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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5년 계획을 태워라 — 사힐 블룸의 '인접 가능성', 지도 대신 나침반으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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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5년 계획을 태워라 — 사힐 블룸의 '인접 가능성', 지도 대신 나침반으로 사는 법

"5년 뒤 당신은 어디에 있을 것 같습니까?" 2021년 1월, 사모펀드 7년 차였던 사힐 블룸은 멘토의 이 질문에 그럴듯한 답을 셋 내놓았다. 5년 반이 지난 2026년 7월 그는 이렇게 썼다 — '그때 100개의 시나리오를 써 보라고 했다면, 그중 단 하나도 근처에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5년 계획을 그만 세워라(대신 이걸 하라)」는 계획이 사실은 과거의 외삽이라는 진단과, 이론생물학자 스튜어트 카우프먼의 '인접 가능성(Adjacent Possible)'이라는 처방으로 이루어진 짧은 글이다. 이 특집은 그 짧은 글이 딛고 선 긴 지층을 파낸다. 1928년 소련의 5개년 계획에서 면접장의 단골 질문까지, '역사의 종말 착각'과 '계획 오류'의 실험, 카우프먼의 TAP 방정식과 트리아·스트로가츠의 '트리거가 있는 항아리', 스탠리의 '목표를 버려야 찾는다', 그라노베터에서 링크드인 2천만 명 실험까지 이어지는 약한 연결의 과학, 크럼볼츠의 '계획된 우연'과 사라스바티의 '효과화'. 그리고 AI가 해마다 문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2026년, 한국의 청년 통계 위에서 '지도는 태우고 나침반은 지켜라'가 무엇을 뜻하는지 일곱 개의 인터랙티브 도구로 풀었다.

코어닷투데이2026-10-10109분

지도는 태우고 나침반은 지킨다 — 몇 걸음 앞에서만 보이는 문들크게 보기

"지금 당신이 할 일은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것의 경계를 넓히는 것이다." — 사힐 블룸, 「Stop Making a 5-Year Plan (Do This Instead)」, 2026년 7월

프롤로그 — 면접장의 그 질문

"5년 뒤 본인은 어디에 있을 것 같나요?"

한국에서 취업 면접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 질문을 안다. 인사 담당자 교본에는 '지원자의 장기 비전과 회사 적합성을 확인하는 질문'이라고 적혀 있고, 취업 카페에는 모범 답안이 돌아다닌다. "5년 뒤에는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팀을 이끌고 있을 것입니다." 연말이면 사람들은 다이어리 첫 장에 5개년 목표를 적고, 회사는 중장기 전략을, 정부는 5개년 기본계획을 세운다. 5년이라는 단위는 우리 삶에 너무 자연스럽게 박혀 있어서,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묻는 사람은 드물다.

2026년 7월 28일, 미국의 뉴스레터 작가 사힐 블룸(Sahil Bloom)이 이 질문을 정면으로 걷어찼다.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5년 계획을 그만 세워라(대신 이걸 하라)」. 1,400단어가 채 안 되는 짧은 글이다. 그런데 이 글은 80만 명이 넘는 뉴스레터 구독자의 메일함을 거쳐 소셜 미디어로 퍼졌고, 마지막 문장 "나침반은 지키고, 지도는 태워라"는 그 자체로 하나의 구호처럼 돌아다녔다.

왜 이 짧은 글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건드렸을까. 아마 많은 사람이 한 번쯤 블룸과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5년 전에 적어 둔 계획을 지금 꺼내 보면, 맞은 것이 거의 없다. 아니, 더 정확히는 지금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 — 지금의 직업, 지금 곁에 있는 사람, 지금 쓰는 도구 — 은 대부분 그 계획서에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2021년의 계획서에 'AI 에이전트와 일하기'라고 적은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이 특집은 블룸의 글을 한 줄씩 따라 읽으면서, 그 짧은 글 아래에 깔린 훨씬 긴 이야기를 파낸다. 블룸이 빌려 온 개념 '인접 가능성(Adjacent Possible)'은 원래 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설명하려던 이론생물학의 개념이다. 그것이 어떻게 수식(TAP 방정식)과 확률 모형(트리거가 있는 항아리)이 되었고, 위키백과 편집 기록과 음악 청취 기록에서 어떤 흔적으로 발견되었는지 살펴본다. 사람들이 왜 미래의 자신을 그렇게 못 맞히는지에 대한 심리학 실험, 커리어 상담 이론이 수십 년 전부터 해 온 비슷한 말들, 그리고 반대쪽 증거까지 함께 놓는다. 마지막으로 AI가 해마다 '가능한 것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2026년에 이 조언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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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의 진단
5년 계획은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 아니다. 과거의 재료를 재배열해 앞으로 늘려 그리는 '외삽'이다. 그래서 가장 흥미로운 미래는 계획서에 나타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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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의 처방
경로를 짜지 말고 '인접 가능성'을 넓히고 끌어올려라. 레버는 셋 — 쌓이는 기술, 깊고 넓은 관계, 나를 밀어붙이는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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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Keep the compass. Burn the map. — 나침반은 지키고, 지도는 태워라.

1. 원문 읽기 — "100개의 시나리오 중 단 하나도"

2021년 1월, 산 중턱에서

글은 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2021년 1월, 멘토가 블룸에게 묻는다. "그래서, 자네의 5년 계획은 뭔가?"

당시 블룸은 금융 업계 7년 차였다. 스탠퍼드에서 야구 선수로 뛰며 경제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고 공공정책 석사를 마친 뒤, 운용자산 35억 달러 규모의 사모펀드에서 부사장(VP)까지 오른, 말하자면 '트랙' 위의 사람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산을 천천히 오르는 중"이었다고 묘사한다. 그런데 산 중턱에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 산이 맞는 산인가. 동료들만큼의 에너지가 자기에게는 없는 것 같았다.

멘토의 질문에 떠오른 답은 이랬다.

  • 파트너가 되어 내가 좋아하는 산업에 집중한다
  • 후기 투자 대신 초기 투자로 옮긴다
  • 내 투자 펀드를 차린다

블룸은 이 답들을 이렇게 평가한다. "내가 그린 미래의 산들은 모두, 내가 오르던 산에서 (많아 봐야) 한 다리 건너에 있었다." 지금 사는 방식이 별로 즐겁지도 않고 힘도 나지 않는데, 정작 미래를 그리라고 하니 지금과 거의 같은 모습만 떠올랐다는 것이다.

2021년의 질문과 2026년의 대답 — 멘토의 질문이 같은데 답이 바뀌었다크게 보기

2026년 7월, 그 5년 계획의 끝에서

그리고 2026년 7월, 정확히 그 5년 계획의 종점에서 블룸은 이렇게 쓴다.

"2021년 1월의 나에게 2026년 7월의 내 모습에 대한 시나리오를 100개 써 보라고 했다면, 나는 아주 그럴듯한 시나리오 100개를 내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 단 하나도 근처에조차 가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사이 블룸에게 일어난 일들은 2021년의 금융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2020년에 100명 남짓이던 소셜 미디어 팔로워는 수백만으로 불어났고, 뉴스레터는 구독자 80만 명을 넘겼으며, 2025년 2월에는 『부의 다섯 가지 유형(The 5 Types of Wealth)』이라는 책을 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렸다. 사모펀드 부사장이 아니라 작가이자 팟캐스터, 소규모 투자자가 되어 있었다. 2021년의 그가 쓴 100개의 시나리오는 모두 '금융'이라는 재료로 만든 것이었고, 2026년의 그를 만든 재료 — 글쓰기, 소셜 미디어 청중, 출판, 팟캐스트 — 는 그 시점에 아직 그의 손에 거의 없었다.

진단: 계획은 외삽이다

여기서 블룸은 이 글의 핵심 진단을 내린다.

"미래를 계획할 때 당신은 사실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게 아니다. 과거를 외삽(extrapolate)하고 있을 뿐이다. 당신이 그리는 시나리오들은 이미 경험한 것의 자연스러운 연장이다. 재배열하고 재구성했을 수는 있지만, 핵심은 같은 원재료다."

외삽(extrapolation)은 원래 수학·통계 용어다. 알고 있는 데이터 범위 바깥의 값을, 범위 안에서 보인 패턴을 연장해 추정하는 일이다. 지난 5년간 매출이 해마다 10%씩 늘었으니 내년에도 10% 늘 것이라고 보는 식이다. 데이터 범위 '안쪽'을 메우는 보간(interpolation)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통계 교과서는 경고한다. 패턴이 범위 밖에서도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블룸은 금융 업계의 유명한 문구를 꺼낸다. "과거의 성과가 미래의 수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펀드 광고마다 작은 글씨로 붙는 이 경고문은 모두가 알면서도, 정작 미래 예측은 모두 과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는 역설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는 중요한 단서를 하나 단다. 계획이 그동안 쉬웠던 것은 그가 계획을 잘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평생 '계획 신봉자'였고, 사회가 미리 깔아 둔 '성공 경로'를 따라왔기 때문에 계획이 쉬웠다. 그런데 길 자체를 의심하는 순간 계획이라는 작업 전체가 무너졌다. 같은 미래의 조금씩 다른 버전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블룸의 표현으로는 "내 길이 단 하나뿐인(singular) 길이 되자 계획은 더 이상 쓸 수 있는 도구가 아니었다."

"당신의 가장 흥미롭고, 비대칭적이고, 단 하나뿐인 미래는 오늘의 당신에게 완전히 보이지 않는다. 그 원재료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장이 글 전체의 축이다. 미래가 안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근시안이어서가 아니라, 그 미래를 만들 재료가 아직 세상에 (또는 내 손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 이 주장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직접 굴려 보면 감이 온다.

새 재료가 0일 때, 즉 정해진 트랙 위에서만 움직이면 실제 도착점은 예측 구름 한가운데에 떨어진다. 계획은 잘 맞는다. 그런데 1년에 새 재료가 서너 개만 들어와도 — 처음 만난 사람, 처음 배운 기술, 처음 들어간 방 — 실제 경로는 금세 예측 구름 밖으로 빠져나간다. 블룸이 말한 "100개 중 단 하나도"는 과장이 아니라, 새 재료가 섞이는 삶에서는 거의 수학적으로 당연한 결과다.

2. 왜 우리는 미래의 나를 못 맞히는가 — 심리학의 증거

블룸의 진단은 개인적 회고다. 그런데 심리학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같은 현상을 실험실에서 재 왔다. 사람은 미래의 자신을, 그리고 미래의 일을 체계적으로 잘못 예측한다. 그리고 그 오류에는 일정한 방향이 있다.

역사의 종말 착각 — "나는 이제 다 바뀌었다"

2013년 1월, 하버드의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 버지니아대의 티머시 윌슨(Timothy Wilson), 그리고 조르디 쿠이드바흐(Jordi Quoidbach)가 『사이언스』에 3쪽짜리 논문을 실었다. 제목은 「역사의 종말 착각(The End of History Illusion)」.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에서 따온 이름이다.

