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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카파시의 「수업을 잘 듣는 법」 — 15년 된 시험 공부 경험칙 23개를 100년 학습 과학으로 채점하고, AI 시대에 다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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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카파시의 「수업을 잘 듣는 법」 — 15년 된 시험 공부 경험칙 23개를 100년 학습 과학으로 채점하고, AI 시대에 다시 읽다

2026년 10월 12일, 한 트윗이 오래된 웹페이지 하나를 다시 끌어올렸다. 안드레이 카파시가 대학원생 시절 써 둔 「수업을 잘 듣는 법(Doing well in your courses)」이다. 밤샘은 하지 마라, 읽고 이해한 것과 덮고 다시 쓸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시험장에서 절대 일찍 나가지 마라, 그리고 가장 똑똑한 학생은 모든 과목에서 85%를 받는다. 이 글은 그 23개의 경험칙을 하나씩 꺼내 에빙하우스(1885)부터 로디거·카피키(2006), MIT 핏빗 수면 연구, 7천만 건의 채점 기록까지 지난 100년의 학습 과학과 맞대어 채점한다. 대부분은 놀랍게 맞았고, 두 개는 틀렸다. 페이지가 실제로 쓰인 시기(2009~2011)와 사람들이 지금 읽는 2016년 개정판의 차이, 토론토 대학의 '85점 = A = 4.0' 환산표, 그리고 AI가 숙제를 대신 풀어 주는 2026년에 이 조언이 왜 오히려 더 중요해졌는지 — 튀르키예 고등학생 1천 명 실험의 '연습 +48%, 시험 −17%', 연세대 집단 부정행위, 하버드의 A학점 상한 표결, 한국 고교생 주중 수면 5.6시간까지 — 여섯 개의 인터랙티브 도구와 함께 풀었다.

코어닷투데이2026-10-15126분

책상 앞에서 연필로 공부하는 대학생, 뒤 코르크 보드에 '잠', '덮고 써보기', '85%' 메모크게 보기

프롤로그: 중간고사 주간에 돌아온 낡은 웹페이지

2026년 10월 12일 오후, 키안 캬스(Kian Kyars)라는 젊은 엔지니어가 X에 짧은 글을 올렸다.

"시대를 타지 않는 @karpathy의 조언. 학부생이라면 누구든 읽어라."

링크는 스탠퍼드 대학 서버의 오래된 주소 하나였다. cs.stanford.edu/people/karpathy/advice.html. 회색 바탕에 제목 하나, 소제목 몇 개, 굵은 글씨의 규칙과 짧은 설명이 이어지는 페이지다. 디자인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트윗은 사흘 만에 16만 번 넘게 읽혔고, 856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한국 대학가가 중간고사 한복판에 들어선 바로 그 주였다.

글쓴이는 안드레이 카파시(Andrej Karpathy)다. 스탠퍼드 CS231n 강의로 딥러닝 세대를 길러 냈고, 테슬라 오토파일럿의 AI를 이끌었고, OpenAI 창립 멤버였으며,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다. 그리고 2026년 5월 19일, 그는 앤트로픽(Anthropic)에 합류했다고 알렸다. "교육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며 때가 되면 그 일을 다시 이어 가겠다"는 말과 함께.

그런 사람이 학부생에게 남긴 공부법이라니, 거창한 비법을 기대하게 된다. 막상 열어 보면 놀랄 만큼 소박하다.

  • 밤샘은 할 가치가 없다. 잠이 놀라운 일을 한다.
  •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기출 문제부터 봐라.
  • 읽고 이해하는 것은 내용을 다시 써낼 수 있는 것과 다르다.
  • 시험 2시간 전에 커피와 밥. 직전 커피는 언제나 나쁘다.
  • 시험지는 깔끔하게. 답에는 상자를 쳐라. 채점하는 사람도 사람이다.
  • 절대, 절대, 절대 시험장에서 일찍 나가지 마라.
  • 그리고 마지막으로 — 아무도 당신의 성적에 신경 쓰지 않는다. 나쁠 때만 빼고. 가장 똑똑한 학생은 모든 과목에서 85%를 받는다.

이게 전부다. 할머니가 해 주실 법한 말과 선배의 꼼수 사이 어딘가에 있는 조언들. 그런데 왜 이 페이지는 해마다 다시 돌아오는 걸까. 해커뉴스에서는 2025년 10월 19일에 680점을 받으며 첫 화면에 올랐고, 1년 뒤 다시 X를 돌았다.

이 글은 그 이유를 끝까지 따라가 본다. 방법은 단순하다. 카파시의 규칙 23개를 하나씩 꺼내서, 지난 100년 동안 심리학자와 인지과학자가 실험실과 교실에서 알아낸 것과 맞대어 본다. 그는 이것을 "나에게 도움이 됐다고 느끼는 경험칙(rules of thumb)"이라고 불렀다. 경험칙은 과학으로 검증할 수 있다. 맞으면 왜 맞는지, 틀리면 어디가 틀렸는지.

미리 결론을 조금 흘리자면 이렇다. 대부분은 놀라울 만큼 맞았다. 어떤 것은 그가 짐작한 이유와 다른 이유로 맞았다. 두 개는 연구가 반대쪽을 가리킨다. 그리고 몇 개는 2026년, AI가 숙제를 대신 풀어 주는 시대에 들어서면서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 이 글은 코어닷투데이의 'AI 시대에 배운다는 것' 특집들과 이어진다. 학교가 '채점할 수 있는 문제'를 가르치는 동안 AI가 그 문제를 가장 잘 풀게 됐다는 이야기는 학교는 손실 함수다에서, AI에게 이해까지 맡기면 무엇을 잃는지는 AI 때문에 두 번째 뇌를 만들었다에서 다뤘다. 이번 글은 그 두 글의 '실전편'에 가깝다 — 그래서, 내일 시험을 어떻게 볼 것인가.


0부. 원문 한눈에 보기 — 다섯 개의 칸, 스물세 개의 규칙

먼저 원문의 생김새부터 보자. 페이지는 다섯 칸으로 나뉜다. 원문은 영어이고, 아래는 의미를 살려 옮긴 요약이다.

칸핵심 규칙카파시가 붙인 이유
일반밤샘 금지 · 7.5시간 수면(최소 4시간) · 튜토리얼은 지루해도 참석"밤에 한 시간 막혔던 문제가 아침에 5분 만에 풀린 적이 여러 번 있다. 뇌가 밤사이 흔들리는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커밋'하는 것 같다."
시험 준비계획표 · 기출 먼저 · 덮고 다시 쓰기 · 혼자 먼저, 끝에 함께 · 약한 친구에게 설명 · 면담 시간 · 미리 공부(중간 3일, 기말 6일) · 급하면 에너지 드링크 · 수학은 연습 > 읽기 · 요약 시트 · 남들 공부하는 곳에서"계획이 없으면 앞부분에 시간을 너무 쓰고, (가장 중요한) 뒷부분은 시간이 없어 훑고 지나간다."
시험 당일T−2시간에 커피와 밥 · 직전 커피 금지 · 시험 직전 30~45분은 몰입 공부"단기 기억은 멋진 것이다. 낭비하지 마라."
시험 중연필 · 1~3초씩 전체 훑기 · 쉬운 문제부터 · 깔끔하게 · 답에 상자 · 일찍 나가지 마라 · 채점자와 소통 · 배점 보기 · 5분 남으면 빠뜨린 문항 확인"사람이 당신의 시험지를 채점한다. 슬픈 사람은 낮은 점수를 준다."
마지막 조언성적은 나쁠 때만 중요하다 · 85% · 실제 경험·연구·추천서 · 사이드 프로젝트 · 오픈소스 · 블로그"당신의 시간은 귀하고 한정된 자원이다. 시험을 망치지 않을 지점까지 가고, 훨씬 더 중요한 일로 관심을 옮겨라."

구조를 보면 이 페이지의 성격이 드러난다. 앞의 네 칸은 '시험이라는 게임을 잘하는 법'이고, 마지막 한 칸은 '그 게임에 인생을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경고다. 처음 읽으면 모순처럼 보인다. 시험을 잘 보는 꼼수를 잔뜩 알려 주고는, 마지막에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니까.

이 글의 결론 중 하나는, 이 둘이 사실 한 문장이라는 것이다.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는 법을 알면 같은 점수를 더 적은 시간에 얻는다. 그렇게 아낀 시간이 마지막 칸 — 연구, 인턴, 프로젝트 — 으로 간다. 이 이야기는 7부에서 숫자로 다시 하겠다.


1부. 쓴 사람과 쓴 때 — '2013년 글'이 아니다

루빅스 큐브 유튜버에서 앤트로픽까지

카파시는 1986년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에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그의 이력을 공부법과 관련된 것만 추려 보면 이렇다.

2006~유튜브 'badmephisto' — 학부생 시절부터 루빅스 큐브 푸는 법을 가르치는 채널. 52개 영상, 누적 조회수 약 923만 회. 그는 큐브를 평균 16초에 맞췄다.
2005~2009토론토 대학 학부 — 컴퓨터과학·물리학 복수 전공, 수학 부전공. 제프리 힌턴의 수업과 독서 모임에서 딥러닝을 처음 만났다.
2009~2011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UBC) 석사 — 물리 시뮬레이션 캐릭터의 제어 학습 연구. 이 시기에 조교로 일하며 거의 이틀에 한 번 튜토리얼을 진행했고, 과제 채점을 자원했다.
2011~2015스탠퍼드 박사(지도교수 페이페이 리). 2015년 겨울 CS231n을 처음 가르쳤다(수강생 150명 → 2017년 750명). 같은 해 블로그 글 「RNN의 비합리적인 효과」(2015-05-21).
2015~2024OpenAI 창립 멤버 → 테슬라 AI 디렉터(2017~2022) → OpenAI 복귀(2023~2024). 이 사이에 「소프트웨어 2.0」(2017), 유튜브 「신경망: 제로부터 히어로까지」(2022~).
2024~2026유레카 랩스(2024-07-16, "AI 네이티브 학교") · '바이브 코딩'(2025-02-02) · nanochat(2025-10-13) · 그리고 2026년 5월 19일 앤트로픽 합류.

유레카 랩스를 발표하며 그는 자기 이력을 이렇게 요약했다. "교육에 대한 관심이 나를 루빅스 큐브 유튜브 튜토리얼에서 스탠퍼드 CS231n으로, 최근의 제로 투 히어로 시리즈로 이끌었다. 지금까지 이 둘을 엮은 일은 모두 '본업' 옆의 사이드 퀘스트였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평생 가르치면서 배운 사람이다. 이 사실은 원문의 "약한 친구에게 설명하라"는 규칙을 읽을 때 다시 중요해진다.

해커뉴스가 붙인 '(2013)'은 틀린 날짜다

해커뉴스는 이 글에 '(2013)'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인터넷 아카이브(웨이백 머신)가 이 주소를 처음 수집한 날이 2013년 4월 4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사해 보니 페이지는 그보다 훨씬 오래됐다.

2011년 8월 18일에 수집된 그의 UBC 홈페이지에 이미 "학부 수업을 잘 듣기 위한 조언(Advice for doing well in undergrad classes)"이라는 링크가 있다. 같은 페이지에는 "2011년 6월부터 구글에서 여름 인턴을 하고, 9월부터 스탠퍼드에서 박사 과정을 이어 간다"고 적혀 있다. 초기 판본에는 "아이폰 앱을 만들어 보라"는 문장도 있는데, 그가 아이폰 3GS를 산 이야기를 블로그에 쓴 것이 2009년 7월이다. 종합하면 이 페이지는 2009~2011년, 토론토 학부를 막 졸업하고 UBC 석사 과정에 있던 스물셋~스물넷의 카파시가 쓴 것으로 보인다. "학부생 때 누군가 말해 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문장이 그 시점과 맞는다.

우리가 지금 읽는 건 2016년 개정판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웨이백 머신에 남은 판본들을 비교하면, 지금 사람들이 인용하는 문장의 상당수는 원래 문장이 아니다. 페이지는 2014년 여름~가을에 크게 고쳐졌고, 2015년에 몇 문장이 더해진 뒤, 2016년 9월 이후로 그대로다.

