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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창의성이 새로운 해자다 — 플래시 시대의 증거와, 그 주장이 버티지 못하는 네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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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창의성이 새로운 해자다 — 플래시 시대의 증거와, 그 주장이 버티지 못하는 네 지점

AI가 베끼기를 공짜로 만든 세상에서 남는 경쟁 우위는 기능도 가격도 아닌 아이디어다 — 뉴욕의 한 디지털 스튜디오 대표가 플래시 시대의 기억을 꺼내 던진 이 주장이 해커뉴스를 뜨겁게 달궜다. 이 글은 그 주장을 편들지도 깎아내리지도 않고 검증한다. 1996년 플래시의 탄생부터 2020년의 종료까지, 마시마로 7편이 산업이 된 한국의 기억, 스탠퍼드가 측정한 'AI 생성 웹 35%'의 진짜 뉘앙스, 쇼HN 랜딩 페이지 1,590개를 스캔해 찾아낸 18가지 AI 디자인 패턴, 그리고 개인의 창의성은 올리면서 집단의 다양성은 깎는다는 실험 결과까지. 마지막으로 해밀턴 헬머의 7 Powers로 '창의성은 해자인가'를 정면으로 따져 보고, 이 주장이 무너지는 네 지점을 짚는다.

코어닷투데이2026-09-1259

들어가며 — 2004년의 촌스러운 웹과 2026년의 말끔한 웹

2004년과 2026년크게 보기

2026년 9월 10일, 뉴욕의 디지털 프로덕트 스튜디오 InventBuild.Studio를 운영하는 테드가 「진짜 창의성이 당신의 새로운 해자다」라는 글을 올렸다. 해커뉴스에서 168점과 98개의 댓글이 달렸고, 그 댓글들이 본문만큼이나 흥미로웠다.

주장 자체는 한 문단으로 줄어든다.

💬
"AI는 이미 세상에 있는 것을 베끼는 일을 빠르고 쉽게 만든다. 제품을 만들거나 사업을 한다면, 당신의 경쟁 우위는 기능이나 가격이 아니라 아이디어다. 그러니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습관을 들이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값어치 있어졌다."
— Ted, InventBuild.Studio

이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쉽다. 너무 쉬워서 문제다. "창의성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반박이 불가능한 형태로 쓰이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다. 해커뉴스의 첫 댓글이 정확히 그 지점을 찔렀다 — "그거… 원래도 해자 아니었나?"

그래서 이 글은 테드의 주장을 편들지도, 깎아내리지도 않으려 한다. 대신 검증한다. 그가 증거로 든 플래시 시대를 자료로 되짚고, 그가 인용한 통계를 원문까지 따라가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확인하고, 경영 전략에서 '해자'라는 말이 가진 정확한 의미로 이 주장을 재서, 어디까지가 맞고 어디서부터 무너지는지를 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그의 주장은 딱 한 가지 형태로만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가 글 끝에서 우연히 쓴 한 문장이 정확히 그 형태다.


1부. 플래시라는 증거물

1-1. 2006년, 맨해튼 35번가의 작은 에이전시

테드의 글은 회고로 시작한다. 2006년 맨해튼 35번가와 8번가 모퉁이의 작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뮤턴트 미디어(Mutant Media). 웹사이트, 모션 그래픽, 인쇄물, 그리고 마이크로사이트를 만들던 곳이다.

플래시 시대를 겪었다면 이 종(種)을 기억할 것이다. 대기업 웹사이트에 "Launch Experience >>>" 또는 "Enter Flash Site" 같은 링크가 있고, 누르면 640×480 고정 크기 팝업 창이 뜬다. 그 안에서 운동화가 "3D"로 빙글빙글 돌고, 저음질 음악 루프가 깔린다. 음소거 버튼이 있으면 운이 좋은 거다.

그가 참여한 프로젝트 중에는 바카디(Bacardi)의 플래시 게임도 있었다. 재료를 끌어다 놓아 모히토를 만드는 게임인데, 바텐더를 연기한 성우의 음성 샘플이 들어 있었다. "나이스." "모-히-토라고 발음하는 겁니다."

