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전기를 기다리는 AI — 수도권 522건 중 10건, 9MW 데이터센터, 그리고 텍사스의 허가 중단
GPU는 돈을 내면 몇 달 안에 받을 수 있습니다. 전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2024년 8월부터 2026년 3월까지 수도권에서 데이터센터를 전력망에 연결하겠다고 심사를 신청한 522건 가운데 마지막 관문을 넘은 것은 10건, 1.9%였습니다. 그러자 심사 기준선인 10MW 바로 아래, 9MW짜리 데이터센터가 서울 곳곳에 생겨나고 있습니다. 정부는 2027년 3월 시행되는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으로 데이터센터를 지방으로 보내려 하고, 미국에서는 텍사스 주지사가 데이터센터 인허가를 멈춰 세웠고 국민 69%가 '우리 동네에는 반대'라고 답했습니다. 칩에서 전기로 옮겨 간 AI의 병목을 숫자로 따라가고, GPU 몇 장이면 몇 MW인지 직접 계산해 봅니다.
AI 붐 초기의 병목은 GPU였습니다. 돈이 있어도 엔비디아 칩을 구하지 못해 1년을 기다렸습니다. 2026년 가을의 병목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칩을 사 와도 꽂을 곳이 없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4월 보고서에서 2025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17% 늘었고, 그중 AI 중심 데이터센터는 50% 늘었다고 집계했습니다.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은 2025년 485TWh에서 2030년 950TWh로 두 배가 될 전망입니다. 문제는 발전소와 송전선을 짓는 속도입니다. IEA는 선진국에서 새 송전선을 놓는 데 4~8년이 걸리고, 계획된 데이터센터의 약 20%가 전력망 때문에 늦어질 수 있다고 봤습니다.
한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선명합니다. 이 글은 한국 수도권의 전력망 심사 결과, 그 심사를 피하려는 '9MW 데이터센터', 지방으로 보내려는 정부의 법, 그리고 미국의 반발까지 차례로 봅니다. 투자·금리 이야기는 빼고 전기만 따라갑니다.
✅
요약.
· 수도권 데이터센터 전력계통영향평가: 1차 신청 522건 → 본심사 통과 10건(1.9%). 비수도권은 본심사 통과율 약 90%. 수도권 신청 전력량만 33.6GW.
· 심사 문턱은 10MW(분산에너지법 시행령 제25조). 그 아래 9MW 안팎 사업이 수도권에 30건 이상이라는 업계 추정이 나왔습니다.
· AI 데이터센터 특별법(2026-06-09 공포, 2027-03-10 시행)은 비수도권 AI 데이터센터를 평가 대상에서 빼고 재생에너지 직접 공급을 허용합니다.
· 기업들이 제시한 2040년 AI 데이터센터 계약전력은 20.8GW입니다(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 재전망, 미확정).
· 미국: 텍사스 주지사가 9월 21일 데이터센터 인허가 중단을 지시했고, 뉴욕주는 7월 대형 데이터센터 신규 허가를 최대 1년 멈췄습니다. 미국인 69%가 동네에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것에 반대합니다.
1. 얼마나 필요한가
먼저 규모입니다. 한국 데이터센터의 전기 수요는 몇 년 사이에 자릿수가 바뀌었습니다. 국회 이정헌 의원실이 기후에너지환경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데이터센터가 한국전력에 미리 확보해 달라고 신청한 계약전력은 2020년 이전 60MW 수준에서 2023년 3,091MW로 50배 넘게 늘었습니다. 신청 건수는 2건에서 47건이 됐습니다.
앞으로는 더 큽니다. 정부가 8월 20일 공개한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 재전망에서, 기업들이 제시한 2040년 AI 데이터센터 계약전력은 20.8GW였습니다. 정부는 이 중 10.8GW를 12차 계획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머지 10GW는 다음 계획으로 미뤘습니다. 그 결과 2040년 최대 전력 전망은 131.8~138.2GW에서 158.4~165.0GW로 26GW 넘게 올라갔습니다. 12차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20.8GW가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으려면, 원전 한 기의 설비 용량이 1~1.4GW라는 점을 떠올리면 됩니다. AI 데이터센터만으로 원전 15~20기 분량을 더 달라는 셈입니다.
2. 수도권, 522건 중 10건
수요는 수도권에 몰립니다. AI 서비스, 특히 사용자 질문에 바로 답해야 하는 추론 서비스는 지연 시간이 중요해서 사용자와 가까운 곳이 유리합니다. 엔지니어도 수도권에 있습니다. 그런데 수도권 전력망은 이미 꽉 찼습니다.