실험 설계가 영리하다. 18세에서 68세까지 1만 9천여 명을 무작위로 두 집단으로 나눈다.

  • 예측자(predictor): "앞으로 10년 동안 당신의 성격·가치관·취향이 얼마나 바뀔 것 같습니까?"
  • 보고자(reporter): "지난 10년 동안 당신의 성격·가치관·취향이 얼마나 바뀌었습니까?"

그리고 a세 예측자의 답을 (a+10)세 보고자의 답과 비교한다. 예컨대 20세가 "앞으로 10년간 이만큼 바뀔 것"이라고 예측한 값과, 30세가 "지난 10년간 이만큼 바뀌었다"고 보고한 값을 나란히 놓는 것이다. 30세가 돌아본 20대의 변화가 곧 20세가 앞으로 겪을 변화의 좋은 추정치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모든 나이에서 같은 방향이었다. 사람들은 지난 10년간 자신이 많이 변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10년은 별로 변하지 않을 거라고 예측했다. 성격(5대 성격 특성), 가치관(슈워츠 가치 목록 10개), 취향(좋아하는 음악·휴가지·음식·취미·가장 친한 친구) 모두에서 그랬다. 성격의 경우 이 착각의 크기는 나이와 상관없이 거의 일정했다. 가치관은 나이가 들수록 줄었지만 50대 이상에서도 여전히 뚜렷했다.

측정 영역표본결과
성격 (5대 특성)7,519명모든 나이에서 예측 변화 < 보고 변화, 나이와 무관하게 일정
가치관 (10개 가치)2,717명착각이 가장 큼, 나이 들수록 줄지만 50대 이상에서도 존재
취향 (음악·음식·친구 등)7,130명예측 변화 < 보고 변화, 50대 이상에서도 존재
지불 의사 (밴드 공연)170명미래 공연에 129달러 vs 과거 공연에 80달러

마지막 줄이 이 논문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실험이다. 참가자들은 지금 가장 좋아하는 밴드가 10년 뒤에 여는 공연을 보기 위해 평균 129달러를 내겠다고 했다. 반면 10년 전에 가장 좋아했던 밴드가 다음 주에 여는 공연에는 80달러만 내겠다고 했다. 10년 전 취향이 지금 이렇게 식은 것을 보면서도, 지금의 취향은 10년 뒤에도 그대로일 거라 믿고 61%를 더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논문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역사는 언제나 오늘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연구진은 이것이 기억의 왜곡 때문이 아닌지도 확인했다. 미국의 장기 추적 조사(MIDUS)에서 실제로 측정한 10년간의 성격 변화와 비교했더니, '지난 10년의 변화'에 대한 보고는 실제 변화와 거의 일치했고(안정성 0.51 대 0.52),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예측만 실제보다 훨씬 작았다(0.65). 오류는 기억이 아니라 예측 쪽에 있었다.

이 결과가 블룸의 이야기와 정확히 겹친다. 2021년의 블룸은 '지금의 나'가 앞으로도 대체로 유지될 거라 가정하고 5년을 그렸다. 그런데 정작 5년 사이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블룸 자신 — 그의 관심사, 그가 에너지를 얻는 일, 그가 어울리는 사람들 — 이었다. 5년 계획이 틀리는 이유의 절반은 세상이 바뀌어서이고, 나머지 절반은 계획을 세운 사람 자신이 바뀌어서다.

공정하게 덧붙이면, 이 착각에도 반론이 있다. 해리스와 부세리(Harris & Busseri, 2019)는 MIDUS 성인 2,390명의 삶의 만족도를 9년 간격으로 세 번 추적했는데, 삶의 만족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변화를 대체로 정확하게, 오히려 과대 예측하는 경향을 보였다. 쿠이드바흐 등은 2020년 반박문에서 "평균의 안정성이 개인 안의 불안정성을 가린다"고 응수했다. 성격·가치·취향에 대해서는 착각이 뚜렷하지만, 모든 영역에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된다.

계획 오류 — 33.9일 vs 55.5일

두 번째 증거는 더 일상적이다.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1979년 「직관적 예측: 편향과 교정 절차」라는 보고서에서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람들은 자기 일이 얼마나 걸릴지 체계적으로 짧게 예측한다. 비슷한 일이 과거에 늘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1994년 캐나다 워털루대의 로저 뷸러(Roger Buehler) 연구팀이 이를 우아하게 측정했다. 졸업 논문을 쓰는 학부생 37명에게 논문을 끝내는 데 며칠이 걸릴지 물었다.

최선의 경우 예측
27.4일
가장 그럴듯한 예측
33.9일
최악의 경우 예측
48.6일
실제 걸린 기간
55.5일

실제 걸린 기간(55.5일)은 학생들이 "최악의 경우"라고 상상한 기간(48.6일)보다도 길었다. 스스로 예측한 기간 안에 끝낸 학생은 30%가 안 됐다. 흥미로운 점은, 예측값과 실제값의 상관관계는 꽤 높았다는 것이다(r = .77). 학생들은 '누가 더 오래 걸릴지'는 잘 알았지만 '얼마나 걸릴지'는 일관되게 낙관했다. 상대적 순서는 맞히고 절대 수준은 틀리는 것 — 외삽이 실패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오류는 개인에서 국가 규모로 커지면 더 극적이 된다. 옥스퍼드의 벤트 플루비에르(Bent Flyvbjerg)는 136개국의 1만 6천여 개 대형 프로젝트를 모은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했다. 예산 안에 끝난 프로젝트는 48% 정도였고, 예산과 일정을 모두 지킨 프로젝트는 8.5%, 거기에 약속한 효과까지 낸 프로젝트는 0.5%였다. 그는 이것을 '대형 프로젝트의 철칙'이라 부른다. "예산 초과, 일정 초과, 그리고 또 초과." 대표 사례인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계획보다 10년 늦은 1973년에 문을 열었고, 예산은 1,400% 초과했다.

전문가도 5년 뒤는 못 맞힌다

"그건 일반인 얘기고, 전문가는 다르지 않을까?" 펜실베이니아대의 필립 테틀록(Philip Tetlock)이 20년에 걸쳐 이 질문에 답했다. 그는 정치·경제 전문가 284명에게 수만 건의 예측을 받아 실제 결과와 대조했다. 2005년 『전문가의 정치적 판단(Expert Political Judgment)』에 실린 결론은 냉정했다. 전문가의 장기 예측은 '다트를 던지는 침팬지'와 별 차이가 없었다. 하나의 큰 이론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고슴도치형' 전문가는 여러 관점을 섞는 '여우형'보다 못했고, 언론에 자주 나오는 전문가일수록 오히려 덜 정확했다.

테틀록은 이후 '굿 저지먼트 프로젝트'에서 예측을 아주 잘하는 소수, 이른바 '슈퍼 예측가'를 찾아냈다. 그런데 그 슈퍼 예측가들도 예측 지평이 길어지면 정확도가 떨어졌다. 테틀록은 "지정학이나 경제 예측가가 10년 뒤를 뻔한 것 이상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하고, 5년 뒤의 예측 정확도는 "우연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썼다. 5년은 예측이 의미를 잃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평이다.

현상무엇을 잘못 예측하나오류의 방향5년 계획에 주는 함의
역사의 종말 착각미래의 나 (성격·가치·취향)변화를 과소평가계획을 세운 '나'가 5년 뒤에는 다른 사람이다
계획 오류일에 걸리는 시간·비용낙관적으로 짧게마일스톤은 거의 반드시 밀린다
전문가 예측 (테틀록)세상의 큰 흐름3~5년이면 우연 수준5년 뒤의 산업 지형은 전문가도 모른다
외삽 (블룸)아직 없는 재료로 만들 미래원리상 보이지 않음가장 중요한 미래는 계획서에 나타날 수 없다

표의 마지막 줄이 블룸의 기여다. 앞의 세 줄은 '예측을 잘못하는 오류'다. 원칙적으로는 훈련이나 통계적 보정(참조 집단 예측, 기저율 사용 등)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런데 블룸이 말하는 것은 그보다 근본적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재료로 만들어질 미래는, 아무리 예측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볼 수 없다. 이것은 편향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문제다. 그리고 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다루는 이론이 바로 블룸이 이론생물학에서 빌려 온 개념이다.

3. '5개년 계획'은 어디서 왔나

블룸의 이론적 처방으로 가기 전에, 잠깐 '5년'이라는 숫자 자체를 의심해 보자. 왜 하필 5년일까.

1928년, 고스플란의 실험

'5개년 계획'이라는 이름이 세계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소련이다. 소련 국가계획위원회(고스플란, Gosplan)는 몇 년에 걸쳐 제1차 5개년 계획을 짰고, 이 계획은 1929년 4월에 채택되었지만 1928년 10월부터 1933년 9월까지를 다루도록 소급 적용되었다. 목표는 야심 찼다. 국민소득 2배, 투자 3배, 1인당 소비 3분의 2 증가. 곧 "5개년 계획을 4년 안에!"라는 구호가 붙었고 목표 달성 시점은 1932년으로 당겨졌다.

결과는 어땠을까. 영국 워릭대의 경제사학자 마크 해리슨(Mark Harrison)의 평가는 이렇다. "목표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제1차 5개년 계획은 우스꽝스러운 실패로 봐야 한다. … 소비는 붕괴했고, 1932년 말 나라는 재앙적인 기근의 손아귀에 있었다." 투자가 두 배가 되고 공업화가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계획서에 적힌 미래와 실제로 온 미래는 전혀 달랐다. 소련은 이후 1991~95년 계획까지 모두 13번의 5개년 계획을 세웠고, 마지막 계획이 끝나기 전에 나라가 사라졌다.

한국도 이 단위를 깊이 받아들인 나라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66)이 시작되었고, 5차(1982~86)부터는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1993년 '신경제 5개년 계획'까지 이어졌다. 고도성장기의 한국에서 5개년 계획은 실제로 상당한 성과를 냈다. 다만 그 시기의 한국은 '앞서간 나라들이 이미 걸어간 길'이라는 선명한 지도가 있었다. 철강, 조선, 전자처럼 무엇을 해야 할지가 분명했고, 문제는 얼마나 빨리 하느냐였다. 블룸의 표현을 빌리면 정해진 성공 경로(pre-set success pathway)가 있을 때 계획은 쉽다. 추격자의 계획은 잘 맞는다. 선도자의 계획은 그렇지 않다.