1-2. 24년의 궤적

1993
스마트스케치 (SmartSketch)
플래시의 선조. 퓨처웨이브 소프트웨어가 펜 컴퓨터용 OS인 PenPoint를 위해 만든 벡터 드로잉 앱이었다. PenPoint가 시장에서 실패하자 방향을 틀어 웹으로 이식된다. 창작 도구의 역사에서 가장 운 좋은 실패 중 하나.
1996
퓨처스플래시가 매크로미디어 플래시가 되다
매크로미디어가 퓨처웨이브를 인수한다. 이때부터 2005년까지가 매크로미디어 시대, 2005~2020년이 어도비 시대.
1998
praystation.com
디자이너 조슈아 데이비스가 자기 실험을 전시하는 사이트를 연다. 이 사이트가 왜 결정적이었는지는 바로 다음 절에서.
2000
뉴그라운즈 '플래시 포털', FWA 출범, 그리고 "99% 나쁘다"
누구나 자기 플래시 작품을 올릴 수 있는 뉴그라운즈 Flash Portal이 열린다. 같은 해 5월, 롭 포드가 혁신적인 플래시 사이트를 조명하려고 FWA(Favourite Website Awards)를 만든다. 그리고 10월, 사용성 전문가 야콥 닐슨이 「Flash: 99% Bad」를 발표한다.
2001
praystation,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골든 니카 수상
'넷 비전 / 넷 엑설런스' 부문. 브랜드 마이크로사이트를 만들던 도구가 미디어아트 최고 권위 상의 대상을 받았다.
2002
레프 마노비치, 「Generation Flash」
뉴미디어 이론가가 이 현상에 이름을 붙인다. 플래시로 만든 것들이 '웹사이트'가 아니라 하나의 세대적 미학이라는 선언.
2004
와이어드, 플래시로 만든 Mac System 7 시뮬레이터를 다루다
누가 웹 브라우저 안에서 돌아가는 구형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플래시로 만들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아무 돈도 되지 않았다.
2006
정점 — 웹 연결 PC의 약 98%에 설치
액션스크립트 3이 플래시 플레이어 9과 함께 나온다. 이때 처음으로 '어도비 플래시 플레이어'라는 공식 명칭이 붙는다.
2008
웹 비디오의 표준 전달 수단
유튜브를 포함한 웹 동영상이 전부 플래시 위에서 돌아가던 시절.
2010
스티브 잡스, 「Thoughts on Flash」 — 그리고 Three.js
잡스가 플래시의 폐쇄성과 성능·배터리 문제를 공개 편지로 저격한다. 같은 해, 웹 브라우저에서 3D를 그리는 Three.js가 나온다. 한 문이 닫히고 다른 문이 열린 해.
2020
종료
12월 31일 일반 배포판 지원 종료. 2021년 1월 12일부터 플래시 콘텐츠 실행이 차단된다.

1-3. 폭발의 진짜 메커니즘 — 소스를 공개했다

플래시가 만든 창작 폭발크게 보기

테드의 글은 "도구를 주면 사람들이 실험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절반이다. 플래시 시대의 폭발에는 전파 경로가 있었고, 그게 조슈아 데이비스다.

📂
데이비스의 praystation.com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작업의 .fla 원본 파일을 그대로 공개했다. 플래시 작업물의 소스를 오픈소스로 푼 최초의 사례 중 하나다. 그리고 2년치 작업을 모아 소스 파일·사진·잡동사니를 담은 CD-ROM PrayStation Hardrive로 내놓았다.

이게 왜 중요한가. 당시 플래시 작품은 컴파일된 .swf 파일로 배포됐다. 보는 것은 되지만 뜯어보는 것은 안 된다. 결과물만 있고 과정이 없는 상태다. 데이비스가 소스를 풀면서 그 벽이 뚫렸다. 어떤 애니메이션이 예쁘면, 그걸 열어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고, 고쳐서 다시 올릴 수 있게 됐다.

거기에 그가 운영한 커뮤니티 포럼 dreamless.org(1999~2001)가 붙었다. 실험 → 공개 → 뜯어보기 → 변형 → 재공개. 이 고리가 돌기 시작하면 실험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로 쌓인다.

지금 이 고리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면 흥미롭다. 프롬프트는 대체로 공유되지 않고, 공유되더라도 같은 프롬프트가 같은 결과를 내지 않는다. 뜯어볼 수 있는 원본이라는 개념이 희미하다.

1-4. "99% 나쁘다"와 스터전의 법칙

2000년 10월, 사용성 분야의 권위자 야콥 닐슨이 「Flash: 99% Bad」라는 유명한 글을 썼다.

⚠️
"플래시는 세 가지 이유로 웹사이트를 저하시킨다. 디자인 남용을 조장하고, 웹의 근본적인 상호작용 원칙을 깨뜨리며, 사이트의 핵심 가치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킨다."
— Jakob Nielsen, 2000

닐슨은 틀리지 않았다. 접근성은 처참했고, 건너뛸 수 없는 인트로 애니메이션이 있었고, 브라우저 뒤로가기 버튼은 작동하지 않았다. 테드도 이 점을 인정한다. "나는 플래시를 찬양하려고 여기 있는 게 아니다. 객관적으로 형편없었고, 모두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세 개의 문장이 정확히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누가언제무엇을
시어도어 스터전1950년대"모든 것의 90%는 쓰레기다" — SF를 비판하던 평론가에게
야콥 닐슨2000"플래시는 99% 나쁘다"
테드2026"나쁜 아이디어 더미를 헤집지 않고는 새로운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없다"

같은 비율을 두고 두 사람은 비난했고 한 사람은 비용이라고 불렀다. 이 차이가 이 글 전체의 논점이다. 그런데 여기엔 2026년에만 붙는 단서가 하나 있다 — 그 비용이 더 이상 청구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3부에서 다시 만난다.

쓰레기 더미를 헤집어 하나를 건진다크게 보기

1-5. 한국의 플래시 시대 — 7편으로 만든 산업

2000년대 초 한국의 PC방크게 보기

테드의 회고는 맨해튼의 이야기지만, 한국에는 더 극적인 판본이 있다.