2024년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10MW 이상 전기를 쓰는 시설이 전력망에 연결되기 전에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받게 했습니다. 전력망이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지 먼저 따지는 심사입니다. 데이터센터 심사는 2024년 8월부터 시범 운영 중인데, 머니투데이가 국회를 통해 받은 첫 1년 8개월 치 결과가 5월에 공개됐습니다.
수도권 신청 522건 중 1차 기술 검토에서 279건(53.4%)이 '공급 불가' 판정을 받았고, 본심사에 오른 24건 중 10건만 통과했습니다. 서울은 단 1건이었습니다. 수도권 신청 전력량을 모두 더하면 33,591MW입니다. 비수도권은 사정이 정반대입니다. 1차에서 '공급 불가'는 214건 중 27건(12.6%)에 그쳤고, 본심사도 대부분 통과했습니다.
전기는 지방에 있고, 수요는 수도권에 있습니다. 발전소가 많은 동해안과 호남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실어 나를 송전선이 모자랍니다. 동해안의 전기를 경기도 가평까지 보내는 초고압 직류 송전선(HVDC) 1단계는 정부의 9월 29일 전력망 대책 기준으로 2027년 상반기 준공이 목표입니다.
심사 자체도 느립니다. 어기구 의원실이 한전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6년 4월까지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검토 회신 154건 가운데 57건(37.0%)이 6개월 이상 걸렸고, 2년이 넘은 것도 4건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평가는 5월 보도 시점까지 법정 고시 없이 '시범 운영' 상태였습니다. 기준이 법으로 정해지지 않은 심사에 수조 원짜리 사업이 걸려 있는 셈입니다.
3. 9MW 데이터센터
문턱이 10MW라면, 그 바로 아래로 지으면 됩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자신문은 9월 28일 업계를 인용해 수도권에서 추진 중인 10MW 미만 데이터센터 사업이 30건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습니다. 대치동, 마곡동, 양평동 등에서 대다수가 9MW 안팎이라고 했습니다. 과천 주암지구에는 다섯 개 블록에 각각 10MW 미만 데이터센터가 계획돼 있는데, 그중 세 블록은 같은 리츠가 맡아 합치면 약 30MW, 다른 두 블록은 같은 개발사가 맡아 합치면 약 20MW라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법을 어긴 것은 아닙니다. 시행령은 '10MW 미만을 쓰다가 증설해서 10MW 이상이 되는 경우'를 평가 대상에 넣었지만, 처음부터 따로 지은 여러 건을 합쳐 보는 규정은 없습니다. 다만 전력망 입장에서는 9MW 다섯 개나 45MW 하나나 같은 부담입니다. 심사를 만든 이유가 비켜 가는 셈입니다.
9MW에 GPU가 몇 장 들어갈까요? 아래 계산기로 해 보면, 엔비디아 DGX B200 서버에 냉각 등을 포함한 배수(PUE)를 1.4로 잡을 때 GPU 약 4천 장이 10MW 아래에 들어갑니다. 대형 언어 모델을 학습하기에는 작고, 추론 서비스를 돌리기에는 충분한 규모입니다. 수도권의 작은 데이터센터가 주로 추론용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계산기에서 '국가 AI 컴퓨팅센터 1단계 1.5만 장'을 눌러 보면 약 37MW가 나옵니다. 지자체가 밝힌 이 센터의 1단계 전력 규모(40MW)와 비슷합니다.
4. 지방으로 — AI 데이터센터 특별법
정부의 답은 '지방으로'입니다. 5월 7일 국회를 통과해 6월 9일 공포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법률 제21759호)이 그 도구입니다. 시행은 공포 9개월 뒤인 2027년 3월 10일입니다.
조항
내용
남은 질문
제19조
비수도권에 AI 데이터센터를 새로 짓거나 늘리거나 전환하면 전력계통영향평가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본다
면제되는 전력 용량은 대통령령으로 정함(시행령 작성 중)
제20조
재생에너지 발전·저장 사업자가 전력 시장을 거치지 않고 AI 데이터센터에 직접 전기를 팔 수 있음
LNG 직접 구매(PPA)는 최종안에서 빠짐
제18조
인허가 일괄 처리
지자체·한전 협의 기간
제24~26조
비수도권 AI 데이터센터 특구, 송전선·변전소 같은 기반 시설을 국가·지자체가 지원
특구 지정 기준과 예산
이 방향의 첫 사례가 전남 해남 솔라시도에 짓는 국가 AI 컴퓨팅센터입니다. 과기정통부는 8월 3일 착공식을 열고 2028년까지 첨단 AI 반도체 1.5만 장을 갖추겠다고 밝혔습니다. 삼성SDS·네이버클라우드·카카오·KT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운영하고, 한전 전기 사용 신청도 마쳤습니다. 지자체 발표로는 사업비 약 2조4천억 원, 2028년 40MW에서 2030년 80MW(GPU 5만 장)로 키우는 계획입니다.