국가에서 기업으로, 기업에서 개인으로

1960년대 미국 기업들은 이 국가 계획의 언어를 '전략 기획(strategic planning)'이라는 이름으로 들여왔다. 이고르 앤소프(Igor Ansoff)의 『기업 전략(Corporate Strategy)』(1965)이 그 교과서였고, 대기업마다 기획실이 생겨 5개년 중기 계획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언어는 결국 개인에게까지 내려왔다. 면접의 "5년 뒤 어디에 있을 것 같나요?"가 정확히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기록이 분명하지 않지만, 국가가 5개년 계획을 세우고, 기업이 5개년 계획을 세우던 시대에 개인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계획에 대한 오래된 반론들

흥미로운 것은, 계획의 한계에 대한 반론도 계획만큼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몰트케(1871). 프로이센의 참모총장 헬무트 폰 몰트케는 「전략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썼다. "어떤 작전 계획도 적 주력과의 첫 교전을 넘어서까지 확실성을 가지고 이어지지 않는다." 흔히 "어떤 계획도 적과의 접촉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로 줄여 인용되는 문장이다. 몰트케의 결론은 계획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휘관에게 세부 지시 대신 의도를 전달하고, 현장의 판단에 맡기는 '임무형 지휘'를 발전시켰다.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을 공유하는 것 — 나침반이다.

린드블롬(1959). 정치학자 찰스 린드블롬은 「'그럭저럭 헤쳐 나가기'의 과학(The Science of 'Muddling Through')」에서, 정책 결정자는 모든 대안을 검토해 최적안을 고르는 '뿌리 방법'이 아니라, 현재 상태에서 조금씩 비교하며 나아가는 '가지 방법'을 실제로 쓰며, 그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아이젠하워(1957). 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지휘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1957년 11월 14일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군에서 오래전에 들은 말이 있다. 계획은 쓸모없지만, 계획하는 일은 전부다(Plans are worthless, but planning is everything). … 비상사태란 정의상 예상치 못한 것이고, 따라서 계획한 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계획서는 버려지지만, 계획하는 과정에서 얻은 상황 이해는 남는다는 뜻이다.

민츠버그(1987, 1994). 경영학자 헨리 민츠버그는 이 비판을 기업 전략으로 가져왔다. 1987년 「전략 만들기(Crafting Strategy)」에서 그는 도예가의 비유를 들었다. 도예가는 설계도를 그리고 그대로 빚지 않는다. 흙을 만지며 손에서 형태가 나온다. 그는 처음부터 의도한 의도된 전략(deliberate strategy)과, 실행 과정에서 패턴으로 드러나는 창발적 전략(emergent strategy)을 구분했다. 1994년 『전략 기획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Strategic Planning)』에서는 전략 기획의 세 가지 오류를 지적했다. 불연속을 예측할 수 있다는 착각, 전략가가 현장에서 떨어져 있어도 된다는 착각, 전략 수립을 공식화할 수 있다는 착각.

블룸의 글은 이 오래된 반론들의 개인 버전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를 더 가져온다. 왜 계획이 실패하는지에 대한 구조적인 설명 — 미래를 만들 재료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것이 생물학에서 왔다.

4. 인접 가능성 — 생명은 왜 '그때' 폭발했나

블룸의 이야기

블룸은 5억 4천만 년 전의 폭발 이야기를 꺼낸다. 소행성이나 화산 폭발이 아니라 생명의 폭발이다. 그때까지 지구의 생명은 상대적으로 단순했는데, 지질학적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생명의 복잡성과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른바 캄브리아기 대폭발(Cambrian Explosion)이다. 오늘날 동물의 주요 몸 설계(문, phylum) 대부분이 이 시기 화석에 처음 등장한다.

블룸에 따르면, 이론생물학자 스튜어트 카우프먼(Stuart Kauffman)이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왜 그때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더 일찍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가능하지 않았다. 원재료가 존재하지 않았다." 카우프먼은 이것을 인접 가능성(the Adjacent Possible)이라 불렀다. 다음에 가능한 것은 지금 실재하는 것에 의해 정해진다.

캄브리아기의 바다 — 새로운 형태가 다음 형태의 가능성을 연다크게 보기

약간의 교정 — 캄브리아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 이야기는 강렬하지만, 과학적으로는 몇 가지 단서가 필요하다.

첫째, 시기가 섞여 있다. '인접 가능성'이라는 용어는 카우프먼이 1996년 산타페 연구소 워킹페이퍼 「탐구(Investigations)」에서 처음 쓰고 2000년 같은 제목의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1990년대 그가 캄브리아기를 설명할 때 쓴 도구는 주로 '울퉁불퉁한 적합도 지형(rugged fitness landscape)' 위의 적응 보행이었다. 진화 초기에는 큰 몸 설계 변화가 쉬워서 문(門) 수준의 다양성이 먼저 나타나고, 그 뒤에 하위 분류가 채워진다는 설명이었다. 캄브리아기를 '원재료가 없어서 일찍 올 수 없었던 하키 스틱 폭발'로 직접 묘사한 것은 2023년 카우프먼의 TED 강연이다. 블룸은 이 둘을 하나로 합쳐 이야기했다.

둘째, '35억 년간 단순했다'는 과장이다. 다세포 생물은 캄브리아기보다 약 10억 년 앞서 등장했고, 캄브리아기 직전의 에디아카라 생물군(약 5억 7,500만~5억 3,900만 년 전)은 이미 복잡한 대형 생물이었다. 캄브리아기의 시작은 현재 약 5억 3,880만 년 전으로 본다.

셋째, 원인에 대한 합의가 없다. 산소 농도가 대형 동물에 필요한 문턱을 넘었다는 가설(스펄링 등, 2013), 포식자의 등장이 군비 경쟁을 촉발했다는 가설, 혹스(Hox) 유전자 같은 발생 유전자 도구 상자가 갖춰졌다는 가설이 경쟁한다. 2015년 『네이처』 논문은 철 화학 분석 4,700여 건에서 에디아카라기-캄브리아기 경계에 걸쳐 통계적으로 유의한 산소 증가를 찾지 못했다. 2019년 『네이처 생태와 진화』의 종합 연구는 초기 동물의 다양화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해양의 산화·환원 상태와 영양 변화에 연동된 여러 차례의 전이적 방산(radiation)이었다고 본다.

그러니 캄브리아기 이야기는 블룸의 글에서 과학적 설명이라기보다 은유로 읽는 것이 맞다. 다만 그 은유가 가리키는 원리 — 새로운 것은 이미 있는 것들의 조합으로만 생기고, 따라서 '다음'은 '지금'에 묶여 있다 — 는 카우프먼이 실제로 평생을 들여 정식화한 것이다.

카우프먼이 말한 인접 가능성

2023년 TED 강연에서 카우프먼은 이 개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 실재하는 것이 다음에 가능한 것, 즉 인접 가능성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예를 든다. 활이 만들어지고 나면 석궁은 인접 가능성 안에 들어온다. 점토판이 생기면 철필이, 철필이 생기면 서기라는 직업이 가능해진다. 인쇄기는 이동식 활자와 포도주 압착기의 조합이었다.

핵심은 조합의 수학이다. 물건이 10개면 둘씩 짝짓는 조합은 45개, 100개면 4,950개, 1,000개면 약 50만 개다. 물건이 늘면 가능한 다음 물건의 수는 그보다 훨씬 빠르게 는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실재가 되는 순간, 그것을 포함한 새 조합들이 다시 인접 가능성에 더해진다. 인접 가능성은 고정된 영토가 아니라, 탐험할수록 넓어지는 경계다.

카우프먼은 여기서 더 대담한 가설을 제안했다. 생물권(biosphere)은 인접 가능성을 감당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빠르게 탐험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너무 빨리 새로운 것을 만들면 시스템이 무너지고, 너무 느리면 정체된다. 생명은 그 경계에서 산다.

스티븐 존슨의 '그림자 미래'와 마법의 집

이 개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사람은 과학 저술가 스티븐 존슨(Steven Johnson)이다. 2010년 책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Where Good Ideas Come From)』의 첫 장 제목이 「인접 가능성」이다. 블룸이 인용한 문장은 원래 이렇게 이어진다.

"인접 가능성은 일종의 그림자 미래다. 현재 상태의 가장자리를 맴돌며, 현재가 스스로를 재발명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담은 지도다."

블룸은 앞부분만 인용했지만, 뒷부분이 중요하다. 그림자 미래는 '아무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서 출발하는 재발명들의 지도다. 존슨은 같은 해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이것을 더 생생한 비유로 바꿨다.

"인접 가능성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진실은, 탐험할수록 그 경계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문을 하나 열 때마다 마법처럼 커지는 집을 상상해 보라."

문을 열 때마다 커지는 집 — 가운데 방이 '지금', 바로 옆방들이 '인접 가능성'크게 보기

방 하나에 문이 네 개 있다. 그중 하나를 열고 들어가면, 그 방에는 또 다른 문 네 개가 있다. 처음 방에서는 그 새 문들이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열기 전에는 그 방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으니까. 블룸이 "가장 흥미로운 미래는 오늘의 당신에게 완전히 보이지 않는다"고 쓸 때 가리키는 것이 바로 이 구조다. 5년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지금 방에 서서 다섯 번째 방의 가구 배치를 정하는 일과 같다. 그 방에 이르는 문들조차 아직 보이지 않는데.

같은 시기, 여러 곳에서 — 다중 발견

인접 가능성이 그럴듯한 개념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는 다중 발견(multiple discovery)이다. 1922년 컬럼비아대의 사회학자 윌리엄 오그번(William Ogburn)과 도로시 토머스(Dorothy Thomas)는 「발명은 필연적인가?」라는 논문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거의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발명과 발견 148건의 목록을 만들었다. 대부분 같은 10년 안에 일어났다. 1611년에는 서로 다른 네 나라의 과학자 네 명(갈릴레이, 샤이너, 파브리치우스, 해리엇)이 거의 동시에 태양 흑점을 관측했다. 미적분(뉴턴과 라이프니츠), 진화론(다윈과 월리스), 전화(벨과 그레이)도 마찬가지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망원경이 만들어지고 나면 흑점 관측은 인접 가능성 안으로 들어온다. 그 문은 망원경을 가진 모든 사람 앞에 동시에 나타난다. 반대로 찰스 배비지가 1830년대에 설계한 해석기관은 현대 컴퓨터의 구조를 거의 다 갖췄지만, 당시의 기계 가공 기술로는 만들 수 없었다. 인접 가능성보다 몇 방이나 앞선 설계였다. 마찬가지로 1995년의 전화 모뎀 속도로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만들 수 없었다. 트리아 등이 2014년 논문 마지막 문장에 쓴 것처럼, "인터넷 연결 속도가 초당 14.4킬로비트이던 시절에 인터넷 동영상 공유는 가능하지 않았다."

블룸의 2021년도 같은 구조였다. 그가 2026년에 하게 된 일 — 수십만 명에게 글을 보내고, 책을 내고, 팟캐스트를 하는 일 — 은 2021년의 그에게 인접 가능성 바깥에 있었다. 몇 개의 문을 지나야 비로소 보이는 방이었다.

5. 아키텍처 — 인접 가능성을 수식과 모형으로 보기

여기까지는 비유였다. 그런데 인접 가능성은 비유로만 남지 않았다. 지난 30년 동안 물리학자, 수학자, 컴퓨터 과학자들이 이 개념을 수식과 모형으로 옮겼다. 블룸의 글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의 주장 — "계획은 실패한다, 대신 가능성의 경계를 넓혀라" — 이 왜 맞는지 가장 정확하게 보여 주는 것은 바로 이 모형들이다. 네 가지를 차례로 본다.

