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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M은 도약하지 못한다: 아인슈타인의 낙서 한 장이 2026년 AI에게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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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M은 도약하지 못한다: 아인슈타인의 낙서 한 장이 2026년 AI에게 던진 질문

구글 딥마인드 톰 자하비의 ICML 2026 포지션 페이퍼 「Position: LLMs can't jump」를 정면으로 뜯어본다. 아인슈타인이 친구에게 그려 보낸 낙서 한 장에서 출발해, 왜 오늘의 AI가 정리를 증명하면서도 전제를 만들지 못하는지, 벌컨 행성과 엘리베이터 사고실험과 2026년의 월드 모델 경쟁까지 — 5개의 인터랙티브와 함께 끝까지 따라간다.

코어닷투데이2026-08-0875

들어가며: 떨어지는 사람

LLM은 도약하지 못한다크게 보기

1907년 어느 날, 스위스 베른의 특허국 3급 심사관이 책상에 앉아 있다가 문득 이런 장면을 떠올렸다.

지붕에서 누군가 떨어지고 있다. 그 사람은 자기 몸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놓아도 열쇠는 바닥으로 가지 않고 눈앞에 그대로 떠 있다. 사람과 열쇠가 정확히 같은 가속도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심사관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자신이 정지해 있다고 말할 권리가 있다.

훗날 그는 이것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생각"이라고 불렀다. 이 장면 하나에서 등가원리가 나왔고, 등가원리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이 나왔고,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블랙홀과 빅뱅과 GPS 보정이 나왔다.

2026년, 구글 딥마인드의 연구자 톰 자하비(Tom Zahavy)는 이 장면을 붙들고 아주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 ICML 2026에 실린 포지션 페이퍼의 제목이 그 질문이다.

LLM은 도약하지 못한다 (LLMs can't jump).

이 글은 그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왜 이런 개념이 나왔는지부터 2026년 현재 이 주장이 어디에 서 있는지까지 따라가는 특집이다.

⚠️
먼저 오해부터 걷어내자. 이 논문은 "AI는 창의적이지 않다"거나 "LLM은 막다른 길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저자 본인이 논문이 화제가 된 뒤 직접 밝혔듯, 이것은 딥마인드의 공식 입장도 아니고 AI for Science에 찬물을 끼얹는 글도 아니다. 이 논문이 묻는 것은 훨씬 좁고 훨씬 날카롭다 — 특정 종류의 과학적 도약에는 정확히 무엇이 더 필요한가.

제1장. 아인슈타인이 친구에게 그려 보낸 낙서

경험에서 공리로, 그리고 다시 경험으로 — 아인슈타인의 E·J·A·S 순환크게 보기

이야기는 편지 한 통에서 시작한다.

아인슈타인에게는 모리스 솔로빈(Maurice Solovine)이라는 평생의 친구가 있었다. 베른 시절, 아인슈타인과 솔로빈과 콘라트 하비히트 세 사람은 스스로를 농담 삼아 "올림피아 아카데미"라고 부르며 흄과 마흐와 푸앵카레를 읽었다. 아인슈타인의 사고방식이 만들어진 곳이 사실상 이 세 명짜리 독서 모임이었다.

세월이 흘러, 아인슈타인은 솔로빈에게 보낸 편지에 자기가 생각하는 과학적 발견의 구조를 그림으로 그려 넣었다. 논문이 첫 페이지에 재현해 놓은 그 낙서는 이렇게 생겼다.

E · 감각 경험
관측 · 실험 · 사실
J · 도약
논리적 연결이 없는 구간
A · 공리
새로 제안된 기본 가정
E · 다시 경험으로
예측을 세계와 대조한다
S · 명제
공리에서 연역된 예측들

핵심은 화살표의 성격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 A → S는 논리적이다. 공리가 주어지면 명제는 따라 나온다. 계산이고 증명이다.
  • S → E는 경험적이다. 예측을 관측과 맞춰 본다. 검증이다.
  • 그런데 E → A, 즉 J는 논리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그림에서 이 부분만 유독 곡선으로 튀어 오르는 점프로 그려져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 구간을 "직관적(intuitive)"이라고 불렀다. 경험에서 공리로 가는 길에는 규칙이 없다. 데이터가 공리를 밀어 올려 주지도 않는다. 누군가 뛰어야 한다.

논문의 관심사는 오직 이 한 구간, J다.

💡
재미있는 디테일 하나. 논문 1페이지의 그림은 아인슈타인의 원본 낙서를 생성형 AI로 복원한 것인데, AI가 공리 부분의 기호들을 멋대로 지어내 알아볼 수 없는 글자로 만들어 버렸다. 저자는 이 사고를 각주로 남겨 두었다 — 도약을 자동화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림 자신이 증명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 글의 표지 이미지 오른쪽 위 기호들도 같은 현상이다. 일부러 살려 두었다.)

제2장. 퍼스의 세 가지 추론 — 연역, 귀납, 그리고 가추

연역·귀납·가추크게 보기

도약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려면 용어가 필요하다. 논문은 미국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의 분류를 가져온다.

퍼스의 발상은 놀랄 만큼 프로그래머 친화적이다. 그는 추론을 세 조각의 순열로 정의했다.

조각프로그래밍으로 치면
규칙(Rule)함수 정의
사례(Case)입력값
결과(Result)반환값

셋 중 무엇을 모르는가에 따라 추론의 종류가 갈린다.