2000년, 회사를 그만둔 김재인은 인터넷 만화 사이트의 한 코너를 통해 1분 30초짜리 플래시 애니메이션 7편을 올렸다. 「마시마로의 숲」. 당시의 '엽기' 열풍을 타고 엽기토끼라는 별명이 붙었고, 이듬해인 2001년 씨엘코 엔터테인먼트가 정식 상품화했다. 4,500여 가지의 상품이 나왔고 미국과 일본까지 건너갔다.

정리하면 이렇다. 한 사람이 만든 7편의 짧은 애니메이션이 캐릭터 산업 하나를 만들어 냈다. 자본도, 유통망도, 방송사도 없이. 플래시라는 도구와 전파될 수 있는 인터넷이 있었을 뿐이다.

🐰
이 시기 한국 웹에는 같은 구조의 이야기가 여럿 있었다. 졸라맨, 우비소년, 쥬니어네이버의 플래시 게임들, 개인 홈페이지의 플래시 인트로들. 전부 "제대로 배운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중 90%는, 스터전의 말대로, 형편없었다.

1-6. 157,509편

테드가 마지막으로 드는 숫자가 이것이다. 플래시포인트 아카이브가 현재 보존하고 있는 플래시 작품의 수. 그리고 이건 어쩌다 보존된 것들만 센 숫자다.

플래시는 2020년에 죽었다. 그와 함께 인터넷 역사와 문화의 상당 부분이 사라졌다. 플래시포인트는 그걸 붙잡으려는 프로젝트다.


2부. 지금 웹은 왜 말끔하고 지루한가

테드는 나이키닷컴에 들어가 본다. 그리고 이렇게 쓴다. "괜찮다. 완벽히 멀쩡하다. 캐러셀이 하나 있고, 페이지는 빨리 뜬다. 디자인적으로도, 뭐, 괜찮다."

그다음 문장이 핵심이다. "동시에 지극히 진부하다. 배경 디자인이다 — 아무도 알아차리지 않는 종류의."

2-1. "새 웹사이트의 35%"라는 숫자, 정확히 읽기

테드가 인용하는 통계가 있다. 2026년 4월 연구에 따르면 2025년 중반 무렵 새로 발행된 웹사이트의 약 35%가 AI 생성이었다. 이 숫자는 여기저기 인용되는데, 원문까지 따라가 보면 결론이 조금 더 복잡하다.

이 연구는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인터넷 아카이브, 스탠퍼드의 연구진(Jonas Dolezal, Sawood Alam, Mark Graham, Maty Bohacek)이 한 「인터넷에 미친 AI 생성 텍스트의 영향」이다. 결과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측정 항목결과
새 웹사이트 중 AI 생성·AI 보조로 분류된 비율2025년 중반 약 35% (2022년 말 챗GPT 이전엔 0%)
의미적 다양성 (semantic diversity)감소
긍정적 감정 (positive sentiment)증가
사실 정확성 (factual accuracy)통계적으로 유의한 감소 없음
문체 다양성 (stylistic diversity)통계적으로 유의한 감소 없음

연구진이 직접 덧붙인 문장이 흥미롭다. "우리의 발견은 AI의 영향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갈라진다."

즉 흔한 공포 — "AI가 인터넷을 거짓말로 채우고 있다" — 는 데이터로 뒷받침되지 않았다. 실제로 벌어진 일은 다르다. 인터넷이 거짓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라, 합의(consensus)로 채워지고 있다. 스페인 매체 하나가 이 연구를 이렇게 요약했다. "AI는 인터넷을 거짓말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합의로 채운다."

이건 테드의 주장에 더 나쁜 소식이자 더 좋은 소식이다. 더 나쁜 이유는 "AI 결과물은 부정확하다"는 쉬운 반론이 안 통한다는 것. 더 좋은 이유는 그가 실제로 문제 삼은 것 — 진부함, 배경 디자인, 아무도 알아차리지 않는 것 — 이 정확히 데이터가 확인해 준 항목이라는 것이다.

2-2. 진부함을 결정적으로 측정하기

같은 랜딩 페이지가 무한히 찍혀 나온다크게 보기

테드가 인용한 또 하나의 글이 훨씬 구체적이다. 아드리안 크렙스(Adrian Krebs)가 2026년 4월에 한 실험이다.

그는 해커뉴스의 Show HN 게시물을 보다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많은 프로젝트가 "제네릭하고 무균한 느낌"을 준다는 것. 처음엔 정확히 뭔지 몰라서, 이 주관적 느낌을 자동으로 정량화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먼저 디자이너 친구들에게 물었다. 한 명이 이렇게 답했다.

🎨
"컬러 왼쪽 보더는 AI 생성 디자인의 신호로서, 텍스트에서의 em 대시만큼이나 믿을 만하다."