① 트리거가 있는 항아리Tria 외, 2014새 것이 새 가능성을 연다 — 새로움의 속도
② TAP 방정식Cortês·Kauffman 외, 2022조합의 폭발 — 왜 예측이 불가능한가
③ 신기성 탐색Lehman·Stanley, 2011목표를 쫓으면 못 찾는다 — 디딤돌
④ 임파워먼트 · 후퇴 지평 제어Klyubin 외 2005 · MPC선택지를 열어 두고, 첫 걸음만 실행한다 — 나침반

① 트리거가 있는 항아리 — "새로운 것 하나는 종종 또 다른 것으로 이어진다"

2014년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실린 「상관된 새로움의 동역학(The dynamics of correlated novelties)」은 첫 문장부터 인접 가능성 그 자체다. "새로운 것 하나는 종종 또 다른 것으로 이어진다." 로마 사피엔차대의 프란체스카 트리아(Francesca Tria), 비토리오 로레토(Vittorio Loreto), 비토 세르베디오(Vito Servedio), 그리고 '동기화'와 '작은 세상 네트워크'로 유명한 코넬대 수학자 스티븐 스트로가츠(Steven Strogatz)가 함께 쓴 논문이다.

이들의 질문은 이랬다.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만나는 속도에는 어떤 법칙이 있을까? 데이터로 측정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어떤 기록(책의 단어들, 한 사람의 음악 청취 기록, 위키백과 편집 기록)을 처음부터 읽어 가면서, 처음 등장하는 항목의 수 D(N)를 센다. N은 지금까지 읽은 전체 항목 수다. 책에서는 처음 나온 단어의 수, 음악 기록에서는 처음 들은 곡이나 가수의 수, 위키백과에서는 처음 편집한 문서의 수다.

이 곡선은 거의 언제나 힙스의 법칙(Heaps' law)을 따른다. D(N) ∝ Nβ, 지수 β는 1보다 작다. 새 항목은 계속 등장하지만 점점 드물어진다는 뜻이다. 이 법칙과 짝을 이루는 것이 지프의 법칙(Zipf's law) — 가장 자주 나오는 항목의 빈도가 순위에 반비례해 떨어지는 현상 — 이다. 두 법칙은 언어학에서 100년 가까이 알려져 있었지만, 왜 그런지에 대한 깔끔한 설명은 없었다.

Tria 외(2014) 그림 1 — 네 데이터의 힙스 법칙(왼쪽 a~e)과 지프 법칙(오른쪽 f~j). 맨 아래 e·j는 항아리 모형의 결과크게 보기 출처: F. Tria, V. Loreto, V. D. P. Servedio, S. H. Strogatz, "The dynamics of correlated novelties", Scientific Reports 4, 5890 (2014), CC BY 4.0

그림 1의 왼쪽 열이 힙스 법칙이다. 가로축은 읽은 항목 수 N, 세로축은 처음 본 항목 수 D(N), 둘 다 로그 눈금이다. 로그-로그 그래프에서 거듭제곱 법칙은 직선이 되고, 그 기울기가 지수 β다. 측정된 기울기는 프로젝트 구텐베르크의 책 4,600여 권(단어 약 2억 8천만 개)에서 0.45, last.fm의 노래 0.68과 가수 0.56, 위키백과 편집 0.77, 소셜 북마크 서비스 del.icio.us의 태그 0.78이었다. 오른쪽 열은 같은 데이터의 지프 법칙으로, 가로축이 빈도 순위 R, 세로축이 빈도 f(R)다.

연구진은 이 법칙들을 설명하기 위해 아주 단순한 모형을 만들었다. 출발점은 수학자 조지 폴리아(George Pólya)의 항아리 모형이다. 여러 색의 공이 든 항아리에서 공을 하나 뽑고, 같은 색 공을 몇 개 더 넣어 돌려놓는다. 자주 뽑힌 색은 점점 더 자주 뽑힌다. '부익부'의 가장 단순한 모형이다. 트리아 등은 여기에 규칙 하나를 더했다.

Tria 외(2014) 그림 5 — 트리거가 있는 항아리 모형. 왼쪽(a)은 강화, 오른쪽(b)은 인접 가능성크게 보기 출처: Tria 외(2014), Scientific Reports 4, 5890, CC BY 4.0

시작항아리 𝒰에 서로 다른 색의 공 N₀개를 넣는다.
뽑기공 하나를 무작위로 뽑아 순서열 𝒮에 기록한다. 그림 가운데 줄의 동그라미들이 이 기록이다.
강화 (그림 a)뽑은 공을 돌려놓으면서 같은 색 공을 ρ개 더 넣는다. 익숙한 것은 더 익숙해진다. 그림 a에서는 회색 공을 뽑아 회색 4개(ρ=4)를 더 넣었다.
트리거 (그림 b)뽑은 공이 처음 본 색이면, 항아리 바깥에서 한 번도 존재하지 않던 새 색의 공 ν+1개를 추가로 넣는다. 그림 b에서는 빨간 공을 처음 뽑자 빨간 공 ρ개와 함께 보라·남색·하늘색·초록의 새 공이 들어왔다. 논문은 이 ν+1을 "새로운 인접 가능성의 크기"라고 부른다.

그림 아래쪽 c, d는 같은 규칙에 '라벨'(의미적 관계)을 붙인 확장판이다. 새 공 하나가 열어 준 ν+1개의 공은 같은 라벨 C를 공유한다. 함께 열린 가능성들은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 확장판은 현실 데이터의 또 다른 특징 — 새로움이 무리 지어 온다는 것(새 가수 하나를 알게 되면 그 가수와 관련된 다른 가수들을 연달아 듣게 된다) — 까지 재현한다.

이 단순한 모형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처음 본 색의 수 D(t)는 정확히 힙스의 법칙을 따르고, 그 지수는 두 매개변수의 비율로 정해진다.

D(t)∼{tν/ρ(ν<ρ)t/log⁡t(ν=ρ)t(ν>ρ)D(t) \sim \begin{cases} t^{\nu/\rho} & (\nu < \rho) \\ t / \log t & (\nu = \rho) \\ t & (\nu > \rho) \end{cases}

강화(ρ)가 트리거(ν)보다 세면, 새로움은 계속 오지만 점점 느려진다. 둘이 같으면 거의 선형으로, 트리거가 더 세면 뽑는 횟수에 비례해 새로움이 쏟아진다. 그리고 같은 메커니즘에서 지프의 법칙(f(R) ∼ R−ρ/ν)도 함께 나온다. 100년 묵은 두 법칙이 '익숙한 것을 다시 고르는 힘'과 '새 것이 여는 문의 수' 사이의 줄다리기로 한꺼번에 설명된 것이다.

이 모형을 개인의 삶으로 번역하면 블룸의 처방이 수식으로 보인다. ρ는 관성이다. 이미 아는 사람을 다시 만나고, 이미 하는 일을 다시 하고, 이미 아는 식당에 다시 가는 경향. ν는 새 경험 하나가 열어 주는 다음 가능성의 수다. 새 사람 하나가 소개해 주는 사람들, 새 기술 하나로 가능해지는 일들. 블룸의 세 레버는 결국 ν를 키우는 방법이다. 쌓이는 기술은 새 기술 하나가 기존 기술과 만나 더 많은 조합을 열게 하고, 약한 연결은 새 사람 하나가 나를 다른 세계와 잇게 하며, 큰 연못은 처음 보는 것과 마주칠 확률 자체를 높인다. 반대로 '정해진 트랙'은 ρ를 키운다. 블룸의 2021년은 ρ가 ν보다 훨씬 큰 삶이었다.

② TAP 방정식 — 왜 폭발은 예고 없이 오는가

항아리 모형이 새로움의 '속도'를 다룬다면, 카우프먼과 동료들의 TAP 방정식(Theory of the Adjacent Possible)은 새로움의 '누적'을 다룬다. 2022년 우주론자 마리나 코르테스(Marina Cortês), 카우프먼, 앤드루 리들(Andrew Liddle), 물리학자 리 스몰린(Lee Smolin)이 정리한 형태는 이렇다.

Mt+1=Mt(1−μ)+∑i=2Mtαi(Mti)M_{t+1} = M_t (1 - \mu) + \sum_{i=2}^{M_t} \alpha_i \binom{M_t}{i}

기호를 하나씩 풀면 이렇다.

기호의미커리어로 번역하면
Mt시점 t에 존재하는 물건(종, 도구, 기술)의 수지금 내가 가진 기술·관계·경험의 수
μ소멸률 — 있던 것이 사라지는 비율잊히는 기술, 끊기는 관계, 낡는 지식
C(Mt, i)Mt개 중 i개를 고르는 조합의 수가진 것 i개를 묶는 방법의 수
αi그 조합이 실제로 새 물건이 될 확률 (i가 클수록 작아짐)조합이 실제 가치가 되는 성공률

첫째 항은 '있던 것 중 살아남은 것', 둘째 항은 '있던 것들을 둘씩, 셋씩, … 묶어서 새로 생긴 것'이다. αi가 모두 같은 값 α라면 합은 파스칼 삼각형의 한 줄의 합에서 앞의 두 항을 뺀 것, 즉 α(2M − M − 1)로 간단해진다.

이 방정식의 성질은 극단적이다. α=1, μ=0, 처음 물건 두 개로 시작하면 수열은 2, 3, 7, 127, 그다음은 2127−1(약 1038), 그다음은 약 exp(1038)이 된다. 논문의 표현으로는 "단 다섯 걸음 만에 관측 가능한 우주의 입자 수보다 훨씬 큰 수"가 나온다. 지수 함수보다도 훨씬 빠른, 이른바 초지수적(super-exponential) 성장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α가 작을 때다.

Cortês 외(2022) 그림 2 — 처음 물건 2개, 소멸 없음. 위에서부터 α = 1, 10⁻², 10⁻⁴크게 보기 출처: M. Cortês, S. A. Kauffman, A. R. Liddle, L. Smolin, "The TAP equation: evaluating combinatorial innovation in Biocosmology", arXiv:2204.14115, CC BY-SA 4.0

세 그래프 모두 세로축은 M(로그 눈금), 가로축은 시간 걸음이다. α=1이면 세 걸음 만에 터진다(맨 위). α=10−2이면 약 80걸음 동안 거의 평평하게 2에서 10 사이를 기어가다가 마지막 몇 걸음에 수직으로 솟는다(가운데). α=10−4이면 7,800걸음 가까이 평평하다가 똑같이 솟는다(맨 아래). 폭발까지 걸리는 시간은 α에 반비례한다. 그러나 모양은 똑같다. 긴 평지, 그리고 갑작스러운 벽. 연구자들은 이것을 '하키 스틱'이라 부른다.