구분연역 Deduction귀납 Induction가추 Abduction
순열규칙 + 사례 → 결과사례 + 결과 → 규칙규칙 + 결과 → 사례
하는 일규칙을 적용해 결과를 계산반복되는 패턴에서 규칙을 뽑음놀라운 결과를 설명할 원인을 발명
참을 보장하나보장한다통계적으로만전혀 보장 못 함
코드로 치면코드를 실행해 출력 확인유닛 테스트를 만족하는 함수 생성버그 리포트를 보고 원인을 지어냄
2026년 AI빠르게 정복 중이미 최강여기가 문제

퍼스의 원본 예시는 콩주머니였다.

🎩
연역 — 확실하지만 새롭지 않다
"이 주머니의 콩은 전부 흰색이다(규칙). 이 콩들은 이 주머니에서 꺼냈다(사례). 따라서 이 콩들은 흰색이다(결과)." 반박할 수 없다. 그리고 아무것도 새로 알려 주지 않는다.
🦢
귀납 — 데이터가 있어야만 작동한다
"이 콩들은 이 주머니에서 꺼냈다(사례). 이 콩들은 흰색이다(결과). 따라서 이 주머니의 콩은 전부 흰색일 것이다(규칙)." 표본이 클수록 강해진다. 표본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
가추 — 틀릴 수 있기에 새롭다
"이 주머니의 콩은 전부 흰색이다(규칙). 그런데 여기 흰 콩 한 줌이 있다(결과). 아마 이 콩들도 그 주머니에서 나왔을 것이다(사례)." 틀릴 수 있다. 다른 주머니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설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것뿐이다.

직접 순열을 바꿔 가며 감각을 잡아 보자.

논문의 주장은 여기서 아주 선명해진다.

🎯
생성형 AI는 귀납을 정복했고(통계적 패턴 압축), 연역도 빠르게 정복하고 있다(형식 증명). 만약 과학적 발견이 이 둘의 합이라면, 충분한 연산만 있으면 LLM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명할 수 있어야 한다. 논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세 번째 것 — 가추 — 을 위한 메커니즘이 구조적으로 없다는 것이다.

제3장. 왜 하필 일반상대성이론인가

논문이 아인슈타인을 고른 것은 위인전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나온 발견"의 거의 유일한 교과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 성질이 왜 결정적인지 이해하려면 19세기 물리학이 어떤 상태였는지부터 봐야 한다.

역학이 전부이던 시대

19세기 물리학에서 역학은 모든 것의 기초였다. 편미분방정식이라는 렌즈 하나로 소리의 전파, 유체역학, 질점의 운동, 심지어 기체 운동론까지 — 점성과 열전도와 확산을 하나로 묶어 설명할 수 있었다. 빛조차 역학의 언어로 이해되었다. 빛은 에테르라는 매질을 타고 가는 파동이었다.

그런데 균열이 생겼다.

1860s~
맥스웰 방정식의 등장
패러데이, 헤르츠, 마흐의 기여를 거쳐 전자기 법칙이 하나로 통합된다. 뉴턴 역학은 이 장(field)을 설명하지 못했다. 물리학은 질점과 원격 작용연속적인 장으로 쪼개졌다.
1887
마이컬슨-몰리 실험
지구가 에테르 속을 움직이는 속도를 재려 했으나 실패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빛의 속도가 지구의 공전과 무관하게 일정했다는 사실. 에테르를 살리려는 시도(에테르 바람 등)는 갈수록 인위적이 되어 갔다.
1905
특수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은 두 개의 공준만 세웠다. 상대성 원리(물리 법칙은 모든 관성계에서 동일)와 광속 불변. 여기서 로렌츠 변환이 따라 나온다.

여기서 이미 아인슈타인 특유의 움직임이 보인다. 로렌츠 변환의 시간 항

t=tvc2x1v2c2t' = \frac{t - \frac{v}{c^2}x}{\sqrt{1 - \frac{v^2}{c^2}}}

은 아인슈타인이 처음 쓴 것이 아니다. 푸앵카레를 비롯한 선배들이 이미 갖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tt'"가상의 시간(fictitious time)" — 계산을 편하게 하려는 수학적 인공물 — 로 취급했다.

아인슈타인은 달랐다. 그는 tt'"그냥 시간, 시간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시간 지연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동기화된 두 시계를 떼어 놓고 하나를 움직이면, 다시 만났을 때 두 시계는 다른 시각을 가리킨다.

🔑
같은 수식, 다른 해석. 이것이 논문이 말하는 도약의 축소판이다. 새 데이터가 있어서가 아니다. 새 계산을 해서도 아니다. 이미 있던 기호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를 바꾼 것이다.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시간이라는 뉴턴의 패러다임은 이 해석 하나로 무너졌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만족하지 못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관성계에만 적용된다. 가속하지 않고 등속으로 움직이는 관측자들. '특수'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바로 이 제약이다.

마흐의 영향을 받은 아인슈타인은 관성계가 특권적 지위를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모든 기준계에 적용되는 일반화를 찾아 나섰다. 여기서 7년의 오디세이가 시작된다.


제4장. 손실이 이미 0인 곳에서는 경사가 없다

있지도 않은 행성에 이름부터 붙였다 — 벌컨 가설크게 보기

이제 논문의 첫 번째 핵심 반론이다. AI 커뮤니티에는 오래된 가설이 하나 있다.

창의성은 압축이다.

위르겐 슈미트후버(Jürgen Schmidhuber)가 2008년에 정식화한 "압축 진보에 이끌린다(Driven by Compression Progress)" 이론이다. 과학적 발견이란 관측을 간결하게 설명하는 짧은 프로그램을 찾는 일이고, 발견의 '기쁨'이란 복잡한 관측이 더 나은 예측을 통해 주관적으로 단순해지는 속도라는 것이다.