항목2013년 수집본 (원래 문장)지금 판본 (2016~)
서문"자랑하려는 건 아니지만 신뢰를 위해 밝히자면, 나는 보통 수업에서 아주 잘한다(기준을 말하자면 85% 아래는 나쁜 성적이라고 본다).""(꽤 좋은 결과로) 오랫동안 시험을 치러 오며 나에게 도움이 됐다고 느끼는 경험칙들"
최소 수면"절대 최소 약 5시간""절대 최소 약 4시간"
수면의 이유"해마의 새 기억이 잠자는 동안 장기 기억으로 복사되는 것 같다""뇌가 흔들리는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커밋'하는 것 같다"
면담 시간이 불공평한가"아니! 다른 학생들은 이걸 알아낼 만큼 똑똑하지 않았을 뿐(또는 이 페이지를 안 읽었거나 :))""가끔은. 조금 치사하긴 하다 :)"
채점자—"학부 때 짐작했고, 조교로 실제 채점을 하며 강하게 확인했다" · "채점자의 마음가짐이 돼라" (2014년 추가)
파인만—"파인만은 이걸 아주 잘 알았다" + 쿼라 링크 (2015년 추가)
마지막 조언"85%면 4.0을 받는다" · "아이폰 앱을 만들어 보라, 프로그래밍 대회에 나가라" · 인맥과 운"85%면 4.0 언저리" · "잘 문서화하라. 블로그에 써라." (2015년 추가)

변화의 방향이 분명하다. 스물몇 살의 자신만만한 문장("다른 학생들이 똑똑하지 않았을 뿐")이 서른 즈음의 겸손한 문장("조금 치사하긴 하다", "나에게는")으로 다듬어졌다. 그리고 유명한 마지막 문장 — "잘 문서화하라. 블로그에 써라. 몇 년 뒤 사람들이 신경 쓰는 건 이런 것들이다" — 은 학부 시절이 아니라 2015년, 그가 블로그 글 하나로 스타가 된 해에 더해졌다. 학부생 카파시의 조언이 아니라, 블로그로 세상의 주목을 받아 본 박사 과정 카파시의 조언이다.

이 차이는 사소하지 않다. 이 페이지는 한 사람이 10년에 걸쳐 고쳐 쓴 경험칙이다. 학부 때 믿었던 것 가운데 시간이 지나도 남은 것과, 나중에 깨달아 덧붙인 것이 섞여 있다.

'85% = 4.0'의 수수께끼

해커뉴스에서 가장 많은 미국인이 고개를 갸웃한 문장은 이것이었다. "85% 평균으로 어떻게 4.0을 받아요?" 미국 대학 대부분에서 85점은 B나 B+다.

답은 카파시가 학부를 다닌 토론토 대학의 환산표에 있다. 토론토 대학에서는 85~89점이 A이고, A는 A+(90점 이상)와 똑같이 4.0이다. 그러니까 "모든 과목에서 85%"는 토론토 기준으로 정확히 "모든 과목에서 만점 학점"이다. 카파시의 말은 "적당히 해라"가 아니라 "만점 학점을 주는 최저선에서 정확히 멈춰라"라는, 꽤 계산된 말이다. 이 계산이 무슨 뜻인지는 7부에서 수확 체감 곡선으로 다시 보자.


2부. 왜 이런 조언이 나오는가 — 학습 과학 140년의 짧은 역사

카파시의 규칙들을 하나씩 채점하기 전에, 채점 기준이 될 학습 과학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짧게 훑자. 그래야 "왜 이런 규칙이 경험에서 저절로 나오는가"가 보인다.

1885년,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실험하다

독일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는 기억을 처음으로 숫자로 잰 사람이다. 그는 'DAX', 'BOK', 'YAT' 같은 무의미한 음절 목록을 만들어 스스로 외웠다. 의미가 있는 단어는 이미 아는 것과 엮여 버리니, 아무 의미 없는 음절이어야 '순수한 기억'을 잴 수 있다고 봤다. 그리고 20분, 1시간, 9시간, 1일, 2일, 6일, 31일 뒤에 같은 목록을 다시 외우는 데 시간이 얼마나 덜 드는지를 쟀다. 이것이 유명한 망각 곡선이다.

같은 책에 오늘날 훨씬 덜 알려진 관찰이 하나 더 있다. 원문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사흘에 걸쳐 나눠 한 38번의 반복이, 전날 하루에 몰아 한 68번의 반복과 똑같은 효과를 냈다." 공부량을 거의 절반으로 줄여도, 나눠서 하면 결과가 같았다는 뜻이다. 140년 전에 이미 간격 효과(spacing effect)가 기록돼 있었던 셈이다.

에빙하우스(1885)의 망각 곡선과 130년 뒤 재현 실험들크게 보기

그림: 머레와 드로스(Murre & Dros, 2015, PLOS ONE, CC-BY) Fig. 4. 가로축은 학습 뒤 경과 시간(일, 로그 눈금), 세로축은 '다시 외울 때 절약된 시간'을 첫 측정값 1로 맞춘 값이다. 실선이 에빙하우스 본인, 점선(Dros)이 2015년에 70시간을 들여 그대로 재현한 연구자의 곡선이다. 하루(1) 근처에서 곡선이 살짝 튀어 오른다 — 저자들은 그 사이 잠이 끼어든 효과일 수 있다고 봤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짚자. "하루 만에 70%를 잊는다"는 말이 에빙하우스 곡선을 근거로 자주 돌아다닌다. 그러나 그의 세로축은 '기억하는 비율'이 아니라 '다시 외울 때 절약된 시간의 비율'이다. 하루 뒤 절약률이 34%라는 건 "34%만 기억한다"가 아니라 "처음 외울 때보다 34% 빨리 다시 외웠다"는 뜻이다. 의미 없는 음절이라 망각이 유난히 빠르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1924년, 잠자는 동안의 기억

40년 뒤 미국 코넬 대학의 젠킨스와 달렌바흐(Jenkins & Dallenbach, 1924)는 무의미 음절을 외운 뒤 1·2·4·8시간을 자거나 깨어 있게 하고 기억을 비교했다. 잔 쪽이 더 많이 기억했다. 참가자는 단 두 명이었고, 저자들은 이것을 "잠이 기억을 강화한다"가 아니라 "깨어 있는 동안 들어오는 다른 정보가 기억을 방해(간섭)하는데, 잠은 그 방해를 막아 준다"고 해석했다. 잠이 기억을 능동적으로 '굳힌다(consolidation)'는 생각은 그 뒤 수십 년의 뇌과학이 쌓아 올린 것이다.

1970년대~2010년대, 공부법의 과학이 정리되다

20세기 후반, 심리학자들은 학생들이 실제로 쓰는 공부법을 하나씩 실험대에 올렸다. 그 흐름을 대표하는 이정표 몇 개만 짚는다.

1978생성 효과(슬라메카·그래프) — 단어를 그냥 읽는 것보다 단서를 보고 스스로 만들어 낸 단어를 더 잘 기억한다. 86개 연구 메타분석에서 효과 크기 약 0.4.
1994바람직한 어려움(로버트 비요크) — 배우는 순간을 더 어렵게 만드는 방법(간격 두기, 섞어 풀기, 스스로 시험 보기)이 당장은 느리고 서툴러 보여도 오래 남는다.
2005능력 착각(코리아트·비요크) — 공부할 때는 답이 눈앞에 있고 시험 볼 때는 답이 없다. 이 비대칭 때문에 "안다"는 느낌이 실제 실력보다 부풀려진다.
2006테스트 효과(로디거·카피키) — 네 번 읽은 학생보다 한 번 읽고 세 번 떠올려 쓴 학생이 1주 뒤 훨씬 더 많이 기억했다. (3부에서 자세히)
2008간격의 능선(세페다 등) — 1,354명에게 복습 간격과 시험 시점을 바꿔 가며 실험해, '언제 기억해야 하느냐'에 따라 최적의 복습 간격이 달라진다는 지도를 그렸다.
2013열 가지 공부법 성적표(던로스키 등) — 다시 읽기, 밑줄 긋기, 요약은 효용 낮음. 스스로 시험 보기와 나눠 공부하기는 효용 높음. 그런데 학생 대부분이 쓰는 것은 앞쪽이다.

던로스키 팀의 결론 한 문장이 이 분야 전체를 요약한다. "대부분의 학생이 다시 읽기와 밑줄 긋기를 한다고 답하지만, 이 기법들은 성적을 일관되게 올려 주지 않는다. 다른 기법, 예컨대 다시 읽기 대신 스스로 시험 보기를 써야 한다."

여기서 카파시의 페이지가 왜 오래 살아남는지 첫 번째 단서가 나온다. 카파시는 이 논문들을 읽고 쓴 게 아니다(초판에는 논문 인용이 하나도 없다). 그는 "수년간 시험을 치르며 꽤 좋은 결과를 얻은" 사람으로서, 무엇이 통하고 무엇이 안 통하는지를 몸으로 알아냈다. 그런데 몸으로 알아낸 결론이, 같은 시기 실험실에서 통계로 알아낸 결론과 상당 부분 겹친다. 좋은 경험칙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 과학이 나중에 설명을 붙여 주는 관찰.

다만 몸으로 알아낸 경험칙에는 약점이 하나 있다. "나에게 통한 것"과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채점이 필요하다. 이제 시작하자.


3부. '일반' 칸 — 잠과 튜토리얼, 네 개의 규칙

규칙 1. "밤샘은 할 가치가 없다" — 근거 강함

카파시의 첫 문장이다. 그리고 이 페이지에서 가장 단단한 규칙 중 하나다.

1997년 미국 대학생 44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필처·월터스, Pilcher & Walters)에서 한 집단은 24시간을 깨어 있었고 다른 집단은 8시간가량 잤다. 다음 날 비판적 사고 시험을 보게 했더니 밤샌 쪽이 확실히 더 못 풀었다. 섬뜩한 건 그다음이다. 밤샌 학생들은 자기의 집중력, 노력, 그리고 예상 점수를 오히려 더 높게 평가했다. 못하면서 잘한다고 느낀 것이다. 밤샘의 가장 큰 위험은 피로가 아니라 피로를 못 느끼게 되는 것이다.

MIT의 연구는 더 실제 상황에 가깝다. 오카노(Okano) 등(2019)은 MIT 화학 입문 수업 학생 100명에게 한 학기 내내 핏빗(Fitbit)을 채우고, 수면 기록과 퀴즈 9번·중간고사 3번의 성적을 맞대었다(88명 완주).

MIT 화학 입문 수업의 수면 시간·수면 불규칙성과 학기 점수크게 보기

그림: 오카노 등(2019, npj Science of Learning, CC-BY) Fig. 1. 위(A)는 평균 수면 시간과 학기 총점(r = 0.38), 아래(B)는 수면 시간의 들쭉날쭉함(표준편차)과 총점(r = −0.36). 동그라미 하나가 학생 한 명이다. 이 학생들의 평균 취침 시각은 새벽 1시 54분이었다.

이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따로 있다. 시험 전날 밤의 수면 시간은 그 시험 점수와 의미 있는 상관이 없었다(모든 상관계수가 0.20 미만). 대신 시험 전 한 달 동안의 수면은 점수와 뚜렷하게 연결됐다(r = 0.25~0.34). 수면 시간·질·규칙성 세 가지가 학기 점수 차이의 약 25%를 설명했다.

이것은 카파시의 문장 하나를 정확히 뒷받침한다. "큰 시험은 며칠 전부터, 짧게라도 공부를 시작해서 뇌가 그 내용을 품고 자는 밤의 수를 최대화하려고 한다." 중요한 건 시험 전날 하룻밤이 아니라, 배우는 동안의 모든 밤이다.

밤샘과 성적의 관계를 본 다른 연구도 있다. 세인트로런스 대학 학생 120명을 조사한 새처(Thacher, 2008)에 따르면 60%가 대학 입학 뒤 한 번 이상 밤을 새웠고, 밤샘을 한 학생들의 학점이 더 낮았다(언론 보도로는 평균 2.95 대 3.2). 다만 이건 상관관계다. 원래 성적이 낮은 학생이 밤을 더 새울 수도 있다.

한국 학생들은 어떨까. 질병관리청의 2025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고등학생의 주중 평균 수면 시간은 5.6시간이다. 고1·고2·고3 모두 5.6시간이고, 10년 전(2016년 5.7시간)과 거의 같다. "피로 회복에 충분할 만큼 잤다"고 답한 고등학생은 16.6%, 여섯 명 중 한 명뿐이다. 카파시가 말한 "최적 7.5시간"과는 거의 두 시간 차이가 난다.

