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AI의 청구서는 누가 내나 — 장부 밖 약속, 3년 만의 금리 인상, 그리고 수출의 절반이 된 반도체
2026년 9월 한국 수출이 처음으로 월 1,200억 달러를 넘었고, 그 절반이 반도체였습니다. 같은 달 미국 연준은 3년 만에 금리를 올렸고, 영란은행 총재는 'AI 붐이 시장 충격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두 장면은 하나의 사슬로 이어져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빅테크가 올해 AI 데이터센터에 쓰는 7,000억 달러 넘는 돈은 이제 번 돈만으로 감당되지 않아, 주식·회사채·리스·보증으로 메워지고 있습니다. 공시에 적힌 장부 밖 약속, 회계 기준 변경으로 '줄어든' 설비투자, 한 분기 만에 두 배가 된 엔비디아의 메모리 약정, 그리고 그 끝에서 코스피 시가총액의 57%를 차지하게 된 두 반도체 회사까지 — 공시와 공식 통계로 'AI의 청구서'를 따라가고, 앞으로 지켜볼 숫자 일곱 개로 정리합니다.
2026년 10월 1일, 산업통상부가 9월 수출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1,209억 4천만 달러, 전년 대비 83.5% 증가. 월 수출이 1,200억 달러를 넘은 건 처음입니다. 그중 반도체가 603억 달러(+262.8%) 로 전체의 49.9%였고, 메모리만 540억 달러(+358.6%)였습니다. 1~9월 누적 수출은 이미 2025년 연간 실적을 넘었고, 정부는 연간 1조 달러 돌파를 11월 말~12월 초로 내다봤습니다.
같은 2주 사이, 다른 장면들도 있었습니다. 9월 16일 미국 연준은 3년 만에 기준금리를 올렸습니다. 9월 28일 영화 「빅 쇼트」의 실제 주인공 마이클 버리는 "AI 버블이 생각보다 빨리 터질 수 있다"며 반도체 관련 풋옵션을 샀다고 밝혔습니다. 10월 1일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는 BBC 인터뷰에서 "지금은 모두가 승자로 가격이 매겨져 있지만, 모두가 승자는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두 장면은 하나의 사슬로 이어져 있습니다. 한국이 파는 메모리를 사는 건 결국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이고, 그 데이터센터를 짓는 돈은 2026년 들어 번 돈보다 빌린 돈과 약속의 비중이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이 글은 공시와 공식 통계로 그 사슬을 따라가 봅니다. 결론을 예측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무엇을 지켜봐야 하는지 정리하려는 글입니다.
7,200억+ 달러
알파벳·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의 2026년 설비투자 가이던스 합계
962억 달러
엔비디아 2026년 5~7월 분기 매출 (+106%)
49.9%
2026년 9월 한국 수출 중 반도체 비중
57.1%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코스피 시가총액 비중 (6월 말, 2025년 말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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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공시·공식 통계와 보도를 정리한 해설이며, 유료 기사의 경우 2차 보도로만 확인한 내용은 그렇다고 표시했습니다.
1부. 보이는 돈 — 2026년 설비투자
빅테크는 2026년 여름 실적 발표에서 하나같이 AI 설비투자 전망을 올렸습니다.
2026년 설비투자 가이던스 중간값 (억 달러, 최댓값 2,200억 기준)
아마존 (약 2,200억)
2,200
알파벳 (1,950억~2,050억)
2,000
마이크로소프트 (달력 기준, 약 1,750억)
1,750
메타 (1,300억~1,450억)
1,375
오라클 (2027 회계연도 900억~950억)
925
알파벳의 2025년 설비투자 실적이 914억 달러였으니, 1년 만에 두 배 넘게 늘어나는 셈입니다. 아마존의 앤디 재시 CEO는 상향 이유로 "부풀려진 메모리 가격"을 들었습니다. 한국이 파는 바로 그 메모리입니다.
이 돈을 받는 쪽도 숫자가 큽니다. 엔비디아의 2026년 5~7월 분기 매출은 962억 달러로 1년 전의 두 배를 넘었고, 젠슨 황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컴퓨팅이 곧 매출이다. 그리고 수요는 가속하고 있다." 오픈AI의 연환산 매출은 8월 400억 달러에 이르렀고, 9월 말엔 약 1조 4천억 달러 기업가치로 300억 달러 이상을 조달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샘 올트먼은 2026년 상장 가능성은 배제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붐의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2부. 숨은 돈 — 번 돈으로는 모자라다
현금흐름이 마이너스가 됐다
설비투자가 번 돈(영업현금흐름)보다 커지면,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가 됩니다. 2026년 여름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알파벳은 2분기 잉여현금흐름이 −58.6억 달러로 기록상 첫 마이너스 분기를 냈고, 아마존은 최근 12개월 기준 −76억 달러, 오라클은 1분기 약 −50억 달러였습니다. 메타는 7.84억 달러로 간신히 플러스였습니다.