이 관점은 데이터가 풍부한 환경에서 실제로 성과를 냈다.

압축 = 발견이 실제로 통한 사례들
희소 최적화 PDE 발견
Schaeffer, 2017
데이터에서 편미분방정식을 직접 뽑아냈다
AI Physicist
Wu & Tegmark, 2019
시뮬레이션 궤적에서 보존 법칙을 재발견했다

훌륭한 결과다. 그런데 논문은 묻는다. 1907년에도 이게 통했을까?

뉴턴 역학은 위기가 아니었다

여기가 이 논문에서 가장 강력한 대목이다. 우리는 흔히 아인슈타인이 "뉴턴 역학이 무너지고 있을 때" 등장했다고 상상한다. 사실은 정반대였다.

뉴턴은 갈릴레이의 발견 — 모든 물체는 질량과 무관하게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 — 을 진자 실험으로 확인했다. 중력에 의한 운동을 쓰면

Fgrav=mid2xdt2=mggF_{grav} = m_i \frac{d^2x}{dt^2} = m_g\, g

이고, 관성질량 mim_i와 중력질량 mgm_g가 같다면 가속도 d2xdt2=g\frac{d^2x}{dt^2} = g는 질량과 무관한 상수가 된다. 뉴턴은 mi/mg=1m_i/m_g = 1을 오차 10310^{-3} 수준에서 검증했다. 그리고 이 정밀도는 세기를 거치며 계속 좁혀졌다.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같다는 검증의 정밀도 (지수의 절댓값, 10⁻⁹를 만점으로)
뉴턴 (진자 실험)
10⁻³
라플라스
10⁻⁷
외트뵈시
10⁻⁹

알려진 이상치는 딱 하나였다. 수성 궤도의 미세한 이동 — 르베리에가 1845년에 보고한 근일점 이동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뉴턴 법칙을 너무 신뢰한 나머지 이론을 의심하지 않았다. 대신 태양 근처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행성이 숨어 있어서 궤도를 흔든다고 가정했다. 그 행성에는 이름까지 붙었다. 벌컨(Vulcan).

🪐
이것이 논문의 결정적 한 방이다. 압축 최적화 엔진으로 작동하는 AI는 1907년에 뉴턴의 손실 함수가 거의 0이라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예측과 관측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으면, 시공간의 근본적 재구성으로 시스템을 밀어붙일 경사(gradient)가 없다. 그리고 유일한 이상치조차 파라미터 하나로 지워졌다.

직접 돌려 보자. 슬라이더를 어떻게 움직여야 "시공간을 다시 쓰는" 선택이 이기는지 확인해 보라.

최소기술길이라는 반론, 그리고 그에 대한 반박

여기서 반론이 가능하다. "아인슈타인이 데이터를 압축한 건 아니지만, 가설 공간을 압축한 것 아닌가? 관성과 중력이라는 두 법칙을 하나의 틀로 통합했으니, 최소기술길이(MDL) 기준으로는 단순해진 것 아닌가?"

논문의 답은 이렇다. 논리적 단순함은 대개 사후적 성질이다.

완성된 일반상대성이론은 우아하다. 그러나 거기 도달하는 길은 복잡함과 폐기된 텐서와 틀린 방정식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압축을 목적함수로 삼는 AI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도입해 먼저 복잡해진 다음 나중에 단순해지는 경로보다, 뉴턴 중력에 벌컨이라는 파라미터를 하나 붙이는 패치를 선호할 것이다.

거기에 두 가지가 더 붙는다.

  • 현대 트랜스포머 모델은 기본적인 산술 규칙조차 역설계하는 데 애를 먹는다(Gambardella et al. 2024; Yang et al. 2024). 방대한 데이터셋 없이 새 물리학을 발명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 데이터가 있어도 문제는 남는다. Vafa et al.(ICML 2025)은 올바른 귀납 편향이 없으면 파운데이션 모델이 데이터는 만족시키되 근본 구조는 포착하지 못하는 결함 있는 세계 모델로 수렴한다는 것을 보였다.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한 증거들 — 에딩턴의 1919년 관측부터 상대론적 GPS 보정까지 — 은 이론이 만들어진 뒤에 도착했다. 아인슈타인은 잡음 섞인 데이터셋을 압축해 회귀 곡선을 맞춘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아직 드러내지 않은 물리적 구조를 밝히기 위해 논리적 틀을 구축한 것이다.

로저 펜로즈의 문장이 이 장 전체를 요약한다.

"물리학자들이 그저 패턴을 알아차리는 것뿐이라는 견해를 심심찮게 듣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런 견해는 대단히 과녁을 빗나갔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처음 제시되었을 때, 관측적 근거에서 그 이론이 필요할 이유는 정말이지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적 대상의 행동에서 '패턴을 알아차린' 것이 아니다. 그는 세계의 작동 속에 이미 숨어 있던 심오한 수학적 구조를 밝혀내고 있었다."

로저 펜로즈


제5장. 연역은 정말 잘한다 — 그런데 전제는 누가 주는가

1915년 11월, 4주 연속 논문을 제출한 남자크게 보기

논문은 연역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관대하다. 아니, 관대하다기보다 솔직하다.

수학적 발견의 지형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정말로 바뀌었다. 의존형 이론 기반의 증명 보조기 Lean은 방대한 라이브러리(mathlib)를 갖춘 견고한 플랫폼으로 성숙했다. 그 위에서:

2024
AlphaProof, IMO 은메달급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문제에서 은메달 수준의 성능. 강화학습 기반 형식 수학 추론이 Nature에 실렸다.
2025
금메달급으로 올라서다
Gemini, DeepSeekMathV2, GPT-5 계열이 금메달 수준에 도달했다.
2025
Aristotle — 미해결 연구 문제로
올림피아드를 넘어, 열린 연구 질문에 대한 검증된 풀이를 내놓기 시작했다.