다만 지방 이전에는 업계가 꼽는 걸림돌이 있습니다. 추론 서비스의 지연 시간, 운영 인력, 그리고 지방 데이터센터에 들어올 임차인을 찾는 문제입니다. 법이 전기를 풀어 줘도 고객과 사람이 따라오지 않으면 데이터센터는 비어 있게 됩니다.
텍사스는 미국 데이터센터 붐의 중심입니다. 텍사스 전력망 운영 기관(ERCOT)의 대규모 부하 접속 대기열에는 8월 기준 1,800여 건, 474GW가 줄 서 있고 그 약 90%가 데이터센터입니다. 텍사스 전체 최대 전력의 몇 배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그레그 애벗 주지사는 8월 3일 이 대기열의 데이터센터를 전수 감사하라고 지시했고, 9월 21일에는 주 환경품질위원회(TCEQ)에 "ERCOT 감사가 끝날 때까지 데이터센터가 신청한 모든 허가를 중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지시문에는 "어떤 주 기관도 데이터센터 개발과 관련된 규제 승인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들어 있습니다. 법으로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감사가 끝날 때까지 사실상 새 허가가 멈췄습니다.
뉴욕주는 더 직접적입니다. 캐시 호컬 주지사는 7월 14일 행정명령으로 대형 데이터센터에 대한 신규 허가를 최대 1년 보류했습니다. 주 정부는 이를 "미국 첫 주 단위 대형 데이터센터 모라토리엄"이라고 불렀습니다.
배경에는 여론이 있습니다. NBC 뉴스가 8월 20일~9월 1일 실시한 조사에서 69%가 자기 지역에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것에 반대했고, 45%는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민주당 지지층은 81%, 공화당 지지층도 57%가 반대했습니다.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을 추적하는 Data Center Watch는 2026년 1분기에만 최소 75건, 약 1,300억 달러 규모의 사업이 지역 반대로 막히거나 늦어졌다고 집계했습니다. 2분기에도 45건, 680억 달러였습니다.
가장 자주 나오는 쟁점은 전기요금과 물입니다. 텍사스 주지사도 데이터센터가 전력 기반 시설 비용을 전부 내고 가정용 전기요금을 낮추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과천 주암지구 데이터센터를 두고 주민 반대 집회가 열렸습니다. 아직 미국만큼 크지는 않지만 같은 방향입니다.
6. 기업에 주는 의미
전력 병목은 데이터센터를 짓는 회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AI를 쓰는 모든 회사의 비용과 일정에 들어옵니다.
① 용량은 미리국내 클라우드·코로케이션의 GPU 용량은 전기가 정합니다. 대규모 추론 서비스를 계획한다면 GPU 확보 일정이 아니라 데이터센터 전력 확보 일정을 물어봐야 합니다.
② 학습은 멀리, 추론은 가까이지연 시간이 덜 중요한 학습·배치 작업은 지방이나 해외 리전으로, 응답 속도가 중요한 추론만 수도권에 두는 나눔이 현실적인 선택이 됩니다.
③ 같은 전기로 더 많이전력이 정해져 있으면 와트당 처리량이 곧 경쟁력입니다. 작은 모델, 양자화, 추론 전용 칩은 전기요금보다 전력 한도 때문에 중요해집니다.
④ 날짜를 지켜보기2027년 3월 AI 데이터센터 특별법 시행과 시행령의 면제 용량, 2027년 상반기 HVDC 1단계,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확정이 국내 AI 용량의 다음 단계를 정합니다.
GPU 선택에도 전력이 들어옵니다. 같은 랙 전력 안에서 어떤 GPU가 더 많은 일을 하는지는 GPU 고르는 법에서 다뤘습니다.
맺으며: 병목은 옮겨 갈 뿐 사라지지 않는다
2023년의 병목은 칩이었고, 2026년의 병목은 전기입니다. 칩은 공장을 늘리면 1~2년 안에 따라오지만, 송전선은 4~8년이 걸리고 주민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전기는 칩보다 오래가는 병목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은 지금 두 갈래 길에 서 있습니다. 하나는 9MW짜리를 수도권에 쪼개 짓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법을 타고 전기가 있는 지방으로 가는 길입니다. 어느 쪽이든 2027년이 분기점입니다. 3월에 특별법이 시행되고, 상반기에 동해안 송전선이 열립니다.
AI 전략을 세우는 회사라면, 이제 모델과 GPU 다음으로 이 질문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쓸 연산은 어느 동네의, 어느 변전소 전기로 돌아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