그렇게 모은 패턴을 폰트·색·레이아웃·CSS 네 갈래로 정리해 Show HN 랜딩 페이지 1,590개를 스캔했다. 방법이 중요하다 — Playwright 헤드리스 브라우저로 DOM과 계산된 스타일을 훑는 결정적 검사다. 스크린샷을 찍어 LLM에게 판정시키는 방식은 일부러 쓰지 않았다. (직접 검수해 보니 오탐은 5~10% 수준.)

직접 체크해 보자. 지금 만들고 있는 화면을 떠올리면서.

원저자의 결론이 이 글 전체에서 가장 균형 잡힌 문장이다. "이게 나쁜가? 딱히. 그냥 영감이 없을 뿐이다. 애초에 사업 아이디어 검증에 화려한 디자인이 필요했던 적은 없고, AI 시대 이전에도 모든 게 부트스트랩처럼 생겼었다."

차이는 딱 하나다. 자기 디자인을 빚으려 애쓰는 것과, LLM이 뱉은 기본값으로 그냥 출시하는 것. 이건 CSS/HTML 템플릿 시대에도 똑같았다.

2-3. 개인은 올라가고 집단은 좁아진다

여기에 가장 단단한 실증 근거를 하나 붙이자. 2024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아닐 도시와 올리버 하우저의 실험이다. 제목이 결론을 그대로 담고 있다 — 「생성형 AI는 개인의 창의성을 높이지만 새로운 콘텐츠의 집단적 다양성은 줄인다」.

설계는 단순하다. 작가 300명에게 짧은 이야기를 쓰게 하되, 일부에게만 LLM이 만든 이야기 아이디어를 준다. 그리고 심사자 600명이 결과물을 평가한다.

AI 아이디어를 받은 경우의 변화 (원래 덜 창의적이던 작가 기준)
막대는 가장 큰 효과(26.6%)를 100%로 잡은 상대 길이
글이 더 잘 쓰였다
+26.6%
더 즐겁게 읽힌다
+22.6%
덜 지루하다
+15.2%
유용성 (독자를 붙드는 힘)
+11.5%
참신성
+10.7%
그런데 — 작품끼리의 유사도
+10.7%

마지막 줄이 전부다. 참신성이 오른 만큼, 정확히 그만큼 작품들이 서로 닮아졌다.

하우저가 이것을 "떠오르는 사회적 딜레마"라고 불렀다. 개인 입장에서 AI를 쓰는 것은 언제나 합리적이다 — 내 결과물이 실제로 좋아지니까. 그런데 모두가 그 합리적 선택을 하면 집단 전체의 아이디어 공간이 오그라든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손해를 보는 구조.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모양이다.

그리고 이것이 테드의 주장에 실제 근거를 준다. 가운데가 붐빌수록, 가운데서 벗어난 자리의 값이 오른다.


3부. 유추가 어긋나는 지점

여기서 해커뉴스가 제일 아픈 곳을 찔렀다.

🪤
"이 글이 플래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게 아주 웃기다. 플래시야말로 어중간한 기술자와 비프로그래머가 미친 웹사이트를 만들게 해 준 도구였는데 —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얘기 아닌가?"
— HN 사용자 strange_quark

이 지적은 옳다. 테드의 글은 플래시를 창의성의 황금기로 놓고 AI를 진부함의 원인으로 놓는데, 두 도구의 사회적 기능은 놀랍도록 똑같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에게 만들 힘을 준 것.

테드는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LLM 생성 사이트의 창작을 시작한 인간들은 중요한 창작적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여기엔 실험이 없다." 방향은 맞지만 이 서술로는 반론을 이기지 못한다. 플래시 마이크로사이트를 발주한 브랜드 담당자도 창작적 결정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차이는 '기본값의 강도'다

빈 캔버스와 완성품크게 보기

더 정확한 구분은 이렇다. 두 도구가 당신에게 무엇을 건네느냐.

📄
플래시는 빈 스테이지를 줬다
타임라인과 텅 빈 화면. 무엇을 그릴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바닥이 처참했다 — 아무 생각 없이 만들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나온다. 90%가 끔찍했던 이유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천장이 아주 높았다.
📦
LLM은 완성품을 건넨다
가운데 정렬 히어로, 배지, 세 개의 기능 카드, 통계 배너. 아무 결정도 하지 않아도 봐줄 만한 것이 나온다. 역사상 가장 높은 바닥이다. 문제는 천장이 그 바닥에 바짝 붙어 있다는 것 — 완성된 기본값을 밀어내는 데 드는 힘이, 백지를 채우는 힘보다 크기 때문이다.
📊
그래서 분포가 바뀐다
평균이 아니라 분포의 폭을 봐야 한다. 2000년의 결과물은 아주 넓게 퍼져 있었다 — 대부분은 왼쪽 끝에서 끔찍했지만, 오른쪽 끝까지 뻗은 꼬리가 있었고 새로운 것은 전부 거기서 나왔다. 2026년의 결과물은 오른쪽에 치우친 좁은 띠에 몰린다. 바닥이 올라간 대가로 양쪽 꼬리가 다 잘렸다.