논문은 여기서 대담한 양보를 한다.

"1915년에 아인슈타인이 갖고 있던 물리적 가정들로 초기화된 현대 LLM이라면, 일반상대성이론을 유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장방정식이 세워진 뒤 수성 근일점 세차를 계산하는 것은 검증 가능한 논리 작업(A → S)이다. 나아가 현재 시스템은 잘못된 제약을 골라내는 일 — 공리의 부분집합을 체계적으로 최적화하는 일 — 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전제를 고르는 것은 연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의 7년 — 세 단계

논문은 과학사가 존 노턴(John Norton)의 재구성을 따라 이 여정을 세 단계로 나눈다.

1907–1912 · 착상
요하네스 슈타르크의 청탁으로 상대성이론 리뷰를 쓰다가, 아인슈타인은 등속 운동을 넘어 가속 운동까지 상대성 원리를 일반화하고 싶어졌다. 여기서 '가장 행복한 생각' — 가속이 중력을 흉내 낸다 — 이 나온다. 1912년의 정적 중력장 이론에서 그는 대담하게 선언한다. 중력은 빛을 휘게 하고, 시계를 늦추며, 광속조차 중력 퍼텐셜에 따라 변한다.
1912–1913 · 통합
물리적 직관을 엄밀한 이론으로 옮기려던 아인슈타인은 곡률의 수학이 열쇠임을 깨닫는다. 취리히의 친구이자 수학자 마르셀 그로스만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 협업이 유명한 '취리히 노트북'과 1913년의 Entwurf(초안) 논문으로 이어진다.
1913–1915 · 수학적 검증
초안을 고치고 다듬는 고통스러운 2년. 근본적으로 어긋난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점점 더 무리하는 시간이었다.

이 시기에 아인슈타인이 새 이론에 요구한 조건들은 다음과 같았다.

#아인슈타인이 세운 요건내용
1일반화된 상대성 원리특수상대성을 가속계까지 확장
2등가원리중력과 가속의 국소적 구별 불가능성
3측지선 원리자유낙하 물체는 시공간의 '가장 곧은 경로'를 간다
4"중력도 중력한다"중력장 자체의 에너지가 다시 중력원이 된다 → 방정식은 비선형이어야 한다
5응력-에너지 텐서라우에의 텐서 TijT_{ij}가 중력의 원천
6일반화된 푸아송 방정식2ϕ=4πκρ\nabla^2\phi = 4\pi\kappa\rho의 텐서판
7뉴턴 극한약한 중력장·저속·정적 조건에서 뉴턴 법칙으로 환원돼야 한다

치명적 실수

그리고 여기서 과학사에서 가장 뼈아픈 장면 중 하나가 나온다.

수학 파트에서 그로스만은 정답에 소름 끼치게 가까이 갔다. 그는 시공간 곡률의 올바른 척도로 리만 곡률 텐서를 지목했다. 심지어 그것을 축약해 현대의 아인슈타인 텐서와 거의 동일한 양 GikG_{ik}까지 유도해 냈다. 현대의 눈으로 보면 결승선이 코앞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멈췄다.

새 방정식은 7번 요건 — 뉴턴 극한 을 통과해야 했다. 그로스만은 자신들의 후보 텐서가 뉴턴 표현으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이것이 오답이었다. 오류는 기하학에 있지 않았다. 정적 장에 대한 가정 자체에 있었다. 두 사람은 한참 뒤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다.

길이 막혔다고 믿은 아인슈타인은 그 방향을 포기했다. 그리고 순전히 물리적 단서 — 보존 법칙, 정적 장에 대한 자신의 이전 작업 — 만으로 장방정식을 짜맞추기 시작했다. 결과는 엉망이었다. 하나의 단순한 뉴턴 방정식 대신, 기하학적 의미가 불분명한 열 개의 복잡한 비선형 방정식이 나왔다. 이 우회로가 이론을 2년 더 지연시켰다.

🧩
여기서 논문의 논지가 한 번 더 조여진다. 1913년의 유도가 실패한 것은 논리가 틀려서가 아니었다. 공리가 틀렸기 때문이었다. 연역 엔진이 아무리 강력해도, 잘못된 전제 위에서는 잘못된 결론까지 완벽하게 유도해 낼 뿐이다.

1915년 11월, 네 번의 목요일

1915년 여름, 증거들이 옛 이론에 불리하게 쌓였다. 수성의 궤도를 설명하지 못했고, 회전 운동을 다루지 못했으며, 1914년 말에 시도한 유일성 증명마저 결함이 있었다.

절박해진 아인슈타인은 Entwurf의 '적응된 좌표계'를 버리고 1912년의 직관으로 돌아갔다. 이론은 모든 좌표계에서 작동해야 한다.

그리고 아인슈타인 생애에서 가장 격렬한 한 달이 시작된다. 다비트 힐베르트가 같은 문제를 풀려고 경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극받아, 그는 4주 연속으로 매주 프로이센 학술원에 새 논문을 제출했다.

1915년 11월 · 프로이센 학술원 제출 기록
11월 4일 — 해법을 제안한다. 오류가 남아 있다.
11월 11일 — 이론을 다듬는다. 여전히 난점이 있다.
11월 18일진화 중인 방정식이 수성의 변칙적 궤도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을 발표한다.
11월 25일 — 네 번째 통신. 일반상대성이론의 완성된 장방정식이 세상에 나온다.