논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이것이다. 폭발은 "그 시작 전까지 곡선의 어떤 특징으로도 예고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전에 예측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문장이 블룸의 진단을 수학적으로 뒷받침한다. 가운데 그래프의 70번째 걸음에 서 있는 사람을 상상해 보자. 지난 70걸음 동안 M은 2에서 5 정도로 느릿느릿 늘었다. 이 사람이 과거 데이터로 '10걸음 뒤'를 외삽하면 6이나 7을 예측할 것이다. 실제로는 105을 넘는다. 외삽은 평지에서 만들어지고, 폭발은 평지 끝에서 일어난다.

위젯에서 소멸률 μ를 올려 보면 또 하나의 교훈이 보인다. M₀=2, α=10−2일 때 μ가 0.005 근처의 임계값을 넘으면 아무것도 쌓이지 않고 사라진다(논문 표 1의 'Never'). 기술을 배워도 쓰지 않으면 잊히고, 관계를 맺어도 연락하지 않으면 끊긴다. 인접 가능성을 넓히는 일은 새 재료를 들이는 것만큼이나 있는 재료를 살려 두는 것이기도 하다.

코플(Roger Koppl)과 카우프먼 등은 같은 방정식으로 세계 경제사를 모형화했다(2018). 수천 년 동안 거의 정체되어 있던 1인당 GDP가 산업혁명 이후 갑자기 치솟은 것, 공산품 종류의 폭발, 미국 특허의 계보가 모두 이 하키 스틱 모양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 모형이 경제사를 얼마나 정확히 설명하는지는 아직 논쟁 중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조합으로 자라는 시스템에서 평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조합의 재료가 쌓이는 시간이다.

③ 신기성 탐색 — 목표를 쫓으면 목표에 닿지 못한다

세 번째 모형은 인공지능 연구에서 나왔다. 그리고 블룸의 "지도를 태워라"를 가장 과격한 형태로 주장한다.

2000년대 중반, 센트럴플로리다대의 케네스 스탠리(Kenneth Stanley)는 '피카브리더(Picbreeder)'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사용자는 화면에 뜬 이미지 15개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그 이미지에서 조금씩 변형된 '자손' 이미지들이 다음 세대로 나타난다. 이것을 반복하는 일종의 인공 진화다. 어느 날 스탠리는 외계인 얼굴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진화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몇 세대가 지나자 외계인의 동그란 두 눈이 아래로 내려가더니 자동차 바퀴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을 따라갔고, 결국 자동차 이미지가 나왔다. 그는 자동차를 만들려고 한 적이 없었다.

디딤돌 — 목표만 망원경으로 겨누는 사람은 바위에 막히고, 흥미로운 것을 따라 뛰는 사람이 강을 건넌다크게 보기

이 경험은 정량적 실험으로 이어졌다. 2011년 브라이언 울리(Brian Woolley)와 스탠리는 피카브리더에서 사용자들이 만든 해골 이미지를 분석했다. 그 해골은 74세대 만에 발견되었고, 그 조상들은 초승달, 도넛, 접시처럼 생긴 이미지였다. 해골과는 전혀 닮지 않은 것들이다. 그런데 같은 알고리즘에 '이 해골을 만들어라'라는 명시적 목표를 주었더니, 3만 세대를 돌려도 20번 중 0번 성공했다. 나비 이미지도 0/20이었다.

스탠리와 조엘 레만(Joel Lehman)은 여기서 과감한 결론을 끌어냈다. 목표가 오히려 목표 달성을 방해한다. 그래서 그들은 목표를 완전히 버리고 새로움만 보상하는 알고리즘, 신기성 탐색(novelty search)을 만들었다. 2011년 『진화 연산(Evolutionary Computation)』에 실린 「목표를 버려라(Abandoning Objectives)」 논문의 실험이 유명하다.

과제신기성 탐색 (새로움만 보상)목표 기반 탐색 (목표 거리로 보상)
중간 난이도 미로모든 실행 성공, 평균 18,274회 평가모든 실행 성공, 평균 56,334회 평가 (3배 느림)
어려운 미로 (기만적 구조)40번 중 39번 성공40번 중 3번 성공
2족 보행 로봇, 평균 이동 거리4.04m2.88m
2족 보행 로봇, 최고 기록13.7m6.8m

어려운 미로는 일부러 '기만적(deceptive)'으로 설계되었다. 출구 쪽으로 곧장 가면 막다른 벽이 있고, 출구에 닿으려면 처음엔 출구에서 멀어지는 길로 돌아가야 한다. 목표 기반 탐색은 '출구까지의 거리'를 줄이는 쪽으로만 움직이니 벽 앞에서 영원히 맴돈다. 신기성 탐색은 '아직 가 보지 않은 곳'으로 가려 하니, 결국 우회로를 찾는다. 무작위 선택은 40번 중 4번 성공했다. 목표를 쫓는 탐색(3번)이 무작위(4번)보다도 못했다.

스탠리와 레만은 2015년 책 『위대함은 계획할 수 없다(Why Greatness Cannot Be Planned)』에서 이 교훈을 인간의 삶과 제도로 확장했다. 그들의 대표적인 예는 진공관이다. 1750년에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운 사람은 진공관을 먼저 발명할 생각을 결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공관이 발명된 뒤에도 그것이 계산에 쓰일 수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디딤돌은 최종 결과물을 닮지 않았다. 그래서 목표에서 거꾸로 경로를 그리는 방식 — 5년 계획 — 으로는 디딤돌을 찾을 수 없다.

블룸의 글과 스탠리의 책은 놀랍도록 같은 말을 한다. 블룸: "어떤 기술, 어떤 관계, 어떤 환경이 결국 당신의 인생을 바꿀지 당신은 전혀 모른다." 스탠리: 야심찬 목표에 이르는 디딤돌은 목표를 닮지 않았기 때문에, 목표를 기준으로는 디딤돌을 고를 수 없다. 다만 블룸은 스탠리보다 한 걸음 덜 나간다. 스탠리는 목표를 완전히 버리라고 하지만, 블룸은 나침반 — 방향 — 은 남긴다. 사실 스탠리의 신기성 탐색에도 '무엇이 흥미로운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있다. 완전한 무작위보다 나은 것은 그래서다.

이 생각은 지금 AI 연구의 중심부로 들어와 있다. 2019년 우버 AI 연구소의 POET은 과제(환경)와 해결자(에이전트)를 함께 진화시켜, 한 환경에서 익힌 기술이 다른 환경의 디딤돌이 되게 했다. 평지에서 무릎을 끌며 걷는 법을 익힌 로봇이 나중에 그루터기가 있는 지형에서 더 잘 걸었다. 2024년 구글 딥마인드 연구진은 ICML 논문 「초인 인공지능에는 개방성(open-endedness)이 필수다」에서, 계속 새롭고(앞으로의 결과물이 점점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동시에 배울 수 있는(관찰이 쌓일수록 예측 가능해지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시스템을 개방적 시스템이라고 정의했다. 인접 가능성을 계속 넓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AI 연구의 목표 중 하나가 된 것이다.

④ 임파워먼트와 후퇴 지평 제어 — 나침반의 수학

마지막으로, '나침반'을 수학으로 쓰면 어떻게 될까. 두 개의 오래된 아이디어가 있다.

임파워먼트(empowerment). 2005년 영국 하트퍼드셔대의 알렉산더 클류빈(Alexander Klyubin), 다니엘 폴라니(Daniel Polani), 크리스토퍼 네하니브(Chrystopher Nehaniv)는 '보상'이 없는 상황에서 에이전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안했다.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극대화하라. 정보이론으로 쓰면, 내 행동 A와 그 결과로 오는 미래 상태 S 사이의 채널 용량이다.

E=max⁡p(a)I(St+1;At)\mathfrak{E} = \max_{p(a)} I(S_{t+1}; A_t)

복잡해 보이지만, 결과가 결정론적인 세계에서는 아주 직관적이다. 이 값은 지금 위치에서 도달할 수 있는 서로 다른 미래 상태 수의 로그가 된다. 말 그대로 '손 닿는 문의 수'다. 2008년 같은 연구진의 후속 논문 제목은 이 철학을 그대로 담았다. 「선택지를 열어 두라(Keep your options open)」.

물리학자 알렉스 위스너-그로스(Alex Wissner-Gross)와 캐머런 프리어(Cameron Freer)는 2013년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비슷한 생각을 물리 법칙처럼 썼다. 「인과적 엔트로피 힘(Causal Entropic Forces)」은 시간 지평 τ 안에서 갈 수 있는 경로의 다양성(인과적 경로 엔트로피 Sc)을 키우는 쪽으로 미는 힘 F = Tc∇Sc를 정의했다. 이 힘만 주었는데 상자 속 입자는 가운데로 가고(가운데가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는 곳이니까), 카트 위의 막대는 저절로 위로 세워져 균형을 잡았다. 막대가 위에 있어야 다른 모든 각도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룸의 "인접 가능성을 넓히고 끌어올려라"는 이 두 아이디어의 인생 버전이다. 넓히기(expanding)는 도달 가능한 미래의 수를 키우는 것(임파워먼트), 끌어올리기(improving)는 그 미래들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후퇴 지평 제어(Receding Horizon Control). 그렇다면 계획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할까? 제어공학에는 이 질문에 대한 실용적인 답이 있다. 모델 예측 제어(MPC), 다른 이름으로 후퇴 지평 제어다. 자율주행차, 화학 공정, 드론, 로봇이 이 방식으로 움직인다. 원리는 이렇다.

① 관찰지금 상태를 측정한다.
② 계획지금 상태에서 일정 기간(지평) 앞까지의 최적 경로를 계산한다. 이것은 '열린 루프' 계획 — 지도 — 이다.
③ 첫 걸음만 실행계산한 경로 중 첫 번째 행동만 실행한다. 나머지 계획은 버린다.
④ 반복다시 관찰하고, 지평을 한 칸 앞으로 밀어 다시 계획한다. 전체로 보면 '닫힌 루프' — 나침반 — 가 된다.

MPC는 계획을 버리지 않는다. 매 순간 계획한다. 다만 계획을 믿지 않는다. 첫 걸음만 쓰고 버린다. 이것이 아이젠하워의 "계획은 쓸모없지만 계획하기는 전부다"를 공학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블룸의 "다음 한 걸음만 내디뎌라"는 계획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계획의 첫 걸음만 실행하고 다시 보라는 말로 읽을 수 있다.

지도를 든 여행자와 나침반을 든 여행자 — 같은 땅, 다른 결과크게 보기

아래 위젯은 이 두 방식을 같은 세상에서 겨룬다. 지도 여행자는 출발할 때 존재하는 기회들로 30걸음짜리 경로를 미리 짜고 끝까지 따른다. 나침반 여행자는 매 걸음 지금 존재하는 기회를 다시 보고 한 걸음만 간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기회를 잡으면 그 주변에 새 기회(보라 점)가 생긴다. 블룸의 말처럼 모든 행동이 다음에 가능한 것의 경계를 바꾸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뀌는 속도'를 0으로 두면 두 여행자의 결과는 거의 같다. 새 기회가 생기지 않는 세상에서는 미리 짠 경로가 최선에 가깝다. 고도성장기 한국의 5개년 계획이 잘 작동한 이유, 블룸이 트랙 위에 있을 때 계획이 쉬웠던 이유다. 그런데 속도를 조금만 올려도 나침반 여행자가 압도적으로 앞선다. 차이의 대부분은 보라 점, 즉 자기 발걸음이 연 기회에서 나온다. 지도 여행자는 자기가 만든 기회조차 계획에 없었기 때문에 지나친다.