규칙 2. "절대 최소 4시간" — 근거가 반대쪽

같은 문단의 뒷부분은 틀렸다. 정확히 말하면, 하룻밤이라면 몰라도 습관이라면 틀렸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반 동겐(Van Dongen) 등(2003)은 성인 48명을 실험실에 머물게 하며 2주 동안 매일 밤 4시간, 6시간, 8시간씩만 침대에 있게 했다. 4시간과 6시간 집단의 주의력과 작업 기억은 날마다 조금씩 떨어졌고, 2주 뒤 6시간 이하로 잔 사람들의 수행 저하는 밤을 꼬박 1~2번 새운 사람과 맞먹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스스로 느끼는 졸림은 처음 며칠 뒤로 거의 늘지 않았고, 4시간과 6시간 집단의 졸림 점수는 구분이 안 됐다. 저자들의 표현으로 그들은 "자신의 결손을 대체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미국수면학회와 수면연구학회의 공동 권고(2015)는 성인이 "정기적으로 7시간 이상" 자야 한다고 했다. 카파시의 7.5시간은 정확히 이 범위 안에 있다. 문제는 "최소 4시간"이다. 흥미롭게도 2013년 판본에서는 최소가 5시간이었다. 고쳐 쓰는 과정에서 최소 기준이 한 시간 더 내려갔다. 이 규칙을 따를 생각이라면 반대 방향으로 고치는 게 맞다 — "최소 4시간"은 비상시의 하룻밤 이야기이고, 시험 기간 2주를 그렇게 보내면 밤샘 두 번을 한 셈이다.

규칙 3. "밤에 막힌 문제가 아침에 5분 만에 풀린다" — 엇갈림

카파시의 가장 생생한 경험담이다. 그리고 과학적으로는 가장 논쟁적이다.

새벽 2시에 막힌 문제, 잠자는 뇌가 단기 기억 상자의 카드를 장기 기억 책장으로 옮기고, 아침 8시에 술술 풀리는 장면크게 보기

이 경험을 실험실로 옮긴 유명한 연구가 있다. 독일 뤼베크 대학의 와그너(Wagner) 등이 2004년 네이처에 발표한 「잠은 통찰을 불러일으킨다(Sleep inspires insight)」다. 참가자들은 숫자열을 일곱 단계 규칙으로 줄이는 지루한 과제를 풀었는데, 사실 이 과제에는 숨은 지름길이 있었다. 두 번째 답이 언제나 최종 답과 같았던 것이다. 이걸 알아차리면 중간 단계를 다 건너뛸 수 있다.

훈련 뒤 8시간 동안 밤잠을 잔 집단은 59%(22명 중 13명)가 숨은 규칙을 발견했다. 밤에 깨어 있던 집단과 낮에 깨어 있던 집단은 각각 22.7%(22명 중 5명)였다. 잠이 통찰을 두 배 넘게 늘린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후의 연구는 깔끔하지 않다. 2018년 독일 연구진(브로트 등, Brodt et al.)은 고전적인 수수께끼와 문제들을 두 번 풀게 하면서 그 사이에 3시간을 자거나 깨어 있게 했다. 3시간의 휴식은 수수께끼 풀이를 도왔다. 그러나 그 시간에 잤는지는 아무 차이가 없었다. 논문 제목 그대로 「잠이 아니라 부화가 문제 해결을 돕는다(Incubation, not sleep, aids problem-solving)」. 같은 해 다른 연구(쇠나우어 등)도 77명에게서 잠이 통찰 문제나 마술 트릭의 풀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2021년 연구는 막 잠들 때(N1 단계)에 통찰이 늘었다고 했고, 2024년의 사전 등록 재현 연구는 더 깊은 잠(N2)에서 늘었다고 했다. 결과가 엇갈린다.

수면과 기억 전반에 관한 가장 큰 메타분석(버레스·에르트펠더 2021, 177편·271개 표본)은 잠이 기억을 돕는 효과를 g = 0.44로 추정했고, 출판 편향을 보정하면 0.28로 줄었다. 효과는 있다. 다만 대중 과학이 말하는 것보다 작다.

그러니 카파시의 아침 5분은 이렇게 다시 쓰는 게 정확할 것이다. "밤새 뇌가 답을 만들어 준다"기보다 "막힌 문제에서 한 번 떨어져 있다가(부화), 새벽 2시의 피로가 사라진 머리로 다시 보면 풀린다." 어느 쪽이든 행동 처방은 같다. 새벽 2시에 한 시간째 같은 줄을 노려보고 있다면 — 자라.

규칙 4. "튜토리얼은 지루해도 참석하라" — 연구 없음, 그러나 같은 방향

직접 시험한 연구는 찾지 못했다. 다만 카파시가 붙인 이유 — "내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는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두 원리, 간격(같은 내용을 다른 날 다시 만나기)과 인출(머릿속에서 꺼내 보기)과 같은 방향이다. 조교가 별로면 다른 조교의 튜토리얼에 가 보라는 현실적인 덧붙임도 있다. 지금이라면 녹화 강의 1.5배속 대신 실시간 질의응답 세션에 들어가라는 말로 읽을 수 있겠다.


4부. '시험 준비' 칸 — 열한 개의 규칙

준비 칸은 원문에서 가장 길다. 순서는 원문을 따르되, 서로 엮이는 규칙은 묶어서 보자.

규칙 5. "계획표를 만들어라, 지키지 않더라도" — 근거 강함

카파시는 계획표를 이렇게 만든다고 썼다. 알아야 할 것 전체를 글머리표로 적고, 하나하나 얼마나 걸릴지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부분에 시간을 너무 많이 쓰고 (가장 중요한) 뒷부분은 시간이 없어 훑고 지나가는" 일이 생긴다고.

이 현상에는 이름이 있다.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1979년에 이름 붙인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다. 가장 유명한 실험은 캐나다 워털루 대학의 뷸러(Buehler) 등(1994)이 했다. 졸업 논문을 쓰는 심리학과 4학년들에게 언제 끝낼지 물었다.

"모든 게 잘 풀리면"
27.4일
"가장 그럴듯한 예상"
33.9일
"모든 게 꼬이면"
48.6일
실제 걸린 시간
55.5일

뷸러·그리핀·로스(1994) 연구 1. 막대 길이는 실제 걸린 55.5일을 100%로 놓은 비율.

예상한 날짜에 끝낸 학생은 29.7%였다. 더 놀라운 건 "모든 게 최악으로 꼬이면"이라고 가정한 날짜조차 절반(48.7%)만 지켰다는 것이다. 후속 연구에서 학생들이 예측할 때 떠올린 생각을 소리 내어 말하게 했더니, 74%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한 생각이었고, 과거에 비슷한 일이 얼마나 걸렸는지 떠올린 생각은 7%, 방해 요인을 생각한 경우는 3%뿐이었다.

카파시의 처방 — "알아야 할 것 전부를 항목으로 적고 하나씩 시간을 매겨라" — 은 이 오류를 줄이는 방법과 정확히 같다. 큰 과제를 하위 과제로 쪼개 나열하면 예상 시간이 길어지고 과소 추정이 줄어든다(크루거·에번스 2004). 마감에서 거꾸로 계획을 짜는 것도 도움이 된다(위즈 등 2016). "지키지 않더라도"라는 단서도 의미가 있다. 계획표의 진짜 쓸모는 그대로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지금 3장인데 남은 날이 이틀"이라는 사실을 일찍 알아채게 해 주는 데 있다.

규칙 6.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기출부터 봐라" — 근거 보통

카파시는 기출을 풀지 말고 문제의 유형만 꼼꼼히 보라고 했다. 교수마다 평가 스타일이 다르니, 그걸 먼저 알아야 어떻게 공부할지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 직관의 학문적 이름은 전이 적합 처리(transfer-appropriate processing)다. 1977년 모리스·브랜스퍼드·프랭크스의 실험에서 단어의 뜻을 생각하며 외운 사람은 보통의 기억 시험에서 이겼다. 그런데 시험을 "공부한 단어와 운이 맞는 단어를 고르시오"로 바꾸자 결과가 뒤집혔다. 단어의 소리에 집중해 외운 사람이 이겼다. 기억은 '얼마나 깊이' 공부했느냐보다, 공부한 방식과 시험 보는 방식이 얼마나 맞느냐에 달려 있다.

2012년 핀리와 벤저민(Finley & Benjamin)은 이걸 '시험 형식을 미리 알게 되는 경험'으로 실험했다. 100명이 단어 쌍 목록을 네 번 외우고 시험을 보면서 시험 형식을 익혔다 — 단서 단어를 주고 짝을 떠올리는 시험, 또는 아무 단서 없이 떠오르는 대로 적는 시험. 다섯 번째 목록에서 예상한 형식 그대로 시험을 본 사람은 단서 회상에서 0.51 대 0.25(약 2배), 자유 회상에서 0.27 대 0.06(약 4.5배)로, 엉뚱한 형식을 예상한 사람보다 훨씬 잘했다. 사람들은 시험이 어렵다고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게 아니라, 예상한 시험에 맞춰 공부 방식 자체를 바꾼다.

다만 '기출 먼저'라는 행동을 그대로 실험한 연구는 찾지 못했다. 그리고 반대쪽 연구도 하나 있다. 공부하기 전에 문제를 미리 풀어 보는 것(틀리더라도)이 학습을 돕는다는 '사전 시험 효과'다. 카파시는 처음엔 풀지 말라고 했지만, 한두 문제쯤 풀어 보며 "아, 이걸 모르는구나"를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규칙 7. "읽고 이해하는 것은 다시 써내는 것과 같지 않다" — 근거 강함

이 페이지의 심장이다. 카파시는 여기서 드물게 자기 실수를 고백한다.

"나도 아직 자주 하는 실수다. 책에서 공식이나 유도, 증명을 읽으면 완벽하게 이해된다. 이제 책을 덮고 써 보라. 그 과정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것이고, 정말 많은 경우 쓰지 못한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두 일은 기억의 서로 다른 부분을 쓰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제로 써낼 수 있는지, 마음대로 다시 유도할 수 있는지 반드시 확인하라. 파인만은 이걸 아주 잘 알았다."

왼쪽 '읽기': 공식이 적힌 책을 보며 끄덕이는 학생. 오른쪽 '덮고 쓰기': 책을 덮고 빈 종이 앞에서 땀 흘리는 같은 학생크게 보기

파인만의 칠판

'파인만은 이걸 아주 잘 알았다'의 링크는 쿼라의 질문 하나로 이어진다. "파인만이 '내가 만들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한 건 무슨 뜻인가?"

이 문장은 1988년 2월 15일 리처드 파인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캘텍 연구실 칠판에 남아 있던 글귀다. 캘텍 기록보관소의 사진(1.10-29)을 보면 왼쪽 위에 네모 상자를 친 "What I cannot create, I do not understand.", 그 바로 아래에 역시 상자를 친 "Know how to solve every problem that has been solved"(풀린 적 있는 모든 문제를 푸는 법을 알라)가 적혀 있다. 오른쪽에는 "TO LEARN(배울 것)" 목록 — 베테 가설, 콘도 문제, 2차원 홀 효과… — 이 이어진다. 노벨상을 받은 69세의 물리학자가 죽는 순간까지 '배울 것' 목록을 칠판에 쓰고 있었다.

1980년대 물리학자 연구실의 칠판에 쓰인 'What I cannot create, I do not understand.'와 'Know how to solve every problem that has been solved.' (재구성 일러스트)크게 보기

실제 칠판 사진은 캘텍 기록보관소 소장품(이미지 1.10-29)으로, 게재에 허가가 필요해 여기서는 일러스트로 재구성했다. 원본은 캘텍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볼 수 있다.

쿼라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답(물리교육 연구자 마크 아이켄라웁)은 이 문장을 이렇게 풀었다. "바로 아래 문장이 답이다. 빈 종이 한 장과 이미 머릿속에 있는 지식만으로, 어떤 이론적 결과든 처음부터 다시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카파시가 "마음대로 다시 유도할 수 있는지 확인하라"고 쓴 것과 같은 말이다. 카파시는 이 문장을 오래 붙들고 산다. 유레카 랩스의 첫 강의 저장소(LLM101n) 첫 줄에도 이 문장을 걸었고, 2025년 팟캐스트에서도 "내가 만들 수 없으면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말을 꺼냈다.

로디거와 카피키의 실험: 네 번 읽기 대 세 번 떠올리기

카파시의 고백을 가장 깔끔하게 증명한 실험은 2006년 워싱턴 대학의 헨리 로디거와 제프리 카피키(Roediger & Karpicke)가 했다. 학생 180명이 과학 주제의 짧은 지문을 공부했다. 5분짜리 단계 네 개를 세 가지로 조합했다.

조건5분 뒤 시험1주 뒤 시험1주 동안 잊은 비율"1주 뒤 얼마나 기억할까" (7점)
읽기 4번 (SSSS)83%40%52%4.8
읽기 3번 + 떠올려 쓰기 1번 (SSST)78%56%28%4.2
읽기 1번 + 떠올려 쓰기 3번 (STTT)71%61%14%4.0

로디거·카피키(2006) 실험 2. '떠올려 쓰기'는 지문을 보지 않고 기억나는 것을 모두 적는 것이며, 정답 피드백은 주지 않았다. 읽기 4번 집단은 지문을 평균 14.2번, 떠올리기 집단은 3.4번 읽었다.

이 표의 세 열이 각각 하나의 이야기다.