이 관점에서 보면 부트스트랩과 워드프레스 테마 시대가 진짜 예고편이었다는 것도 드러난다. 그때 처음으로 "노력 없이도 봐줄 만한 바닥"이 생겼고, 동시에 모든 사이트가 같아 보이기 시작했다. LLM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같은 곡선의 훨씬 가파른 구간이다.

그리고 이 그림은 1부의 숫자와도 맞물린다. 닐슨이 "99% 나쁘다"고 했을 때 그는 왼쪽 꼬리를 보고 있었고, 테드가 "그 더미를 헤집어야 한다"고 할 때 그는 오른쪽 꼬리를 말하고 있다. 둘은 같은 분포의 양 끝이다. 문제는 2026년에 양쪽 꼬리가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다.


4부. 그래서 창의성은 정말 '해자'인가

해자는 벽이 아니라 다시 짓는 능력이다크게 보기

'해자(moat)'는 워런 버핏이 쓴 은유다. 경쟁자의 공격을 견디게 해 주는 지속 가능한 구조적 우위를 성 둘레의 물길에 빗댔다. 이 은유를 실제 분석 도구로 정리한 사람이 해밀턴 헬머이고, 그 결과가 『7 Powers』(2016)의 일곱 가지다.

여기에 테드의 주장을 올려놓으면 결론이 선명해진다.

일곱 가지 어디에도 "창의성"이라는 항목은 없다. 이건 헬머의 누락이 아니라 정의의 문제다. 좋은 아이디어 하나는 파워가 될 수 없다 — 베껴지기 때문이다. 해자는 "지금 우위에 있다"가 아니라 "베껴도 따라올 수 없다"를 요구한다.

그런데 테드의 글에는 이걸 정확히 아는 문장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 문장 덕분에 주장 전체가 살아남는다.

🏰
"제품을 차별화하고 싶다면, 당신의 해자는 하나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건 베껴질 수 있고, 베껴질 것이다. 당신의 해자는, 다른 모두가 똑같이 지친 답을 반복하는 동안 계속해서 독창적인 해법을 발명해 내는 능력이다."

이것이 헬머의 일곱 번째, 프로세스 파워(Process Power) — 조직이 오랜 시간에 걸쳐 체화해서 빠르게 복제할 수 없게 된 일하는 방식 — 의 정의와 정확히 일치한다. 도요타 생산 시스템이 수십 년간 완전히 공개되어 있었는데도 아무도 복제하지 못한 것과 같은 구조다.

그래서 이 주장은 딱 이 형태로만 참이다.

✕ 해자가 아닌 것
"우리는 창의적인 팀이다"
"우리 제품에는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들어 있다"
"우리는 남들과 다른 색을 쓴다"
✓ 해자일 수 있는 것
"경쟁사가 우리 아이디어를 베끼는 데 6개월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 6개월 동안 다음 것을 내놓는다"
"이 발명 속도는 사람 몇 명을 빼 가도 재현되지 않는다 — 조직의 습관이기 때문에"

테드가 "'습관'이라는 단어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쓴 것은 그래서 정확하다. 습관이라는 단어가 이 주장을 구한다.


5부. 이 주장이 버티지 못하는 네 지점

98개의 댓글에서 반복해서 나온 반박 네 가지를 정리한다. 전부 진지하게 다룰 가치가 있다.

반박 ① "원래도 해자였는데?"

가장 많이 추천받은 첫 댓글이다. 이어진 답글이 이 반박을 오히려 보강한다.

"과소평가되어 있지만 사실이다. 창의적 사고를 하는 사람에게 도구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도구를 잘 다루는 사람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갖게 하는 것보다 언제나 훨씬 쉬웠다."

테드 본인도 이걸 인정한다. "이 가치가 새로운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혁신적인 것은 언제나 값어치가 있었다. 다만 갑자기 훨씬 더 눈에 띄게 됐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글의 새로움은 무엇인가? 정직하게 말하면, 주장이 아니라 타이밍이다. 실행 능력이 흔해질수록 실행 능력의 상대 가격이 떨어지고, 그만큼 나머지의 상대 가격이 오른다. 새로운 진리가 아니라 가격 재조정이다. 그걸 새 발견처럼 말하는 것이 이 장르의 약점이고, 이 글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반박 ② "평범한 사이트에서 창의성은 이탈 사유다"

가장 아픈 반박이다.

"평범한 웹사이트에서의 '진짜 창의성'은 페이지를 닫고 다른 데서 사는 이유다. 나는 과잉 복잡함에 지쳤다. 뭔가 더 로딩되면서 페이지가 덜컹거리는 것. 모바일에서 1분 걸리는 페이지 로딩. 그냥 물건을 사고 싶을 뿐인데 그 모든 게 마이너스 가치다."

이에 대한 반론도 좋았다. "창의적인 것이 자동으로 복잡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WCAG AAA 접근성 같은 제약 안에서 일하면서도 누구에게나 작동하고 보기에도 좋은, 신나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진짜 창의성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완벽한 반례가 하나 등장한다.