6. 세 개의 레버 — 기술, 관계, 환경

이론에서 다시 블룸의 글로 돌아오자. 그는 개인의 인접 가능성을 이렇게 정의한다. "지금 당장 손이 닿는 다음 미래들의 집합. 만날 수 있는 사람, 기를 수 있는 기술, 만들어 낼 수 있는 결과, 들어갈 수 있는 방, 머물 수 있는 환경."

여기서 그는 독자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을 먼저 짚는다. "인접 가능성이 지금까지의 모든 것에서 직선으로 이어진다면, 결국 과거의 연장선에 갇히는 것 아닌가?" 그의 답은 "아니다"이다. 그 해석은 나를 한순간에 얼려 놓고, 그 시점에서 장기 지도를 그린다고 가정할 때만 맞다. 모든 행동은 다음에 가능한 것의 경계를 바꾼다. 문을 하나 지날 때마다, 기술 하나를 익힐 때마다, 사람 하나를 알게 될 때마다 새 재료가 생기고, 그 재료는 더해지는 게 아니라 곱해진다. 블룸의 표현으로는 "새 기술·관계·경험 하나는 가능한 미래를 하나 더하는 게 아니라 몇 배로 불린다."

그래서 할 일은 둘이다. 인접 가능성을 넓히는 것(expanding) — 가능한 조합과 경험의 폭을 키우는 것. 그리고 끌어올리는 것(improving) — 집합 전체가 더 좋은 결과 쪽으로 휘도록 하는 것. 이를 위한 레버가 셋이다.

세 개의 레버 — 쌓이는 기술, 깊고 넓은 관계, 나를 밀어붙이는 환경크게 보기

레버 1. 기술 — "쌓이는 기술"

블룸의 첫 레버는 "쌓이는(stack) 기술"이다. 기술은 가치를 만들고, 가치를 만들면 가치가 돌아온다. 그리고 기술이 많을수록, 그 기술들의 조합이 독특할수록 확장 가능한 가치를 만들 잠재력이 커진다.

이 생각의 대중적 원형은 만화 『딜버트』의 작가 스콧 애덤스가 2007년 블로그에 쓴 커리어 조언이다.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기는 극히 어렵지만, 두세 가지 분야에서 상위 25% 안에 드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고, 그 조합은 희소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뛰어난 화가도, 최고의 유머 작가도 아니지만 그림·유머·회사 생활 경험을 함께 가진 사람은 드물었고, 그 평범한 재능들의 조합이 『딜버트』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훗날 '재능 스택(talent stack)'으로 불린 이 생각은 TAP 방정식의 직관 그대로다. 기술 n개는 조합으로 2ⁿ−1가지의 묶음을 만든다. 기술 하나를 더하면 문이 하나가 아니라 두 배로 는다.

데이비드 엡스타인(David Epstein)의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Range)』(2019)은 같은 이야기를 경제학 데이터로 뒷받침한다. 경제학자 오퍼 말라무드(Ofer Malamud)는 대학 전공을 일찍 정하는 잉글랜드와, 여러 과목을 먼저 들어 본 뒤 늦게 정하는 스코틀랜드를 비교했다(2011). 일찍 전공을 정한 잉글랜드 졸업생들은 나중에 전공과 무관한 직업으로 갈아탈 확률이 더 높았다. 늦게 정하면서 잃은 전문 기술보다, 여러 가지를 맛보며 얻은 '나와 일의 궁합(match quality)'에 대한 정보가 더 값졌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하나의 경로를 정하는 것은 5년 계획과 같은 실수다 — 아직 자신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을 때 경로를 고정하는 것.

레버 2. 관계 — "깊이와 너비 모두"

두 번째 레버에서 블룸은 이렇게 쓴다. "인생에서 겪는 비대칭적 기회의 대부분은 관계를 통해 열린다. 가까운 관계일 때도 있고, 약한 관계일 때도 있다. 둘 다 쌓고 유지하라."

'약한 관계'라는 말에는 사회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가운데 하나가 숨어 있다. 1973년,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는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을 발표했다. 그는 보스턴 근교 뉴턴의 전문직·기술직·관리직 노동자들에게 지금 직장을 어떻게 구했는지 물었다. 지인을 통해 직장을 구한 54명에게 그 지인을 얼마나 자주 만났는지 물었더니 결과는 이랬다.

자주 (주 2회 이상)
16.7%
가끔
55.6%
드물게 (1년에 1회 이하)
27.8%

새 직장을 연결해 준 사람의 80% 이상은 자주 만나는 친구가 아니라 '가끔' 또는 '드물게' 보는 사람이었다. 그라노베터의 설명은 이렇다. 가까운 친구들은 나와 같은 사람을 알고, 같은 정보를 듣는다. 그들이 아는 것은 대부분 나도 이미 안다. 반면 약한 연결은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무리로 이어지는 '다리'다. 새로운 정보 — 아직 내 인접 가능성에 없던 재료 — 는 그 다리를 건너온다.

약한 연결이 가져온 편지 — 가장 새로운 정보는 가장 멀리서 온다크게 보기

이 가설은 반세기 동안 상관관계로만 확인되었다. 그러다 2022년, MIT의 시난 아랄(Sinan Aral)과 스탠퍼드의 에릭 브리뇰프슨(Erik Brynjolfsson), 링크드인 연구진이 『사이언스』에 인과적 검증을 발표했다. 링크드인의 '알 수도 있는 사람(People You May Know)' 추천 알고리즘은 주기적으로 무작위 실험을 하는데, 그 덕분에 어떤 사용자에게는 약한 연결이, 어떤 사용자에게는 강한 연결이 더 많이 추천되었다. 연구진은 5년간 2천만 명 이상, 새로 생긴 연결 20억 개, 그리고 그 결과로 생긴 이직 60만 건을 분석했다.

결과는 두 가지였다. 첫째, 약한 연결이 이직에 더 도움이 된다는 그라노베터의 가설은 인과적으로 맞았다. 둘째, 그런데 가장 약한 연결이 가장 좋은 것은 아니었다. 공통 친구 수로 관계의 강도를 재면, 효과는 거꾸로 된 U자 모양을 그렸다. 공통 친구가 10명 안팎인 '적당히 약한' 연결에서 효과가 가장 컸고, 그보다 더 가까우면(공통 친구가 10명을 넘으면) 오히려 줄었다. 너무 먼 사람은 정보를 줄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고, 너무 가까운 사람은 새 정보가 없다. 블룸이 말한 "깊이와 너비 모두"는 이 곡선의 양쪽 끝을 모두 유지하라는 말에 가깝다.

관계의 종류새 정보나를 위해 움직일 동기대표적 역할
강한 연결 (가족·절친)적다 — 같은 세계에 산다크다위기 때의 안전망, 결정의 상담
적당히 약한 연결 (공통 지인 10명 안팎)많다중간새 일자리·기회의 통로 (링크드인 실험의 최적점)
아주 약한 연결 (한 번 본 사람)많다작다우연한 연결의 씨앗, 아직은 다리가 아님

같은 논문에는 2026년의 독자에게 특히 의미 있는 결과가 하나 더 있다. 약한 연결의 효과는 디지털 산업일수록 컸다. IT 집약도가 높고, 소프트웨어를 많이 쓰고, 머신러닝·AI 적용 가능성이 높고, 원격 근무가 쉬운 산업에서 약한 연결은 이직을 더 많이 만들었다. 반대로 덜 디지털화된 산업에서는 강한 연결이 더 효과적이었다. 일이 디지털이 될수록, 기회는 가까운 사람보다 먼 다리를 타고 온다.

레버 3. 환경 — "더 큰 연못으로"

세 번째 레버는 환경이다. 블룸은 "당신은 환경의 산물"이라며, 세상과 자신의 잠재력을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주변 환경의 부산물이라고 쓴다. 그래서 "불편하더라도 더 큰 연못에 자신을 두라. 특히 불편할 때 더욱."

환경이 인접 가능성을 바꾼다는 증거는 탄탄하다. 하버드의 라지 체티(Raj Chetty) 연구진은 1990년대 미국의 '기회로 이사하기(Moving to Opportunity)' 실험 데이터를 장기 추적했다(2016). 빈곤율이 높은 동네에 살던 가족에게 무작위로 이사 바우처를 주었는데, 13세 이전에 더 나은 동네로 이사한 아이들은 20대 중반에 소득이 31%(연 3,477달러) 더 높았다. 13세 이후에 이사한 아이들에게는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부정적이었다. 환경의 효과는 노출된 기간에 비례했다.

같은 연구진의 「잃어버린 아인슈타인(Lost Einsteins)」(2019)은 더 직접적이다. 미국에서 발명가가 되는 아이는 소득 상위 1% 가정 출신일 확률이 중위 이하 가정 출신보다 10배 높았다. 그런데 그 차이의 상당 부분은 능력이 아니라 노출로 설명되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자란 보스턴 사람은 컴퓨터 분야 특허를, 미니애폴리스에서 자란 사람은 의료기기 특허를 냈다. 어릴 때 주변에서 본 발명의 종류가 나중에 발명하는 분야를 결정했다. 소녀들이 여성 발명가에 노출되는 정도가 소년들이 남성 발명가에 노출되는 정도와 같았다면 발명의 성별 격차는 절반으로 줄었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사람은 본 적 있는 것의 인접 가능성 안에서 꿈을 꾼다.

그런데 큰 연못은 언제나 좋은가

여기서 블룸의 조언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연구가 있다. 교육심리학자 허버트 마시(Herbert Marsh)가 1980년대부터 연구한 큰 물고기-작은 연못 효과(Big-Fish-Little-Pond Effect)다. 실력이 같은 학생이라도 평균 수준이 높은 학교에 다니면 자기 능력에 대한 인식(학업적 자기개념)이 낮아진다. 주변 비교 대상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 효과는 놀라울 만큼 보편적이다. PISA 2000 데이터로 26개국 10만여 명을 분석했더니 26개국 모두에서 나타났고, PISA 2003의 41개국 분석에서도 41개국 모두에서 같은 방향이었다.

말콤 글래드웰은 『다윗과 골리앗』(2013)에서 이 효과를 대중화했다. 하버드 하위 3분의 1 학생들의 수학 실력이 덜 유명한 대학 상위 3분의 1 학생들과 비슷한데, 이공계 학위를 끝까지 따는 비율은 덜 유명한 대학의 상위권 학생들이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큰 연못에서 '작은 물고기'가 된 학생들은 스스로 이공계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떠났다.