  • 5분 뒤에는 네 번 읽은 쪽이 이긴다(83% 대 71%). 벼락치기가 '통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 1주 뒤에는 순위가 뒤집힌다(40% 대 61%). 네 번 읽은 학생은 1주 동안 배운 것의 절반 넘게 잊었고, 세 번 떠올린 학생은 14%만 잊었다.
  • 그리고 마지막 열. 네 번 읽은 학생들이 가장 자신만만했다(4.8점). 가장 많이 잊을 사람들이 가장 잘 기억할 거라고 믿었다.

이 마지막 열이 카파시가 말한 "놀라움"의 정체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유창성 착각(fluency illusion), 또는 능력 착각이라고 부른다. 읽을 때는 답이 눈앞에 있다. 문장이 매끄럽게 읽히고, 다음 줄이 예상되고, "아, 그렇지" 하는 느낌이 든다. 뇌는 그 매끄러움을 "안다"는 신호로 착각한다. 그러나 시험은 답이 없는 상태에서 꺼내라고 요구한다. 코리아트와 비요크(2005)의 실험에서 사람들은 거꾸로 연결된 단어 쌍에 대해 75.7%를 기억할 거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60.3%만 떠올렸다.

카파시는 "두 일이 기억의 다른 부분을 쓰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과학적으로 정확한 설명은 조금 다르다. 같은 기억이지만 떠올리는 행위 자체가 기억을 강화한다. 그리고 읽을 때의 느낌은 떠올릴 수 있는지를 알려 주지 못한다. 설명은 달라도 처방은 같다 — 덮고 써라.

학생들은 정반대로 공부한다

문제는 학생들이 이걸 거의 안 한다는 것이다. 카피키·버틀러·로디거(2009)가 대학생 177명에게 공부법을 자유롭게 적게 했더니 84%가 다시 읽기를 적었고, 55%는 다시 읽기를 1순위로 꼽았다. 스스로 시험 보기를 분명히 쓰는 학생은 11%, 그걸 1순위로 꼽은 학생은 177명 중 2명이었다. (질문 방식에 따라 이 수치가 달라진다는 반론도 있다 — 공부 후반부에는 많은 학생이 문제 풀기로 넘어간다.)

효과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테스트 효과를 '다시 공부하기'와 비교한 메타분석(롤런드 2014, 61개 연구)은 g = 0.50을 보고했다. 시험과 시험 사이가 하루 이상이면 0.69, 정답 피드백을 주면 0.73으로 커진다. 개념 지도를 그리는 '정교한' 공부와 비교한 실험(카피키·블런트 2011, 사이언스)에서도 떠올리기 연습이 1주 뒤 시험에서 67% 대 45%로 이겼다. 120명 중 84%가 떠올리기 쪽에서 더 잘했지만, 75%는 개념 지도가 같거나 더 낫다고 예상했다.

한 가지 한계는 짚어 둬야 정직하다. 반 고흐·스웰러(2015) 등은 여러 요소가 얽힌 복잡한 문제 풀이에서는 테스트 효과가 줄거나 사라진다고 보고했다. 유도 과정을 외우는 데에는 떠올리기가 강력하지만, 문제 해결 능력 자체를 기르려면 다음 규칙 — 풀이 예제와 연습 문제 — 이 함께 필요하다.

직접 해 보자. 아래 위젯은 고등학교에서 누구나 배운 근의 공식 유도(또는 머신러닝을 공부하는 독자라면 시그모이드 함수의 미분)를 읽게 한 뒤, 몇 단계를 덮고 쓸 수 있을지 예측하게 하고, 실제로 종이에 써 본 다음 한 단계씩 맞춰 보게 한다.

규칙 8. "혼자 먼저, 끝 무렵에 함께" — 근거 보통

카파시는 공부 초반에 다른 사람은 "방해만 될 뿐"이라며 혼자 하라고 하고, 끝 무렵에는 모여서 함정을 짚고 서로 가르쳐 보라고 했다.

기억 연구에는 협력 억제(collaborative inhibition)라는 이상한 현상이 있다. 여러 명이 함께 기억을 떠올리면, 같은 수의 사람이 각자 떠올린 뒤 합친 것보다 덜 기억한다. 64개 연구의 메타분석(매리언·솔리 2016)에서 효과 크기는 d = −0.78이었다. 남이 말하는 순서가 내 머릿속의 인출 경로를 흐트러뜨리기 때문으로 본다. 그런데 같은 메타분석에 반전이 있다. 함께 떠올린 뒤 나중에 혼자 시험을 보면 더 많이 기억했다(d = +0.59). 남이 떠올린 것을 한 번 더 접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내 인출 경로를 만드는 동안에는 혼자가 낫고, 경로가 만들어진 뒤에 비교하면 남의 기억이 내 빈칸을 채운다. 카파시의 순서와 정확히 같다.

규칙 9. "강한 학생하고만 어울리지 마라 — 약한 친구에게 설명하라" — 근거 보통

"약한 학생들은 당신에게 설명을 부탁할 것이고, 가르치는 일이 이해를 아주 많이(A LOT) 돕는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도서관 화이트보드 앞에서 친구들에게 그래프를 설명하는 학생 머리 위에 전구가 켜진 장면 — '가르치는 사람이 가장 많이 배운다'크게 보기

이 규칙에는 카파시 자신의 증언이 있다. 2011년 11월, UBC 조교상에 지원하며 쓴 글(수상은 못 했다)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막상 가르치기 시작하자, 이 기초 개념들에 대한 내 이해가 피상적이었고 규칙 암기에 가까웠다는 걸 깨달았다. 남에게 설명하면서 스스로 납득하도록 나를 몰아붙이자 훨씬 깊은 이해에 이르렀다." 그는 2년 동안 거의 이틀에 한 번 튜토리얼을 열었고, 조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인 과제 채점을 자원했다. 2025년 팟캐스트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설명하려다 '어, 나 이거 모르네' 하게 된다. 인정하기 정말 짜증 나지만."

연구는 이 효과를 인정하되, 크기는 조금 덜어 낸다.

  • 가르칠 준비만 해도 배운다. 나중에 남에게 가르칠 거라고 믿고 공부한 사람이, 시험을 볼 거라고 믿고 공부한 사람보다 더 잘 기억하고 더 잘 정리했다(네스토이코 등 2014 — 실제로는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다). 28개 연구 메타분석에서 가르칠 준비의 효과는 g = 0.35, 준비하고 실제로 가르치기까지 하면 g = 0.56이었다(고바야시 2019).
  • 실제로 가르치는 게 오래 남는다. 피오렐라·메이어(2013, 2014)의 실험에서 '가르칠 예정'이라는 기대는 바로 본 시험에서만 효과가 있었고, 1주 뒤 시험에서는 실제로 영상 강의를 찍은 사람만 더 잘했다.
  • 그런데 이득의 상당 부분은 인출이다. 코·리·림(2018)은 노트 없이 카메라 앞에서 가르친 집단, 노트를 보며 가르친 집단, 그냥 혼자 떠올려 적은 집단을 비교했다. 1주 뒤, 노트 없이 가르친 집단과 혼자 떠올린 집단은 차이가 거의 없었고(d = 0.10), 둘 다 노트를 보며 가르친 집단보다 크게 앞섰다. 가르치기가 효과적인 큰 이유는, 남 앞에서 설명하려면 보지 않고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규칙 7과 같은 원리다.

"약한 학생"이라는 대목도 근거가 있다. 또래 튜터링에서 튜터 자신이 얻는 이득을 모은 메타분석(렁 2019)은 효과 크기 0.43을 보고했고, 배우는 쪽의 학업 수준이 낮을수록 튜터의 이득이 컸다. 잘하는 친구와는 "아 그거" 하고 넘어가지만, 모르는 친구는 "그게 왜?"를 끝까지 묻기 때문이다. 그 "왜?"가 나의 빈칸을 드러낸다.

규칙 10. "시험 전에 면담 시간에 한 번은 가라 (질문이 없으면 지어내서라도)" — 연구 없음, 그리고 논쟁

"교수는 때때로 일대일로는 시험에 대해 더 말해 주기도 한다(반 전체 앞에서는 말하지 않을 것들을). 기대하지는 마라. 다른 학생보다 불공평하게 유리한가? 가끔은. 조금 치사하긴 하다 :) 그래도 교수가 당신을 조금이라도 알게 하는 건 좋은 생각이다."

교수 연구실 문에 '면담 시간' 팻말, 긴장한 학생이 노크하고 교수가 반갑게 의자를 권하는 장면크게 보기

이 규칙은 해커뉴스에서 가장 날카로운 반발을 샀다. 한 사용자(neilv)는 "내가 교수라면, 얼굴도장을 찍으려고 질문을 지어내 오는 학생은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라며 이런 조언을 "사이코패스 커리어"의 시작이라고까지 했다. 다른 사용자는 "조작적인 것 같아서 한 번도 안 갔다"고 했고, 또 다른 사용자는 "돌이켜 보니 면담 시간은 공짜 일대일 과외였는데 한 번도 안 간 게 후회된다"고 했다. 2013년 원판에서 카파시는 "불공평한가? 아니! 다른 학생들이 이걸 알아낼 만큼 똑똑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썼다. 지금 판본의 "조금 치사하긴 하다"는 그 문장을 스스로 누그러뜨린 결과다.

'시험 정보를 캐낸다'는 부분을 지지하는 연구는 당연히 없다. 그러나 '교수가 당신을 알게 하라'는 부분에는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말로프 등(2013)의 실험에서 교수와 조교들은 같은 학생의 구두 발표가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본 뒤 그와 무관한 글쓰기 과제를 채점했는데, 좋은 발표를 본 뒤의 채점이 유의하게 후했다. 후광 효과(halo effect) — 1920년 손다이크가 이름 붙인, 한 가지 좋은 인상이 다른 판단까지 물들이는 현상 — 다. 1,935명의 채점자가 참여한 20개 실험의 메타분석(말로프·토르스테인손 2016)에서 학생에 대한 무관한 정보가 채점을 움직인 크기는 g = 0.36이었다. 그래서 많은 대학이 익명 채점을 한다.

그러니 이 규칙은 두 개로 나눠 읽는 게 좋겠다. "질문을 지어내서 시험 힌트를 캐라"는 버리자. "교수와 조교를 찾아가 내가 헷갈리는 걸 설명해 보라"는 — 규칙 9의 '가르치기'를 거꾸로 하는 일이고, 카파시 본인이 마지막 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추천서의 출발점이다.

규칙 11. "미리 공부하라 — 중간고사 3일, 기말 6일" — 근거 강함

"이미 말했던가? 다시 강조해야겠다. 뇌는 내용을 흡수할 시간이 정말로 필요하다. 어려워 보이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쉬워진다."

왼쪽: 책더미에 파묻혀 하룻밤에 몰아서 공부하는 학생. 오른쪽: 6일 동안 달과 잠을 사이에 두고 조금씩 공부하는 학생과 카드를 정리하는 작은 뇌크게 보기

카파시가 같은 말을 두 번 한 규칙이고, 학습 과학에서도 가장 많이 재현된 결과다. 184편의 논문, 317개 실험을 모은 세페다 등(2006)의 메타분석에서 몰아서 공부한 조건의 평균 정답률은 36.7%, 나눠 공부한 조건은 47.3%였다.

수학 문제로 한 실험이 더 와닿는다. 로러와 테일러(Rohrer & Taylor, 2006)는 대학생들에게 순열 문제 10개를 풀게 했다. 한 집단은 한 번에 10개, 다른 집단은 일주일 간격으로 5개씩 두 번. 같은 10문제다. 1주 뒤 시험에서는 두 집단이 비슷했다(70% 대 75% 안팎). 그런데 4주 뒤에는 나눠 푼 집단 64%, 몰아서 푼 집단 32% — 정확히 두 배였다. 같은 실험의 다른 결과도 기억할 만하다. 한 번에 9문제를 푼 집단과 3문제를 푼 집단은 1주 뒤에도 4주 뒤에도 차이가 없었다. 한자리에서 더 푸는 '과잉 학습'은 시간 낭비였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왜 몰아서 할까. 코넬(Kornell, 2009)의 실험이 답한다. GRE 어휘 카드를 나눠 외우게 했더니 참가자의 90%가 간격 조건에서 더 잘했다. 그런데 첫 공부 직후 72%는 몰아서 외우는 쪽이 더 효과적이었다고 믿었다. 몰아서 하면 같은 카드가 금방 다시 나와서 "이거 알아!"라는 느낌이 자주 든다. 그 느낌이 학습처럼 느껴진다. 규칙 7의 유창성 착각이 시간 축에서 다시 나타난 것이다.

