제라도 덮칠 듯 웅크린 표범을 두겠다고요. 생각은 아름답지만, 본능과 편견이라는 표범은 늘 그 뒤에서 기회를 노린다는 뜻입니다.
2026년의 교장실이라면 찬장 위에 조각상이 하나 더 놓여 있을 겁니다. 반짝이는 AI 칩 모양의 조각상. 우리는 그걸 어디에 둬야 할까요? 「생각하는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게 할까요, 아니면 그 옆에서 함께 생각하는 동료로 둘까요?
스피넬리스의 글이 불편하면서도 오래 남는 이유는, 그가 이 질문에 쉬운 답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AI가 생각을 대신할 것이라고 단언하면서도, 그 결과가 비극이라고도 축복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냥과 서예와 목공과 승마가 그랬듯이, 생각도 필요에서 선택으로 자리를 옮길 거라고 말할 뿐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그 '선택'이 결코 초라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사냥은 신분의 상징이 됐다가 숲을 지키는 이유가 됐고, 서예는 동아시아에서 인격의 표현이 됐고, 목공은 손으로 만드는 기쁨의 상징이 됐고, 말은 일하는 짐승에서 사랑받는 동반자가 됐습니다. 체스와 바둑은 기계에 진 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즐기는 게임이 됐고, 프로 기사들은 66년 만에 더 좋은 수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은퇴한 인쇄 기술자는 취미로 종이를 자르다 50년 묵은 수학 문제를 풀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동시에 경고합니다. 케인스의 15시간은 오지 않았고, 러셀의 핀 공장에선 여가가 실업이 됐고, 그리스 시민의 스콜레는 노예의 노동 위에 서 있었습니다. 2026년 한국에선 청년 일자리 28만 5,000개가 사라지는 동안 50대 일자리는 늘었습니다. '선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내 앞의 과제는 생각으로 생계를 꾸리는 데서, 생각을 살 만한 삶의 일부로 만드는 데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이 문장을 이렇게 읽고 싶습니다. 생각이 직업이든 취미든, 중요한 건 우리가 계속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AI가 아무리 잘 생각해도, 내가 생각하지 않으면 내 삶은 생각 없는 삶이 됩니다. 체스 엔진이 아무리 강해도, 내가 두지 않으면 나는 체스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1961년 골딩은 "취미를 그만두고 프로가 되었다"고 썼습니다. 2026년 스피넬리스는 프로를 그만두고 다시 취미로 돌아갈 준비를 하자고 말합니다. 그 사이 65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생각하는 것 자체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취미가 되는 날이 온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R. A. Stebbins, "Serious Leisure: A Conceptual Statement," Pacific Sociological Review 25(2), 1982.
F. Khatib et al., "Crystal structure of a monomeric retroviral protease solved by protein folding game players," Nat. Struct. Mol. Biol. 18, 2011; D. Smith et al., "An aperiodic monotile," 2023.
경제학
D. Autor, F. Levy, R. Murnane, "The Skill Content of Recent Technological Change," QJE 118(4), 2003.
C. B. Frey, M. Osborne, "The Future of Employment," 2013.
T. Eloundou et al., "GPTs are GPTs," Science 384,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