Rik12gikR=κTikR_{ik} - \frac{1}{2}g_{ik}R = -\kappa T_{ik}

왼쪽은 계량 텐서로 결정되는 시공간의 기하학(곡률)이고, 오른쪽은 물질과 에너지다. 물질이 시공간에게 어떻게 휘라고 말하고, 시공간이 물질에게 어떻게 움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는 문제 — 의도

논문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얹는다. 연역 엔진에는 의도가 없다.

형식 정리 증명에서는 목표가 명확하다. 특정한 미해결 추측을 증명하는 것.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정리를 증명하려던 것이 아니라 실재의 예측 모형을 구축하려던 것이었다. 수성의 근일점이라는 검증 표적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당시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도 않았다. 결정적 검증 — 에딩턴이 태양 근처를 지나는 별빛의 휘어짐을 측정한 것 — 은 이론이 세워지고 몇 년 뒤에야 도착했다.

연역(A → S)은 엄격히 하류 공정이다. 이론의 논리적 귀결을 펼쳐 줄 뿐, 공리를 생성할 상류 역량도, 그것을 검증할 외부 접지도 갖고 있지 않다.


제6장. 도약의 정체 — 조작적 가추

낙하하는 엘리베이터와 가속하는 우주선 — 안에 있는 사람은 구별할 수 없다크게 보기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등가원리를 만들어냈나.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은 어떻게 새 공리를 빚어내는가.

논문의 답은 조작적 가추(Manipulative Abduction)다. 인지과학자 로렌초 마냐니(Lorenzo Magnani)가 정식화한 개념으로, 체화된 시뮬레이션(embodied simulation) — 정신적 모형과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며 '행함으로써 생각하기'로 가설을 만들어내는 과정 — 에 기반한다. 순수한 연역으로는 닿을 수 없는 지식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과 중력을 관측을 모아서 잇지 않았다. 밀폐된 공간 안에 있는 관측자의 물리적 느낌을 시뮬레이션해서 이었다.

두 단계로 쪼개기

논문은 사고실험을 두 단계로 분해한다.

STEP 1 시뮬레이션으로 관측을 상상한다
상상 깊은 우주에서 일정하게 가속되고 있는 상자. 그 안에 물리학자가 있다.
개입 물체를 놓아 본다. 바닥이 물체를 향해 달려와 부딪힌다.
감각 물리학자에게는 물체들이 구성 성분과 무관하게 동일한 가속도로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STEP 2 그 관측을 설명할 원인을 가추한다
문제 뉴턴의 틀은 이 상상된 관측에 만족스러운 설명을 주지 못한다.
물리적 사전 가속의 시뮬레이션된 감각이 기억 속 중력의 감각과 구별되지 않는다.
가추 따라서 둘은 같은 현상이다. 상자 안의 장은 가짜 관성 효과가 아니라, 정의상 진짜 중력장이다.

여기서 두 번째 단계는 오늘날의 벤치마크가 이미 측정하고 있다. ARC-AGI에서 모델은 두세 쌍에서 다섯 쌍 정도의 희소한 격자 예시로부터 숨은 규칙을 추론해야 한다. 데이터가 통계적 귀납에는 너무 적고, 연역에 필요한 명시적 지시도 없다. 그래서 풀이자는 가장 그럴듯한 설명으로 가추적 도약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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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ARC는 절반만 잡는다. 논문의 지적은 정확하다. ARC는 논리적 도약은 포착하지만 조작적 요소 — 아인슈타인의 통찰을 이끈 물리적 감각과 체화된 시뮬레이션 — 은 놓친다.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 — 그리고 그 한계

첫 번째 단계, 즉 진전을 위해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현대 AI의 언어로는 테스트 타임 강화학습으로 볼 수 있다. 문제의 새 변형을 발명하고 그것을 푸는 법을 배우는 전략인데, 실제로 성과가 있었다. 체스의 펜로즈 포지션을 푸는 데 성공했고(Zahavy et al. 2024 — 저자 자신의 이전 연구다), IMO 은메달 수준에도 도달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남는다.

체스·수학에서의 변형
고정된 규칙(공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기호의 순열이다
평가 기준이 이미 존재한다
아인슈타인의 변형
수학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물리적 직관에 기반해 새 공리를 발명해야 했다
기호의 순열이 아니라 지각 경험의 조작이었다
평가 기준조차 함께 만들어야 했다

언어의 침묵

아인슈타인이 마주한 것은 논문의 표현으로 "언어 공간의 침묵"이었다. 선행하는 기호적 표상이 없었다는 뜻이다. 아인슈타인 자신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쓰이거나 말해지는 단어나 언어는 내 사고 메커니즘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그 공백을 메운 것이 물리적 사전(physical prior) — 중력이라는 감각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그 감각을 이용해 가능한 공리들의 탐색 공간을 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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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논문은 이것이 물리학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덧붙인다. 역사적 과학 혁명은 종종 강력한 전(前)기호적 직관에 이끌렸다. 케플러가 태양의 중심성을 믿게 만든 신플라톤주의적 신념이 그랬고, 마르크스가 자본을 모형화하도록 밀어붙인 '객관적 분노'가 그랬다. 발명을 자동화하려면, 단지 세계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을 넘어 세계가 어떻게 구조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그 직관을 검증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사용하는 시스템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제7장. 중국어 방에서 세계 모델로

기호를 밀어 넣는 방과, 세계에 손을 대는 시뮬레이션크게 보기

이제 논문은 LLM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가장 날카로운 비유를 꺼낸다.