'3일, 6일'이라는 숫자는 어떨까. 세페다 등(2008)은 1,354명에게 사실 정보를 외우게 한 뒤 복습 간격(0일~105일)과 최종 시험 시점(7일~350일)을 바꿔 가며 실험했다. 결론은 "최적의 복습 간격은 시험까지 남은 기간에 따라 달라진다"였다. 1주 뒤 시험이면 약 3일 간격(남은 기간의 20~40%), 1년 뒤 시험이면 약 3주 간격(5~10%)이 가장 좋았다. 카파시의 '중간고사 3일 전부터'는 1~2주 앞의 시험에 대해서는 이 범위와 잘 맞는다.

다만 이 실험에는 조심스럽게 읽어야 할 숫자도 있다. 최적 간격을 지켰을 때의 이득이 1주 뒤 시험에서는 +10%에 그쳤고, 5주 뒤 시험에서는 +59%, 10주 뒤 시험에서는 +111%였다. 다시 말해 간격의 진짜 위력은 시험이 끝난 뒤에 나온다. 중간고사만 보면 벼락치기와 간격의 차이가 작아 보인다. 하지만 기말고사가 누적 범위라면, 그 과목이 다음 학기 과목의 선수 과목이라면,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내용이 직업이 될 거라면 — 차이는 몇 배가 된다.

아래 위젯은 같은 총 공부 시간을 '전날 밤 몰아서'와 '며칠에 나눠서'로 배치했을 때 기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그리는 장난감 모형이다. 실측이 아니라 위 연구들의 '모양'을 흉내 내도록 고른 가정값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만져 보자.

규칙 12. "비상시엔 에너지 드링크를 들이켜라. 그냥 화학이다." — 근거 보통

맞는 말인데, 그 '화학'의 정체는 거의 전부 카페인이다. 에너지 드링크 성분을 다룬 32편의 논문을 검토한 매클렐런·리버먼(2012)은 타우린, 인삼, 글루쿠로노락톤, 비타민 B군이 카페인 이상의 효과를 낸다는 증거가 "압도적으로 부족하다"고 결론 내렸다. 235ml 한 캔의 카페인은 제품에 따라 40~250mg이다. 카페인은 각성, 경계, 주의, 반응 속도를 확실히 올린다. 특히 잠이 부족할 때 효과가 크다. 그러나 기억이나 판단 같은 고차 사고에 대한 효과는 일관되지 않다(매클렐런 등 2016). 그러니 에너지 드링크는 "비싼 커피"다. 밤샘 뒤 졸음과 싸우는 데에는 통하지만, 모르는 것을 알게 해 주지는 않는다. 해커뉴스의 한 사용자 말처럼 "당신의 건강이 당신이 보는 시험보다 중요하다."

규칙 13. "수학 같은 과목은 연습 > 읽기" — 근거 보통 (조건부 강함)

카파시는 "연습 문제를 시작할 수 있을 만큼 공부한 뒤, 빈틈은 문제를 풀며 채우라. 문제가 모르는 걸 다시 읽게 만든다"고 했다.

이 분야에서 가장 강력한 최근 증거는 섞어 풀기(interleaving) 연구다. 로러 등(2020)은 미국 중학교 1학년(우리의 중1) 54개 학급, 787명을 무작위로 나눠 5개월 동안 수학 숙제를 다르게 냈다. 한쪽은 단원별로 같은 유형을 몰아 푸는 숙제, 다른 쪽은 여러 유형이 섞인 숙제. 한 달 뒤 예고 없는 시험에서 섞어 푼 학급 61%, 몰아 푼 학급 38%였다(d = 0.83). 15명의 교사 모두에게서 같은 방향이었다. 이 연구는 결과를 보기 전에 분석 계획을 미리 등록한(사전 등록) 연구라 신뢰도가 높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단원 끝 연습 문제는 어떤 공식을 쓸지 이미 알려 준다. 3단원 연습 문제는 3단원 공식으로 풀면 된다. 하지만 시험지는 그걸 알려 주지 않는다. 섞어 푼 학생은 "이건 어떤 유형이지?"를 매번 판단하는 연습을 했고, 몰아 푼 학생은 하지 않았다. 앞선 소규모 실험(로러·테일러 2007, 18명)에서는 연습 중 점수가 몰아 풀기 89%, 섞어 풀기 60%로 몰아 풀기가 훨씬 좋아 보였는데, 1주 뒤 시험에서는 20% 대 63%로 뒤집혔다.

한 가지 단서가 있다. 인지 부하 이론의 전문성 역전 효과에 따르면, 완전 초보에게는 처음부터 문제를 던지는 것보다 풀이 예제(worked example)를 먼저 보여 주는 게 낫다. 실력이 쌓이면 예제는 군더더기가 되고 직접 푸는 게 나아진다(칼류가 등 2001). 카파시가 "연습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읽은 뒤에"라고 순서를 정한 것은 정확히 이 권고와 맞는다.

규칙 14. "가져갈 수 없더라도 요약 시트를 만들어라" — 근거가 반대쪽

"쓰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된다. 과목 전체를 한두 장에 욱여넣고, 그걸 앞에 펼쳐 놓고 '이게 내가 알아야 할 전부다'라고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규칙은 생각보다 많이 연구됐고, 결과는 카파시 편이 아니다.

  • 힌드먼(1980): 시험 직전에 무작위로 시트 사용 여부를 정했더니, 만들고 못 쓴 학생·만들고 쓴 학생·안 만든 학생의 점수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 딕슨·바우어(2008): 시트를 만든 학생들은 시트 없이 본 깜짝 사전 시험에서 시트를 볼 때보다 못했다. 결론은 "시트를 만드는 과정이 학습을 늘리지는 않았고, 시트를 쓰는 것이 점수를 올렸다." 학생의 83%는 시트 덕에 공부가 됐다고 믿었다.
  • 펑크·딕슨(2011): 시트를 쓸 거라 기대한 학생들은 오히려 덜 배웠다(의존). 카파시의 상황처럼 못 쓸 걸 알고 만든 학생들은 손해도 이득도 없었다.
  • 가립 등(2012): 약 400명의 분반에 오픈북·시트 허용·클로즈드북 시험을 돌아가며 배정했다. 시험 당일 점수는 오픈북 80.1, 시트 77.9, 클로즈드북 72.5로 달랐지만, 2주 뒤 깜짝 퀴즈(10점 만점)는 6.41·6.44·6.38로 똑같았다.

그렇다면 카파시는 왜 도움이 됐다고 느꼈을까. 그가 묘사한 활동 — 과목 전체를 훑어 압축하고, "이게 전부인가?"를 점검하는 것 — 은 조직화와 자기 점검이고, 이건 효과가 있다. 다만 그 효과는 '시트'가 아니라 '점검'에서 나온다. 그러니 이렇게 고쳐 쓰자. 시트를 만들어라. 그리고 덮고, 빈 종이에 다시 써 봐라. 그 순간 시트는 규칙 7의 인출 연습 도구가 된다.

규칙 15. "남들이 공부하는 곳에서 공부하라. 소음은 피하라" — 엇갈림

"내가 공부 안 하는 유일한 사람일 때 기분이 나빠진다. 나한테는 통한다 :) 배경 소음이 많은 곳은 연구로도 학습에 나쁘다. 도서관과 열람실이 최고다."

이 규칙은 두 부분이 다른 판정을 받는다.

소음 부분은 근거가 강하다. 다만 '소음'의 종류가 중요하다. 242개 연구를 모은 메타분석(살마·핸콕 2011)에서 소음은 전반적으로 수행을 떨어뜨렸는데(g = −0.31), 사람 말소리(g = −0.43)가 일반 소음(g = −0.16)보다 훨씬 나빴다. 읽기 이해만 본 메타분석(바실레프 등 2018)에서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소리(g = −0.34)와 가사 있는 음악(g = −0.35)이 가장 방해가 됐고, 가사 없는 음악은 거의 0이었다. 핵심은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의미다. 뇌는 무시하려 해도 들리는 말을 처리해 버린다. 그래서 일정한 선풍기 소리보다 옆자리 대화가 더 나쁘다. 해커뉴스의 한 사용자는 "적당히 붐비는 카페 + 헤드폰 + 연주곡"이 자기에겐 최고였다고 했는데, 연구와도 대체로 맞는다 — 카페의 말소리를 연주곡으로 덮었다면.

'남들 공부하는 곳' 부분은 엇갈린다. 남이 보는 앞에서 더 열심히 일하는 동료 효과는 실재한다. 미국 슈퍼마켓 계산원 데이터를 분석한 마스·모레티(2009)는 빠른 동료가 나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 내가 더 빨리 일한다는 것을 보였다. 내가 그를 볼 수 있을 뿐 그가 나를 못 보면 효과가 없었다. 카파시의 "나만 안 하면 기분이 나빠진다"는 정확히 이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1965년 자이언스(Zajonc)의 사회적 촉진 이론에 따르면, 타인의 존재는 익숙하고 쉬운 일은 돕지만 새롭고 어려운 학습은 방해한다. 241개 연구 메타분석(본드·티투스 1983)도 타인의 존재가 복잡한 과제의 정확도를 떨어뜨린다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 '바디 더블링'(누군가 옆에 있으면 집중이 된다는 것)은 아직 연구가 거의 없다.

그래서 이 규칙의 정확한 버전은 이럴 것이다. "자리에 앉아 시작하게 만드는 데에는 남들 공부하는 곳이 좋다. 그곳은 대화 소리가 없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정말 어려운 새 개념과 씨름할 때는 혼자인 편이 나을 수 있다." 도서관 열람실은 이 세 조건을 다 맞추는, 꽤 잘 설계된 공간이다.


5부. '시험 당일' 칸 — 커피와 마지막 45분

규칙 16. "T−2시간에 커피와 밥. 직전 커피는 언제나 나쁘다. 커피를 아예 안 마시는 것도 나쁘다." — 엇갈림

시험 당일 타임라인 인포그래픽: T−2시간 커피·식사, T−1시간 짧은 휴식, T−45분 집중 복습, 직전 커피 X, 시험 시작크게 보기

카파시는 이 규칙 끝에 "커피 부분은 나한테만 해당될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 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2013년 판본에는 "나와 내 뇌의 화학"이라고 썼다. 이 단서가 핵심이다.

타이밍의 논리는 맞다. 유럽식품안전청(EFSA, 2015)에 따르면 카페인은 빠르고 거의 완전히 흡수되며 효과는 섭취 15~30분 뒤부터 나타나 몇 시간 이어진다. 혈중 농도가 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는 건강한 성인 평균 약 4시간, 범위는 2~8시간이다. T−2시간에 마시면 혈중 농도의 정점은 시험 시작 전에 지나가고, 시험 내내 비교적 높은 수준이 유지된다. 직전에 마시면 정점이 시험 한가운데에 온다 — 가뜩이나 긴장된 순간에 각성의 정점까지 겹친다.

"아예 안 마시는 것도 나쁘다"도 맞다. 다만 이유가 다르다. 로저스 등(2010)은 커피를 거의 안 마시는 사람 162명과 평소 꽤 마시는 사람 217명을 16시간 끊게 한 뒤 카페인이나 가짜약을 줬다. 평소 마시는 사람이 가짜약을 받으면 각성이 떨어지고 두통이 늘었다. 그리고 거의 안 마시는 사람에게 카페인은 각성을 올려 주지 않았다. 저자들의 결론은 담담하다. "카페인 금단이 각성을 떨어뜨리고, 섭취는 그것을 원래 수준으로 되돌릴 뿐이다." 매일 커피를 마시는 학생이 시험 날 커피를 끊는 건 '각성제를 안 먹는 것'이 아니라 금단 상태로 시험을 보는 것이다. 같은 연구는 특정 유전형(ADORA2A)을 가진 사람이 카페인에 더 불안해진다는 것도 보였다. "나한테만 해당될 수 있다"는 카파시의 단서가 유전학적으로도 맞는 셈이다.

"카페인이 공부한 걸 굳혀 준다"는 기대는 접자. 2014년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공부 직후 200mg의 카페인이 다음 날 기억을 돕는다는 연구(보로타 등)가 실렸지만, 효과는 겨우 유의했고(p = .049), 시험 1시간 전에 준 카페인은 아무 효과가 없었다. 2020년 후속 연구(아우스트·슈탈)는 효과를 재현하지 못했다.

"적당한 긴장이 최고의 성적을 낸다"는 역U자 곡선도 조심하자. 흔히 '여크스-도슨 법칙(1908)'으로 인용되는데, 원래 실험은 '춤추는 생쥐' 40마리가 흰 상자와 검은 상자를 구별하도록 전기 충격 세기를 바꾼 것이었다. 사람의 각성이나 불안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나중에 교과서들이 '각성, 불안, 스트레스' 이야기로 바꿔 썼다(테이건 1994). 시험 불안을 줄인다며 유명해진 '시험 전 10분 걱정 글쓰기'(라미레스·베일록 2011, 사이언스)도 이후 대규모 재현에 실패했고, 2026년 메타분석은 효과가 사실상 없다고 결론 내렸다.