그렇다면 블룸의 조언은 틀렸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두 결과를 함께 놓으면 더 정확한 조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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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연못의 비용
비교 대상이 뛰어나면 자기개념이 낮아지고, 그 결과 도전을 포기할 수 있다(큰 물고기-작은 연못 효과). 이 비용은 '서열'이 분명한 환경 — 시험 점수, 성적 등수 — 에서 특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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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연못의 이득
노출이 인접 가능성을 바꾼다(체티의 이사 실험, 잃어버린 아인슈타인). 이 이득은 '무엇이 가능한지 보여 주는' 환경 — 다양한 사람, 다양한 시도 — 에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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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서열로 경쟁하는 연못보다 가능성을 보여 주는 연못을 고르라. 그리고 그 안에서 비교의 기준을 '옆 사람'이 아니라 '어제의 나'로 둔다. 블룸의 "불편할 때 더욱"은 이 비용을 감수할 만하다는 판단이지만, 그 비용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지점

세 레버를 설명한 뒤, 블룸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단락을 쓴다.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지점이 있다. 이 세 레버 중 어느 것도, 인생에서 당신에게 열릴 문들을 정확히 예측하게 해 주지 않는다. 어떤 기술, 어떤 관계, 어떤 환경이 결국 당신의 인생을 바꿀지 당신은 전혀 모른다."

이것이 '레버'와 '계획'의 차이다. 레버는 결과를 고르지 않는다. 문의 수와 질을 바꿀 뿐, 어느 문이 열릴지는 고르지 않는다. 위젯의 "그중 어느 문이 열릴까?" 버튼을 몇 번 눌러 보면 이 말의 뜻이 손에 잡힌다. 같은 레버 설정에서도 열리는 문은 매번 다르다. 레버가 하는 일은 그 주사위의 면을 늘리고, 면에 적힌 숫자를 키우는 것이다.

블룸 자신의 경로가 좋은 예다. 그는 2020년, 금융 일을 하면서 트위터에 금융과 인생에 관한 짧은 스레드를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그의 사모펀드 커리어에서 부수적인 기술이었다. 그 스레드가 약한 연결 — 그가 만난 적 없는 수십만 명 — 을 만들었고, 그 약한 연결이 뉴스레터와 출판과 팟캐스트라는, 2021년의 5년 계획에는 없던 방들을 열었다. 어떤 스레드가 그 문을 열지는 그도 몰랐다.

7. 커리어 이론이 먼저 알았던 것 — 계획된 우연과 효과화

블룸의 글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그의 문장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커리어 상담과 창업 연구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비슷한 말을 해 왔다. 블룸의 처방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세 갈래의 연구를 짚는다.

반두라 — 우연한 만남이 삶을 가른다

1982년, 사회학습이론으로 유명한 스탠퍼드의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미국 심리학자』에 「우연한 만남과 삶의 경로에 대한 심리학」을 발표했다. 그는 "우연한 만남이 인간 삶의 경로를 형성하는 데 두드러진 역할을 한다"며, 어떤 만남은 사람을 "새로운 삶의 궤적으로 갈라놓는다"고 썼다. 반두라 자신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대학원생 시절 지루한 독서 과제를 피해 친구와 골프를 치러 갔다가, 앞 조의 여성 골퍼 두 명과 한 조가 되었고, 그중 한 명과 결혼했다.

반두라의 요점은 '인생은 운'이 아니었다. 같은 우연한 만남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궤적을 바꾸고 어떤 사람에게는 스쳐 간다. 그 차이는 그 사람이 가진 기술, 관심, 준비, 그리고 그를 둘러싼 환경이 만든다. 블룸의 세 레버는 우연이 궤적을 바꿀 확률을 높이는 장치다.

크럼볼츠 — '계획된 우연'

1999년, 스탠퍼드의 커리어 상담학자 존 크럼볼츠(John Krumboltz)와 동료들은 「계획된 우연(Planned Happenstance): 예상치 못한 커리어 기회 만들기」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제목 자체가 모순처럼 들린다. 계획된 우연이라니. 그들의 주장은 상담자가 예기치 않은 사건을 "불가피하고 동시에 바람직한 것"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로 상담의 목표는 '정답 직업을 찾아 주는 것'이 아니라 우연을 기회로 바꾸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 능력으로 다섯 가지를 꼽았다.

호기심
새 기회를 탐색한다
끈기
좌절에도 계속한다
유연성
태도와 상황을 바꾼다
낙관성
새 기회를 가능하다고 본다
위험 감수
불확실해도 행동한다

이 다섯 가지는 블룸의 레버와 짝을 이룬다. 레버가 '무엇을 쌓을지'라면, 크럼볼츠의 다섯 기술은 '어떤 태도로 쌓을지'다. 그보다 10년 앞서, 1962년 합리적 진로 의사결정 모형을 만든 상담학자 겔라트(H. B. Gelatt) 본인이 1989년 「긍정적 불확실성」이라는 논문에서 "이제 나는 의사결정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고 고백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허미니아 아이바라(Herminia Ibarra)는 이것을 경력 전환 연구로 확인했다. 그녀는 2002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기고에서 직업을 바꾼 32~51세 전문직 39명을 3년간 추적한 결과를 소개했고, 이듬해 책 『내가 원하는 나를 만나는 법(Working Identity)』으로 정리했다. 성공적으로 직업을 바꾼 사람들은 먼저 '진정한 자아'를 찾고 나서 움직이지 않았다. 작은 실험을 해 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 경험에서 의미를 만들어 갔다. 생각이 행동을 이끄는 게 아니라, 행동이 생각을 바꿨다. 2020년의 블룸이 트위터에 스레드를 쓰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런 '작은 실험'이었다.

사라스바티 — 효과화, 숙련 창업가의 사고법

가장 정교한 이론은 창업 연구에서 나왔다. 버지니아대의 사라스 사라스바티(Saras Sarasvathy)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의 지도로 박사 논문을 쓰면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숙련된 창업가는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녀는 회사를 창업해 10년 넘게 경영하고 상장까지 시킨 숙련 창업가 27명(회사 매출 2억~65억 달러)과 MBA 학생 37명에게 같은 과제를 주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신제품의 시장을 찾는 10개 문항, 17쪽짜리 문제지였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문제를 풀면서 머릿속 생각을 소리 내어 말하게 하고(발성 사고법), 그 발언을 분석했다.

결과는 선명했다. 숙련 창업가 27명 중 20명(74%)이 발언의 63% 이상을 한 가지 논리로 했고, 7명은 오직 그 논리로만 말했다. 반면 MBA 학생의 78%는 그 논리로 된 발언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같은 제품에서 창업가들은 18가지의 서로 다른 회사를 상상했고, 학생들은 그 절반도 안 됐다. 사라스바티는 이 논리를 효과화(effectuation)라 불렀고, 2001년 『아카데미 오브 매니지먼트 리뷰』에 발표했다.

구분인과 논리 (causation) — 지도효과화 (effectuation) — 나침반
출발점정해진 목표(효과)가진 수단
질문"이 목표를 이루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내가 가진 것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
위험 판단기대 수익감당할 수 있는 손실
다른 사람경쟁 분석의 대상함께 미래를 만드는 파트너
예상 밖 사건피해야 할 편차활용할 재료
미래에 대한 태도예측할 수 있는 만큼 통제할 수 있다통제할 수 있는 만큼 예측할 필요가 없다

사라스바티의 원 논문 정의는 이렇다. "인과 과정은 특정 효과를 주어진 것으로 보고, 그 효과를 만들 수단을 고르는 데 집중한다. 효과화 과정은 일련의 수단을 주어진 것으로 보고, 그 수단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한 효과들 중에서 고르는 데 집중한다." 5년 계획은 전형적인 인과 논리다. 5년 뒤의 모습을 먼저 정하고 거꾸로 경로를 짠다. 블룸의 처방은 효과화다. 지금 가진 재료에서 출발해 가능한 것을 넓힌다.

이후 사라스바티와 동료들은 효과화를 다섯 가지 원칙으로 정리했다.

효과화의 다섯 원칙 — 가진 것으로, 감당할 손실, 퀼트, 레모네이드, 조종사크게 보기

  1. 손 안의 새(Bird in Hand) — 가진 것에서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아는가, 누구를 아는가. 블룸의 세 레버(기술·관계·환경)와 거의 정확히 겹친다.
  2. 감당할 수 있는 손실(Affordable Loss) — 기대 수익이 아니라, 잃어도 괜찮은 만큼만 건다.
  3. 조각보 퀼트(Crazy Quilt) — 함께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그들이 가져온 조각으로 목표 자체를 다시 짠다.
  4. 레모네이드(Lemonade) — 레몬(예상 밖의 일)이 떨어지면 레모네이드를 만든다. 놀라움을 피하지 않고 재료로 쓴다.
  5. 비행기 조종사(Pilot in the Plane) —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감당할 수 있는 손실'은 블룸의 글에 대한 첫 번째 반론 — "안전망이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얘기 아닌가" — 에 대한 가장 좋은 답이기도 하다. 레버를 얼마나 크게 움직일지는 각자의 손실 감당 능력이 정한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만이 레버가 아니다. 주 4시간의 실험도 레버다.

한눈에 보는 계보

여기까지 다룬 생각들을 시간 순서로 놓으면, 블룸의 글이 어떤 지층 위에 서 있는지 보인다.

8. 반론 — 지도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좋은 글일수록 반대편에서 읽어 봐야 한다. 블룸의 글에는 적어도 다섯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아래는 이 특집이 정리한 반론이며, 블룸이 직접 답한 것은 아니다.

반론 1. 생존자의 회고다. 블룸은 스탠퍼드를 나와 사모펀드 부사장을 지낸 사람이다. 그가 지도를 태울 수 있었던 것은 태워도 될 만큼의 안전망 — 저축, 학벌, 금융계 네트워크 — 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같은 시기 같은 실험을 하고도 아무 문도 열리지 않은 사람들의 글은 뉴스레터가 되지 않는다. 이 비판은 정당하다. 다만 블룸의 처방 자체가 '모든 것을 걸어라'가 아니라는 점은 짚어 둘 만하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다. 레버를 움직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레버를 얼마나 크게 움직일지는 각자의 안전망이 정한다 — 사라스바티의 '감당할 수 있는 손실'이 바로 그 기준이다.

반론 2. 어떤 길은 지도가 필수다. 의사가 되려면 의대 6년,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야 한다. 변호사, 회계사, 조종사, 박사 학위도 마찬가지다. 긴 자격 경로가 있는 직업에서 '다음 한 걸음'만 보고 걸으면 아무 데도 도착하지 못한다. 이 반론에 대한 가장 정직한 답은, 블룸의 글이 이미 지도를 따라가다 그 지도를 의심하게 된 사람을 향한 글이라는 것이다. 그도 처음 7년은 지도를 따랐다. 그리고 지도를 따르는 동안에도 레버는 움직일 수 있다. 의사도 연구를 하고, 글을 쓰고, 다른 분야 사람을 만난다. 그 재료가 20년 뒤의 의사를 다른 의사로 만든다.