🚗
링스 카스(Ling's Cars) — "인터넷에서 가장 이상한 웹사이트"로 불린 영국의 자동차 리스 업체. 중국 청두 출신 링 발렌타인이 2000년에 남편과 창업했다. 노래방, 게임, 쇼핑몰이 웹사이트 안에 있고, 배경은 정신없이 번쩍인다. 본인 말로는 "똑같은 자동차 리스 웹사이트들의 바다에서 튀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결과: 2006년 월 매출 100만 파운드 돌파. 2007년 BBC 「드래곤스 덴」 출연.

2025년 2월, 사이트는 애니메이션을 걷어내고 시각적 복잡도를 낮춘 개편을 거쳤다. 원본은 museum.lingscars.com에 박제되어 있다. HN의 한 댓글은 개편 후 전환율이 떨어졌을 거라고 장담했는데, 그건 추측이지 공개된 데이터는 아니다.

여기서 정직해야 한다. 링스 카스에 대한 즉각적인 반박이 달렸다 — "규칙을 증명하는 예외다." 맞는 말이다. 한 개의 성공 사례는 전략이 아니라 일화다. 다만 그 일화가 20년 넘게 버텼다는 사실은 무시하기 어렵다.

반박 ③ "취향은 diff에 보이지 않는다"

이건 다른 글에서 온 반박이지만 가장 구조적이다. 2026년 8월 「Taste Is All That's Left」라는 글이 해커뉴스 1면에 올랐는데, 그 안의 한 절이 테드의 낙관에 정면으로 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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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취향이 있다고 하자. 축하한다. 당신은 이제 취향이 없는 사람과 정확히 같은 속도로 출시한다.

취향은 느리다. 취향은 '아니, 다시'라고 말한다. 그럴듯한 것을 돌려보낸다. 그럴듯한 것은 옳은 것과 같지 않으니까. 그러는 동안 취향 없는 사람은 이미 출시했고, 티켓을 닫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시장은 둘을 같은 스톱워치로 쟀고 차이를 보지 못했다. 볼 수가 없다. 취향은 diff에 나타나지 않는다."

취향은 diff에 보이지 않는다크게 보기

이건 감상이 아니라 인센티브 구조에 대한 지적이다. 막아 낸 재앙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대시보드에 찍히지 않고, 성과 평가에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니 "창의성이 해자다"라는 말이 옳더라도, 그 해자를 파는 사람에게는 보상이 늦게 도착하거나 아예 도착하지 않는다.

반박 ④ "2020년대 문화는 놀이가 아니라 최적화를 한다"

가장 구조적인 반박이고, 이 글을 읽고 나서도 남는 질문이다.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90년대와 00년대 웹 디자인은 종종 키치하고 시끄럽고 천박했다. 그런데 그건 새로운 매체였고 진입 비용이 낮아서 많은 사람이 가지고 놀 수 있었기 때문에 새로웠다.

2020년대 문화는 놀이가 아니라 최적화를 한다. 실험과 독창성에 대한 보상이 없다, 그게 아무리 재미있어도. 실험하고 놀려면 일정한 부와 자유 시간이 필요한데, 그것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홍보와 돈이 아닌 모든 것을 못마땅해한다. 못 가진 사람들은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 종류의 창의성은 팔로워 몇백 명짜리 소셜 계정에서나 일어난다. 집단적 관심사가 아니고, 확실히 시장성도 없다. 그러니 창의성은 해자가 전혀 아니다."

이 반박의 무게는 이렇다. 플래시 시대의 실험은 개인의 덕성이 아니라 조건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새 매체, 낮은 진입 비용, 아직 형성되지 않은 규범,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도 그걸로 즉시 돈을 벌라고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조건이 사라졌다면, "창의적이 되라"는 권고는 조건 없이 덕성만 요구하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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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 반박에 대한 정직한 평가. ①은 테드도 인정한다. ②는 그의 주장을 적용 범위 문제로 축소시킨다 — 거래형 인터페이스에서는 그가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③과 ④는 반박되지 않았다. 취향에 대한 보상이 늦게 오고, 실험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이 사라졌다면, 창의성은 "해야 하는 것"일 수는 있어도 "자동으로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6부. 가장 어려운 문제 — 취향은 마찰에서 온다

마찰이 교과서였다크게 보기

테드의 처방 중 가장 구체적인 대목은 이것이다.

"AI는 창의성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시도하고 반복하게 해 준다. 결정적인 것은 AI가 중요한 것을 대신 결정하게 두지 않는 것이다. 다음번에 LLM과 제품 아이디어를 깊이 논의할 때, 당신이 하고 있는 가정을 짚어 달라고 해 보라. 그중 하나를 골라 그 가정이 틀렸다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보라. 그다음, 실제로 그 물건을 써야 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당신의 접근을 비판해 달라고 해 보라."

좋은 실천법이다. 그런데 여기에 앞서 인용한 「Taste Is All That's Left」가 던지는, 훨씬 불편한 질문이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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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취향은 어디서 왔는가?"