아래 위젯으로 시험 시각, 커피 마시는 시각, 반감기(개인차)를 바꿔 보자. 숫자는 '한 잔을 마신 뒤의 최고치 = 100'으로 맞춘 상대값이다.

규칙 17. "시험 직전 30~45분은 최대한 몰입해서 공부하라" — 근거 보통

"많은 사람이 시험 직전에 포기하고 '쉰다'고 한다. 단기 기억은 멋진 것이다, 낭비하지 마라! 꼭 쉬어야 한다면 시험 한 시간쯤 전에 쉬고, 30~45분 전에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라."

해커뉴스에서 두 번째로 반발이 컸던 규칙이다. "시험 직전에 공부하지 말라고 배웠다, 장기 기억 인출을 방해한다고"라는 댓글도 있었다.

연구는 카파시 편에 조금 더 가깝다. 몰아서 다시 읽기는 바로 이어지는 시험에서는 실제로 이긴다. 대학생 423명을 대상으로 한 로슨·킨치(2005)의 실험에서 지문을 연달아 두 번 읽은 학생은 바로 본 시험에서 한 번 읽은 학생보다 잘했다. 이틀 뒤 시험에서는 그 이득이 사라졌다. 로디거·카피키의 표에서 5분 뒤 시험은 네 번 읽은 쪽이 이겼던 것(83%)과 같은 이야기다. 그러니 마지막 45분의 몰입은 "그날 시험"을 위한 정당한 전술이다. 단, 그것은 며칠간의 간격 공부를 대신할 때가 아니라 그 위에 보탤 때만 의미가 있다. 카파시도 두 가지를 모두 말했다 — 며칠 전부터 시작하고, 마지막 45분은 몰입하라.

"한 시간 전에 쉬어라"에도 작은 근거가 있다. 배운 직후 10분 동안 눈을 감고 조용히 쉬면, 퍼즐 같은 다른 일을 할 때보다 기억이 더 잘 남는다는 연구들이 있다(듀어 등 2012). 다만 2026년의 메타분석은 건강한 젊은 성인에서 그 효과가 작다고(g = 0.20) 정리했다. 쉬려면 휴대폰이 아니라 진짜 휴식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6부. '시험 중' 칸 — 채점하는 사람의 마음

규칙 18. "연필로, 전체를 1~3초씩 훑고, 쉬운 문제부터" — 엇갈림

"막히면 너무 오래 붙잡지 말고 나중에 돌아와라. 나는 늘 문제를 건너뛴다. 첫 바퀴에 30%밖에 못 푸는 때도 있다. 어떤 문제는 '몸이 풀리고' 나면 훨씬 쉬워진다. 설명은 못 하겠다."

시험지 1~8번 중 2·5·7번에 체크, 나머지는 건너뛰기 화살표. 책상에 '1회차: 쉬운 것부터' 포스트잇크게 보기

문제 순서의 효과를 본 연구는 꽤 있는데, 결과는 미묘하다. 1984년 화학 객관식 시험 연구(호지슨)에서는 쉬운 문제부터 배치한 시험지의 평균이 어려운 문제부터 배치한 시험지보다 높았다. 그러나 와인스타인·로디거(2010, 2012)의 실험에서는 쉬운 문제가 앞에 오면 학생들이 "잘 봤다"고 느끼는 정도는 확실히 높아졌지만, 실제 점수는 의미 있게 다르지 않았다. 카파시가 "설명은 못 하겠다"고 한 '몸 풀림'은, 적어도 실험실에서는 점수보다 자신감에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규칙의 진짜 가치는 인지과학이 아니라 시간 관리 산수에 있다. 시간 제한이 있는 시험에서 첫 문제가 15점짜리 난제라면, 거기에 10분을 쓰는 순간 뒤에 있는 쉬운 5점짜리 문제들이 시간 부족으로 사라진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같은 실력의 학생이 시험 운영만 바꿨을 때 점수 분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3,000번씩 돌려 본다.

돌려 보면 패턴이 보인다. 실력이 낮고 시간이 빠듯할수록 '넘기기'의 이득이 크다(이 가정에서는 평균 8~9점). 실력이 높아 시간이 남는 학생에게는 순서보다 '끝까지 검토'가 더 큰 차이를 낸다. 그리고 그것이 다음 규칙이다.

규칙 19. "깔끔하게 써라. 슬픈 사람은 낮은 점수를 준다." — 근거 보통

"놀랍게도 이 뻔한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이 당신의 시험지를 채점한다. 슬픈 사람은 낮은 점수를 준다. 학부 때 짐작했고, 조교로 실제 채점을 하며 강하게 확인했다."

밤늦게 시험지 더미를 채점하는 조교 — 왼쪽 엉망인 답안에 괴로워하고, 오른쪽 답에 상자를 친 깔끔한 답안에 웃으며 체크하는 장면. '채점자도 사람이다'크게 보기

이 규칙에는 의외로 탄탄한 증거가 있다. 같은 내용의 답안이라도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면 점수가 낮다.

  • 그레이엄·해리스·허버트(2011)는 같은 글을 표현만 바꿔 채점하게 한 실험들을 메타분석했다. 알아보기 힘든 글씨의 효과는 전체 −0.76 표준편차, 초중고생 글은 −1.03, 대학생 글은 −0.39였다. 철자 오류(−0.38)와 문법 오류(−0.56)도 점수를 깎았다. 의외의 결과도 하나 있다. 같은 글을 타이핑한 버전이 손글씨보다 오히려 낮은 점수를 받았다(−0.48). 활자에서는 오류가 더 눈에 띄기 때문으로 본다. 깔끔함이 곧 타이핑은 아니다.
  • 독일의 그라이페네더 등(2010)은 대학생 44명에게 같은 물리 에세이를 알아보기 쉬운 글씨와 어려운 글씨로 채점하게 했다. 6점 척도에서 평균 0.5점 차이가 났다. 아름다운 글씨인지는 상관없었고, 읽기 쉬운지만 중요했다. 흥미로운 건 세 번째 실험이다. 채점 전에 "글씨의 가독성이 평가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가 있으니 영향받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하자 편향이 사라졌다. 채점자가 그 편향을 알고 있으면 없어진다는 뜻이다.

'슬픈 채점자'는 어떨까. 미시간 대학의 7천만 건 넘는 온라인 학습관리시스템(캔버스) 채점 기록을 분석한 연구(왕·페이·리, 2023년 첫 공개·2026년 개정, 학술지 심사 중)에 따르면, 채점 시스템이 기본으로 성(姓)의 알파벳순으로 답안을 띄우는 탓에 A~E로 시작하는 학생은 100점 만점에 평균 0.3점을 더 받고, 뒤쪽 알파벳 학생은 0.3점을 덜 받았다. 뒤쪽 학생들은 더 부정적이고 덜 정중한 코멘트를 받았다. 저자는 "피로가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의심한다"고 했다. 학생 한 명에게는 작은 차이지만, 수백만 건에 걸쳐 체계적이다.

여기서 한 가지 '유명하지만 믿으면 안 되는' 사례를 짚고 가자. 이스라엘 가석방 심사에서 판사들이 식사 직후에는 65% 가까이 가석방을 허가하다가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 0%에 가깝게 떨어진다는 '배고픈 판사' 연구(단치거 등 2011)다. 그런데 이후 분석은 사건 순서가 무작위가 아니었고(변호사 없는 수감자가 대개 마지막 순서였다), 오래 걸리는 사건을 쉬는 시간 직전에 피하는 합리적 행동만으로도 효과의 상당 부분이 설명된다고 지적했다(글뢰크너 2016). '피곤한 채점자' 이야기를 하려면 배고픈 판사가 아니라 위의 채점 기록 연구에 기대는 게 맞다.

규칙 20. "답에 상자를 쳐라. 채점자와 소통하라." — 연구 없음, 그러나 같은 원리

"채점자가 빠르게 만점 체크를 하고 넘어갈 수 있게 해 줘라. 채점자의 마음가짐이 돼라. … 어떤 단계를 못 하겠으면, 그 단계를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진행할지 안다는 걸 분명히 보여 줘라. 믿기 어렵겠지만 채점자는 종종 점수를 더 주려고 애쓴다. 그걸 쉽게 만들어 줘라."

'답에 상자 치기'를 직접 실험한 연구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 규칙은 앞의 두 연구 흐름 — 읽기 쉬운 것이 더 좋게 평가된다(처리 유창성)와 채점자는 피로해진다 — 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그리고 2014년에 카파시가 덧붙인 문장, "채점자의 마음가짐이 돼라"는 공부법을 넘어서는 말이다. 코드 리뷰를 받을 때, 보고서를 올릴 때, 논문을 심사받을 때 — 모든 평가는 피곤한 사람이 한다. 결론을 맨 위에 두고, 핵심 숫자에 상자를 치고, 막힌 부분은 "여기서 이렇게 하려 했다"고 적는 사람이 같은 실력으로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규칙 21. "절대, 절대, 절대 일찍 나가지 마라" — 근거 강함

"당신은 어리석은 실수를 하나 했다(장담한다). 찾아서 고쳐라. 못 찾겠으면 시간이 끝날 때까지 더 열심히 찾아라. … 다르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 시험장에서 일찍 나가는 사람은 어리석다. 잠재적 이득이 비용을 완전히 압도하는 명백한 상황이다."

시험장에서 친구들이 웃으며 일찍 나가는 동안, 남은 학생이 돋보기로 '2 + 3 = 6'을 찾아 5로 고치는 장면크게 보기

이 규칙은 페이지에서 가장 단호하고, 근거도 가장 단단한 축에 든다. 흔한 반대 믿음이 있다 — "첫 직감을 믿어라, 답을 고치면 틀린다." 이 믿음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첫 직감 오류(first instinct fallacy)'라고 불린다.

크루거·위르츠·밀러(2005)는 일리노이 대학 심리학 개론 수강생 1,561명의 중간고사 답안지에서 지우개 자국을 셌다. 답을 고친 3,291건 가운데 틀린 답 → 맞는 답이 51%, 맞는 답 → 틀린 답이 25%, 틀린 답 → 다른 틀린 답이 23%였다. 고치면 두 배 이득이었다. 그런데 학생 넷 중 셋은 답을 고치면 점수가 떨어진다고 믿었다. 저자들은 그 이유도 설명했다. 맞는 답을 틀리게 고쳤을 때의 후회("아, 처음 게 맞았는데!")가 훨씬 강렬해서 더 잘 기억되기 때문이다. 2021년 생리학 시험 연구(메리 등)에서도 학생들은 틀린→맞는 수정을 평균 2.8번, 맞는→틀린 수정을 1.0번 했다. 그런데도 교수의 36%는 답을 고치면 손해라고 믿었다.

카파시는 실수를 다 찾았다고 확신하면 남은 시간을 채점하기 쉽게 만드는 데 쓰라고 했다. 지저분한 풀이를 지우고, 답에 상자를 치고, 증명에 단계를 보태라고. 그리고 마지막 두 규칙이 이어진다.

규칙 22. "배점을 보라. 5분 남았는데 막혔으면 멈추고 전체를 다시 읽어라" — 근거 보통

배점은 "어디서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강한 힌트이자(5점짜리 문제에 페이지 반을 쓰고 있다면), 시간을 어디에 쓸지 알려 주는 가격표다. 그리고 마지막 5분에 대한 조언 — "놓친 부분 질문이 없는지, 모든 걸 답했는지 확인하라. 사람들이 이렇게 잃는 어처구니없는 점수를 믿지 못할 것" — 에는 작은 실험 근거가 있다. 와인스타인·로디거(2010)의 실험에서 모든 문항에 답하게 강제했더니 점수가 올랐다. 빈칸으로 잃는 점수가, 막힌 한 문제를 끝까지 붙들어 얻을 점수보다 큰 경우가 많다.


7부. '마지막 조언' 칸 — 85%에서 멈추는 이유

"학부생은 수업에 대해 터널 시야를 갖는 경향이 있다. 좋은 성적을 받고 싶어 한다. 깨달아야 할 결정적인 사실은, 아무도 당신의 성적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쁠 때만 빼고. … 당신의 시간은 귀하고 한정된 자원이다. 시험을 망치지 않는 지점까지 가고, 훨씬 더 중요한 일로 관심을 옮겨라. 그게 뭐냐고?"