반론 3. '나침반'이 너무 모호하다. 지도를 태우라는 말은 선명한데, 그 대신 지키라는 나침반이 무엇인지는 흐릿하다. 블룸은 세 레버를 나침반으로 쓰라고 하지만, 레버는 방향이 아니라 수단이다. "어느 쪽으로 가고 싶은가"라는 질문 — 에너지가 나는 일, 지키고 싶은 가치, 되고 싶은 사람 — 이 빠지면, 인접 가능성을 넓히는 일은 그저 바쁜 수집이 된다. 스탠리의 '흥미로움'이나 사라스바티의 '내가 가진 것(나는 누구인가)'처럼, 나침반은 결국 내가 무엇에 끌리는지에 대한 감각이어야 한다. 이 감각은 계획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해 보면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블룸의 처방과 모순되지 않는다.

반론 4. 5년 계획에도 쓸모가 있다. 스탠퍼드 디자인 스쿨의 빌 버넷과 데이브 에반스는 『디자인 유어 라이프』(2016)에서 오히려 5년 계획을 세 개 세우라고 권한다. 이른바 '오디세이 계획'이다. 첫째는 지금 가는 길, 둘째는 그 길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의 길, 셋째는 돈과 남의 시선이 상관없다면 갈 길. 각 계획을 자원·호감도·자신감·일관성이라는 네 계기판으로 평가한다. 핵심은 계획을 '실행할 경로'가 아니라 '상상력을 넓히는 도구'로 쓰는 것이다. 이것은 블룸의 진단(계획은 과거의 외삽이다)에 대한 다른 처방이다. 외삽 하나를 버리는 대신, 서로 다른 외삽 셋을 나란히 놓아 시야를 강제로 넓힌다. 리드 호프먼이 『연결하는 인간(The Start-up of You)』(2012)에서 제안한 'ABZ 계획' — A는 지금 일, B는 방향 전환 후보, Z는 최악의 경우 구명보트 — 도 같은 계열이다.

반론 5. 이건 결국 '운'을 미화하는 말 아닌가. 이 비판에는 커리어 이론이 이미 답을 내놓았다. 크럼볼츠의 '계획된 우연'은 운을 미화하지 않는다. 운이 어디로 떨어질지는 모르지만, 운이 떨어질 면적은 행동으로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위젯의 레버 모형이 보여 주듯, 레버를 움직이지 않은 사람에게도 운은 온다. 다만 그 운이 걸릴 문이 적다.

이 반론들을 모두 받아들이면, 블룸의 메시지는 조금 더 정교해진다. "계획을 버려라"가 아니라 "계획의 단위와 용도를 바꿔라". 5년짜리 경로를 확정하는 대신, 5년 뒤 가능성의 범위를 넓히는 12주짜리 실험을 반복하라. 그리고 그 실험들이 어느 방향으로 쌓이는지 나침반으로 확인하라.

9. 2026년 — AI가 해마다 문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시대

블룸은 글에서 AI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글이 2026년에 유독 크게 울린 이유는 아마 AI일 것이다. 5년 계획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전제는 '5년 동안 판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그 전제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26년 — AI라는 등불이 비추는 범위가 해마다 넓어지고, 뒤쪽의 문 몇 개는 무너진다크게 보기

문이 닫히는 속도와 열리는 속도

세계경제포럼(WEF)의 「일자리의 미래 2025」는 55개국 1천여 개 기업, 1,400만 명 이상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고용주들을 조사했다. 2030년까지 지금 일자리의 22%에 해당하는 변동이 일어난다. 1억 7천만 개가 새로 생기고(14%) 9,200만 개가 사라져(8%) 순증은 7,800만 개다. 그리고 지금 노동자가 가진 핵심 기술의 39%가 2030년까지 바뀔 것으로 예상했다. 노동자 100명 중 59명은 재교육이 필요하다.

조금 더 날카로운 신호는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에서 나왔다. 에릭 브리뇰프슨 등은 미국 최대 급여 처리 업체 ADP의 데이터를 분석한 「탄광 속 카나리아」 보고서를 2025년 8월 처음 낸 뒤 계속 갱신하고 있다. 2026년 6월까지의 데이터를 반영한 2026년 8월 판에 따르면, AI 노출이 큰 직종의 22~25세 고용은 그렇지 않았을 경우보다 19% 낮다. 처음 보고서의 13%, 중간 판의 16%에서 계속 커졌다. 이 감소는 해고보다 신규 채용 감소로 일어났고, 연구진은 아직 경제 전반의 광범위한 일자리 대체 증거는 없으며 결과는 인과가 아닌 기술적 관찰이라고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하다. 2021년의 신입이 그렸던 5년 계획의 첫 계단 — 주니어 직무 — 이 가장 먼저 흔들렸다.

한국의 숫자도 같은 그림을 그린다. 통계청의 2026년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청년(15~29세)의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은 1년 6.8개월이다. 첫 직장을 그만둔 이유 1위는 근로 여건 불만족(44.4%)이었다. 첫 취업까지는 평균 11.2개월이 걸렸고, 미취업 청년 중 1년 이상 미취업 상태인 사람이 48.6%였다. 2026년 8월 기준 '그냥 쉬었다'고 답한 청년은 39만 5천 명이다. 이 숫자들 앞에서 "5년 뒤 이 회사에서 팀장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면접 답변은 계획이라기보다 의례에 가깝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미국 노동통계국의 2026년 조사에서 25~34세의 현 직장 근속기간 중앙값은 3.0년이었다. 첫 직장에서 2년을 채우는 사람이 절반이 안 되는 세상에서 5년짜리 경로를 확정하라는 것은, 지도가 출발 전에 이미 낡았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일이다.

동시에, AI는 인접 가능성을 넓힌다

하지만 같은 AI가 반대 방향으로도 작용한다. 2021년의 블룸이 글쓰기라는 새 재료를 얻기 위해 수년간 매일 스레드를 써야 했다면, 2026년의 누군가는 AI 에이전트의 도움으로 몇 주 만에 처음 보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앱을 만들고, 모르는 언어로 해외 고객에게 제안서를 쓰고, 데이터 분석 기술을 '빌려' 쓸 수 있다. 새 기술을 내 인접 가능성 안으로 들여오는 비용이 극적으로 떨어졌다. TAP 방정식의 언어로 말하면, 조합 성공률 α가 올라갔다. 그리고 TAP 위젯에서 보았듯, α가 오르면 폭발 시점이 당겨진다.

그래서 2026년의 인접 가능성은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다. 뒤쪽에서는 문이 빠르게 무너지고(주니어 직무, 정형화된 업무), 앞쪽에서는 문이 빠르게 생긴다(AI를 다루는 일, AI로 가능해진 1인 사업, 아직 이름 없는 직무). 이런 환경에서 5년 계획은 두 번 틀린다. 계획서에 적힌 문은 사라지고, 계획서에 없는 문이 생긴다. 지도 vs 나침반 위젯에서 '세상이 바뀌는 속도'를 최대로 올렸을 때의 모습이 2026년이다.

AI 에이전트 설계가 이미 배운 교훈

흥미롭게도, AI를 만드는 사람들도 같은 교훈을 배웠다. 초기 LLM 에이전트 연구에는 '먼저 전체 계획을 세우고 순서대로 실행하는' 방식(plan-and-execute)이 많았다. 그런데 실제 환경 — 웹 브라우저, 코드 저장소, 운영 체제 — 에서는 첫 단계를 실행하자마자 예상과 다른 화면이 나타나곤 했다. 그래서 2022년의 ReAct(생각과 행동을 번갈아 하며 관찰을 반영) 이후, 지금 쓰이는 코딩 에이전트와 컴퓨터 사용 에이전트들은 대부분 매 단계 관찰하고 계획을 다시 세우는 닫힌 루프 구조를 쓴다. 목표(나침반)는 대화 내내 유지되지만, 할 일 목록(지도)은 수시로 고쳐 쓴다. 블룸이 사람에게 권한 방식을, 기계는 이미 그렇게 일하고 있는 셈이다.

목표나침반: "어느 쪽이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가" — 대화 내내 유지된다
한 걸음12주짜리 실험: 감당할 수 있는 손실 안에서 레버 하나를 움직인다
관찰어떤 문이 새로 생겼나, 어떤 문이 닫혔나, 하는 동안 에너지가 났나
재계획다음 실험을 고른다. 경로는 다시 짜되 방향은 유지한다

10. 실천편 — 나침반 키트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이야기를 월요일 아침에 할 수 있는 일로 바꿔 보자. 블룸의 글은 의도적으로 구체적인 방법을 많이 말하지 않는다. 아래는 이 특집이 앞에서 다룬 연구들 — 효과화, 계획된 우연, 약한 연결, 오디세이 계획 — 을 엮어 만든 실천 도구다.

1단계지도 냄새를 맡는다. 지금 머릿속의 5년 뒤 모습이 '지금 + 직급 하나'라면, 그것은 계획이 아니라 외삽이다. 오디세이 계획처럼 전혀 다른 미래를 두 개 더 적어 보면 외삽의 테두리가 보인다.
2단계나침반을 적는다.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몰랐나", "어떤 사람 옆에 있을 때 내가 커지는 느낌이었나".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3단계감당할 수 있는 손실을 정한다. 기대 수익이 아니라, 다 잃어도 괜찮은 시간과 돈. 주 4시간, 한 달 10만 원 같은 식으로.
4단계가장 약한 레버부터 12주 실험을 건다. 기술·관계·환경 중 가장 오래 움직이지 않은 것. 인접한 기술 하나, 휴면 연결 다섯 명, 한 수 위의 방 하나.
5단계12주 뒤 관찰하고 다시 짠다. 열린 문, 닫힌 문, 에너지. 더 크게 걸 것과 접을 것. 그리고 다음 12주.

에필로그 — 다시, 그 질문

글의 끝에서 블룸은 다시 그 장면으로 돌아간다. 지난주에 한 멘토가 그에게 또 물었다. 5년 계획이 뭐냐고. 이번에 그는 정직하게 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없어요. 그리고 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지금처럼 설렌 적이 없습니다."

이 대답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 것은, 그것이 무계획의 선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계획 대신 다른 것을 갖고 있다. 방향 감각(나침반), 그리고 가능한 것의 범위를 계속 넓히는 습관(레버). 카우프먼의 생물권이 그랬듯, 피카브리더의 이미지들이 그랬듯, 다음 문은 지금 서 있는 방에서만 열린다. 그리고 그 방은 걸을 때마다 바뀐다.

2026년 가을, 면접장에서 "5년 뒤 어디에 있을 것 같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렇게 답해 보면 어떨까.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5년 동안 어떤 방향으로 어떤 재료를 모을지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정직하고, 2026년에는 가장 믿음직한 5년 계획일지 모른다.

나침반은 지키고, 지도는 태워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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