LLM은 귀납에는 탁월하지만, 기호를 물리적 실재에 접지시키는 감각적 행위성(sensory agency)이 없다. 그것들은 고차원의 "중국어 방"으로 작동한다. 스티븐 하나드(Stevan Harnad)가 1990년에 정식화한 기호 접지 문제(symbol grounding problem)가 여기서 소환된다. 물리학의 언어를 조작하되, 그 언어에 의미를 부여하는 물리적 지시체에는 접근하지 못한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공리를 떨어지는 몸의 물리적 경험에 접지시킬 수 있었다. LLM은 기존 텍스트의 논리적 연역에 갇혀 있다.

이 진단은 최근 AI 비판의 흐름과 정확히 맞물린다.

  • 얀 르쿤(Yann LeCun) — 자율적 기계 지능에는 내부 세계 모델이 필요하다.
  • 페이페이 리(Fei-Fei Li) — "단어에서 세계로": 공간 지능이 AI의 다음 프런티어다.

지각하거나 상호작용할 능력 없이, LLM은 걸음마쟁이에게도 쉬운 공간 추론 과제에서 헤맨다.

그런데 "세계 모델"이면 다 되는 게 아니다

여기가 이 논문에서 가장 실무적으로 중요한 구분이다. 논문은 시각적 예측상호작용적 시뮬레이션을 날카롭게 갈라놓는다.

구분수동적 비디오 예측행동 제어형 생성 환경
대표 사례Veo 계열Genie 계열
겉보기"직관적 물리"를 갖춘 것처럼 보인다게임처럼 조작 가능한 세계
실제로는떨어지는 사과를 정확히 그리는 것은 중력을 모형화해서가 아니라, '떨어짐'이 학습 분포의 지배적 연속이기 때문행동 공간을 학습했기에 에이전트의 개입이 가능하다
사고실험 가능?엘리베이터 영상을 보는 것까지엘리베이터의 케이블을 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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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전체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문장. "아인슈타인의 엘리베이터 사고실험을 복제하려면, AI는 엘리베이터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반사실적 개입(counterfactual intervention)의 역량을 가져야 한다. 본질적으로 시뮬레이션의 통제권을 넘겨받아 개념적으로 케이블을 끊을 수 있어야 한다." — 주디아 펄의 개입 연산이 여기서 물리 시뮬레이션과 만난다.

그리고 논문은 한 걸음 더 나간다. 그런 상호작용 환경의 미래 버전픽셀이 아니라 일관된 잠재 물리 다양체 위에서 작동하는 환경 — 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가추적 도약을 신비한 통찰에서 재현 가능한 알고리즘 과정으로 바꿀 합성 실험실이 생긴다.

아래에서 각 단계가 사고실험의 어느 요건까지 충족하는지 직접 확인해 보자.


제8장. 2026년의 지형도 —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나

데이터의 바다, 텅 빈 협곡, 공리의 기둥, 그리고 증명의 격자크게 보기

2026년 현재, AI for Science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런데 논문은 오늘날의 최전선 시스템들이 오히려 가추 격차를 증명한다고 본다.

AI Scientist
Sakana AI, 2024
과학의 루프를 기계화했다
아이디어 생성부터 실험, 논문 작성까지 자동화. 그러나 논문의 진단으로는 기존 기호 개념을 재조합해 지표를 최적화하는 정교한 중국어 방 연산이다.
AlphaEvolve
Google DeepMind, 2025
진화적 최적화의 힘
고정된 틀 안에서 알고리즘과 수학적 구성을 탁월하게 개선한다. 그러나 경사에 의존한다. 아인슈타인에게는 뉴턴 역학이 주는 오차 신호가 없었다.
Kosmos
Edison Scientific, 2025~
자율 발견 에이전트
수천 편의 논문을 읽고, 수만 줄의 코드를 분석하고, 사람이 몇 달 걸릴 통찰을 낸다. 다중 에이전트 구조와 구조화된 세계 모델이 특징. 논문의 프레임으로 보면 여전히 A와 S 구간의 시스템이다.
Genie 3 / Project Genie
Google DeepMind, 2025~2026
행동 가능한 세계가 대중에게
720p·24fps의 실시간 상호작용 환경을 텍스트로 생성한다. 2026년 1월 29일 AI Ultra 구독자에게 Project Genie가 열렸다. 논문이 전제조건으로 지목한 성질이 이미 제품이 되어 있다.

각 시스템이 E·J·A·S 순환의 어디를 덮는지 직접 켜 보자. 거의 전부가 A와 S에 몰려 있고, J 구간은 비어 있다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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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이 놓인 자리. ICML의 포지션(Position) 트랙은 실험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가 아니라 연구 공동체가 무엇을 논쟁해야 하는지를 제안하는 자리다. 이 논문에는 새 모델도, 새 벤치마크도, 새 실험도 없다. 대신 아주 구체적인 병목의 좌표가 있다 — 시뮬레이션을 형식 공리로 번역하는 구간.

제9장. 비판적으로 읽기 — 이 논문에 동의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들

좋은 포지션 페이퍼는 반박당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논문도 예외가 아니고, 저자 본인이 가장 먼저 그렇게 말했다.

① 제목이 주장을 넘어선다

"LLMs can't jump"는 증명된 명제가 아니다. 본문의 표현은 "구조적으로 무능하다(structurally incapable)"인데, 이것은 강한 단어다. 그러나 논문이 제시하는 것은 반례 하나(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정성적 재구성이지, 불가능성 정리가 아니다. 논문을 읽을 때는 제목보다 초록의 마지막 문장 — "물리적으로 일관된 다중모달 세계 모델이 필요한 감각적 접지를 제공한다고 제안한다" — 을 중심에 두는 편이 정확하다.