모자란 돈은 어디서 올까요. 알파벳은 6월 주식과 의무전환우선주로 순 496억 달러를 조달했고, 400억 달러 규모의 시장가 주식 발행 프로그램을 열었고, 2분기에 회사채 203억 달러를 찍었습니다. 오라클은 시장가 주식 발행으로 200억 달러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공시의 본문이 아닌 곳, 주석과 약정 사항에 더 큰 숫자들이 있습니다.
장부의 본문 밖에 적힌 약속
몇 가지 장치가 눈에 띕니다.
①
잔존가치 보증 — 메타의 하이페리온
메타는 루이지애나 대형 데이터센터를 직접 소유하지 않고, 지분 20%만 가진 합작사가 짓게 했습니다. 파트너가 약 270억 달러를 대고, 메타는 리스로 씁니다. 그 대신 리스가 끝날 때 자산 가치가 모자라면 메타가 메워 주는 잔존가치 보증을 약 280억 달러 한도로 섰고(엘패소 합작은 최대 약 130억), 이 보증은 부채로 잡혀 있지 않습니다. 메타 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아직 시작되지 않은 리스 약정이 2,789.9억 달러, 해지 불가 약정이 3,493.1억 달러입니다.
②
공급자가 고객의 빚을 보증한다 — 엔비디아
엔비디아는 8월 오하이오의 약 4.25GW 데이터센터 부지(오픈AI가 20년 장기 임차)의 토지·전력·건물에 대해 최대 1,050억 달러를 보증했습니다. 7월엔 '2,500억 달러 보증 협상'이 보도됐는데, 실제 서명된 건 이 1,050억 달러입니다. 엔비디아는 또 아폴로·블랙록·블랙스톤 등 자산운용사와 '5,000억 달러 이상의 외부 자본 동원' 양해각서를 맺었습니다. 칩을 파는 회사가 칩을 살 돈의 조달까지 돕는 구조입니다.
③
회계 기준을 바꾸면 설비투자가 '줄어든다' —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는 4월 2026년 설비투자를 1,900억 달러로 안내했다가 7월 약 1,750억 달러로 낮췄습니다. 이유는 회계였습니다. 데이터센터 건물의 내용연수를 15년에서 25년으로 늘리면서 더 많은 리스가 설비투자 밖의 '운용리스'로 분류되기 때문. 최고재무책임자는 실제 계획은 바뀌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장치들을 합친 규모에 대해선 큰 숫자들이 보도됐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9월 20일 빅테크가 보증을 이용해 약 3,000억 달러의 AI 관련 위험을 재무상태표 밖에 두고 있다고 보도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8월 16일 9개 기업의 장부 밖 AI 약정이 약 3조 달러로 지난 1년 설비투자 합계의 5배라고 추산했습니다. 두 기사 모두 유료라 이 글에선 2차 보도로만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앞의 메타·알파벳·엔비디아 숫자는 각 회사 공시에서 직접 확인한 것입니다. 알파벳의 데이터센터 관련 신용파생상품 명목금액도 반년 만에 169억에서 438억 달러로 늘었습니다.
이 장치들이 그 자체로 잘못된 건 아닙니다. 리스와 합작은 오래된 금융 기법이고, 공시도 되고 있습니다. 다만 위험이 어디에 있는지 한눈에 보기 어려워졌다는 점, 그리고 그 구조들이 금리에 민감한 빚 위에 서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균열의 신호
9월 24일 블룸버그는 오라클이 뉴멕시코의 2.5GW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주피터'(약 1,650억 달러 규모, 2028년 가동 목표)의 소유주에게 불가항력 통지를 보냈다고 보도했습니다. 주 정부가 가스관 연장 허가를 거부해 일정이 밀릴 경우 임차료 지급을 늦출 수 있게 해 두려는 조치입니다. 오라클은 "프로젝트 주피터는 계획된 일정대로"라고 밝혔습니다. 10월 2일엔 아마존이 약 80억 달러어치 엔비디아 칩을 특수목적법인에 넘기고 다시 빌려 쓰는 매각 후 재임차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확정된 건 아닙니다.
빚으로 짓는 투자에 가장 중요한 변수는 금리입니다. 2026년 9월 16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기준금리를 0.25%p 올려 3.75~4%로 정했습니다. 12대 0 만장일치, 3년 만의 인상이었고, 성명은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다"고 적었습니다. 8월 개인소비지출 물가는 전년 대비 3.4%였습니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9월 30일 5.29% 로 2007년 수준에 가까워졌고, 30년물은 5.64%로 2002년 무렵 이후 가장 높았습니다.