갈림길에 선 학생 — 왼쪽엔 '85%' 성적표와 모래시계, 오른쪽엔 로봇 만들기·오픈소스·교수의 추천서·블로그로 시간이 흘러가는 장면크게 보기

규칙 23. "가장 똑똑한 학생은 모든 과목에서 85%를 받는다" — 근거 보통

이 문장은 페이지의 모든 판본에 있다. 1부에서 봤듯 토론토 대학에서 85점은 A, 4.0이다. 그러니 이 말은 "만점 학점을 주는 최저선에서 멈춰라"다. 왜 멈춰야 할까. 경제학 용어로 답하면 두 단어다. 수확 체감과 기회비용.

허버트 사이먼은 1956년 사람과 생물이 '최적화(optimize)'가 아니라 '충분히 만족스러운 선에서 멈추기(satisfice)'로 환경에 적응한다고 썼다. 시험 점수는 들인 시간에 따라 오르지만, 위로 갈수록 1점이 비싸진다. 85점까지 가는 시간과 85점에서 95점까지 가는 시간이 비슷할 수 있고, 95점에서 99점까지는 그보다 더 들 수 있다. 그 시간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 — 카파시가 나열한 연구, 인턴, 사이드 프로젝트, 오픈소스, 블로그 — 이 기회비용이다.

아래 위젯은 이 계산을 4년 단위로 해 본다. 학습 효율 슬라이더를 꼭 움직여 보자. 이 글 앞부분의 공부법이 하는 일이 정확히 그 슬라이더를 올리는 것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정말일까

성적이 일의 성과를 얼마나 예측하는가는 산업심리학에서 오래 연구된 질문이다. 1996년 로스(Roth) 등의 메타분석(71개 연구, 13,984명)은 학점과 직무 성과의 관찰 상관을 0.16으로, 측정 오차 등을 보정하면 0.32로 추정했다. 그리고 이 상관은 시간이 지나며 빠르게 사라졌다.

졸업 1년 뒤
r = .45
졸업 2~5년 뒤
r = .30
졸업 6년 이상 뒤
r = .11

로스 등(1996) 표 2. 범위 제한과 평가 신뢰도를 보정한 상관. 보정 전 관찰값은 .23 → .15 → .05. '6년 이상'은 연구 4개뿐이라 불확실하다. 막대 길이는 .45를 100%로 놓은 비율.

2013년 구글의 인사 담당 부사장 라즐로 복(Laszlo Bock)이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한 말은 이 표의 대중판이었다. "데이터를 다 분석해 보니 학점은 채용 기준으로 쓸모가 없고, 시험 점수도 쓸모가 없다 — 막 졸업한 사람에게서 약간의 상관이 있는 것 말고는. … 2~3년이 지나면 구글에서의 성과는 학교 성적과 완전히 무관하다." 그의 말에도 "막 졸업한 사람에게는 약간의 상관"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자. 카파시의 독자인 학부생은 바로 그 '막 졸업할' 사람이다.

그리고 최신 연구는 "쓸모없다"를 반박한다. 2024년 반 이데킹 등의 메타분석은 학업 성적과 직무 성과의 보정 상관을 0.21로 추정했다. 전공 관련 과목이나 실습 과목 성적은 0.3~0.4대까지 올라갔다. 비교 대상이 흥미롭다. 2026년 다른 메타분석은 일반 지능 검사의 직무 성과 예측력을 약 0.20으로 정리했다. 학점은 IQ 검사만큼은 예측한다. '쓸모없는' 신호가 아니라 '약하고 짧은' 신호다.

"나쁠 때만 빼고" — 학점 인플레이션이 이 단서를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카파시의 단서 — "나쁠 때만 빼고" — 는 2026년에 더 정확해졌다. 성적이 위로 몰리면 높은 성적은 정보가 사라지고, 낮은 성적만 눈에 띄기 때문이다.

어디과거최근
미국 4년제 대학 전체 (A 비율)1960년 약 15%2008년 전후 43% (로이스태처·힐리 2012)
하버드 칼리지 (A 비율)2005년 24% · 2015년 40.3%2025년 60.2% → 교수회 2026년 5월 'A는 수강생의 20%+4명까지' 상한 가결 (2027~28학년도 시행)
예일 칼리지 (A·A− 비율)2013~14년 69%2022~23년 79%
한국 4년제 대학 졸업생 (백분율 90점 이상)2021년 44.0%2025년 53.4% · 주요 10개 대학 72.3% · 고려대 83.4%, 연세대 80.6%, 서울대 80.3%

한국 수치는 국회 교육위원회 서범수 의원실이 받은 대학알리미 공시 자료(212개 4년제 대학, 2021~2025 졸업자 약 157만 명) 보도(한국교육신문 2026-10-06). 과목별 A 비율이 아니라 졸업생의 누적 백분율 점수 기준이다.

하버드의 2025년 보고서는 학점 체계가 "더 이상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우리의 학문적 사명을 훼손하고 있다"고 썼다. 한 학생은 "우리는 A−가 무섭다"고 했다. 학생 절반 이상이 A를 받는 세계에서 A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B는 크게 말한다. 카파시의 단서 — 성적은 나쁠 때만 신경 쓴다 — 는 성적 분포의 수학으로도 맞다.

고용주들도 이미 움직였다. 미국대학고용주협회(NACE) 조사에서 학점으로 지원자를 거르는 기업은 2019년 73%에서 2026년 42%로 줄었다. 대신 기술 중심 채용(skills-based hiring)을 쓰는 기업이 70%에 이르렀다.

카파시가 나중에 덧붙인 것: 추천서

2016년 박사 과정 생존 가이드에서 카파시는 이 조언을 더 날카롭게 고쳐 썼다. 그 가이드는 "학부 때 쓴 「수업을 잘 듣는 법」을 본떠" 쓴 것이라고 밝혔다.

"단연 가장 중요한 건 강력한 추천서다. 이상적인 경우는 잘 알려진 교수가 '이 학생은 내가 함께 일한 학생 중 상위 5%에 든다. 주도적이고, 자기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 작동하게 만든다'고 써 주는 것이다. 최악의 추천서는 '이 학생은 내 수업을 들었다. 잘했다.'이다. … 성적은 꽤 무관하지만, 너무 낮지는 않은 게 좋다. 학부생 때는 이게 분명하지 않았고, 나는 좋은 성적을 받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썼다."

마지막 문장이 이 페이지 전체를 다시 읽게 만든다. 85%의 규칙을 말한 사람은 스스로는 그걸 지키지 못했다. 2013년 판본의 서문 — "85% 아래는 나쁜 성적이라고 본다" — 이 그 증거다. 85%는 그의 하한선이었지 멈춤선이 아니었다. 이 페이지는 '나처럼 하라'가 아니라 '나처럼 하지 마라'의 기록이기도 하다.


8부. 2026년에 다시 읽기 — AI가 숙제를 풀어 주는 시대의 시험 공부법

카파시가 이 페이지를 쓸 때 학생 옆에는 교과서와 구글이 있었다. 2026년의 학생 옆에는 어떤 유도든 3초 만에 매끄럽게 설명해 주는 AI가 있다. 이 변화는 23개 규칙의 무게를 어떻게 바꿨을까.

카파시 자신의 답: "숙제의 AI 사용은 절대 잡아낼 수 없다"

2025년 11월 24일, 카파시는 한 학교 이사회에서 한 이야기를 X에 정리해 올렸다. 254만 명이 읽었다.

"1. 숙제에서 AI 사용은 절대 잡아낼 수 없다. 끝. 모든 AI '탐지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여러 방법으로 무력화되며, 원리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교실 밖에서 한 모든 작업은 AI를 썼다고 가정해야 한다.

2. 그러므로 평가의 대부분은 교사가 직접 감독할 수 있는 교실 안 작업으로 옮겨 가야 한다. 학생들은 나중에 교실에서 AI 없이 평가받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AI 없이 문제 푸는 법을 배울 동기를 유지한다.

… 목표는 학생들이 AI를 능숙하게 쓰면서도 AI 없이도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수업을 잘 듣는 법」 옆에 놓으면 묘한 일이 벌어진다. 15년 전의 페이지는 거의 전부가 교실 안, 감독받는, 연필로 보는 시험에 관한 것이다. 연필을 써라, 답에 상자를 쳐라, 일찍 나가지 마라. 한동안 이런 조언은 낡아 보였다. 과제, 프로젝트, 온라인 퀴즈, 오픈북 시험이 평가의 중심으로 옮겨 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AI가 그 흐름을 되돌렸다. 카파시 본인이 시험장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있다.

블루북이 다시 팔린다

2026년의 두 장면 — 왼쪽 '대신 풀어 주는 AI' 앞에서 받아 적기만 하는 학생, 오른쪽 '질문하는 AI'의 힌트를 받아 직접 유도를 쓰는 학생. 뒤로는 감독 아래 종이 시험을 보는 교실크게 보기

미국 대학가에서는 시험용 파란 공책, 블루북이 돌아왔다. 2025년 5월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텍사스 A&M 대학의 블루북 판매가 30% 넘게, 플로리다 대학은 50% 가까이, UC 버클리는 80% 늘었다. 2026년 4월 AP 통신은 코넬, 펜실베이니아, 뉴욕대가 구술시험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넬의 한 공대 교수는 과제마다 20분짜리 소크라테스식 '구두 변론'을 두고, 조교는 그 구두 변론만 채점한다. "구술시험은 AI로 통과할 수 없다." 반발도 있다. 장애 학생이나 다국어 학생에게 불리하고, "그냥 끌로 돌에 새기게 하지 그러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한국은 더 극적이었다. 2025년 10월 연세대의 600명 규모 온라인 강의 '자연어처리와 챗GPT' 중간고사에서 대규모 부정행위가 드러났다. 화면과 손, 얼굴을 찍게 한 감독을 카메라 각도로 피했다. 교수는 "자수하는 학생에 한해 중간고사만 0점 처리하겠다"고 공지했고 40명이 자수했다. 학생 커뮤니티의 자체 투표에서는 387명 중 211명이 "커닝했다"고 답했다(비공식 집계). 같은 시기 고려대의 1,400명 온라인 교양 강의에서는 오픈채팅방으로 답을 공유한 일이 드러나 중간고사가 전면 무효가 됐고, 서울대의 대면 컴퓨터 시험에서는 AI가 만든 코드가 발견돼 재시험을 치렀다. 2026년 2월 교육부와 대교협이 내놓은 대학 AI 윤리 지침 시안은 오프라인 시험과 서술형 중심 평가를 권고했다.

숙제 점수는 오르고, 시험 점수는 떨어진다

AI가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잰 연구들이 2025~2026년 쏟아졌다.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답을 주는 AI는 연습 점수를 올리고 시험 점수를 떨어뜨린다. 가르치도록 설계된 AI는 학습을 올린다.

연구설계답을 주는 AI가르치도록 설계한 AI
바스타니 등 (PNAS 2025)튀르키예 고교생 약 1,000명, 수학 무작위 실험연습 성적 +48% → AI 없이 본 시험 −17%연습 +127%, 시험 효과 ≈ 0 (손해는 사라짐)
스트룀베리 등 (CEPR 2026)중국 중고생 26,811명, 30개월 추적 (관찰 연구)숙제 점수 +18%, 숙제 시간 −30% → 클로즈드북 월례 시험 −20%, 2년 뒤 진학 시험 −18~24%숙제 시간을 줄이지 않은 AI 사용자는 손실이 작았다
앤트로픽 (2026-01)주니어 개발자 52명, 새 라이브러리 학습 무작위 실험AI로 코딩한 쪽 퀴즈 50% 대 손으로 코딩한 쪽 67%AI에게 '개념 질문'을 한 사람은 65% 이상
메릴랜드 대학 (2026-10 워킹페이퍼)학부생 2,379명, 수업용 GPT-4o 튜터 무작위 배정최종 성적 −0.37 표준편차 (1세대 대학생은 2배 넘게 손해)—
케스틴 등 (하버드 물리, Sci. Rep. 2025)194명, 교차 무작위 실험—단계별·답 안 주는 AI 튜터: 학습 이득이 능동 학습 수업의 2배 이상
세계은행 (나이지리아 2025)고교 1학년, 6주 방과 후, 교사 지도—+0.31 표준편차 (영어 +0.23)

바스타니 연구에는 섬뜩한 한 줄이 더 있다. AI의 답을 받아 쓴 학생들은 자기가 덜 배웠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시험을 더 못 봤는데도 더 못 봤다고 느끼지 않았다. 이건 3부의 밤샘 실험(못하면서 잘한다고 느끼기)과 4부의 로디거·카피키 실험(네 번 읽은 학생이 가장 자신만만하기)에서 이미 본 패턴이다. AI는 유창성 착각을 공장 규모로 생산한다. AI의 설명은 교과서보다 매끄럽고, 내 질문에 딱 맞춰져 있고, 막히는 곳이 없다. "읽고 이해한 느낌"을 극대화하는 기계다. 그래서 카파시의 7번 규칙 — 읽고 이해한 것은 다시 써낼 수 있는 것과 다르다 — 는 2026년에 이 페이지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이 됐다.