"좋은 작업을 많이 봐서 생긴 게 아니다. 훌륭한 프로그램 백 개를 읽는다고 판단력이 삼투압으로 흡수되지 않는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먹는다고 요리사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취향은 느리고 멍청하고 굴욕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 당신이 나쁜 것을 만들고, 그것과 함께 살아야 하고, 그게 눈앞에서 실패하고, 당신의 일부가 그 실패를 기록한다. 그리고 다시 한다.

마찰은 취향을 기르는 데 방해물이 아니었다. 마찰이 곧 커리큘럼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결론이 뼈아프다. 마찰을 없앤 다음 세대는, 첫날부터 유창하게 생성할 수 있고, 나쁜 버전을 출시해서 그 안에 앉아 있어 볼 일이 없다. 벽을 오르지 않았으니 오르면서 배울 것을 배우지 못한다. 그들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지만 만들어야 하는지를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로 도착한다.

이 모순을 어떻게 풀 것인가

두 글은 정면으로 부딪힌다. 테드는 "AI가 실험을 빠르게 해 주니 더 많이 실험하라"고 하고, 저쪽은 "마찰을 없애면 판단력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면, 해소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마찰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정의하는 것.

구분
판단력을 길러 준 마찰은 타이핑이 아니었다. 손으로 코드를 치는 행위 자체가 취향을 만들지는 않는다. 만든 것은 결과를 감당하는 일이었다 — 내가 내린 결정과 함께 몇 달을 살고, 그게 어디서 터지는지 직접 보는 것.
그래서
생성 비용이 0이 되어도 결과를 감당하는 마찰은 인위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 자기가 만든 것을 실제 사용자에게 내보내고, 자기 결정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고,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열어 보는 것. 생성은 공짜가 됐어도 책임은 공짜가 되지 않았다.
경고
반대로, 생성된 것을 읽지 않고 넘기고,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고, 실패를 다시 생성으로 덮는 방식은 커리큘럼을 통째로 건너뛴다. 실험(experiment)과 생성(generation)은 같은 말이 아니다. 실험에는 결과를 확인하고 무언가를 배우는 단계가 반드시 들어 있다.

테드의 글이 놓친 것이 이 구분이다. 그는 "더 많이 실험하라"고 하지만, 실험과 생성을 가르는 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 차이는 속도가 아니라 결과를 확인하는가에 있다.


7부. 세 편의 에세이가 모두 AI로 의심받았다

여기서 2026년에만 있을 수 있는 일이 하나 벌어진다.

이 글이 지금까지 인용한 글은 세 편이다. 테드의 「진짜 창의성이 당신의 새로운 해자다」, 아드리안 크렙스의 디자인 슬롭 분석, 그리고 「Taste Is All That's Left」. 세 편 모두 취향과 창의성이 남는 유일한 가치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중 두 편이 공개적으로 "AI가 쓴 것 같다"는 의심을 받았다.

받은 의심저자의 반응
「창의성이 새로운 해자다」"웃기게도 이거 AI가 쓴 것 같다. 창의성을 조금만 더 썼으면 좋았을 텐데." / "사이트가 명백히 클로드다"다른 독자가 반박: "텍스트는 분명히 AI가 아니다… 실제로 읽어 보면 어떤 AI도 이렇게 쓰지 않는다"
「Taste Is All That's Left」HN 1면에 오른 뒤 "AI 슬롭으로 읽힌다"는 반응이 쏟아짐저자가 글 맨 앞에 부검(post-mortem) 절을 새로 붙임

두 번째 저자의 해명이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일지도 모른다.

🫥
"나도 가끔은 이렇게 쓴다. 짧은 문장, 반전, 한 단어짜리 줄 — 전부 내 것이다. LLM도 그렇게 쓴다. 내가 읽어 온 바로 그 에세이들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그걸 서툴게 하는 것과 기계가 하는 것이, 페이지 위에서 당신에게는 거의 똑같아 보인다. 그건 내 글에 대해 뭔가를 말해 준다. 누가 썼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여기에 한 겹이 더 있다. 아드리안 크렙스의 18가지 AI 디자인 패턴 목록을 다시 보면, 테드의 사이트도 그중 몇 개에 걸린다. 실제로 HN 댓글에서 지적됐다 — 제목에 쓰인 Space Grotesk 서체가 바로 목록의 두 번째 항목이다.

그리고 정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이 페이지도 몇 개는 걸린다. 통계 배너 줄, 번호 붙은 단계 시퀀스, 컬러 왼쪽 보더가 달린 콜아웃 박스. 세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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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진짜 문제가 드러난다. 표면이 수렴하면 진심이 검증 불가능해진다. 공들여 쓴 글과 자동으로 생성된 글이 같은 관습을 공유하는 순간, 독자에게는 둘을 가르는 신호가 남지 않는다.

이것이 "창의성이 해자다"라는 주장에 가장 냉정한 각주다. 해자를 팠는데 아무도 그게 해자인 줄 모르면, 그건 해자로 기능하지 않는다. 3부의 반박 ③ — "취향은 diff에 보이지 않는다" — 이 여기서 다시 돌아온다.

8부.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비판을 다 하고 나서도 남는 것이 있다. 테드의 처방은 구체적이고, 오늘 당장 할 수 있고, 틀리면 손해가 크지 않다. 그게 좋은 조언의 조건이다.