같은 설비투자라도 금리가 4%일 때와 5%일 때 감당해야 할 이자는 크게 다릅니다. 특히 2부에서 본 특수목적법인의 빚은 보증하는 대기업보다 1~1.5%p 높은 금리로 조달된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수요가 앞서 있다: 마이크론 '2027년 물량 상당 부분 이미 판매', AWS 수주 잔고 4,960억 달러
장부 밖 약속이 커진다: 잔존가치 보증, 공급자 보증, 특수목적법인
계약이 쌓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잔여 계약 6,780억, 오라클 6,640억 달러
틈이 크다: 베인은 2031년 연 1.5조 달러 인프라 투자를 정당화하려면 연 6조 달러 AI 시장이 필요하고, 약 4.2조 달러가 아직 비어 있다고 추산
과거의 '붕괴 예언'은 자주 틀렸다
금리가 오르고, 10년물이 2007년 수준에 가깝다
강세론의 마지막 줄은 진지하게 볼 만합니다. 엔지니어 댄 루는 AI 비관론자 에드 지트론이 2024~2025년 날짜를 박아 내놓은 예측 약 20개를 검증했는데, 17개가 '틀림'이었고 '맞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특히 가장 확신에 찬 예측일수록 틀렸다고 했습니다. 버블을 말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버블이 터지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이 글은 '터진다/안 터진다'를 말하지 않고, 무엇을 보면 알 수 있는지에 집중하려 합니다.
이 숫자는 진짜이고, 대부분은 가격이 만든 것입니다. DDR5 16Gb 고정 거래가는 5월 37.5달러에서 9월 48달러가 됐고, 한 언론 분석에 따르면 전년 대비 수출 증가분의 약 80%가 반도체였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D램 계약 가격이 2분기 58~63%, 3분기 13~18% 오른 데 이어 4분기에도 10~15% 오를 것으로 봤지만, "상승 속도는 둔화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두 회사가 시장의 절반
이 호황은 두 회사의 숫자로 모입니다. SK하이닉스는 2분기 영업이익 60.5조 원(영업이익률 76%)을 냈고, 삼성전자 2분기 영업이익은 89.5조 원이었습니다. 삼성전자의 3분기 잠정 실적은 10월 8일께 나올 예정이고, 증권가 컨센서스는 105.5조~110.3조 원입니다. HBM 시장 점유율은 2분기 기준 SK하이닉스 50%, 삼성전자 33%로 추정됩니다(카운터포인트).
그 결과 두 회사가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말 34%에서 2026년 6월 말 57.1% 로 뛰었습니다. 코스피는 6월 9,000을 넘은 직후 하루 9.99% 폭락('반도체 쇼크')을 겪었고, 10월 2일 7,003.74로 고점보다 약 22% 낮은 곳에 있습니다. 한국 경제의 체온계가 사실상 두 회사의 주가, 그리고 그 뒤의 메모리 가격, 그리고 그 뒤의 빅테크 설비투자에 연결된 셈입니다.
5부. 또 하나의 청구서 — 전기요금
AI의 청구서는 금융시장에만 오지 않습니다. 미국 최대 전력망 운영 기구 PJM의 7월 용량 경매에서 전체 비용 164억 달러 가운데 데이터센터 몫이 63억 달러(38%) 였습니다. 최근 네 번의 경매를 합치면 636억 달러 중 294억 달러(46%). 그러고도 신뢰도 목표에 6.8GW가 모자랐습니다. 시장 감시인은 현재 규칙으론 소비자를 보호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데이터센터 때문에 오른 전기요금에서 가정을 보호하자는 법안은 미국 하원을 417대 3으로 통과했지만, 9월 30일 상원에서 57대 43으로 토론 종결에 필요한 60표를 얻지 못했습니다. 반대한 쪽은 보호 장치가 '선택 사항'이라 "이빨 빠진" 법이라고 했습니다. 전기요금은 이제 미국 중간선거의 쟁점입니다.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2025년 엔비디아와 맺은 GPU 26만 장 공급 협력을 모두 가동하려면 약 1GW의 전력이 필요하다는 국회입법조사처 분석이 있고, 데이터센터의 70%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습니다. 2026년 6월 공포돼 2027년 3월 시행되는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은 비수도권 입지에 전력 계통 영향 평가 면제 등의 혜택을 주는데, 전기를 누가 얼마에 대느냐는 질문은 아직 열려 있습니다.
6부. 지켜볼 숫자 일곱 개
버블인지 아닌지는 지나 봐야 압니다. 대신 사슬의 각 고리가 약해지는지를 알려 주는 숫자는 정해 둘 수 있습니다.
AI 붐의 청구서는 누가 낼까요. 지금까지는 빅테크가 번 돈으로 냈습니다. 2026년부터는 주주(새로 찍은 주식), 채권자(회사채), 자산운용사와 연기금(특수목적법인과 사모 신용), 공급자(엔비디아의 보증), 그리고 전기를 쓰는 가정(용량 요금)이 나눠 내기 시작했습니다. 청구서는 사라지지 않고, 장부의 본문에서 주석으로, 기업에서 금융시장으로, 미국에서 한국의 항구로 옮겨 갑니다.
한국은 이 사슬에서 가장 많이 버는 쪽에 서 있습니다. 9월의 기록은 그 사실을 보여 줍니다. 동시에 수출의 절반, 증시의 절반이 한 품목과 그 품목의 가격, 그리고 바다 건너 몇몇 기업의 차입 여력에 묶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금 필요한 건 축배도 비관도 아니라, 사슬의 고리마다 숫자를 정해 두고 매 분기 확인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