AI와 함께 공부하는 법: 카파시의 '세 번 읽기'

그렇다고 AI를 쓰지 말라는 결론은 아니다. 카파시 자신이 AI와 함께 읽는다. 2025년 11월 그는 이렇게 썼다.

"모든 걸 LLM과 함께 읽는 습관이 생기고 있다. 보통 1회차는 손으로(직접) 읽고, 2회차는 '설명/요약해 줘', 3회차는 질의응답이다. 그냥 넘어갔을 때보다 대개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혼자 읽는다. 그다음에 AI에게 설명을 듣고, 마지막에 질문으로 빈칸을 찾는다. 규칙 8(혼자 먼저, 끝에 함께)의 AI 버전이다. MIT 미디어랩의 2025년 연구(코스미나 등, 아직 동료 평가 전의 예비 논문이고 방법론 비판도 있다)에서도 비슷한 신호가 보였다. 처음부터 챗GPT로 에세이를 쓴 참가자의 83%(18명 중 15명)는 방금 쓴 자기 글의 문장을 정확히 인용하지 못했다. 반대로 처음엔 혼자 쓰다가 네 번째 세션에 AI를 쓴 참가자들은 더 높은 기억과 뇌 활성을 보였다.

AI 회사들도 이 방향으로 제품을 바꿨다. 2025년 4월 앤트로픽의 Claude '학습 모드', 7월 OpenAI의 챗GPT '스터디 모드', 8월 구글 제미나이의 '가이드 학습'은 모두 바로 답을 주는 대신 질문을 던지고 힌트를 준다. 앤트로픽이 대학생의 Claude 대화 57만여 건을 분석한 2025년 보고서에서는 약 47%가 '직접형' — 거의 참여 없이 답이나 결과물만 구하는 대화였다. 학습 모드는 그 47%를 위한 장치다. 다만 스위치 하나로 끌 수 있다. 결국 켜고 끄는 건 학생이다.

카파시의 규칙을 AI 시대에 맞게 옮기면 이렇다.

혼자 먼저교재나 강의를 AI 없이 먼저 읽고 풀어 본다. 막힌 곳을 표시해 둔다. (규칙 8)
AI에게 묻기답이 아니라 힌트를 달라고 한다. "내 풀이 3번째 줄이 왜 틀렸는지 힌트만" — 스터디 모드·학습 모드를 켠다.
덮고 쓰기AI 창을 닫고 빈 종이에 처음부터 다시 쓴다. 못 쓴 단계만 다시 묻는다. (규칙 7)
AI에게 시험 보기"이 단원으로 나를 시험해 줘, 답은 내가 말한 뒤에 알려 줘." AI는 지칠 줄 모르는 '약한 친구' 역할도 할 수 있다 — "중학생에게 설명하듯 내가 설명할 테니 틀린 데를 짚어 줘." (규칙 9)
날을 바꿔 다시이틀 뒤, 일주일 뒤 같은 질문을 다시 받는다. (규칙 11)

'블로그에 써라'와 '블로그 글을 쓰지 마라' 사이

마지막 칸의 2026년 의미도 짚자.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의 「탄광 속 카나리아」 보고서 2026년 8월판은, AI 노출이 큰 직종에서 22~25세의 고용이 노출이 적은 또래보다 19% 뒤처졌다고 보고했다(1년 전 판에서는 13%였다). 해고가 아니라 신규 채용이 줄어든 결과였고, 경력자에게서는 그런 격차가 없었다. 저자들은 감소가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용도로 쓰이는 직종, 그리고 문서로 정리된 지식(codified knowledge)이 중심인 직종에 몰려 있다고 썼다.

시험 점수가 재는 것이 바로 그 문서화된 지식이다. 그리고 카파시가 마지막 칸에서 꼽은 것들 — 실제 코드베이스, 연구 참여, 교수의 추천서, 스스로 시작한 프로젝트 — 은 문서로 정리하기 어려운, 손으로 만져 본 지식이다. AI 시대에 85%에서 멈추라는 조언은 더 급진적인 의미를 띤다. AI가 가장 잘하는 쪽(정답 맞히기)에 시간을 덜 쓰고, AI가 가장 못하는 쪽(직접 만들어 보기)에 시간을 더 쓰라.

여기서 카파시 자신의 말 사이에 작은 긴장이 하나 있다. 2015년 그는 이 페이지에 "블로그에 써라"를 더했다. 그런데 2025년 팟캐스트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블로그 글을 쓰지 마라, 슬라이드를 만들지 마라. 코드를 짜고, 정리하고, 작동하게 만들어라. 그게 유일한 길이다. 그러지 않으면 지식을 놓친다." 모순일까. 순서로 읽으면 풀린다. 2015년의 블로그는 만든 것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였고, 2025년의 경고는 만들지 않고 글로 때우는 학습에 대한 것이다. 만들고, 그다음에 써라. '내가 만들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파인만의 칠판이 두 문장을 잇는다.

카파시는 같은 팟캐스트에서 AGI 이후의 교육을 헬스장에 비유했다. "AGI 이전의 교육은 쓸모 있다. AGI 이후의 교육은 재미있다. 기계가 무거운 걸 다 드는데도 사람들이 헬스장에 가는 것처럼, 학교도 그렇게 갈 것이다." 2024년 2월에는 "배움은 재미있어서는 안 된다. 주된 느낌은 노력이어야 한다. 동네 크리에이터의 '10분 전신 운동'이 아니라 진지한 헬스장 세션처럼. 정신적으로 땀을 흘려야 한다"고 썼다. 두 비유 모두 헬스장이다. 그리고 헬스장의 규칙은 하나다 — 무게는 기계가 아니라 내가 들어야 근육이 붙는다.


9부. 반론과 한계 — 이 페이지에 대해 공정하게 말하기

경험칙에는 경험칙의 한계가 있다. 해커뉴스 680점짜리 토론과 연구 문헌에서 나온 반론을 모아 보자.

1. 생존자의 조언이다. 이 페이지는 "꽤 좋은 결과"를 낸 사람이 쓴 것이다. 같은 방법을 쓰고도 결과가 나빴던 사람의 페이지는 없다. 다행히 이번 채점에서 대부분의 규칙은 생존자 한 명의 경험이 아니라 수천 명의 실험으로도 지지됐다. 그러나 '시험 직전 몰입', '쉬운 문제부터', '커피 T−2시간' 같은 규칙은 개인차가 크다.

2. 밤샘의 다른 가치. 한 사용자는 "가장 친한 친구들을 밤샘 공부하며 만났다. 학점만이 성공의 지표라면 밤샘은 가치가 없겠지만"이라고 반박했다. 공정한 지적이다. 이 글의 채점도 '시험 점수'라는 하나의 잣대만 쓴다.

3. 시스템 게이밍. "카파시는 아주 온건한 방식으로 시스템을 게임하라고 권한다"는 비판도 있었다(면담 시간, 채점자 공략). 다른 사용자는 그랜트 앨런의 말로 답했다. "학교 공부가 교육을 방해하게 두지 마라." 마지막 칸을 읽으면 카파시의 뜻도 그쪽이다. 게임은 빨리 끝내고 진짜 일을 하라는 것.

4. 85%는 누구에게나 가능한가. 토론토 대학의 85점은 그에게 쉬웠을지 몰라도, 같은 85점에 몇 배의 시간이 드는 학생도 있다. 장학금 기준이 3.5인 학생,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하는 학생에게 "성적은 신경 쓰지 마라"는 사치일 수 있다. 미국 이야기를 한국에 옮길 때도 조심해야 한다. 한국의 공기업·공무원 채용, 로스쿨·의학전문대학원 입시처럼 학점이 정량 평가로 남아 있는 경로에서는 85%의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된다. 카파시가 말한 '나쁜 성적'의 기준선이 내 경로에서는 어디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5. "3일, 6일"은 짧다. 이탈리아의 공대생은 "기말에 6일이라니, 농담이죠?"라고 했고, 영국의 한 사용자는 "겨우 2:1을 받으려고 6일보다 훨씬 오래 공부했다"고 했다. 숫자는 과목과 학교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원리 — 하룻밤이 아니라 여러 밤 — 만 가져가면 된다.

6. 연구에도 한계가 있다. 이 글이 인용한 실험의 상당수는 단어 목록이나 짧은 지문을 쓴 실험실 연구다. 실제 학기의 복잡한 과목에서 효과는 작거나 달라질 수 있다(테스트 효과는 복잡한 문제 풀이에서 줄어든다는 보고가 있다). 그리고 '배고픈 판사'나 '시험 전 걱정 글쓰기'처럼 유명했다가 재현에 실패한 연구도 있다. 이 글의 판정도 2026년 10월 현재의 증거에 대한 판단이다.


10부. 판정표와 실전 체크리스트

23개 규칙의 판정을 한곳에 모았다. 근거의 세기로 걸러 보고, 항목을 눌러 이유를 확인하자.

다음 시험을 위한 체크리스트

판정표를 행동으로 옮기면 이렇다. 카파시의 원래 순서를 따랐고, 연구가 고쳐 준 부분은 고친 대로 적었다.

D−14범위를 글머리표로 전부 적고 항목마다 시간을 매긴다. 지난번 비슷한 시험에 실제로 며칠 걸렸는지 먼저 떠올린다(계획 오류 교정). 기출을 구해 문제 유형을 본다.
D−14 ~ D−7혼자 공부한다. 읽은 뒤에는 반드시 덮고 쓴다. 수학·코딩은 예제를 본 뒤 섞인 문제로 연습한다. AI는 '혼자 먼저' 다음에, 힌트 모드로.
D−7 ~ D−3나눠서 다시 꺼낸다. 이틀 전에 쓴 걸 다시 덮고 쓴다. 요약 시트를 만들고, 그 시트도 덮고 다시 쓴다. 매일 밤 7시간 이상 잔다.
D−3 ~ D−1함께 한다. 스터디 모임에서 서로 설명한다. 가장 헷갈리는 친구에게 설명하는 역할을 맡는다. 교수·조교 면담에서 '내가 이해한 방식'을 설명해 보고 틀린 곳을 찾는다.
D-day평소 마시던 만큼의 커피를 시험 1.5~2시간 전에. 한 시간 전 진짜 휴식(휴대폰 말고), 30~45분 전 핵심 요약을 덮고 쓰기. 시험장: 1분 훑기 → 쉬운 문제부터 → 막히면 표시하고 넘기기 → 2회차 → 남은 시간은 전부 실수 찾기와 답안 정리 → 마지막 5분은 빈칸 확인.
D+185%의 선을 확인하고 남는 시간을 옮긴다. 그 시간은 연구실 문을 두드리고, 작은 걸 만들고, 만든 걸 공개하는 데 쓴다.

에필로그: 15년 된 경험칙이 오래 사는 이유

카파시의 페이지가 해마다 다시 돌아오는 이유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이 페이지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

하나는 게임을 잘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놀랍게도 학습 과학과 맞았다. 잠을 지키고, 며칠에 나눠서, 읽지 말고 꺼내고, 남에게 설명하고, 시험장에서 끝까지 버티라. 이 규칙들이 맞는 이유는 하나의 원리로 모인다. 뇌는 쉽게 들어온 것보다 애써 꺼낸 것을 오래 간직한다. 그리고 우리는 늘 그 반대가 효과적이라고 착각한다. 비요크가 '바람직한 어려움'이라 부른 것이고, 카파시가 "정신적으로 땀을 흘려야 한다"고 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게임에서 언제 빠져나올지다. 이 부분은 연구로 증명하기 어렵다. 다만 그가 스스로 지키지 못했다고 고백한 규칙이라는 점, 그리고 학점이 위로 몰리고 AI가 정답 맞히기를 가져가는 2026년에 더 날카로워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카파시가 2011년 조교상 지원서에 쓴 문장으로 끝내자. 이 페이지 전체를 요약하는 문장이다.

"막상 가르치기 시작하자, 내 이해가 피상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남에게 설명하면서 스스로 납득하도록 나를 몰아붙이자 훨씬 깊은 이해에 이르렀다."

시험은 결국 그 '몰아붙이기'를 대신해 주는 장치다. AI가 무엇이든 설명해 주는 시대에, 그 장치는 더 필요해졌다. 책을 덮자. 빈 종이를 꺼내자. 그리고 써 보자.


참고문헌

원문과 카파시의 글

기억과 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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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third-party' 표시가 붙은 그림 두 장은 각각 Murre & Dros (2015, PLOS ONE)와 Okano et al. (2019, npj Science of Learning)의 원 논문 그림으로, 두 논문 모두 CC-BY 라이선스다. 나머지 일러스트는 코어닷투데이가 생성 AI로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