100걸음 물러서기

그의 핵심 제안은 "한 걸음 물러서라"가 아니라 "100걸음 물러서라"이다.

"에지 있는 색 팔레트를 시도해 보라는 얘기가 아니다.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얘기다. 당신의 프로젝트에서 한 걸음이 아니라 100걸음 물러서라. 무엇을 달성하려는 건가? 당신 아이디어의 심장은 무엇인가? 사용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이 멋질까? 무엇이 끝내줄까?"

그리고 네 개의 질문을 준다.

그리고 "어렵다면 제대로 가고 있는 것"

테드의 문장 중 가장 실용적인 것이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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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어렵게 들린다면? 그래, 바로 그거다. 어렵다면, 정말 어렵다면, 당신은 뭔가를 잡은 것일 수 있다. 종종 이것이 바로 그 일이 아직 행해지지 않은 이유다 — 어려운 문제라서, 아무도 아직 풀지 못해서. 당신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고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리고 아이라 글래스의 유명한 '취향의 간극'을 불러온다. 초보자에게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 것 — 처음 몇 년간 당신이 만드는 것은 그냥 좋지 않다. 그런데 당신을 이 일에 끌어들인 취향은 여전히 최고 수준이다. 그래서 자기 작업이 자신을 실망시킨다.

테드의 요청은 여기서 나온다. "그 반응을 바꿔 달라고 간청한다. 당신이 시도하는 것의 상당수가 작동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해야 한다. 어색하거나 혼란스러운 것을 만들 것이고, 세 시간 뒤에 당신의 기가 막히게 영리한 아이디어에 꽤 명백한 문제가 있다는 걸 발견할 것이다. 축하한다, 당신은 실험하고 있다."

실무로 옮기면

① 기본값 감사
이번 분기에 내린 디자인·제품 결정 중 도구가 제안해서 그대로 간 것이 몇 개인지 세어 보라. 위의 슬롭 탐지기를 자기 화면에 돌려 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목표는 0이 아니다 — 어느 것이 선택이었고 어느 것이 관성이었는지 아는 것이다.
② 가정 하나를 뒤집어 본다
분기에 한 번, 우리 분야가 의심하지 않는 가정을 하나 골라 뒤집고, 그 세계에서의 제품을 한 페이지로 그려 본다. 대부분 버려질 것이다. 버려지는 것이 정상이고 그게 비용이다.
③ 실험과 생성을 구분한다
생성한 것을 실제로 써 보고 무엇을 배웠는지 한 줄 남기지 않으면 그건 실험이 아니다. AI로 프로토타입을 열 개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는 아무 정보도 아니다.
④ 속도가 아니라 반복 횟수를 본다
해자가 프로세스 파워라면, 재야 할 숫자는 "얼마나 빨리 출시했나"가 아니라 "이번 분기에 몇 번 가정을 뒤집어 봤나"다. 전자는 경쟁사도 같이 빨라진다. 후자는 습관이라 복제되지 않는다.
⑤ 적용 범위를 정직하게 긋는다
반박 ②를 기억하라. 결제 흐름과 배송 조회 화면에서 창의성은 대개 마이너스다. 실험의 예산은 사용자가 "빨리 끝내고 싶은" 곳이 아니라 "여기 왜 왔는지" 결정하는 곳에 써야 한다.

마무리 — 뮤트 버튼

테드의 글은 이렇게 끝난다.

"나는 그 우스꽝스러운 플래시 사이트들을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기가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알아내는 데 그렇게 눈에 띄게 신나 했기 때문이다. 그 흥분을 다시 보고 싶다. 우리 손에는 비범한 도구들이 있고,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니 이상한 아이디어에 신빙성을 주기 시작하고, 그 이상한 아이디어 중 뭐라도 작동하는지 가서 확인하라. 다만, 사운드트랙을 넣을 거면 제발 뮤트는 되게 해 달라 ;)"

이 마지막 농담이 실은 이 글 전체의 요약이다. 플래시 시대는 신났고 동시에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시대를 통과하면서 배운 것이 지금의 접근성 기준이고 성능 예산이고 디자인 시스템이다. 닐슨이 옳았고 테드도 옳다. 99%가 나빴다는 것과, 그 99%가 나머지 1%를 사는 값이었다는 것은 동시에 참이다.

2026년에 달라진 것은 그 99%가 더 이상 아무 비용도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비용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만드는 데서 고르는 데로.

🧭
이 글의 검증 결과를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창의성이 해자다"는 명제로서 느슨하다. "계속 발명해 내는 조직의 습관이 프로세스 파워로 굳으면 그것이 해자다"는 명제로서 견고하다. 전자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어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후자는 분기 계획을 바꾼다.

그리고 후자는 공짜가 아니다. 취향은 늦게 보상받고, 실험은 대부분 실패하며, 그 둘 다 대시보드에 찍히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하겠다고 정하는 것 — 그게 전략이고, 모르고 하는 것은 그냥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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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한 근거

플래시 시대