② 귀납과 가추의 경계는 논문이 그린 것보다 흐릿하다

논문은 귀납을 통계적 패턴 학습과 데이터 압축에 가깝게 그린다. 그러나 실제 과학적 귀납에는 사전 지식, 단순성 선호, 설명력, 유추, 개념적 긴장이 모두 섞여 들어간다. 어디까지가 "패턴을 알아차린 것"이고 어디부터가 "설명을 발명한 것"인지는, 논문이 보여 주는 것보다 훨씬 연속적이다.

③ 아인슈타인이 데이터와 무관했던 것도 아니다

논문 자신이 배경 절에서 인정하는 것처럼, 1907년의 아인슈타인 앞에는 이미 여러 긴장이 놓여 있었다.

"데이터가 전혀 없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들
마이컬슨-몰리의 음성 결과
실험 사실
관성질량 = 중력질량 (10⁻⁹)
실험 사실
수성 근일점 이동 43각초/세기
알려진 이상치
맥스웰 전자기학 ↔ 뉴턴 절대시간의 충돌
개념적 모순

논문 스스로도 이 개념적 모순에 대해서는 "현대 AI가 문헌의 비일관성을 탐색하도록 최적화되면 이 모순을 식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다만 "오류를 식별하는 것과 수정을 생성하는 것은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 이 선이 얼마나 튼튼한지는 열린 질문이다.

④ 세계 모델은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몸이 있고 시뮬레이션이 된다고 아인슈타인급 발견이 나오지는 않는다. 최소한 이런 것들이 더 필요하다.

세계 모델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들
문제 선택
무한한 질문 중 흥미로운 것을 고르는 능력
가설 선별
수많은 후보 중 값어치 있는 것을 남기는 판단
반증 가능성으로의 변환
직관을 검증 가능한 예측으로 옮기는 기술
장기 목표와 기억
7년을 버티는 탐구의 지속성
비교 기준
새 이론이 기존보다 나은지 판정하는 메타 기준
그리고 오류에서 회복하는 능력
아인슈타인의 7년 중 대부분은 틀린 공리를 붙들고 있던 시간이었다

⑤ 논문 자신이 그은 적용 범위의 한계

마지막 문단에서 저자는 스스로 울타리를 친다. 이 제안은 물리과학에 특별히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연구 대상이 외부의 물질적 실재인 분야에서는 세계가 시뮬레이션의 기질이 된다. 그러나 수학이나 컴퓨터과학 같은 추상 영역에서는 '감각 경험(E)'이 고차원 위상이나 일반성·최소성 같은 다른 목표에 접지될 수 있다.

가추적 도약의 필요성은 보편적이지만, 시뮬레이션의 성격은 분과의 존재론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 물리학의 기질은 세계이고, 수학의 기질은 형식 체계의 추상적 지형이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유보다. 소프트웨어·수학·알고리즘 영역에서 AI가 만들어내는 성과에 이 논문을 그대로 갖다 붙이면 과잉 일반화가 된다.

⑥ 그리고 실험적 근거는 원리적으로 부족하다

저자는 반증 가능한 예측을 제시하지 않는다. "세계 모델을 붙이면 도약이 나온다"는 것도 아니고, "이런 벤치마크에서 이런 점수가 나오면 도약이다"라는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가설과 방향이지 결과가 아니다. 그 점을 알고 읽으면 유용하고, 모르고 읽으면 과장된다.

🗣️
저자 본인의 정리. 논문이 화제가 된 뒤 자하비는 몇 가지를 분명히 했다. 이 글은 "딥마인드가 AI for Science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며, 조직의 공식 입장도 아니고, 특정 종류의 과학적 도약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는 개인적 포지션이라는 것이다. 논문을 인용할 때 이 맥락을 함께 옮기는 것이 정직하다.

제10장. 그래서 2026년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논문의 프레임을 실무로 가져오면, 가장 쓸모 있는 것은 세 개의 층을 구분하는 습관이다. 이 구분을 놓치면 "AI가 창의적이냐"는 무익한 논쟁으로 빠지고, 이 구분을 잡으면 조직의 시간 배분이 바뀐다.

1층 · 생성2층 · 기존 공간 안의 가추3층 · 표현 체계의 발명
무엇인가이미 있는 형식 안에서 문장·코드·문서를 만든다놀라운 결과에 설명을 붙이되, 재료는 아는 개념들문제를 담을 좌표계 자체를 새로 만든다
실무 예요약, 초안, 마이그레이션, 테스트 작성장애 원인 추정, 이탈률 급증의 가설, 진단 지원새 지표 정의, 이름 없는 문제의 정의, 새 제품 범주
AI의 현재사실상 완결후보 발산에 탁월논문이 지목한 공백
사람의 역할기준 설정과 검수수렴과 검증여기가 남는 자리
조직의 함정여기 시간을 많이 쓰면, 그 시간은 곧 사라진다발산만 하고 수렴 기준이 없으면 소음이 된다성과가 늦게 보여 가장 먼저 잘린다

지난 한 달에 실제로 시간을 쓴 항목을 골라, 우리 팀의 분포를 확인해 보자.

실무에서 바로 쓸 수 있는 네 가지

1️⃣
"AI가 못 한다"를 층으로 번역하라
회의에서 "AI는 창의적이지 않다"는 말이 나오면, 그건 대개 3층 이야기를 1·2층 사례로 반박하는 상황이다. 어느 층 이야기인지부터 합의하면 논쟁의 절반이 사라진다.
2️⃣
에러 신호가 없는 문제를 따로 관리하라
지금 지표가 다 초록불인데도 뭔가 이상하다면, 그건 벌컨 상황일 수 있다. 손실이 0인 곳에서는 최적화가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런 문제는 대시보드가 아니라 사람의 직관에서만 시작된다.
3️⃣
개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라
논문이 세계 모델에 요구한 것은 관찰이 아니라 개입이다. 조직에서도 똑같다. 대시보드를 보는 것과 시스템을 흔들어 보는 것은 다르다. 프로덕션에 손대지 않고 반사실을 돌릴 수 있는 샌드박스가 있는가?
4️⃣
틀린 공리를 붙들고 있던 시간을 예산에 넣어라
아인슈타인의 7년 중 2년은 Entwurf라는 잘못된 이론을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 3층 작업의 일정을 짤 때 이 시간을 빼면, 그 프로젝트는 반드시 실패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맺으며: 도약은 순간이지만 값은 비싸다

논문의 결론은 담담하다.

오늘날 AI가 던진 질문 — 아인슈타인이 갖고 있던 지식을 그대로 주면, 현대 인공지능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명할 수 있는가 — 에 대해, 현재의 대규모 언어 모델에 관한 한 답은 아니오다.

귀납은 통계적 압축으로 기계화되었다. 연역은 형식 검증으로 기계화되었다. 그러나 이 둘만으로는 과학적 발명의 순환이 굴러가지 않는다. 압축으로서의 창의성 가설은 어디에나 오차 신호가 있다고 전제하지만, 뉴턴의 패러다임에는 그런 위기가 없었고,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할 데이터는 이론이 만들어지고 몇 년 뒤에야 도착했다.

아인슈타인은 기호를 탐색해서 일반상대성이론을 발견하지 않았다. 떨어지는 관측자의 감각적 경험을 시뮬레이션해서 발견했다.

그리고 논문이 제안하는 길은 배제가 아니라 결합이다. LLM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LLM이 경험하고 개입할 수 있는 세계에 연결하라는 것이다.

논문이 그리는 발명하는 시스템의 구성
LLM
언어 · 지식 · 수식 · 문헌 · 연역
상호작용 가능한 세계 모델
픽셀이 아니라 일관된 잠재 물리 위에서
행동과 개입
케이블을 끊을 수 있는 권한
반사실적 시뮬레이션
일어나지 않은 세계를 실행한다
공리로의 번역
감각을 형식으로 — 여기가 병목
검증
실험 또는 형식 증명으로 되돌린다

1907년 베른의 그 심사관에게는 실험실도, 연구비도, 조교도 없었다. 있었던 것은 떨어지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는 머리 하나였다. 그가 한 일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답이 놓일 좌표계를 새로 그리는 것이었다.

이 논문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기계는 좌표계 위에서 가장 빠르게 달리는 존재인가, 아니면 언젠가 좌표계를 다시 그릴 존재인가.

지금으로서는, 달리기는 이미 우리보다 빠르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손은 아직 우리 것이다.


부록 A. 이 글의 핵심 용어

용어한 줄 정의왜 중요한가
도약 (Jump, J)감각 경험(E)에서 공리(A)로 건너뛰는 비논리적 구간논문이 유일하게 문제 삼는 구간
가추 (Abduction)놀라운 결과를 설명할 원인을 발명하는 추론세 추론 중 유일하게 새것을 만든다
조작적 가추체화된 시뮬레이션에 개입하며 가설을 만드는 방식'행함으로써 생각하기' — 도약의 실제 메커니즘
등가원리국소적으로 중력과 가속은 구별되지 않는다엘리베이터 사고실험의 산물, 일반상대성의 출발점
기호 접지 문제기호가 실제 지시체와 연결되지 않는 문제 (Harnad, 1990)"고차원 중국어 방"이라는 진단의 근거
압축으로서의 창의성발견 = 관측을 짧게 설명하는 프로그램 찾기 (Schmidhuber, 2008)논문이 반박하는 주 표적
반사실적 개입일어나지 않은 조건을 실행해 결과를 보는 것 (Pearl)세계 모델이 갖춰야 할 결정적 성질
벌컨 행성수성 궤도 이상을 설명하려 가정된, 존재하지 않는 행성압축 엔진이 택할 법한 '싼 해법'의 상징

부록 B. 참고 자료

  • Tom Zahavy, "Position: LLMs can't jump", ICML 2026 — OpenReview · 저자 페이지
  • Peirce, C. S., Collected Papers of Charles Sanders Peirce, Harvard University Press, 1934
  • Magnani, L. et al., Abductive Cognition: The Epistemological and Eco-Cognitive Dimensions of Hypothetical Reasoning, Springer, 2009
  • Norton, J. D., Einstein's Pathway to General Relativity피츠버그대 강의 자료
  • Schmidhuber, J., Driven by Compression Progress, 2008
  • Harnad, S., The Symbol Grounding Problem, Physica D, 1990
  • Hubert, T. et al., Olympiad-level formal mathematical reasoning with reinforcement learning (AlphaProof), Nature, 2025
  • Bruce, J. et al., Genie: Generative Interactive Environments, 2024 — arXiv
  • Lu, C. et al., The AI Scientist, 2024 — arXiv
  • Novikov, A. et al., AlphaEvolve: A coding agent for scientific and algorithmic discovery, 2025 — arXiv
  • Vafa, K. et al., What has a foundation model found? Using inductive bias to probe for world models, ICML 2025
  • Wu, T. & Tegmark, M., Toward an artificial intelligence physicist for unsupervised learning, Physical Review E, 2019
  • Pearl, J. & Mackenzie, D., The Book of Why, Basic Books, 2018
  • 관련 국내외 보도 — The Decoder · Forb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